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14장
疑惑[의혹]
편집복수귀 해월은 마침내 또 남수를 죽였다. 세상은 해월의 대담무쌍한 담력에 혀를 차는 한편 유탐정과 오변호사의 무능을 시비하기 시작하였다.
실상 유불란 탐정으로서는 그 이상 더 불명예가 없었다. 해월을 눈앞에 빤히 바라보면서 놓쳐버리지 않았는가.
『아아, 불명예다, 불명예다!. 유불란, 너는 이 사건에 있어서 너무나 무력하다.』
이것은 이튿날 아침, 유불란 탐정이 삼청동 공원을 혼자 이리저리 산책하면서 자기 자신을 꾸짖은 말이었다.
사실 이번 사건처럼 유탐정의 고혈(膏血)을 짜아내는 사건은 드물었다. 처음부터 유불란이 사건에 관계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건보다 훨씬 쉽게 해결을 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 잘못이였던가 보다.
그러나 그러나 『 , 이상한 일이다. ── 나의 상상에 틀림이 없다면 해월은 확실히 그 놈인데……』
유불란은 벌써부터 그 어떤 인물을 해월이라고 가상(假想)하고 그 가상 밑에서 모든 추리를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제밤 남수 살해사건에 접함으로써 그 때까지 고이고이 길러오던 그 무서운 가상이 뿌리째 송두리째 산산이 깨여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하옇든 한 인물의 사진을 세 사람이 똑같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해월과 황세민과 또 한사람……또 한사람?……남수가 주웠다는 사진은 대체 누가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유불란은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문득 발부리로 조그마한 조약돌 하나를 툭 찼다. 그리고 그 조약돌이 채 「풀」위에 떨어지기도 전에
『앗차, 백영호다!』
하고 외쳤다.
『그렇다! 또 한사람은 백영호씨에 틀림이 없다! 남수가 주웠다는 사진은 확실히 백영호씨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어째서?……어째서 그렇지 않은가!…… 어째서?…… 글쎄 그렇지 않은가?……』
유불란은 발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자기자신의 물음에 대하여 답변을 하려는 것이다. 담배를 붙여물고「스틱」으로 몸을 의지하여 이끼 낀 푸른 못을 뚫어질 듯이 노려본다.
「그렇다! 어째서?……그렇다! 어째서?…… 그렇지 않은가! 첫째로 남수가 그와같은 중대한 증거품이 되는 사진을 발견하고도 그 출처(出處)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대체 어디 있는가? 해월이가 떨어뜨린 것과 똑같은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라면 그렇다, 그것은 남수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출처를 밝히기를 꺼릴 것이 아닌가?……살인귀 해월과 자기아버지 사이에 한장의 사진을 중심으로 비밀이 얽혀 있으리라고 믿는 그 뜻하지 않은 발견! 남수는 놀라고 의심하고 그리고 그 사진에 관한 해월과 아버지의 그 어떤 비밀을 찾아 내려는 맹렬한 탐정욕에 가슴을 태웠을 것이다. ── 그러면 사진에 관한 비밀을 알려고 남수는 대관절 어디로 여행을 갔었던가?…… 사흘 만에 돌아온 남수는 그 어떤 무서운 비밀을 가지고 왔었다. 그러나 해월은 남수의 입으로부터 비밀이 탈로 될 것을 방지하려고 남수를 죽였다.』
유불란의 두눈은 불덩어리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수의 수첩에 적혀 있는「부부암의 비밀」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장의 사진을 해월과 백영호씨와 황세민씨 ── 이 세사람이 다같이 가지고 있다는 이 이상 야릇한 사실!
그 순간 유불란은 채 타지 않은 담배를 툭하고 못가운데 던지면서 외쳤다.
『남수가 부리나케 다녀온 곳 ── 그것은 남수의 고향이다. 백영호씨의 고향일 것이다!』
『그렇다, 남수가 자기 고향에 갔다온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부터 약 삼십년 전 ── 다시 말하면 문제의 사진속의 처녀와 남수의 아버지 백영호 사이에 그 어떤 관계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한편 문제의 사진이 약 삼십 년 전에 찍은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의 백영호씨가 어디 있었던던가?……그것이 문제가 될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 ── 확실하게 단언할 수는 없으나 그 즈음 백영호 씨는 아마 자기 고향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유불란의 상념이 거기까지 도달했을 때, 그는 황급한 걸음으로 못가를 떠나 남수네집 정문을 향하여 걸어 들어갔다.
