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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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의정부 좌의정(議政府 左議政) 정인지(鄭麟趾)─
그에게 알고도 모를 것은 수양대군의 속마음이었다.
대체 어떤 마음보인가?
수양의 만만한 야심과 그 위력, 지배력 등이 나이가 듦에 따라서 더욱 커갈 때에, 그의 신분과 대조하여 이는 허투루 볼 사람이 아니라 하였다. 세종대왕의 아드님이요, 선왕 문종의 아우님 되는 수양이었다.
게다가 지금 왕은 아직 소년이요, 홀몸이라 뒤가 아주 단촐하였다. 수양이 왕위에 오르려면 아주 간단하였다. 백성들의 마음도 아직 소년인 왕께보다 수양에게 촉망하는 바가 더 많았다. 위가 너무 약하니만치 위구의 염을 품고 있는 백성들이었다.
세종대왕의 늘 그 〈가만 있지 않는〉 치적의 아래 젖은 백성들은, 문종의 〈무위〉의 몇 해에 싫증이 났기 때문에 억센 손을 기대하는 경향이 많았다.
본시 이 나라 백성의 천성이 위(上)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치 않아서, 왕씨가 위가 되건 이씨가 위가 되건, 또는 고씨가 위가 되건, 도대체 그다지 괘념하지 않는다. 누구든 간에 잘 다스려 주기만 하면 거기 만족한다. 하물며 선왕의 아드님이며 또는 아우님이며 현왕의 친숙 되는 수양이, 지금보다 다른 자리에 오를지라도 당연한 일로 볼 것이다.
이 점을 정인지는 잘 안다. 수양도 물론 잘 알 것이다.
인지의 눈에 비친 수양은 장차 반드시 딴일을 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지는 신왕 때부터 비교적 수양의 호의를 사 두었다.
재상으로 앉아서 왕자와 밀접히 사귄다 하는 것은 이 나라에 있어서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 나라에서는 누가 금부(禁府)에 뛰쳐 들어가서,
『모, 모가 모 종친을 끼고 역모를 합니다.』
하고 고변만 하면 한 번 돌개바람이 일어난다.
괴고자는 잡혀서 온갖 고문을 다 받는다.
『그러그러 하였소.』
하는 토사가 나오기까지는 온갖 악형을 다 한다. 그리고 그 연루자라는 것까지를 모두 잡아내어 토사를 받는다.
토사 받고는 두말 없이 죽여 버린다. 증거라 하는 것은 다만 연루자의 토사가 있었을 뿐이다. 그 토사는 악형에 의지해서 얻는 것이다.
그리고 고변자(告變者)는 벼슬이라 노복이라 큰 상을 받는다.
상을 받기 위해서 고변하는 자, 혹은 원혐을 관력으로 풀기 위해서 고변하는 자─ 이리하여 고변만 하면 반드시 성취를 하고, 고변을 당하기만 하면 반드시 멸족의 참화를 보고야 만다.
이런 나라에 있어서 이런 시절에 있어서 어느 왕족과 가까이 사귄다 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 근처에 배회하는 것이나 매일반이었다. 벼슬을 희망하는 어느 불량한 사람이 있어서,
『정인지는 수양을 끼고 용상을 엿봅니다.』
고 고변만 하면, 정인지와 수양의 집안은 멸망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정인지는 수양대군을 자주 찾았다.
그러는 동안 안평대군이 휘하에 사람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수양은 끔쩍도 않고 있었다.
인지는 자기가 잘못 보았는가 의심하였다. 그러나 안평의 휘하에는 가고자 하지 않았다. 안평은 그 그릇이 아니라 보았다. 안평은 반드시 패하리라 보았다. 안평은 경망하고 주착 없어서 장차 다행히 꿈의 성취를 볼지라도 그 꿈을 오래 누리지 못할 사람으로 보았다.
문종 승하하고 소년이 등극하자, 수양도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권남이라 한명회라 홍달손의 무리가 수양 휘하에 모여들었다.
계유년 시월의 변란이 폭발되었다. 황보인, 김종서의 무리가 함몰을 하며 안평대군도 패하였다.
수양이 스스로 영의정이 되었다. 동시에 우참찬 정인지는 좌참찬 좌찬성, 우의정의 네 계를 건너뛰어 일약 좌의정이 되었다. 이제는 인지의 위로는 영의정과 임금과 하늘이 있을 뿐, 아래로는 백관을 굽어볼 높은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인신(人臣)으로는 다만 영의정 하나 웃자리가 있을 뿐이었다. 수양만 영의정에서 물러서면 인지는 인신의 극위에 오르는 것이었다.
