黄齒人[황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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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도 하지않고 황교장 앞에 쑤욱 나타난 사나이 ── 왼편 볼 위에 굵다란 지렁이가 기어가는것 같은 보기 흉한 칼자리를 가진, 나이가 오십쯤 되어 보이는 키가 극히 적은 사나이다.

사나이는「캡」을 벗지도 않고 양복 웃저고리에 양손을 꽂은채 등으로

「도어」를 떠밀어 닫고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들창을 등지고 묵묵히 앉아 있는 황교장을 역시 묵묵히 노려보았다.

얼굴빛이 유달리 깜한 것은 항상 뜨거운 태양 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부수수하니 자란 수염도 깎지않고 입에는 「마드로스‧파이프」를 물고 ──

「마드로스‧파이프」를 물어서 그렇게 보이는지는 몰라도 어딘가 해상생활(海上生活)을 하는 선부같기도 하다.

『준비는 착실히 해두었을줄 아는데 ──』

수상한 사나이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것은 벌써 하나의 권력을 표시하는 엄연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황세민씨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사나이를 묵묵히 쳐다볼 뿐이다.

『준비는 착실할테지?』

사나이의 목소리는 조금 높아졌다.

『약속대로 삼 만원을 ──』

『…………』

『삼 만원은……

『…………』

『삼만원!』

『…………』

점점 찌그러져가는 사나이의 얼굴이었다.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나의 요구를 무시한다는 말이지? 히히히 ──』

사나이의 비굴한 웃음소리가 이빨 사이로 『히히히, 히히히』하고 굴러 나왔다.

아아 그 무서운 이빨! 짐승의 치아(齒牙)처럼 커다랗고 싯누런 이빨!

『삼만 원이 아깝다는 말이지? 히히히, 히히히……』

사나이는 그 구리처럼 싯누런 이를 보이면서 짐승 처럼 『히히히, 히히히』하는 웃음을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오싹 끼치는 무서운 웃음이었다.

『할 수 없지!』

하고 뱉 듯이

『삼만 원이 아깝다면 할 수 없거든! 그러나 그 순간 부터 혜성전문학교 교장 황세민씨가… 히히히, 히히히……』

사나이는 그러고 황세민씨의 앞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황세민씨가 조선 교육계의 은인인 황세민 교장이……히히히 ── 그런 것을 생각하면 삼만원 아니라 삼십 만 원도 아깝지 않을텐데 ──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자 황세민씨는 계산에 좀 어두워. 이해타산이 밝지 못하거든 ──』

하고 그는 말을 끊었다가

『아니, 내가 지나친 생각을 했군! 하옇든 나는 오늘밤 약속대로 삼만 원을 받아가면 그만이니까. 이렇다 저렇다 여러말을 벌려 놓았자 결국 내 입만 닳아빠지고 ──』

그리고 팔뚝시계를 한번 드려다보고 나서 이번에는 좀 강경한 태도로 황세민 시간이 바쁘니까 『 ! 빨리 대답 하게! 대체 어떻게 할 셈이야? 그렇게 잠자코만 앉았으니 그럼 그대는 나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그 때 까지 잠자코 있던 황세민씨가 돌연

『악마!』

하고 외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만큼 이편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 만큼 네 사정을 보아 주었는 데도 불구하고 이제 삼만원은 또 무슨 삼 만원이란 말인가?』

하고 전신을 부들두들 떨면서

『악인은 악인대로의 의리와 우정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너같이 뱃대기 속까지 썩어져 버린 놈이 대체 어디 있단말이냐? 어서 나가! 어서 이방으로부터 못 나갈테냐?

그러나 사나이는 조금도 두렵지 않은 모양으로 어깨를 한번 들썩거리며

『흥! 날보고 도리어 악인이라고?……백영호를 죽인게 그게 누구였던가?…… 히히히…… 그만했으면 삼 만원 쯤은 아깝지 않을텐데, 흐, 흐, 흣 ……, 히, 히, 힛 ──』

하고 싯루런 이빨을 내보이었다.

『뭐가 어때?』

그 순간 황교장은 마치 눈에서 불덩어리가 솟아나는 것 같이 외쳤다.

『백영호씨를 죽인게 대체 누구였던가 물었을 따름이야. 뭘 그리 놀랄 게 있나, 응?』

싯누런 이빨을 가진 수상한 사나이는 상대방에 관한 모든 비밀을 자기 혼자만이 알고 있다는데서 부터 울어나오는 힘과 권력을 보이기 위하여 한층 더 침착한 태도로 방안을 왔다갔다하면서, 말하자면 일종의 시위운동을 개시하는 것이었다.