어제밤 급보를 받고 돌아온 임경부 이하 여러 경찰관들이 이층 응접실을 임시 수사본부로 정하고 아직도 분주스러히 활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임 경부의 그림자가 들창 안으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유불란는 정문을 들어서면서 저편 화단 옆을 산책하는 남녀 두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정란과 그의 약혼자 문학수였다.
『정란씨 잠깐?』
하고 유불란은 정란의 파리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유선생, 아직 댁으로 돌아 가시지 않으셨읍니까? 돌아가셔서 주무신다고 그러시더니 ──』
『네 집으로 가서 한잠 느러지게 자려고 했었는데……한가지 정란씨에게 여쭤볼 말씀이 있어서요.』
『무슨 말씀?』
『저리로 가십시다.』
유불란은 정란과 문학수를 저편 은행나무 밑「벤취」로 데리고 가서 걸터 앉으며
『정란씨의 고향이 어디시지요! 평안남도 어디시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
하고 밤새껏 울어새인 정란의 통통부은 눈두덩을 쳐다보았다.
평안남도 천읍 이라는데 『 × , 저는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서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평안남도 ×천읍이면 저 대동강하류(大同江下流)에 있는?』
『네 거기서 진남포까지 한 이십리 밖에 안된다나봐요.』
정란은 무엇인가 약간 불안한 눈동자로 유불란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정란씨가 ×천을 떠난지는 언제입니까?』
『제가 두살 때라니까 벌써 한 이십 년 된 셈이지요.』
『이십 년?……음 ── 그럼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그간 고향인 ×천에 여러번 가보셨겠지요?』
『글쎄요. 그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고향에 가신다는 말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이 자라난 저이니까요. 그건 왜 물으세요?』
하는 정란의 물음을
『아니 잠깐 ──』
하고 회피하면서
『정란씨의 자친님께서도 역시 고향이 ×천이십니까?』
『네, 같은 ×천이래요. ×천은 아주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데 아직 한번도 가보질 못해서 고향에 대한 동경이 무척 커요.』
『그렇겠습니다. 언제 한번 고향엘 가 보시지요.』
그 때 옆에 앉았던 문학수가
『그런데 유불란씨, 정란씨를 이런 위험한 장소에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읍니다. 어느때 어떠한 위험이 닥칠지……』
하고 비장한 얼굴로 유불란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정란은 돌연
『앗, 저기저거 ── 저게 뭐야?』
하고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그렇게 외쳤다.
『뭡니까? 뭐?』
유불란과 문학수가 동시에 정란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욱어진 은행잎 사이로 범나비 처럼 팔락팔락 떨어져 내리는 한장의 주홍색 종이조각
『앗 봉투다! 붉은 봉투다!』
『붉은 봉투다!』
『해월의 경고문이다!』
문학수와 유불란은 그렇게 외치면서「벤취」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암록색 은행잎 사이를 눕이 듯 팔락팔락 떨어져 내리는 빨간 봉투 한장 ── 그것은 틀림없이 살인귀 해월의 경고장이다.
삽분하고 소리없이 잔디위에 내려앉은 붉은 봉투를 향하여 뛰어 가는 문학 수와는 반대로 땅위에 못박힌 것 처럼 한 곳에 우뚝 서 있는 유불란의 시선은 자기 머리위에 욱어져 있는 컴컴한 은행잎 사이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는 것이다.
그 욱어진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간신이 보이는 한개의 들창문 ── 그것은 틀림없이 은몽의 침실 바로 윗층인 미술품 수집실이 아닌가.
그 순간 현관을 향하여 달음박질 치는 유탐정의 몸뚱이 ── 현관을 들어서 자 그는 기다란 복도를 왼편으로 「커 ─ 브」하여 나는 듯이 층층대를 뛰어 올라갔다.
남수의 시체가 안치 되어있는 남수의 방을 지나고 임경부 이하 여러 경찰들이 모여 있는 응접실을 지나고 그리고 그 다음 방인 미술품 수집실을 향하여 뛰어가던 유탐정은 그 때 수집실「도어」가 방싯하니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마침내 수집실「도어」를 열어 젖히고 안으로 들어 섰다.
예기하던바와 틀림없이 수집실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해월이가 그때까지 수집실안에 머물러 있을리는 만무하였던 때문이다.
그는 열어 젖힌 들창문으로 상반신을 내밀고 무성한 은행나무 가지를 손으로 헤치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해월의 경고문을 읽는 문학수와 정란의 그림자가 내려다 보일 뿐이었다.
그는 다시 밖으로 뛰어나와서 해월의 편지를 읽었다. 그것은 해월이가 유불란과 오상억에게 보낸 협박장이다.