비범한 학식과 비범한 지혜와 함께 또한 비범한 허영심과 비범한 영화욕도 아울러 가진 인지는, 자기의 위로 단 한 계단 남은 영의정이라는 자리를 바라보고는 은근히 미소하고 하였다.
수양은 언제 그 〈영의정〉의 위에서 떠나려는가? 떠나는 데는 두 가지의 방도가 있다. 하나는 더 높은 데로 올라가노라고 떠나는 것이요. 하나는 아주 벼슬에서 떠나는 것이다. 그 어느 쪽으로 떠나든 간에, 수양이 영상의 자리에서 떠나가기만 하면, 당연한 순서로 좌상인 자기가 그 후임이 될 것이다.
일찍이 수양과 가까이하였던 덕에 오늘날 약하여 좌상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르기는 하였지만, 이제 한 계단 더 올라야겠다. 사내로 태어나서 수상의 인부를 한 번 띠어 보지 않으면, 났던 보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기 위해서는 수양이 어서 자리를 떠나야겠다.
떠나는 이상은 위로─ 더 높은 곳으로 떠납소사.
그리고 인지는 당연히 그럴 것으로 믿었다.
간간 수양의 등을 떠보았다. 그러나 수양은 그 어느 때건, 어린 조카님께 변함없는 충성을 보이는 것뿐이요, 다른 눈치는 추호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역시 그럴 것으로, 현재 인신으로 앉아서 다른 일을(시재 착수하기 전에야) 어찌 눈치인들 보이랴. 착수하렬 때에야 비로소 보일 것이다. 언제 착수하려는지 인지는 목을 길게 하고 기다렸다.
그랬는데 인지에게는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 생겼다.
수양이 왕비 책봉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책비(冊妃)라 하는 것은 임금의 임금으로서의 위를 반석같이 튼튼케 하는 것으로서, 비록 다른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할지라도 수양은 애써 말리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이라 인지는 이렇게 알고 있었다. 말리려면 말릴 만한 절호한 핑계도 있으니, 왕은 현재 복상 중이라, 상중 책비라는 것은 해괴 무쌍한 일이 아닌가? 핑계가 아니라 원칙적으로도 말려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말리기는커녕 도리어 자진하여 이런 문제(패륜 무쌍한)를 끄집어낸다는 것은 웬일이냐?
무론 인지는 처음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반대하면서도 당초의 수양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은 무슨 연극인가? 단지 이런 문제를 꺼내서 이로써 사람들의 눈치를 보려 함인가? 혹은 다만 그런 말을 꺼내 본 것인가? 전연 의표 밖의 일(책비)이라 대중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필요에서인가?
그런데 전광석화와 같이 왕비 책봉이 결정이 되고, 뒤따라 대내에는 여주인이 자리에 들어앉았다. 이제는 왕의 위는 반석 같아서 흔들림이 없게 되었다. 게다가 원자까지 탄생되면 더욱 더 말할 바도 없었다.
이것이 인지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전 세종대왕 때에 황희(黃喜)가 영상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세종 또한 깊이 황희를 믿어서 갈지 않기 때문에, 게다가 황희는 욕심 사납게도 장수(長壽)했기 때문에 황희의 뒤에 달린 많은 명상(名相)─맹사성, 권진, 최윤덕, 노한, 허조, 신개, 이귀령, 남지 등등─들은 모두 상까지 올랐다가는 혹은 죽든가 혹은 더 소망이 없어서 치사하고 물러앉든가 하였다. 황희 죽은 뒤에야 비로소 하연, 황보인 등이 영상에 올랐다.
만약 수양으로서 그 진심이 지금의 언행과 같으면, 한창 장년의 수양이거니 이전의 황희와 같이 〈좌상〉만 수두룩하니 남기고 〈영상〉은 수양이 독차지할 것이다.
좌상까지 올라와서 이제 한 걸음이면 인신의 극인 영상 자리가 있거늘 침만 삼키다가 그만둬야 할 것인가?
스스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수양의 눈치를 진맥해 보았다. 그리고 동병상련(同病相憐) 격으로 권남이며 한명회에게도 그 의논을 해보고 하였다.
갑술년 봄에는 권남은 이조참판(종이품)이요, 한명회도 초배에 초배를 거듭하여, 군자감 부정(軍資監 副正)(종삼품)이 되어 있었다.
