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사담집 2/거초 꺾일 때

백제 의자왕(義慈王) 말년.

등극 초에는 대단히 현철하다는 일컬음을 듣던 의자왕도,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락함에 따라서 마음의 결박도 저 절로 풀어져서 차차 주색에 빠지게 되었다.

왕이 나라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주색에만 빠져 들어가 므로, 좌평(佐平) 벼슬에 있는 성충(成忠)은 왕께 왕의 부도 를 힘써 간하다가 드디어 왕의 노염을 사서 옥에 갇히어 그 의 충혼도 옥중에서 외로이 사라져 버렸다.

죽음에 임하여 성충 장군은 그 때 계백(階伯)장군을 옥중에 청하였다. 계백이 총총히 옥에까지 달려 왔을 때는, 성충은 벌써 한 마디의 부탁도 남기지 못하고 영원히 침묵의 세상 으로 떠난 뒤였다.

성충의 무언의 유탁을 받은 계백, 때는 의자왕 십 육 년이 었다.

나날이 더욱 주색에 빠져 들어가는 왕.

나날이 쇠약하여 가는 국세─.

이것을 바라볼 때 마음 있는 사람은 근심을 안하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좌평(佐平) 성충이 죽음에 임하여 임금께 아뢴 상소─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이옵니다.」

눈 있는 자로서 시세를 살펴볼진대 반드시 가까운 장래에 는 전쟁이 벌어질 것이었다.

동쪽에 웅거해 있는 신라는 아직까지는 백제의 공격만 받 고 있었지만, 인제는 신라의 국력도 충실될 뿐 아니라 당 (唐)나라와도 밀접한 연락이 생겨서, 만약 신라와 백제의 사 이에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당나라는 무론 신라를 도울 것이 다.

그 위에 신라는 그 사이 늘 백제에게 수모를 받아 오던 원 망이 있다. 지금 신라에서 힘을 다하여 군사를 조련하는 것 은 백제를 정벌하려는 그 예비 행동일 것이다.

이러한데다가 또한 신라에는 김유신(金庾信)이라는 명신(名 臣)이 생겨나고, 당나라에는 소정방(蘇定方)이라는 명장이 생겨났으니, 백제는 당연히 거기 대하여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왕은 주색으로만 세월을 보내고 재상 들은 임금께 아첨하기로만 외주하며, 어쩌다가 충간(忠諫)이 라도 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은 참혹한 최후를 면치 못 하니, 이러고야 백제의 사직인들 어찌 보전되랴?

성충의 뜻을 물려받은 계백 장군은 그 뒤는 다시는 왕께 간하지도 않았다. 간하여도 효과도 없을 것이고 효과는커녕 자기의 생명도 또한 성충과 같이 의미 없이 없어질 것이다.

효과 없을 간은 다시 하지도 않고 묵묵히 자기의 할 일만 하여 나아갔다.

왕이 너무도 황음해지기 때문에 때때로는 왕께 정떨어져 자기도 다른 재상들과 같이 낙향하여 밭이나 갈고 두루미나 희롱하며 여생을 보낼까 하는 생각도 문득 문득 났다. 그러 나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 이 조정에는 뜻 있는 대 신들은 모두 왕의 황음에 정 떨어져서 초야에 숨어 버리고, 그냥 조정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와 및 한두 사람 더 있을 뿐 아니냐? 자기마저 숨어 버리면 나라를 지킨 자 누구냐?

왕께는 간을 하여야 듣지도 않을 것이고 않을 뿐더러 자기 의 생명조차 보전할 수 없을 것이니, 자기 한 사람의 생명 쯤이야 무엇이 그다지 신통하랴만, 지금 이 백제 조정에는 자기 이외에는 사람이 없으매 자기마저 없어지면 ]칠백 년 사직도 한낱 봄꿈으로 화하리라.

『머물러 있자. 지키자. 내 눈동자 겁을 동안은 버티고 또 버티자.』

계백 장군은 주색에 정신을 못 차리는 왕이며 대신들과는 아주 딴 나라 사람인 듯이 매일 혼자 빈 조정을 지켰다. 그 리고 일방으로는 적은 군사나마 군사 조련을 게을리하지 않 고 장차 국난(國難) 생기는 날에는 이 국난을 어떻게든 당해 보려고 노심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백제라는 칠백 년의 사직은 전혀 계백 장군의 두 어깨에 짊어지어지었다.