유불란, 주책없이 사건에 뛰어 들었다가는 네 목숨이 위태하리라. 이 말은 오상억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주은몽을 사모하는 너는 나의 칼날로부터 은몽을 구하고자 하는 동시에 미남 오상억의 손으로부터 은몽을 빼앗고자 하지만 그것은 모두 아무 효력없는 노력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았자 나의 칼날로부터 은몽을 구하지 못할 것이며 오상억의 손으로부터도 은몽을 빼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은몽과 오상억의 사이가 요즘 어떻게나 농후해졌는가를 너는 아직 모르리라. 너와 은 몽의 관계보다도 오상억과 은몽의 관계가 열 배나 스무 배나 더 깊어 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으니까. 그것은 하옇든 유불란, 나의 계획은 기계처럼 정확하게 일보일보 진행되고 있다. 나의 하고자하는 바를 방해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죽여 버릴테다. 백영호씨도 죽었다. 그리고 백남수도 죽었다. 은몽을 보호하고자하는 자는 모두가 나의 적이다.
너도 그렇고 오상억도 그렇다. 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한다면 한시 바삐 이 사건으로부터 손을 떼어라!~ 나는 어디있느냐? 나는 항상 너희들과 같이 있다!
해 월
『사건은 촉박했다!』
편지를 읽고난 유불란은 그렇게 중얼 거렸다.
그 때 현관으로부터 오상억과 주은몽이 어깨를 나란히하고 정원으로 나온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척 정다워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아 여기 계졌군요.』
오상억은 그러면서 유불란 앞으로 걸어왔다.
유불란은 잠자코 해월의 경고문을 그들 앞에 내놓았다.
『붉은 봉투?』
봉투를 보자마자 은몽은 그렇게 외치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상억과 은몽이 해월의 협박장을 읽고 있을 그 때 안으로부터 임 경부도 뛰어나왔다.
『또 협박장입니까?』
하면서 임경부도 편지를 드려다 보았다.
이윽고 편지에서 눈을 뗀 오상억은
『대체 그 놈은 어디서……』
하고 대체 어디 숨어서 은몽과 자기를 감시하고 있었느냐는 말끝을 채 맺지 못하고 은몽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은몽은 아무말도 없다. 머리를 푹 숙이고 유불란의 시선과 마주치는 것을 무척 두려워하는 태도였다.
『그런데 ──』
하고 오상억은 말머리를 돌리면서
『이 협박장을 보니 사태가 대단히 절박한 감을 느끼게합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제삼차의 비극 ── 아니 제사차, 제오차의 참극이 발생할지도 모를 테니까……』
『그렇습니다.』
유불란도 오상억의 말을 지지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저마다 개인 행동을 취해 왔지만 그래가지고는 도저히 해월에게 대항해나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통절히 느꼈읍니다. 개인의 공로라든가 명예라든가, 그런 것 보다도 우리는 사회의 치안을 위해서 어디까지든지 서로서로 협력하여 공동전선을 펴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국은 당국대로 따로 행동을 취하고 또 유불란씨는 유불란씨 대로 개인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설사 임경부와 유불란씨 사이에 어떠한 악감정이 가로 막혀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한개의 조그마한 사적감정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까 ──』
『그렇습니다. 임경부께서 저와 타협하기를 즐기지 않더라도 이번만은 제가 머리를 숙이고 도와주십쇼하고 빌지 않으면 안되게끔 사건이 절박했읍니다. 절박했을뿐만 아니라, 사건의 범위가 대단히 넓어서 도저히 나 혼자서는 손이 미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적어도 이 사건을 해결지려면 세 갈래로 파당을 나누어서 수사를 진행시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지요.』
『세갈래로?』
『그렇지요. 첫째로 은몽씨와 정란씨의 신변을 항상 감시해야 되겠고 둘째로는 남수씨가 다녀 온 것과 꼭같은 「코 ─ 스」를 밟아서 문제의 처녀 사진이 누군가를 조사해야 하겠고 셋째로는……』
『아 유불란씨 ──』
하고 그 때 오상억이「벤취」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은몽씨와 정란씨의 신변을 감시하는 역활은 임경부께 맡기기로하고 문제의 처녀 사진이 누군지, 그것은 내가 조사하겠읍니다.』
『그럼 오상억씨는 남수씨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아신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묻는 임경부의 말에
『남수군은 자기 고향인 평안남도 ×천읍엘 다녀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아까 유불란이「풀」옆에서 발견한 것과 대동소이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렇습니다. 남수씨는 분명히 자기 고향엘 다녀왔읍니다.』
하고 찬의를 표하는 유불란의 말에 오상억은 어지간이 힘을 얻어
『사흘 안으로 나도 남수가 탐지해온 그 어떤 무서운 비밀을 보고 하겠읍니다.』
『그럼 오변호사께서는 그 방면을 담당하시기로하고 나는 ──』
하고 혜전교장 황세민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하고 잠깐 동안 망설이다가 생각하는 바가 있어 그 말을 입밖에 내지 않고
『금강산 백도사로 가서 해월의 행방을 다시 면밀히 조사해볼까 합니다.