인지에게는 과연 궁금한 일이었다. 신숙주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러나 또한 일이 일이니만치,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다가는 목 달아날 일이라, 덮어놓고 아무에게나 물을 일도 못 되었다.
국혼이 있는 지도 석 달이나 지나서 양춘의 어떤 날이었다.
정인지는 수양을 자택으로 찾았다. 그날 수양은 몸이 좀 불편하다고 정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전과 같으면 수양이 정부나 대궐에 들어오지 않으면 왕이 클클하여 못 견디겠는 모양으로, 연해 연방 부르고 야단이었지만, 왕비가 영립된 뒤에는 어떤 때는 수양을 꺼리기까지 하였다. 마치 어린애가 어른의 눈을 기이는 것 같이, 왕비와 두 분이서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수양숙께 대해서는 스스로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싫어서 꺼리는 것이 아니라, 미안하여 꺼리는 것이었다.
수양을 찾으매 수양은 내실에 있다가 나온다. 수양 내외분의 의좋은 것은 종친이며 재상들 사이에 유명한 것이었다. 웬만한 일은 수양은 그 부인과 반드시 의논하였다. 수양 부인은 또한 여중 걸출로서, 능히 육척 남아를 당할 만한 담력과 기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야 대감. 어떻게 오시오?』
자리에 대좌하면서 수양이 먼저 말하였다.
『어디 편찮으시다더니……?』
『무얼, 봄철이라 그런지, 몸이 좀 노곤하기로 하루 쉬기로 했지요. 정부에서는 대감을 비롯해서 한정승 이하 명상들이 그득해서, 나 같은 우록 하나 있으나 없으나……』
그리고는 몇 마디의 한담이 사귀어졌다. 한담 끝에 역시 한담인 듯이 인지는 이런 말을 하였다.
『중전 영립하오신 이래로 우리 전하 단란하시는 이 자영, 우리 신자들 우러릅기─ 이전에 늘 홀로이 드넓은 대궐에 계시는 것이 얼마나 민망한지 모르겠더니, 이즈음은 우리도 탁 마음이 놓입니다그려.』
『피차일반, 그래서 여론을 무시하고 내가 욕을 먹을 줄은 뻔히 알면서도 전하께 계청을 해서 억지로 전하의 어윤을 얻었지요.』
『참, 나으리 아니시면 못할 일이올시다. 우리 같은 사람은 먼저 남에게 욕먹을 일이 무서워서 그런 말을 꺼냅니까? 대체로 그런 데까지 생각이 및지도 못하거니와……』
『허허, 열네 살부터 창가에 출입한 나외다 그려. 남녀 음양의 정리는 꽤 소상히 알지요. 군왕이라고 거기 들어서야 다름이 있소리까?』
『시생 같은 사람은 벌써 음양지도는 잊었습니다.』
『한창 장년의 대감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그래도 그런 걸 헐 수 없지요.』
『말씀이 됩니까? 노색이 털끝만치라도 있습니까? 지금 우리나라 한창 청춘의 우리 정부─ 난 노인은 딱 싫어요. 젊은이 아니면 아무 일도 치르지 못합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한 토막 꺾어졌다. 그 뒤에 수양이 다시 말을 꺼냈다.
『어서 둘째 경사를 보아야지.』
『또 무슨 경사오니까?』
『어서 원자(元子) 탄생하오서, 국본(國本)이 튼튼해져야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인지는 뜻하지 않고 수양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인지가 오늘 병문안을 청탁하고 찾아온 것도, 그 속살로는 말말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의 수양의 표정이며 태도를 또 관찰해 보고 싶어서였다.
수양의 얼굴은 여전히 수양이 왕께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타나는 존경과 애모의 표정이었다.
인지도 좌우간 우선 거기 대꾸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참 어서 국본이 튼튼해져야겠습니다.』
『대감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무에오니까?』
『내게 대해서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는데 대감 못 들으셨소?』
『무슨 소문이오니까?』
수양은 잠깐─ 진실로 한순간 주저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귀가 있으니 들리기는 하지만 신자의 입에 차마 올리지 못할 말……』
신자의 입에 차마 올리지 못할 말이라 하면 무슨 말인지 무론 통한다. 그리고 인지도 못 들은 바는 아니었다.