차차 암담하여 가는 백제에는 벌써 기이한 사변이 다 생겨 났다. 칠백 년의 사직이 망함에 있어서 하늘인들 어찌 미리 징조를 보이지 않았으랴?

이 임금 제 십 구년 현경(現慶) 사 년에 이르러서는 웬 난 데 없는 커다란 붉은 말이 한 마리 나타나서, 매일 오회사 (烏會寺)를 두고 여섯 번씩 달려 돌아다녔다.

이 괴변 때문에 백성들이 수군수군하는 동안에, 이월에 들 어서는 여우(狐)의 무리가 떼를 지어 서울 안으로 들어온 뿐 아니라, 그 여우 무리는 마지막에는 대궐 안에까지 들어오 고, 그 중의 백호(白호(狐)) 한 마리는 좌평의 책상 위에까 지 올라가서 놀았으며, 사 월에는 태자궁(太子宮)의 암탉들이 참새들과 교미를 하 였고, 오월에는 사자수(泗 水=본시 사비수지만 사자수라 통칭한 다.) 악 언덕에 길이가 서른 자가 넘는 고기가 죽은 것이 걸 렸는데, 그것을 그대로 생선이라고 몇 사람이 먹었더니 먹 은 사람은 모두가 몰사를 하였으며, 이러한 불길한 일들이 생기기 때문에 가뜩이나 암담하던 백제의 서울은 더욱 암담하고 음침한 기분에 잠겼다.

백성들은 서로 만날지라도 이야기를 꺼렸다. 이야기라도 하면 마른 벼락이라도 맞을 듯이 서로 황황히 피하였다. 누 구든 가까운 장래에 놀라온 참변이 생기리라 하였다.

이러한 음산한 가운데서 그 여름도 가고 추구월에는 나날 이 대궐 안에서 주인 모를 곡성이 은은히 울리고, 밤에는 귀곡성이 나서 모두 소름이 돋쳤다.

그 해도 어언간 넘어가고 그 이듬해가 이르렀다.

모두들 음산한 가운데서 지난해를 보내면서 명년에는 행여 좀 명랑한 기분이 생길까 무언 중에 바랬는데, 이 희망도 헛데로 돌아가고 새해에 들어서는 더욱 불길한 징조가 나날 이 생겨났다.

새해 이 월에, 하룻밤 사이에 서울 안의 우물이란 우물은 죄 핏물(血水)로 변하였다.

이것은 놀라운 흉조였다. 가뜩이나 간이 콩알같이 되어 이 렇게 하여서는 좀 더 명랑한 봄을 맞으려 하던 백성들은 다 시 모두 송장과 같이 입을 봉하여 버렸다. 이 음료수를 잃 은 백성들이 갈증을 견디지 못하여 물을 구하러 사자강으로 나가보매, 언제든 수정같이 맑던 사자수까지도 핏빛으로 변 하였다.

사월에는 어디서 쓸어 들었는지 두꺼비 수만 마리가 서울 로 쓸어 들어서 온 서울은 두꺼비 천지가 되었으며, 그 위 에 시민들은 알지 못할 강박관념의 지배를 받아서 마치 누 구에게 쫓기듯 공연히 겁을 내어 떼를 지어서 와르르하니 이리로 도망하고 저리로 도망하였다. 그리고 이 까닭 없는 난리에 치어 죽은 사람도 수백 명이요, 재물을 잃은 자는 세일 수가 없었다.

