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마음의 낙인

마음 한복판에 속 깊이 찍혀진 낙인(烙印)을
몇 줄기 더운 눈물로 지어보려 하는가
칼끝으로 도려낸들 하나도 아닌 상처(傷處)가 가시어질 것인가
죽음은 홍소(哄笑)한다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아서……

자살(自殺)한 사람의 시집(詩集)을 어루만지다 밤은 깊어서
추녀 끝의 풍경(風磬) 소리 내 상여(喪輿)머리에 요령(搖鈴)이 흔들리는듯.
혼백(魂魄)은 시꺼먼 바닷속에 잠겨 자맥질하고
허무(虛無)히 그림자 악어(鰐魚)의 입을 벌이고 등어리에 소름을 끼얹는다.
×
쓰라린 기억(記憶)을 되풀이하면서 살아가는 앞길은
행복(幸福)이란 도깨비가 길라잡이 노릇을 한다.
꿈속에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어릿광대들
개미 떼처럼 뒤를 따라 바퀴를 돌고 도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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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풀」주사(注射) 한 대로 절맥(絶脈)되는 목숨을 이어 보듯이
젊은이여 연애(戀愛)의 한 찰나(刹那)에 목을 매달려는가?
혈관(血管)을 토막토막 끊으면 불이라도 붙을상 싶어도
불 꺼져 재만 남은 화로(火爐)를 헤집는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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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모래밭우의 소꼽장난이나 아닌줄 알았더면
앞장을 서서 놈들과 겯고 틀어나 볼것을
길거리로 달려나가 실컷 분(憤)풀이나 할 것을
아아 지금엔 희멀건 허공(虛空)만이 내 눈 앞에 티어 있을뿐……

19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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