『백영호씨를 죽였다?』

『그리고 백남수도 죽이고 ──』

『백남수를?……』

황교장은 모든 것이 꿈같다는 듯 얼마 동안 어리벙벙하니 서 있다가

『대체 군은 ──』

하고 어지간히 침착한 음성으로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군은 대체 정신이 있는가 없는가?……군의 이야기를 들으니 백영호씨와 백남수군을 해한 범인이 이 황세민이란 뜻인데, 그게 대체 어떠한 근거에서부터 나온 이야긴지, 좀 자세히 설명하면 어떤가? 자네가 아무리 악당이기로 그러한 근거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함부로 입에 담는단 말인가?』

『근거없는 이야기라고?……흥!』

하고 입을 한번 삐죽한 다음에

『그거야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그러니까 그걸 다시 내입으로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하옇든 자네와 백영호씨와의 관계를 아예 입밖에 내지않는다는 조건으로 삼 만원이면 그리 큰 돈도 아니겠고 ──』

그 때 황교장은 화를 벌컥 내면서

『돈이 많다 적다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혹시 나의 과거의 약점을 잡아 가지고 나에게서 삼만원이란 돈을 취해 가겠다면 또 모르거니와 비굴하게도 그 삼 만원을 조건에 엉터리 없는 백영호씨 살해사건까지 끄집어 넣는 이유가 대체 어디 있느냐 말이야? 그야 물론 백영호씨와 남수군이 살해를 당한 그 시간에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설명하면 그만이거니와 그것과는 별문제로 네가 만일 끝끝내 나의 생활을 협박하고 괴롭힌다면 나는 도저히 너 같은 놈을 용서할 수 없어!』

그 처럼 유화한 황교장의 얼굴에는 어느새 점점 독기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 이상 더 참을 수가 없다는데서 나오는 그 어떤 장엄한 결심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은 결국 나의 요구를 용감하게 물리치겠다는 의 민가? 히, 히 힛 ── 그럼 허는 수 없지. 할 수 있나!……』

사나이는 그 때 또 한번 어깨를 추켜 올리면서

『그러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건 아니야. 돈을 채 마련하지 못했다면 지금으로부터 꼭 하루만 더 참아주지. 꼭 하루 ── 하루가 몇 시간인지 아나? 이십 사 시간! 이십 사 시간만 더 여유를 줄테니까 이십 사 시간이면 적어도 사회적 명망이 높은 황세민 교장 쯤이면 돈 삼 만원 쯤이야 뭐……

더구나 백영호씨의 백만원 재산이 남수의 손을 거쳐 정란의 손으로 굴러들은 이즈음! 공작부인 주은몽 아씨를 잘 삶아 놓으면 대금 칠십 만원이란 돈이 자네 수중으로 굴러 들겠다.! 그 칠십 만원의 이십 분지 일 쯤으로 이 불쌍한 친구를 구제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테니까 ── 히히히, 그럼 오늘은 이만하고 가네. 꼭 이십 사 시간이라네! 히히히히 ──』

그리고 사나이가 그 추악한 얼굴에 싯누런 이를 내보이면서 히, 히, 힛 하고 두 서너번 웃어댄 후 발걸음을 돌리어 복도로 나가려는 그 순간이었다.

「포켙」에서 「피스톨」을 꺼낸 황교장의 손이 사나이의 뒷덜미를 향하고 번쩍 들리었다.

사나이의 등골을 향하여 번쩍 들린 황세민의 권총!

뒤이어

『탕 ──』

하고 고요한 밤공기를 울리는 총소리 한방 ── 그러나 황세민씨의「피스톨」은 사나이를 쓰러뜨리는 대신 바로 머리 위에 매어달렸던 전등을 쏘았던 것이다.

캄캄한 방안 ── 황세민씨가 「피스톨」을 번쩍 든 그 순간, 바로 등뒤 「커─텐」 사이로 양복을 입은 어떤 사나이의 주먹이 쑥 나타나면서 황세민씨의 권총을 든 손목을 탁 쳤던 것이다.

『악!』

하고 싯누런 치아를 가진 사나이의 놀라는 소리와

『이게 누구야?』

하고 황교장의 부르짖는 소리가 일시에 들리었다.

그러나 방안은 옷칠을 한 듯 캄캄하다. 황교장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다.

누가 들창을 넘어 방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기척이 보인다.