유월에는 더욱 기괴한 사건이 생겼으니 왕흥사(王興寺)의 중들이 다 한결같이 본 바인데, 왕흥사 문안까지 어디서 넘 쳐 들어온 물인지도 모르지만 물이 철철 넘어 들어오고, 뿐 더러 커다란 배까지 떠 들어오다가 홀연히 몸과 배가 다 사 라져 없어지고, 사슴같이 커다란 개가 서쪽으로부터 나타나서 사자강 언덕 까지 이르러 대궐을 바라보며 짖어대다가 안개와 같이 짖어 대고, 또 귀신 한 마리가 대궐로 뛰쳐 들어서

「백제는 망하누나. 백제는 망하누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땅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모든 흉조며 백성들의 음산한 기분은 왕은 일체로 알 지도 못하고 지냈다. 그런 풍문이 들릴지라도 그저 웃어버 리고 또 술을 부르고 계집을 부를 따름이었다.

그러나 대궐 뜰 안에 귀신이 나타나서 백제는 망한다고 외 친 일은 아무리 주색에 빠진 왕으로서도 그저 무심할 수가 없었다.

왕은 곧 궁인을 명하여 그 귀신이 사라진 근의 땅을 파보 게 하였다.

따을 파보매 깊이가 석 자쯤 되는 곳에 거북이 한 마리 있 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 거북을 왕께 보이려고 정하게 물로 씻으매, 거북의 등에 완연히 무슨 글 자가 나타났다. 가로되, 「백제는 둥근 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왕은 이 글을 보았다. 그리고 일관(日官)에게 점치게 하였 다.

그 점괘가 역시 좋지 못하였다.

「둥근 달이라는 것은 장차 어지러지려하는 것을 뜻함이 요, 초승달은 장차 둥글게 됨을 뜻함이올시다. 백제는 둥근 달 같으니 장차 어지러질 것이요, 신라는 초승달 같으니 장 차 둥글게 될 것이라는 괘올시다.」

이 풀이에 왕은 격노하였다. 아무리 주색에 빠졌다 하지만, 그래도 백제가 장차 망하리란 말은 왕의 귀에 거슬리지 않 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일관은 곧 죽여 버렸다.

이러한 왕의 심리를 잘 아는 다른 대신이

『둥근 달은 성(盛)한 것을 가리킴이요, 초승달은 미약한 것을 가리킴이오니, 이는 백제는 대국이요, 신라는 소국이라 는 뜻으로 아옵니다.』

고 왕의 귀에 솔깃한 말을 불어넣어서 큰상을 받았다.

이러한 요사스러운 일, 불길한 일들을 보고 듣고 할 때마 다 계백 장군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그것은 모두 분명한 흉조─ 말하자면 이 백제라는 나라가 장차 소멸되리라는그 전조(前兆)에 틀림이 없었다.

이러한 천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깨칠 줄을 모르 는 왕은 그냥 술로 계집으로─ 후원 단을 묻고 밤마다 하늘 에 기원을 드리는 늙은 장군.

「유유한 창천은 굽어 살핍사, 온조(溫祚)대왕 이래로 칠백 년 간을 전면히 누려 내려온 이 사직이 바야흐로 위태롭습 니다. 우리 임금을 다시 이전과 같으신 현철하신 임금으로 돌려 주십사. 아직 늦지 않습니다. 우리 임금의 마음을 돌려 주십사.」

거꾸러지려는 나라를 홀로이 떼메고 인제는 단지 신명의 힘을 입으려 하였다.

들려 오는 소문에 의지하건대 신라는 주야 군병 조련에 여 념이 없다 한다.

그 군병 조련이란 단지 백제를 목표로 하고 하는 것임은 잘 아는 바다. 그 쪽에서는 이렇듯 힘을 기르는 데 반하여 자기네 나라에서는 단지 주색에만 잠겨 있으니 이 일을 장 차 어찌하랴?

지금의 나라의 힘과 또는 목도한 바 여러 가지의 징조로서 백제는 어차피 쓰러진 모양이다. 그러나 쓰러는 질지언정 무위히 쓰러지지 않으려─ 계백 장군은 왕께는 내밀히 군사 를 양성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성충의 예언, 계백의 예측에 틀림이 없었다. 신라에서는 그 사이 누백 년 간을 백제에게 받아 오던 수모를 갚기 위하여 군병 양서에 게으르지 않고, 일변 그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이러다가 드디어 백제의 정국이 극도로 어지러워진 기회를 타서 오래 벼르던 백제 정벌의 군사를 일으켰다.

