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 송씨를 맞은 뒤에 왕은 비로소 사람의 세상의 낙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 옛날 아직 강보 시절에 할아버님 세종대왕의 귀염을 받아 본 이후로는,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진실한 사랑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왕이었다. 늘 책망하는 듯한 언짢은 태도로 보시던 아버님 문종의 아래서 소년 시기를 보냈다. 간간 입궐하는 종조부 양녕대군이 그래도 가장 살뜰히 따르는 이였다.

근자에 수양숙의 애모를 받았다.그러나 수양대군의 애모는 역시 어려운 데가 있었고 서먹서먹한 데가 있었다.

금년 열네 살─ 할아버님 세종대왕이 건강을 잃은 뒤부터는 인간 세계에서 〈애정〉이라는 것을 제한 쓸쓸한 세상에서 삶을 계속한 것이었다.

이러한 과거를 보냈으니만치 상대하는 사람에게서 〈사랑〉 눈치를 알아보는 데는 매우 민감하고 오되었다. 이 왕이 이번에 맞은 왕비는 왕보다 한 살 위로서 열다섯 살이었다. 애정을 드릴 줄도 알고 받을 줄도 안다.

처음 한동안의 수줍은 기간을 지나서는, 이 지아버님을 온 정열을 들여 애모하였다.

아직 정치에 호기심을 갖지 못할 소년인 위에 숙부 수양이 그 방면은 통 맡아서 처리하므로, 왕은 결국 그편이 당신께도 편하여서 전혀 용훼하지 않았다. 수양이 간간 스스로 결재하기에는 중대한 문제라도 어전에서 꺼내는가 혹은 수양께 자순치 않고 직접 어전까지 오르는 사건이 생기면 이것이 귀찮았다.

『숙부님, 잘 처리해 주세요.』

밀어 버리고 하였다.

왕의 친재가 꼭 필요한 사무 같은 것은 수양은 일부러 좌의정 정인지를 대신 내세워 올려보내고 하였다. 수양 자기가 들어가면,

『숙부님, 알아 처리해 주세요.』

하고 밀어 버리므로 이런 방도를 밟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당하여도 왕은 역시 인지에게

『수양숙께 여쭈어 하라.』

고 책임을 밀지만, 수양이 자기를 일부러 보낸 뜻을 알므로, 끝끝내 졸라서 친재를 얻고야 마는 것이었다.

이런 사무가 진실로 귀찮고 번거로웠다. 할 수만 있으면 왕비 처소에 진일을 들어 있고 싶었다.

갑술년 가을─

왕비를 맞은 지 반년 나마, 애정은 들 대로 들고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그 어떤 날이었다.

그날도 왕은 잠깐 경연에나 났다가 곧 다시 내전에 들 예정으로 경연에 났었는데, 경연이 끝난 뒤에 양사(兩司)에서 무엇을 계청할 일이 있다 한다.

귀찮았다. 그래서 예와 같이 수양숙께 문의하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경연에 입시했던 좌의정 정인지가 또 꼭 친재를 내리라고 조른다.

양사의 관원을 편전으로 불렀다.

하는 것이었다.

무슨 신통한 계청이라도 있는가 해서 불렀더니 또,

『안평대군의 여당이 아직도 여기저기 꽤 많으니 제거하십사.』

왕은 노염을 냈다. 겨우내 봄내 이 문제를 가지고 성가시게 굴어서 적잖은 인명까지 축내어 놓고 아직도 무슨 부족이 있는가. 연해 연방 누구도 여당이요, 누구도 여당이요, 너무도 귀찮게 굴어서, 지난봄에도 왕은 노염을 낸 일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문제는 꺼내지 말라고 엄비를 내렸던 것이었다. 수양숙도 그때 그런 차자를 한 집현제학 모를 불러 단단히 꾸중하고 체직까지 시켰었다.