『누구야? 누구야?』

하고 고함치는 황교장의 물음에는 대답이 없고 「도어」를 홱 하니 열어 젖히며 복도로 뛰어가는 두 사람의 발자욱 소리 ── 황교장은 얼마 동안 어리벙벙하니 서서 두 사람의 발자욱 소리가 정문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꿈결처럼 들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물론 황교장은 자세한 사정은 몰랐으나 그 놈은 자기 짝패를 들창밖에 파수시켜 놓았던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악운이 센 놈이란 할 수 없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는 촛불을 가지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즈음 ── 황세민씨의 서재로부터 뛰어나온 두 사나이의 시컴은 그림자는 효자동 종점을 향하여 어둑어둑한 골목을 쏜살같이 달음질치고 있었다.

앞선 놈은 키가 적고 뒤선 놈은 키가 크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두 사나이가 같은 파당 같지는 않았다. 앞서서 등뒤를 힐끗힐끗 돌아다 보면서 달음질치는 키 적은 사나이는 틀림없이 저 싯누런 이빨을 가진 무서운 사나이이며 그 뒤를 역시 죽어라하고 따라가는 키 큰 사나이는 분명히 유불란 탐정이었다.

효자동 종점이 가까웠을 때 두 사람의 사이는 불과 십 「미─터」밖에 안 되었다.

그 때 유불란은

『아차 ──』

하고 외쳤다. 왜 그러냐하면 자기보다 약 십 「미─터」쯤 앞선 그 사나이가 지금 마악 떠나가는 전차에 휙하고 올라탔던 때문이다.

닭쫓던 개 지붕마루 쳐다보 듯 유불란은 멍하고 어둠속으로 점점 적어져 가는 전차의 뒷 그림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요행으로 전차가 총독부 앞으로 「커─브」를 했을 바로 그 때, 손님을 태워가지고 온 한대의 자동차가 유불란 옆에서 멈췄다.

『빨리, 빨리!』

유불란은 자동차에 오르자 마자 그렇게 외쳤다. 위잉! 하고 달아나는 자동차 ──

『저 ─ 앞에 가는 전차를 따라가 주게!』

그러나 자동차가 총독부 앞까지 다달았을 때 전차는 벌써 거의 광화문에 정류하려 할 때였다.

『저 전차다! 속력을 내라! 속력을!』

유불란은 미친듯이 부르짖었다.

이리하여 총독부앞 넓은 길을 글자 그대로 비조처럼 몰아댄 유불란의 자동차가 광화문 전차 정류장에 다달았을 때

『스톱!』

하고 유불란은 고함을 쳤다.

『보수는 얼마던지 줄테니 자네는 자동차로 스름스름 내 뒤를 따라주게!」

그런 말을 남겨놓고 유불란은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 「고스톺」의 「시그 날」이 서 있는 곳을 향하여 달음박질 친다.

과연 전차에서 내린 저 키 작은 사나이가 태평동 거리로 뛰어가지 않는가.

사나이는 광화문 네거리를 건너서자 조선일보 쪽을 향하여 나는 듯이 달름 박질 친다. 한참 가다가 하나씩 섰는 가로등 밑을 번개처럼 닫는 사나이와 그 뒤를 약 백「미─터」가량 떨어져서 따르는 유불란 탐정 ── 그렇다! 이 싯누런 이빨을 가진 괴한(怪漢)만 체포한다면 백영호씨와 황세민씨에 관한 비밀을 알 수 있을 것이며 한걸음 더 나아가 사건의 주인공인 도승 해월의 정체를 청천백일하에 폭로 시킬수 있을 것이다.

유불란과 괴한의 사이가 점점 가까워진다. 조선일보사를 지나고 부민관을 지나서 괴한이 부청앞 넓은 마당을 본정 쪽으로 향하여 횡단(橫斷)하려고 하는 바로 그때였다.

 남대문 쪽에서 황금정으로 질주해 오는 한대의 빈 「택시」 ── 괴한은 손을 번쩍 들어 「택시」를 멈추질 않는가.

『앗! 저 놈이 「택시」를 멈추었다! 여보 운전수! 빨리 저 「택시」를 따라 가 줘요.』

하고 아까 효자동에서 광화문까지 타고온 자동차가 그 때까지 자기의 뒤를 스름스름 따르고 있던 것을 본 유탐정은 자동차에 올라 타자마자 그렇게 외쳤다.

『네, 염려 마십쇼! 약주값만 톡톡히 주신면야 ──』

『약주값은 염려말고 시퍼런 영감님 한장!』

그 때는 벌써 괴한을 실은 「택시」가 우렁찬「엔진」소리와 함께 황금정 쪽으로 쏜살같이 날고 있을 때였다. 그 뒤를 따르는 유탐정의 자동차 ── 과연 약주값 십원의 효과는 즉시로 나타났다. 반도「호텔」앞까지 왔을 때에는 두 자동차 사이가 불과 오십 「미─터」, 황금정 네거리에 다달았을 때는 삼십「미─터」, 그리고 거기서 왼편으로 「커─브」해 가지고 종로 네거리까지 왔을 때 두 자동차는 마침내 어깨를 나란히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유불란은

『앗차!』

하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어찌된 노릇인가?