비록 정국은 어지럽고 군사까지도 없다 하지만, 지난 날의 놀라운 백제 군인의 효용을 본 일이 있는 신라에서는 자기 나라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당치 못할 줄을 알고 당나라에 원병까지 청하였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의 인솔한 수륙 십 삼만 대군과 신라의 연합군은 백제 국경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주색에 겨를이 없던 백제 궁중에 이 놀라운 소식이 뛰쳐 들은 때는, 왕이며 뭇 대신들은 망지소조하여 두서를 차리 지를 못하였다. 좌평 의직(佐平義直)이며, 달솔 상영(達率常 永) 등 대신에게 이 국난 타개책을 문의하였으나, 그 사이 나라의 모양을 살피지 못한 그들에게서 좋은 꾀가 나올 수 가 없었다.

왕은 드디어 계백 장군에게 이 국난 타개의 중임을 명하게 되었다.

좌평 성충이 옥중에서 죽은 이래 혼자서 백제의 어지러운 정국을 걸머지고 왕의 일고(一顧)도 받지 못하고도 묵묵히 나라를 위하여 애쓰던 늙은 장군은 이 국난의 때에 임하여 마침내 어전에 불리었다.

우러러보매 그 사이 오랫 동안을 주색에 빠졌기 때문에 창 백하게 된 용안, 때때로 먼발로는 우러른 일이 있으나 가까 이서 이렇듯 창백한 용안을 우러러보매 장군의 늙은 눈가에 서는 먼저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장군, 나당(羅唐)연합군이 변경을 침노하오.』

『소신은 오래 전부터 오늘 있을 줄을 미리 알았읍니다.』

『왜 알았으면 일찌기 말하지 않았소?』

『성좌평 재세시에 좌평이 폐하께 상주하온 일이 있는가 하옵니다.』

침통한 안색으로 하는 이 말은 왕의 가슴을 푹푹 찔렀다.

계백 장군은 잠시 뒤에 말을 이었다─

『폐하, 소신이 천람에 공할 것이 있삽는데 잠깐 거둥하여 주옵시면 어떠하올는지요?』

왕께는 얼마만치 귀찮은 청이었으나 지금 이 장군을 유일 의 국난 타개자로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왕은 계 백 장군의 말을 좇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백 장군이 왕을 인도하여가지고 간 곳은 계백 장군의 병 영(兵營)이었다. 장차 오늘 같이 국난이 있을 것을 알고 홀 로의 힘으로써 세우고 유지하고 조련하여 오던 이 병영에 왕을 모시고 온 것이었다.

계백 장군의 한 호령에 넓다란 마당에 정렬된 군사. 그것 을 손 들어 가리키는 마상의 장군과 차상의 임금.

『폐하, 소신이 자의로 세우고 유지하여 온 잉 병력─ 국 왕께 비밀히 사병을 양성하온 죄는 일만 번 죽사와도 부족 이 없겠읍지만, 이 천행(擅行)이 오늘날 국난 타개에 백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될 수가 있으면 소신은 이 이상의 기쁨이 없겠읍니다.』

정렬된 군사─ 그 사이 주색에만 빠져서 나라를 돌보지 않 았기 때문에 한 군사도 없으려니 하였던 왕은 이 노장군의 원려에 눈물을 안 흘릴 수가 없었다.

일찌기는 영철하고 효옹하던 왕이라, 지금 이 마당에 정렬 된 군사를 한 번 보고 넉넉히 이 군사가 얼마나 정예한 분 자인지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장군, 몇 명이나 되오?』

『오 천이옵니다. 소신이 힘이 자라지 못하와 겨우 이것뿐 이옵니다.』

『아아, 장군, 용서하시오. 부끄럽소이다. 장군의 이 군사 한 명은 나당(羅唐)연합군 열 명을 넉넉히 당하겠소이다. 백 제 사직은 장군의 덕으로 반석과 같소이다.』

