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왕이 이 세상에 끼치고 간 자녀는 적출(嫡出)이 팔남 이녀요, 서출이 십남 이녀─합계 스물 두 분이다. 대행왕(大行王─세상 떠난 임금)의 뜻을 이어서 맏아드님(文宗)이 위에 올랐다.

재궁(梓宮)이 아직 빈전(殯殿)인 휘덕전(煇德殿)에 있을 동안 신왕은 한 시 한 때도 재궁의 곁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승하한 것이 이월 열이레─아직도 꽤 추운 절기요, 더욱 이 밤에는 화기(火氣)도 없는 넓다란 빈전엔 건강한 몸이라도 추위가 뼈까지 스며들며, 몸이 오그라지도록 추웠다. 넓다래서 한데 같은 빈전에 찬바람이 자유로 왔다 갔다 하였다.

바깥은 볕이나 들었지만 침침하고 막을 데 없는 빈전 안은 밖보다 훨씬 더 추웠다. 시종 드는 내관들은 속에 두꺼운 옷을 겹쳐 입어서 이 냉기를 얼마만큼 막고 그리고도 우들우들 떨고 빈전 밖으로 심부름이라도 나가면 할 수 있는 대로 거기서 오래 시간을 보내서 빈전에 들어오기를 피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일시적으로 남의 눈이나 속일 처지가 아닌 신왕은 한결같이 부왕의 영해를 지켰다.

본시 약질인 데다가 오래 부왕의 병석을 모셨는지라 건강상태는 말할 여지도 없었다. 본시 수염이 많은 데다가 그 동안 소세도 안 하여 때는 낄 대로 끼고 손톱은 돋을 대로 돋고 옷은 구기고 덜미고─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영해(靈骸)를 영능(英陵)에 안장(安葬)하기 위하여 비로소 몸을 기동하였다.

몸을 일으키다가 눈이 아뜩하여 앞이 캄캄해졌다. 무엇을 붙들으려고 양손을 휘저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아서 허공만 어루만졌다.

내관이 황급히 달려와서 부액을 하였지만 왕은 부액 받은 채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를 들으려고 힘썼지만 그 반대로 머리는 무릎에 묻히고 몸은 내관의 품에 쓰러졌다.

모두 당황하였다. 인산(因山)에 수행하려고 전정에 모였던 왕족이며 삼공 이하 문무 제신이며 백관들도 모두 어쩔 바를 모르고 설레대었다.

대군렬(大君列)에 섞여 있던 수양이 먼저 뛰쳐나왔다. 두서를 차리지를 못해서 빙빙 도는 중관들을, 두 사람을 불러서 왕을 부축케 하고, 돈피 이불로 옥체를 싸게 하고, 일변 따뜻한 꿀물(밀수)을 가져오게 하고 스스로는 왕의 수족을 주무르고 불피운 화루를 몇 개 가져오게 하여 왕에게서 한 반쯤 되는 곳에 둘러놓게 하였다.

잠시 뒤에 왕은 정신이 들었다. 먼저 당신의 곁에서 팔다리를 주무르던 수양에게로 눈이 향하였다. 훈훈한 화로의 온기로써 화로의 존재도 알았다.

왕은 돈피 이불을 벗어 버렸다.

『이 화로는 웬 게냐.』

『신이 명하왔습니다.』

수양이 복계하였다.

왕은 일어나려 하였다.

『상인(喪人)에게 당찮은……』

왕은 성가신 듯이 화로를 보았다.

『전하 잠깐만 더……』

수양이 말리는 것을

『아니. 인젠 괜찮으니……』

하면서 비칠비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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