여름 한 철 다시 그 문제가 없기에 잊어버렸더니, 아직도 이런 무리가 남아 있었는가? 가뜩이나 역하던 위에 또 이 문제라 칵 노염을 냈다.

『응, 그래 누구가 여당이란 말이냐 응? 봄에도 그만치 말했고, 다시 그 문제에 운운하는 자가 있으면 엄벌을 하리라고 했었는데, 그만치 말했으면 내 뜻을 알게지─ 썩 물러가서 대죄하거라.』

그리고는 내관을 돌아보았다.

『저 소위 언관들 금부에 내려서 엄국 치죄하렷다!』

용안이 적조가 되며 분부하였다.

『전하! 전하!』

『왜 그러시오?』

이 왕이 이렇듯 노염을 낸 일은 과거에 없던 일이었다.

양사의 관원은 왕명으로 금부에 내렸다. 왕은 자리를 떨치고 내전으로 들려 하였다. 그때 좌상 정인지가 왕을 막았다.

『지금의 처분 다시 거두어 줍시사. 혹은 언관들이 말에 실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지만, 언관을 벌해서 언로(言路)를 막는다는 건 성조의 있지 못할 일이옵니다.』

왕은 안정을 인지에게로 옮겼다. 한참을 보았다. 정승이라는 지위에 대한 대접으로든 학식에 대한 대접, 나이에 대한 대접, 어디로든 이 정승에게는 호령을 할 수가 없는 왕은, 한참을 말없이 바라만 보다가 마지막에야 말하였다.

『에─ 에 귀찮어! 숙부님은 오늘 왜 아직 안 오시나?』

『전하, 국문 처분을 거둡시사.』

『천천히 거둡시다. 언관에게 언관의 권세가 있으면 임금에게는 임금의 체모도 있으니까. 방금 내린 처분을 어떻게 벌써 거두겠습니까? 나고 공정왕(恭靖: 定宗) 같이 선위(禪位)하고 물러앉아 인선(人仙)이나 될까? 그러나 세자(世子)가 있어야지……』

왕의 이 자탄에 대하여 입시했던 권남이 말을 끼었다.

『참 공정왕 전하같이 다복하신 분은 세상에 다시 없으시리다.』

『춘추 얼마에 승하하셨어요?』

『춘추 예순셋, 재위 이년, 재상왕위(在上王位) 십년, 슬하에 십오남 팔녀를 두오시고─수, 부, 귀, 다남자,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이상의 팔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혹은 다른 점으로는 비슷한 사람도 있을는지도 모릅지만, 만승(萬乘)의 위까지 누려 보시고 수, 부, 귀, 다남자하신 분이야 어찌 또 있소리까?』

이 대화에 정인지도 끼어들었다. 정인지도 왕께 대하여 이전의 정종대왕의 다복함을 극구 찬송하는 것이었다. 정종대왕이 태조대왕의 아드님으로 태어나서, 한때 왕위에 올랐다가 그 왕위를 아우님인 태종께 물려드리고, 정종 당신은 상왕(上王)의 존귀한 신분이 되어 여생 십구 년을 더 보낸 과연 인간 세계의 쉽지 않은 다복이었다.

그때에 이 왕실에 있던 세 분 존귀한 분(태상왕 태조, 상왕 정종, 시왕 태종)의 단란한 왕래며 여생을 말씀해 드렸다.

정인지뿐 아니라, 이즈음 시강관들(권남이며 최항이며)은 흔히 본 왕의 이야기를 하고 하였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바의 상왕의 여생이라 하는 것은 진실로 부와 귀를 아우른 인선(人仙)의 생활이었다. 왕위라 하는 것은 지존지귀한 것이매 한 번 지내 보는 것이지, 지 내기만 하고는 상왕으로 한거해서, 인간 복락 다 누리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원칙이라는 듯한 뜻이었다.