『그 말씀이면 생도 들은 법합니다. 귀를 씻고 싶으나 기위 들린 말이라 씻는다고 없어질 것도 아니고, 나리께 다만 황송할 따름이올시다.』
『세상은 왜 그렇게도 남의 공론을 하기를 즐기는지, 그런 말을 창도하는 당자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품었기에 그런 말을 창도허지.』
『과연 그렇습니다.』
『그런 공론을 박멸시키기 위해서라도 하루바삐 국본이 확립돼야겠는데……』
『그렇다 뿐이오리까?』
아아, 이 수양이 과연 진심으로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가? 인지 자기의 심정으로 따지자면 도저히 상식 이외의 생각─ 그것이 수양의 말마따나 당자가 그런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수양을 달리 보는 것인가?
『그래도 나으리, 나 같은 어리석은 소견에는……』
한순간 힐끗 수양을 보았다. 그리고 말을 그냥 계속하였다.
『나으리 같으신 튼튼하고 활달하고……』
또 한 번 힐끗 보았다.
『능하신 분이 위에 계시면, 얼마나 서중이 마음 놓고 의지하고 각각 제 생업에 충성되리까?』
단숨에 내리읽듯이 끝맺었다. 그리고는 눈을 푹 내리뜨고 말았다. 수양이 어떤 표정을 하는지, 그것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또 보기가 무서웠다.
그러나 수양은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천연한 대답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러기에 내가 딱 전하의 곁에 경마 잡고 전하를 대신해서 만기를 보는 게 아니오니까? 낸들 무얼 별다르리까마는 전하 어서 장성하시기까지……』
눈을 들어서 봄날의 영창 밖을 내다보는 그의 얼굴에는 희망과 희열이 넘치어 있었다. 어린 조카님을 잘 보육하여서 훌륭한 임금을 만들어 보겠다는 그의 의지도 역연히 나타나 있었다. 인지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수양이 아무런 말을 하건 아무런 태도를 취하건, 인지는 역시 자기의 상식으로 수양을 측정하였다. 수양이 표면으로 저렇게 태도하나, 장차 날이 이르면 전광석화 같이 일을 하기를 마치 계유 시월과 같으리라.
『대감!』
『네?』
『내 이즈음 간간 생각하는데, 다른 게 아니라, 세종대왕의 어우의 찬란하던 개명 말씀이오. 섭정(攝政)이라 하는 건 급기 일에 당하고 보니, 옷을 입고 옷 위로 가려운 데를 긁는 것 같아서 아무리 해도 몸소 내 손으로 하는 것만 못할 게란 말이지요. 예전 양녕대군께서 그냥 동궁으로 계시다가 태종 승하하신 뒤에 사위를 하시고, 세종께서 그냥 왕자로 충녕대군으로 양녕대군을 섭정하셨다 하면, 그런 개명이 되었을지 대감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 말이야말로 인지의 마음에 쾅 하니 울리는 동시에 자기의 생각이 결코 그릇되지 않았던 것이라 믿게 하였다.
『그게 되겠습니까? 양녕대군도 현인이시지만, 그분께 세종께서 왕자로 섭정하셨다 할지라도 세종대왕 몸소 하신 데 절반이나 및겠습니까? 결코 안 됩니다. 옷을 격해 가려운 데를 긁는다는 말이 공연히 생겼겠습니까? 목마른 사람에게 물소리만 듣고 갈을 축이라는 게나 일반이지요.』
『그럴 것 같아. 아무리 섭정이라 해도 임금의 뜻을 거슬려서까지 정사를 못 할 테니까……』
『그렇습니다.』
뒷말이 나오려는 것을 끊었다. 뒷말은 즉,
〈그러니까 나으리께서 더 올라가셔야 마음대로 정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약간한 희망을 보여 준 뿐 수양의 말은 다시 그리는 가지 않았다. 그 밖에는 수양의 마음은 여전히 인지로서는 분명히 알 수가 없었다.
『옷을 격해 가려운 데를 긁는다는 이 시원치 않은 수단으로 어떻게 해서든 우리 전하의 어우를 요순의 어우같이 만들고, 우리 전하의 적자를 요순 때의 백성같이 만들어 드리고 물러 앉아야만 내 임무가 다하는데…… 무위히 날짜만 보내다가 환정을 하면 그런 싱거운 일이 어디 있소리까? 그러기 위해서는 대감 같으신 좋은 협조자가 있어야겠는데 대감 도와주시오. 미력한 이 수양을 도와주시오.』
『나으리의 앞에서 견마의 역을 다하오리다. 있는 힘 다 쓰오리다.』
인지는 이렇게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좀 더 이야기하다가 하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