해월이가 금강산을 떠나서 묘향산 방면으로 갔다는 말을 풍문에 들었는데, 하옇든 해월이가 그 후 어디 있었으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끝까지 더듬어 볼 필요가 있읍니다 . 해월이가 서울안에 살고 있는 이상 그는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한시바삐 할동을 개시합니다.』
임경부도 결국 오상억 변호사가 제출한 공동전선에 찬의를 표하였다.
이리하여 제각기 개인행동을 취해오던 오상억, 유불란, 임경부 ── 이 세 탐정 사이에는 신출귀몰하고 기상천외의 재주를 가진 살인마 해월을 체포하고자 마침내 공동전선을 펴기로 협의가 되었다.
「그런데 ──」
하고 그 때 유탐정이 입을 열었다.
『아까 문학수씨도 말씀한바 있었지만 정란씨와 은몽씨가 같은 집에서 기거한다는 것은 정란씨의 입장으로서 대단히 위험합니다. 은몽씨의 신변에 정란씨가 항상 가까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해월에게 있어서는 어느때나 방해물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백영호씨도 그렇고, 모두가 해월의 방해물이었기 때문에 무참한 죽음을 당했지요.』
『그렇습니다. 나는 이 이상 더 정란씨를 은몽씨와 한 곳에 두는 것을 극도로 반대합니다.』
문학수의 주장이었다.
『그렇게되면 어머니가 혼자서 얼마나 무서워 ──』
하고 정란이가 은몽에게 동정하는 것을
『은몽씨는 은몽씨고 당신은 당신이지요. 은몽씨 한사람 때문에 죄없는 두 사람이 무참한 희생을 당한 것만해도 억울하기 짝이없는데, 이제 당신마저……』
하고 문학수는 적의를 품은 눈으로 은몽을 힐끗 바라보며
『하옇든 그런 쓸데없는 동정은 그만두고 당신은 오늘부터라도 은몽씨와 헤어져 있어야합니다. 이 유령의 집에서 하루 바삐 나와야 합니다. 은 몽씨가 받는 고통, 은몽씨가 당하는 무서움은 말하자면 자기가 부질없이 저질러 놓은 어리석은 행동에서 오는 당연한 벌일런지 모르나 당신이야 왜 거기에 끼어서 같은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나는 당신의 약혼자로서 이 이상 더 당신을 이 무서운 집에 두어둘 수 없소. ──』
문학수의 어조는 점점 높아간다.
『하옇든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은몽씨가 전 책임을 져야지요. 아, 글쎄 그렇지 않소? 은몽씨가 이 백씨문중에 들어와서 남겨놓은 공적이란 결국 나의 장인될 사람을 죽이고 나의 처남될 사람을 죽인것 밖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뿐만 아니라……』
『잠깐 ──』
하고 흥분된 문학수의 말을 가로막은 것은 오상억이었다.
『말씀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거야 물론 결과로만 따진다면 그렇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은몽씨인들 그것이 고의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까지의 책임은 있을망정 그렇게까지 너무 과격하게…… 그렇지 않더라도 은몽씨는 지금 그 너무나 무거운 책임을 한몸에 걸머지고 ── 』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남편이 죽은지 두달도 못되어서 딴 사나이와 ──』
『아이 그만두세요! 무슨 말을 그러게 하신담? ── 어머니, 이이는 너무 흥분하기 쉬운 성질이있어……너무 성격이 괴격한 것이 결점이야요. 자아, 어머니, 안으로 들어 가십시다.』
정란이가 은몽의 팔목에 매어달렸다.