『아니옵니다. 폐하, 이 한 군사가 나당 연합군 열 명은커 녕 이십 명은 넉넉히 당할 자신이 있사옵니다. 그러나 나당 연합군은 당군만 십 삼만, 나당의 총계 삼십만─ 한 명이 능히 육십 명을 당하지 못하면 전멸할밖에 도리가 없사옵니 다. 폐하, 일찌기 성좌평의 의견을 들으시와 육로로는 적으 로 하여금 탄현(炭峴)을 넘지 못하게 하옵고 수로로는 백강 (白江)을 넘지 못하도록 방비하여 두셨더면, 이 오천 명은 나당군 오십만인들 두려워하오리까만, 이미 탄현을 적에게 앗기우고 황산(黃山)의 넓은 벌까지 진군하온 이상은 어쩔 도리가 없을까 하옵니다.』

『그래도─』

『아니옵니다. 적에게는 삼십만이 다 전사할지라도 뒤를 보충할 당나라 오백만군과 싶심지어라 오십만군이 있사옵지 만, 우리 나라는 이 오천이 없어지면 뒤가 없사옵니다. 더구 나 일부당창이면 만인만적인 탄현 이미 잃었삽고, 전쟁이 평원에서 생길 모양이오니 칠백 년 사직은 건질 곳이 없는 가 하옵니다.』

늙은 눈에 눈물이 흘리며 아뢰는 계백 장군─.

그 앞에 왕은 묵연히 서 있었다.

왕께 하직을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온 계백 장군은 먼저 집안 하인들을 모두 놓아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처자를 앞에 불렀다.

앞에 느런히 둘러앉은 처자를 한참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너희들에게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다.』

『네… 말씀하십시오.』

『오냐, 너희는 망국의 유민(遺民)이 되려느냐, 대국의 사 신(死臣)이 되려느냐?』

이 질문을 받은 처자들은 장군을 우러러 보았다. 그들도 아는 바, 이 국난의 때에 장군의 입에서 나온 이 비상한 말 에 그들도 짐작이 넉넉히 갔다.

『사람으로 나서 어찌 망국의 유민이 되리까? 사신(死臣)이 될지언정 대국 백성으로 종시하겠읍니다.』

『그렇다. 사람이 세상에 났다가 한 번 밖에는 죽지 못한 다. 그 대신 또한 한 번은 반드시 죽는다. 죽을 때에 죽지 못하면 죽음보다 더한 창피를 보는 법이니라. 너희도 그만 일은 잘 알지?』

『네이, 아옵니다.』

『그러면 거기 모두 꿇어 앉아라.』

분부에 의지하여 모두 끓어 앉은 뒤에, 장군은 고요히 일 어섰다.

한 번─ 두 번─ 세 번─ ─.

장군의 칼이 한 번 둘릴 때마다 한 개의 모가지가 장군의 발 아래 떨어지고 하였다.

따로이 떨어져 굴러난 몇 개의 모가지와 따로이 쓰러진 몇 개의 몸집─ 그 가운데를 흐르는 피…

아무 저항도 없는 몇 개의 목을 자른 뿐이었지만, 이 힘들 지 않은 일을 하고 칼을 짚고 망연히 선 장군은 마치 큰 전 쟁이라도 겪고 난 듯이 피곤하였다.

한나절을 그 자리에 그대로 얼 빠진 듯이 서 있다가야 장 군은 다시 정신을 수습하여 가지고 대궐로 들어갔다.

벌써 밤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이 국난의 때에 왕은 흔연 히 장군을 맞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피투성이의 장군의 창백한 얼굴에 왕은 감짝 놀랐다.

『폐하, 소신의 처자의 피로소이다. 뒤에 처자가 남아 있사 오면 혹은 칼끝이 무디지 않을까 하와 미리 없이하여 버렸 읍니다. 지금 어전에까지 하직을 고하려 참내하였읍니다. 물 밀 듯 들어오는 적군은 오늘밤으로도 출전치 않으오면 밝는 날은 도성 문 앞에까지 이를 염려가 있사와 이 밤으로 떠날 까 하옵니다.』

『이 밤으로?』

『예이, 일각을 유예치 못할 모양이옵니다.』

이렇게 총총히 왕께 하직하고 장군은 결사의 오천군을 인 솔하고 황산으로 출정을 하였다.

