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43
43
편집영양위 정종 택 시월 열흘─
대문에서는 한명회, 홍윤성들의 손으로서 참극이 연출될 동안─
안에서는 수양이 왕을 모시고 어린 조카님의 불안을 위로해 올리는 동안─
영양댁 안방에는 젊은 학도들이 모여 있었다. 세종대왕의 아래서 집현전에서 글을 닦던 무리들이었다. 지금은 혹은 승지로 혹은 교리로, 또는 간헌(諫憲)부에 자리를 달리하고 있으나, 일찍이 지금 왕의 할아버님 세종의 품 아래서 선묘(문종)의 학우로서 서로 너나들이하는 친구 몇이 모여 있었다.
『범옹이(신숙주)! 자네는 수양대군을 잘 알세그려? 삼사삭을 모시고─ 더욱이 먼 길 동행을 했으니……』
묻는 사람은 성삼문이었다. 숙주가 대답하였다.
『음, 꽤 지기를 얻었지.』
『꽤 수완이 있으시지?』
『범인은 아니네.』
이 이야기에 곁에 있던 박팽년이 끼어들었다.
『오늘 같은 일이 있을 줄은 언제부터 짐작은 했지만, 어떻게 될까?』
거기 삼문의 대답.
『아마 몸소 수상이 되시겠지.』
『그래도 종실로 대신이 된 고례가 없지 않은가.』
『신례(新例)를 만들면 되지.』
숙주는 잠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여보게들 우리 좀 잘 생각해서 스스로 처신해야 할 일이 있네. 뭐인고 하면 수양대군이 만약 수상이 되시면 젊은 사람들을 많이 쓰실 겔세. 내 누차 들은 일인데 늙은인 헐 수가 없이 겁과 욕만 늘고 용과 지(勇智)는 줄어들어 간다고, 모두 묶어서 한강수에 집어넣을밖에는 처치할 길이 없다고 웃는 소리 겸 흔히 하시던 걸. 그러니까 당신이 사람을 쓰시면 젊은일 많이 쓰실 걸세.』
성삼문의 말─
『좀 그렇게 되어야지, 유주(幼主)에 모신(耄臣)─ 국가의 꼴이 되겠나?』
이번엔 박팽년─
『아아! 좀 제발 숨찬 살림을 좀 허구 싶을세 그려. 이전에 영묘(세종)를 모실 적에 오죽이나 숨찼는가?』
『너는 무얼 해라, 너는 무얼 해라, 연달아 시키는 일, 숨찼지. 그때는 너무도 숨차서 못할 말이지만 좀 역할 때까지 있었네그려』
『인수(팽년)! 자네는 그래도 우리 나라 안에서나 분주했지,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 같은 때는, 범옹이며 나는 요동(遼東)에 황한림을 만나러 자그나마 열세 번이나 왕복했네 그려. 참 숨찬 나라님 섬겼지.』
『그렇지만, 그때가 얼마나 그리운가? 영묘 대행하신지 몇 핸가?』
『삼년하고 반인가?』
『뭐? 고렇게만이야? 아 참! 그럴세 그려. 까마득한 옛날 같은데─』
『너무 한가로운 세월에 지리해서 그럴세 그려. 영주 가시고……』
젊은 학사들은 추모하는 생각에 잠간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 뒤에 삼문이 숙주에게 말하였다.
『범옹이! 수양대군도 영묘같이 그렇게 넉넉히 하실까?』
『글쎄, 지금 같아서도 주상께오서도 수양대군을 절대로 신임하시니까. 수양대군께 간섭만 안 하시면 꽤 바쁘게 시키실 걸. 위에서 이건 하라 저건 말라 시키시면 모르겠지만, 수양숙 좋도록 하오, 노 맡기시면 꽤 바쁘게 시키실 겔세. 모르긴 몰라도─』
젊고 씩씩한 그들─ 그 사이 수년간의 정치적 침체에 주먹 힘 처치할 데가 없어서 궁금하던 그들에게는, 장래에 무슨 광명이 보이는 듯하였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일주하고 바쁘고, 자기네의 몫이라고 칭할 만한 무슨 일을 하여 나아가고─ 하여간 지금 같은 낮잠과 하품만의 세월은 아닐 것이었다. 권세나 명예나 부귀에 대한 욕망보다도, 나라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한다 하는 이 〈역할〉이야말로, 주먹 힘 보낼 데 없어서 클클하던 그들에게는 명랑한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