『열성께서 다 상왕이 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태조께오서 공정왕께 전위하시고 상왕이 되오시고─ 공정왕은 태종께 전위하시고 상왕이 되오시고, 태종께서는 세종께 전위하시고 상왕이 되오시고─ 세종께서는 문종이 너무 약하시기 때문에 참결 서무만 보게 하시고 건강 회복을 기다리시다가 불행히 먼저 승하하시고─ 그 뒤는 전하 당하신 바와 마찬가지로 문종 재위 겨우 이년 나마 그렇게 승하하실 줄은 모르셨다가 의외의 붕척의 망극을 당하온 바가 아니오니까?』

말하자면 상왕의 위라는 것은 아무 구속도 부자유도 번잡함도 없는 영화와 즐거움만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은근히 부러운 생각이 들 듯한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소년의 마음에 이 〈위〉라는 것이 귀찮고 역한 때가 흔했다. 아직 왕위의 즐거움이라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대신에 귀찮고 역한 일은 나날이 겪는다. 그 위에 무슨 일 하나 자유로이 마음대로 행할 수가 없이 사사에 집현전이 자자(箚子)한다, 헌부가 논집한다, 간원이 간쟁한다.

당신의 행한 일에 관해서는 일일이 말썽을 부리고 트집을 잡으려 한다. 모두 들어서 수양숙께 맡겼으며, 말썽부리려면 수양숙께 가져갔으면 좋을 것을, 반드시 왕께로 가져오는 것이 었다. 무신(武臣)들의〉 〈사무 처리〉는 수양께 가져가지만, 문신들의 말다툼은 꼭 왕께 가져온다.

매부 영양위에게 들으면─ 또는 왕비 송씨에게 들으면 임금이 아닌 사람은 이러한 구속이 없다 한다. 당신이 임금이기 때문에 이런 구속을 받는 것이었다. 재상들의 이야기로는 상왕께는 〈영화〉만 남고 구속은 없어진다 한다. 또한 그 말이 그다지 허탄한 소리도 아닌 증거로는 태조, 정종, 태종의 세 분이 다 퇴위하고 상왕으로 그 여생을 보내지 않았는가? 왕이 존귀하다 하는 것은 〈왕이 존귀한 것〉이 아니라, 왕을 지나서 상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 아닐까? 왕께는 지금 같아서는 조금도 왕위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종사라 하는 것은 지중지대한 것이라 한다. 종사가 지중하니 당신은 시재로는 어쩔 수 없지만, 장차 당신께 세자(世子)가 생겨서, 세자의 나이가 차면 (지금 생각 같아서는) 당신도 뒤를 세자께 맡기고 상왕이 되어 인선 같은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부마(駙馬) 영양위의 영화도 눈이 부실 만하거늘, 왕의 영화는 얼마나 한 것인가?

한두 마디 더 이야기하고 왕은 다시 일어서려 하였다. 정인지가 또 막았다.

『전하, 아까 그 언관을……』

『오늘은 머리 아파서 아무것도 하기 싫소이다. 있다가 수양숙 들어오시면……』

『전하, 정무에 게을리 마시옵소서. 인군(人君)의 길은……』

또다시 나오려는 것을 왕은 모른 체하고 일어나려 하였다. 그때 승지가 무슨 차자(箚子)를 들고 들어와서 내관을 거쳐서 바친다.

아까 금부에 내린 언관들은 우용(優容)하셔서 언로(言路)를 넓게 터서 서로 막힘이 없도록 하십사 하는 차자였다.

『정무는 일체로 수양숙께 맡겼으니까, 내게까지 가져오지 마세요. 내 아직 철없는 동치로 무얼 알아서 어떻게 처분하겠소이까? 수양숙께─ 수양숙께……』

왕은 모두 떠밀려 하였다.