『옛날 월나라 구천(勾踐)은 단 오천의 군사로서 오(吳)나 라 칠십만 대군을 이겼다. 오늘 나당 연합군 겨우 십 삼만 에 우리는 구천의 군사와 마찬가지로 오천이로다. 비록 나 당 연합군은 수효로는 우리의 수십 배가 된다 할지라도, 모 두 오합지중이라 우리의 정예로써 대하면 무서울 것이 없 다.』

장군도(將軍刀)를 높이 빼어 들고 군졸들을 호령할 때에 오 천의 결사군은 같이 칼을 들어서 죽기를 맹세하였다.

그것은 무서운 전쟁이었다.

장차 국난이 올 때를 예상하고 길러 두었더니만치 백제의 군사들은 귀신과 같았다.

군신(軍神)이라는 일컬음을 듣는 김유신 장군의 지휘하의 신라 대군과 소정방 지휘하의 당나라 대군이, 이 너무도 적 은 군사를 처음에는 얕보고 치고, 그 다음에는 경계하며 치 고, 또 다음에는 힘을 다하여 치고─ 온갖 전술을 다 했지 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큰 회전(會戰)이 네 번이나 있었다.

그 네 번을 매번 수 적은 백제 군사가 구름 같은 나당 연 합군을 쳐서 승리를 하였다. 유신의 군사는 세 길로 나누어 서 백제군을 에워싸고 전멸시키려 하여 보았지만 도리어 하 마터면 신라군이 전멸이 될 뻔하였다.

이리하여 처음의 예상에 반하여 형세는 예측치 못할 지경 으로 되었다.

이렇게 되매 백제군의 의기는 더욱 높아 가고 나당군의 기 운은 죽기 시작하였다.

신라 진에서는 차차 근심이 커갔다.

처음 올 때는 단번 싸움으로 백제를 무찌를 줄로 믿었다.

그렇던 것이 급기 와보니 계백 장군의 거느린 오천의 백제 군사는 효용한 귀신 같아서 그들을 전멸시키기 전에는 어찌 할 수가 없으며, 그 위에 자기네 군사는 결사적 용기가 결 함되었다.

이러다가는 자기네 수십만 대군이 겨우 오천 명의 백제 군 사에게 참패를 당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모양이었다.

자기네 군사에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결함 되었다.

어떻게 하여서든 이 용기를 불어 넣기 전에는 도저히 이기 지 못할 것이다.

이리하여 김유신 장군은 자기의 동생 흠춘(欽春) 장군과 의 논을 한 뒤에 흠춘 장군의 아들 반굴(盤屈)이라는 소년을 단 신 백제 군중에 뛰어 들어가게 하였다.

신라의 수십만 대군으로도 당치 못하던 백제군 중에 한 개 소년이 뛰쳐 들어갔는지라 아무 보잘것도 없었다. 뛰쳐 들 어가는 순간 곧 백제 군사의 칼끝에 죽어버렸다.

그러나 유신 장군은 보았다. 반굴 소년의 죽음은 결코 헛 죽음이 아니었다.

반굴 소년이 단신으로 백제 진중에 뛰쳐 들어가서 죽는 것 을 볼 때에, 신라 군중에도 무엇이라 헝용할 수 없는 동요 가 일어났다.

반향이 분명히 있었다. 군심이 격동된 것이었다. 이 첫 시 험에 희망의 싹을 본 김유신 장군은 다시 관창(官昌)이라는 소년을 또 단신 백제 군중으로 보냈다.

그 사이 네 번을 싸워서 뜻밖에도 네 번을 다 이긴 백제 장군은 자기네 군졸들이 잡아온 신라 장수 한 사람을 불러 들였다. 그리고 입은 갑옥과 투구를 벗기매 의외에도 그것 은 열 대여섯 살 난 소년이었다. 아까도 소년 하나이 뛰쳐 든 것을 잡아 죽였다 한다.