『빈 「택시」가 아닌가?』

텅빈 객실 ── 운전수가 수상스럽다는 얼굴로 「택시」를 멈추면서

『대체 무슨 일이 생겼소?』

하고 도리어 유불란에게 묻는 것이다.

『무슨 일이라니? 이제 방금 부청 앞에서 태운 손님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땅으로 자잣는지 하늘로 올라갔는지 연기처럼 없어진 사나이였다.

『아, 그 키 작은 손님 말씁입니까?』

『응! 얼굴에 칼자리가 있는 손님!』

『그는 지금 쯤 본정통을 산보하고 있을 겁니다.』

『뭐, 본정통?』

하고 반문하는 유탐정이었으며

『앗, 속았구나!』

하고 재차 외치는 유불란이었다.

그 때야 유불란은 저 황치인(黃齒人)의 요술을 짐작하고 마음속으로 감탄하였다.

그놈은 『── 사실 지금 쯤은 본정통을 산보하고 있을거다.──』

하고 신음하는 유불란에게 「택시」 운전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 손님은 왼편 문으로 자동차에 오르면서, 앗차! 내가 긴급한 용건을 잊었구나 하고 외치며, 운전수 미안합니다, 한마디를 남겨놓고 이번에는 바른편 문으로 내려서 우편국 쪽으로 뛰어갔읍죠. 뛰어 내리면서 일원짜리 지폐 한장을 쥐어주길래 꼬라지는 못 생겼을 망정 인사성 있는 양반이라고, 난 또 기분이 좋아서 한참 몰아댔더니…… 그런데 그가 도둑놈입니까?』

그러나 그 때는 벌써 타고온 자동차에 다시 뛰어 오르며

『청운정!』

하고 부르짖은 유불란이었다.

두말 할 것 없이 청운정 황세민교장을 찾으려는 것이다.

유불란 탐정이 다시 자동차를 몰아 청운정 황교장의 집을 찾았을 즈음 ── 황교장은 서재 팔거리 의자에 깊이 파묻혀 그 어떤 심각한 명상에 잠겨 있었다.

『아 그럼 그것이 유불란씨 였었읍니까! 나는 또 그 놈의 패거리인줄만 알았지요.』

유불란의 설명을 듣고난 황교장은 단지 그것 한마디뿐, 그 밖엔 아무말도 없이 묵묵히 앉아서 담배만 피우고 있다.

『그런데 황선생!』

하고 그 때 유불란은 안색을 가다듬고 황교장을 쳐다보았다.

『무엇보다 먼저, 지금 황선생의 입장이 대단히 불리하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 보다도 황선생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황교장은 아무 대답도 없다.

『왜 그런가는 제가 새삼스러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 그러니까 제가 제 입으로 이것저것 선생께 질문을 발하는 것 보다도 선생이 자진해서 제가 알고 싶어하는 모든 의혹을 풀어 주신다면 이상 더 기쁜 일은 없겠읍니다.』

하고 황교장을 다시 한번 빤히 쳐다 보았으나 황교장은 그저 푹푹 담배만 피울 뿐이다.

『어떻습니까 선생님? 선생과 백영호씨의 관계, 그리고 오늘밤 여기 나타나서 선생께 삼만원을 강청하던 그 괴한과 선생의 관계를 좀 말씀해 주실 수 없겠읍니까? 그의 입을 빌어 말하면 백영호씨와 백남수씨를 해친 것이 선생이라는 의미 같았었는데…… 그러나 그것은 저로서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니만큼 어째서 그가 그런 말을 하는지…… 저는 거기 대한 만족한 대답을 선생께 기대하고 있읍니다. ──』

『네 ──』

하고 그 때 비로소 황교장은 대답 하였다.

『오늘밤 유불란씨가 제게 보여준 호의는 대단히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지금의 나로서는 거기 대한 만족한 답변을 해드리지 못함을 역시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황교장은 그리고 『에헴』하고 한번 기침을 한 다음에

『어째서 그 놈이 나를 일부러 백영호씨와 백남수군을 해친 범인이라고 인정하는지, 그 점에 대해서 나 역시 꿈같은 이야깁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단지 그 점에 대한 변명을 해드리면 그만이겠고, 그 외에 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대단히 유감된 일이나마 유불란씨의 의혹은 하나도 만족하게 풀어 드릴 자격을 갖지 못했읍니다.』

하고 잠깐 말을 끊었다가

『백영호씨가 살해를 당한 시각에 나는 지금 앉아 있는 이 서재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사람은 우리집 식모일 것이며 백남수군이 살해를 당한 시각에는 내가 학교사무실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사람은 학교 소사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 대해서 무슨 의심이 가는 것이 있다면 유불란 자신이 한번 면밀히 조사해 보시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하고 그 외에는 오불관연이라고 뚝 잡아떼는 황교장의 태도였다.