『전하, 전하께서 몸소 내리신 분부를 영의정인들 어떻게 하오리까? 국문 처분을 거둡시사.』

『안평대군의 여당을 다시 운운하는 자가 있으면 엄벌하겠다고 지난봄에 분부했으니까 왕언(王言)은 지중한 게라, 내 어찌 전언을 속여서 반복 무쌍한 사람이 되겠소.』

임금께는 언관 사신(言官詞臣)이라는 존재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귀찮았다. 어디 재난은 (수재건 한재건, 화재건, 풍재, 변재, 심지어 천재 지변까지도) 모두가 임금이 부덕한 탓이라 한다. 어디 살인강도나 불효 패륜의 사건이 생겨도 임금의 덕화가 부족하다 한다.

무슨 재변이든 생기면 임금은 하늘께 근신하는 뜻으로 감선(減膳)을 하고, 정전(正殿)을 피하고 환락을 멀리하고 하여서 사죄를 하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왕께는 이 이치를 알 수가 없었다. 일식 월식이며, 천재 지변까지, 정치의 실수 때문에 하늘이 주는 벌일진대, 정치에 직접 당한 정부가 져야 할 것이 아닌가? 경상도 어느 지방에서 불효자가 생겼다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경상감사가 져야 할 것이었다.

수양숙도 거기 대해서는 왕과 같은 뜻을 가진 모양이었다. 얼마 전 강원도 어느 곳에서 지동(地動)이 심하여 집이 무너지기를 수십 호요, 인축의 사상이 적지 않게 났을 때 어느 사신(詞臣)이 왕께 정전(正殿) 피하기를 아뢴 일이 있었다. 그때 왕을 모시고 있던 수양이,

『정전을 피한다 하는 것은 임금이 몸소 삼가서 하는 일이지 인신(人臣)된 자 사뢸 바 아니다.』

고 책망한 일이 있었다. 임금으로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지만 통쾌하였다. 지난 사월, 하늘에 해무리가 보이고 몹시 가물다고, 왕께 감선(減膳)키를 여쭐 때도 수양숙이 꾸중하였다.

이런 일에서 왕은 수양숙과 승하한 부왕(문종)과의 성격이 전혀 다름을 발견하였다. 부왕은 어느 문신(文臣)이 계청하는 일에든 간에 유유낙락하였다. 감선을 하십사 하면 감선하였다. 정전을 피하십사 하면 정전을 피하였다. 이것은 모두 옛날 성현이 가르치고 지휘하신 일이라 하여 절대 승복하였다. 도리어 그전 주의를 신하에게 받기 전에 행하려고 황황 민급해 하였다.

그런 아버님의 아래서 유년 시기를 보낸 왕은, 그런 일(문신들이 계청하는 일)은 당연히 궁행하여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 일에 반대할 수가 있다든가 반대한다든가 하는 일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랬더니 수양숙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막연한 계청은 늘 왕을 대신하여) 일축해 버리고 하는 것이었다.여기서 왕은 〈반대할 수도 있구나〉 하는 지식을 비로소 얻은 동시에, 또한 비로소 〈왜 임금이 천변 지재의 책임을 진다는 말이냐?〉 하는 지식까지 얻었다.

문신(文臣)이라는 것의 존재는 전혀 이런 말썽을 부리기 위해서인 모양이었다. 수양숙이 딱 곁에 경마들어 이런 추상적 계청은 일축해 버리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연락부절로 문신들은 그런 문제만 가지고 들어온다. 수양숙이 맡아서 막아 주기에 견디지, 그 문신들의 시달림을 왕 홀로는 도저히 꺾지 못할 것이었다.