『네 이름이 뭐냐?』

장군은 자기의 칼 아래서 죽은 자기 자식들을 생각하면 부 드러운 음조로 물었다. 그러매 소년이 도리어 눈을 부릅뜨 며 호령하였다─

『나는 신라 장수요, 당신은 백제 장수─ 장수는 일반이니 말씀을 좀 높이시오.』

소년의 대담한 말이 장군에게는 기특히 들렸다. 신라의 군 사라는 것은 그 사이 본 결과로 모두 겁장이로만 알았더니 여기 이런 호담한 소년이 나타난 것이다. 계백 장군은 부장 (副將)에게 명해서 이 소년을 다시 곱다랗게 신라 진중으로 돌려보냈다. 보내면서도 일전 자기 집에서 자기 칼 아래 목 을 셋고 끊은 자식들이 연상되어 진 밖에 나서서 이마에 손 을 대고 멀리 멀리 안 보이게 되기까지 소년의 뒷모양을 바 라보았다.

그랬는데 그 소년은 그로부터 한 각이 지나지 못하여 또다 시 백제 진중으로 뛰쳐 들었다. 백제 장졸들은 그 소년을 사로잡으려고 퍽 노력하였으나 소년은 너무도 완강히 저항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죽여 버렸다.

아까 살려 돌려보낸 소년이 다시 시체로 변하여 계백 장군 의 앞에 놓일 때, 장군도 그 소년의 대담하고 의기 있는 행 동을 못내 어여삐 여겨서 소년의 탔던 말꼬리에 소년의 머 리를 달아서 도로 신라진으로 향하여 말을 채찍쳐 보냈다.

소년의 주검을 다시 신라진으로 돌려보내고 잠시 몸을 쉬 던 계백 장군은 자기네 진중이 두선거리는 바람에 나와보았 다.

장군은 보고 깜짝 놀랐다.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신라 진이 동요되는 것이었다.

그 동요는 평범한 동요가 아니었다. 격동된 군심의 동요였 다. 아직껏 잔잔하기 기름 같던 신라진에 하늘을 찌를 듯한 기운이 덮인 것이 여기서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짧지 않은 생애를 무장(武裝)으로 보낸 계백 장군의 눈에 비친 그 동요 는 놀라운 동요였다. 순간 계백 장군은 알아챘다. 김유신의 계책에 빠진 것이었다. 자기네 군사의 마음이 너무도 덤덤 하기 때문에, 이 군심을 격동시키기 위하여 소년 장수를 사 혈(死穴)로 보냈거늘 자기는 그 계책에 빠져서 드디어 소년 을 죽인 것이었다.

그것이 계책인 줄 알았더면 결코 소년을 죽이지 않았을 것 을…. 백제 군사 수백 명을 희생하면서라도 사로잡아서 또 다시 돌려 보냈을 것을….

지금 신라군을 덮은 기운으로써 계백 장군은 신라의 군심 을 보았다. 그리고 신라의 군심이 이렇듯 격동된 이상은 지 금껏의 비율(比率)은 염도 내지 못할 것으로서 군심이 대비 될진대 군력도 일대 일이 될 것이었다.

성난 물결같이 밀려 오는 신라의 대군을 바라보며 자기네 진을 정비하면서도 늙은 장군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하 였다.

『죽어라! 살기를 바라지 마라! 살아 돌아간다는 것은 백제 인의 수치로다!』

노호(怒呼)하는 장군의 아래서 죽기를 맹세하는 군졸들─.

이리하여 황산 평야에서 최후의 결전은 시작되었다.

격동된 군심 아래서의 신라군의 힘 능 이전의 신라군이 아 니었다.

이전 네 번의 싸움에 있어서 겨우 백 명 미만밖에는 꺾이 지 않았던 오천의 백제군사가 이번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 고 전멸을 하였다.

계백 장군도 드디어 전장의 이슬로 화하였다. 싸움이 끝난 뒤에 신라군에게 발견된 계백 장군의 시체, 갑주를 벗기고 보매 그 시체에는 삼십여 개가 꽂혀 있는 창과 칼의 자리가 세일 수가 없었다.

신라 장군 김유신도 이 목숨 넘어갈 때까지 굴하지 않고 싸운 계백 장군 이하 오천의 백제 장졸의 주검을 보고 감연 히 눈물을 흘렸다.

(一九三五年 八月 <野談> 《階伯의 戰死》 改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