『문선생, 용서하세요! 모두 제가 마음 약한 여자이기 때문에…… 아무데도 의지할 곳 없는……」
눈물이 포옥 쏟아져 내리는 것을 백어같은 두손으로 급히 가리우면서 핵하고 돌아서서 머리를 숙인채 앞도 쳐다 보지 않고 현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머니, 어머니!』
정란도 따라갔다. 그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던 임경부가
『좀 지나쳤읍니다. 그렇게 까지야 ──』
하는 것을 문학수는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그것은 하옇든 나에게는 이 사건에 이상한 점이 수도록 합니다. 첫째로 저……』
하고 폭탄처럼 터져 나오려는 말을
『잠깐, 잠깐 가만계십쇼!』
하고 손을 휘저으면서 돌연 문학수의 말을 막은 것은 그때까지 묵묵히 서 있던 유불란 탐정이었다.
문학수는 그만 유탐정이 가로막는 바람에 자기가 하고자 하던 말을 꿀꺽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런 말을 함부로 입밖에 내면 안된다는 유탐정의 표정이었다.
『그러면 ──』
하고 유불란은 말머리를 돌리어 그럼 문학수씨는 정란씨를 『 맡으시오. 남수씨의 장례식이나 끝나면 명수 대 은몽씨의 댁이 비어 있을테니까, 은몽씨는 당분간 그리로 가 계시기로 하고 문학수씨는 정란씨와 함께 이집을 지키십시오.』
『아, 그게 좋겠군요.』
하고 그때 임경부도 찬성하였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각각 자기가 맡은 역활을 충분히 이행하기를 굳게 약속하며 헤어졌다.
헤어질 때 유불란은 문학수를 불러 삼청공원을 산책하면서 약 한시간 동안이나 이야기하였으나 그것이 대체 무슨 이야긴지 사람들은 모른다.
여기서 문학수와 헤어진 유불란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다시 임경부를 불러 내다가 순사부장 박태일을 얼마 동안만 빌려주기를 공손히 청하였다.
『박태일군을?』
하고 주저하는 임경부에게
『네, 얼마 동안 박군과 행동을 같이 했으면 합니다.』
하는 유불란의 말에 임경부는 잠깐 동안 생각하다가 마침내
『어렵지 않은 일이죠.』
하고 승낙하였다.
『고맙습니다.』
유불란은 순사부장 박태일을 데리고 삼청동 은몽이네 집을 나왔다.
얼마 후 유불란과 박태일은 안국동 네거리 ××식당 이층에 마주앉은 몸이 되었다.
『박군 수고를 좀 해줘야겠네.』
유불란은「포 ─ 크」를 놓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무슨 말씀이든 명령하시는 대로 복종하겠읍니다.』
박태일 부장은 비로소 스승을 만났다는 기쁨에 안색을 가다듬었다.
『다른게 아니라 군이 내 대신 한번 더 도승 해월의 행적을 더듬어 주게.
나는 또 나대로 할일이 태산 같으니까. ──』
『네 유선생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제 힘자라는대로 ──』
『실상은 나도 저번에 금강산 백도사로 찾아가서 도승 해월의 자취를 조사해 보았으나 결국 박군의 조사보고와 대동소이한 결과를 얻었을뿐 이렇다할 아무런 발견도 못했단 말이야. ── 그러나 한가지 박군의 보고보다 상세한 것은 해월이가 백도사를 떠난 후, 묘향산 보성사(普聖寺)에 가서 얼마 동안 있다가 이번에는 평양 모란봉 밑에 있는 영문사(永文寺)로 갔었다는 말을 탐지해 놓고 부랴 부랴 영문사로 찾아 가 보았더니 절간 주지가 하는 말이 금강산 백도사에 있을 때 폐병삼기에 있던 해월은 그 때 벌써 삼기를 넘어 제사기에 들어 갔다는 말을 하면서, 서해안(西海岸) 어디로 가서 생굴을 까 먹겠다는 말을 남겨놓고 표연히 영문사를 떠나 버렸다고 ── 그래서 나도 그의 자취를 더듬으려 했으나 군도 아다싶이 그 때 오변호사의 글이 △△일보에 발표되어 나는 부득이 나자신을 변명하고자 다시서울로 올라왔거든 ── 』
『그럼 그 때 벌써 폐병 삼기를 넘어선 해월이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는 만무하지 않습니까?』
『음 ──』
하고 유불란은 그 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다 말고
『그러나 우리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이상 그거야 단언할 수 없으니까…… 하옇든 거기까지는 확실한 사실이니까, 그 후의 해월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수고로운 대로 군이 좀 맹활동을 개시해 주게.』
『네, 잘 알아 들었읍니다.』
『그럼, 오늘 저녁차로 곧 평양으로 내려가야만 하겠네.』
『네에!』
박태일 부장은 대답과 함께 의자에서 기운차게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