『아니올시다. 이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그 점에 대해서는 저 역시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바이니까 조사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단지 제가 황 선생께 묻고자 하는것은 백영호씨와 선생의 관계올시다. 아까 그 괴한의 말을 빌것 조차 없이 선생과 백영호씨 사이에는 비단 칠십만원 제공문제뿐 아니라 그 외의 어떤「델리케이트」한 관계가 잠재해 있다고 생각하는데……』

『글쎄올시다. 유불란씨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거야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백영호씨와 나와의 관계는 칠십만원 제공문제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똑똑히 말해두는 바입니다 ──』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한 듯한 황교장의 태도에 유불란은 잠깐 동안 묵묵히 앉아있다가 다시 계속하였다.

『선생이 그 처럼 강경한 태도를 취하신다면 나로서 이상 더 이렇다 저렇다 물을 필요 조차 없읍니다. 이 처럼 극히 불리한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침묵으로서 일관하신다면 문제는 오직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해결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오늘밤에 일어난 일이 만약 임 경부의 귀에 들어간다면 대단히 재미있는 일이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이이죠!』

『그런데, 한가지 ──』

하고 유불란은 「포켙」에서 한장의 사진 ── 남수가 살해를 당한 직후 남수의 「포켙」에서 수첩과 함께 빼낸 문제의 처녀 사진을 꺼내어 「테이블」위에 내놓았다.

『선생도 이와 똑같은 사진을 가지고 계신 듯 싶은데 ──』

하고 황교장의 안색을 살피는 순간

『엣?』

하고 놀라는 황세민씨였다.

『이것은 남수군이 어디선가 주웠다는 사진인데, 선생도 아시다싶이 이와 똑같은 것을 백영호씨 살해사건이 일어난 직후, 이층 미술품 수집실에서도 한장 주웠읍니다. 물론 해월이가 떨어뜨린 것에 틀림이 없는데……』

황교장의 얼굴에는 일순 걷잡을 수없는 오뇌의 빛이 뭉게뭉게 떠돌았다.

『선생은 이 사진속의 인물을 누구보다도 잘 아실줄 믿습니다!』

그러나 황교장은 그 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모릅니다. 나는 그런 인물을 조금도 모릅니다!』

하고 부르짖었다.

『모르신다면 그 것 역시 할 수 없는 일이고……그리고 선생은 저 무서운

「부부암(夫婦岩)의 비밀」도 모르실 것입니다!』

『부부암의 비밀? 뭐, 부부암의 비밀?』

그 말이 유불란의 입에서 떨어지자 황교장은 외치며 후닥딱 의자에서 뛰어 일어난 것이다.

『그것 조차 모르신다면 전 그럼 이만 오늘밤은 실례하겠읍니다. ──』

하고 유탐정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모릅니다! 모릅니다!』

하고 고함치는 황교장의 목소리를 등뒤에 들으며 창황한 발걸음으로 황세민의 집을 나섰다.

『그렇다. 황세민씨의 입으로 부터 그러한 비밀이 손쉽게 줄줄 터져 나온다면 탐정이란 일이 뭐 어려울 것도 없는게 아닌가!』

유불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열 두시가 가까운 밤거리를 전차도 탈 생각 없이 태평동 자기집까지 터벅터벅 걸어왔다. 현관을 들어서니 젊은 서생이 기다리고 있다가

『전보가 왔읍니다.』

하고 앞서서 이층 서재로 뛰어 들어갔다.

『어디서?』

『「샌프란시스코」에서요.』

『「샌프란시스코」? ──』

두말 할 것 없이 「로스안젤스」에 사는 사립탐정 「존‧피─터」로 부터 온 전보일 것이다. 과연 전보는 「존‧피─터」로 부터였다. 「샌프란시스코」의 「윌리엄‧엔더─슨」과 황교장에 관한 전보인데 전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간단히 적혀 있었다.

「윌리엄‧엔더─슨」은 당시(當時)의 명망있는 목사(牧師) ── 二十年[이십년] 전까지 남지나해(南支那海)에서 해적(海賊)생활을 계속하던 황(세민) ── 상세한 것은 후보로 ── 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