여기 대해서 수양은 조카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문신들은 할 용무가 없어서 한가하기 때문이옵니다. 영묘(세종) 어우에는 무신들에게는 동정 서벌을 시키시며, 문신들에게는 저작 찬술 연구 등을 분부하셔서 거기 눈코 뜰 사이가 없으니 어느 하가에 그런 좀된 연구를 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고려사〉, 〈효행록〉, 〈자치통감 훈의〉, 〈역대 병요〉, 〈용비어천가〉, 무엇, 무엇, 게다가 언문 창제, 무악, 천문 지리 만반사에 몰두케 해서 좀된 연구─ 말썽을 부릴 여가를 안 주셨습니다.』

『전하의 어우도 불행 지금껏은 재변이 첨출하와 손쓸 틈 없어서 아무 일도 시작치 못했습지만, 차차 문사들을 구사해서 찬술에 전력을 쓰게 딴생각할 겨를이 없도록 하옵시다. 한가하면 게으르고 게으르면 딴생각 나는 것이 인정인가 보옵니다.』

제발 그렇게 됩소서, 문신들이 뵙겠다고 올 때마다 왕은 가슴이 먼저 답답해지고 하였다. 이번은 또 무엇으로 답답하고 귀찮게 굴려는 셈인고 하여─


어떤 날 왕은 내전에서 수양을 보았다. 가을도 꽤 무르익은 절기였다.

그때 왕은 수양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숙부님, 가령 내게 (말을 더듬었다) 동궁이 생기고 말씀이야요, 그 동궁이 자라서 몇 살쯤이나 되면 친정을 하게 되리까? 즉 동궁이 즉위하려면 말야요.』

양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머리를 기울였다. 왕은 말을 바꾸었다.

『아조(我朝)의 태조, 공정왕, 태종, 이 열성께서 모두들 일찍이 세자께 사위하시고 물러앉으시어 상왕이 되셨지요?』

『듣잡고 보니 그렇습니다.』

『꼭 상왕이 돼야 한다는 격식은 아니오니까?』

『그런 격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 왜 그렇게 처분하셨을까요?』

『그야 태조께오서는 새 국가를 후손께 물려드리고자 창업하오신 게니까 잠깐 재위하시고는 은퇴하신 게옵고, 공정(정종)께오서는 당신보다 태종이 더 제일지재시니까 물려드리신 게옵고, 태종께오서도 당신보다 아드님 영묘(세종)께서 더 훌륭하신 점을 아시고 물려드린 게라, 신은 이렇게 생각하옵니다. 영묘께오서는 아드님(문종)보다 당신이 더 오래 계셔야 되겠사오매 삼십이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재위하시고 승하하오시는 날까지도 임금으로 승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정인지에게 들은 말과는 좀 달랐다.

『전하, 새삼스레 그건 왜 캐십니까?』

『아니, 뉘게 들으니까 상왕이라는 신분은 썩 편안하고 영화롭고 게다가……』

하고는 뒷말은 좀더 힘주어 말을 맺었다.

『귀찮은 문제나 뒷책임이 없이 지상 제일 팔자랍니다그려?』

『하하하! 그래 전하, 상왕이 되시려구요?』

수양의 웃음에 왕도 웃었다.

『동궁이 없으니 종사를 어떡합니까? 욕속부달이지』

『그야 종친 중 세자를 책봉하면 됩지만, 전하도 참.』

『그렇게도 합니까? 딴 사람을 세자로 책봉……』

『공정왕이 계씨 태종을 세자로……』

이렇게 말하다가 수양은 무엇이 생각난 듯이 말을 황급히 딴 데로 돌렸다.

『전하도 참, 임금이 계시고야 상왕이 아니오니까? 임금 없이 상왕이 어디서 생기리까? 임금 이상의 팔자가 어디 있으리까? 하늘 아래 제일인 상왕은 없어도 나라이 되거니와, 임금 안 계시오면 나라이 어디 있으리까? 임금은 천하의 아버님이지만 상왕은 다만 임금의 외친이 되실 뿐 임금 위가 또 있소리까?』

왕은 역시 웃었다.

『임금은 급기 되고 보니 별 신통한 일이 없습니다그려. 그래서 임금보다 높은 사람이 어디……』

『천만에, 임금보다 높은 이가 어디 있습니까? 왕위는 욕심내서 찬탈하려는 사람도 흔히 있지만 상왕위 찬탈이라는 괴변은 없습니다.』

왕은 다시 미소한 뿐이었다.


라이선스

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