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광란의 꿈
불어라, 불어!
하늘 꼭대기에서
내리질리는 하늬바람,
땅덩이 복판에 자루를 박고
모든 것을 휩싸서 핑핑 돌려라.
머릿속에 맷돌이 돌듯이
세상은 마지막이다, 불어 오너라.
쏟아져라, 쏟아져!
바다가 가꾸로 흐르듯
폭포수(瀑布水) 같은 굵은 빗발이
쉴새 없이 기울여 쏟아져서
사람의 새끼가 짓밟은
땅우의 모든 것을
부신듯이 씻어 버려라.
번갯불이 뻔쩍
으지끈 뚜욱 따악
벼락 불똥이 튀어
뾰족집을 후려갈기고
우상(偶像), 동상(銅像)을 자빠뜨리고
善政碑(선정비), 頌德碑(송덕비), 永世不忘碑(영세불망비),
닥치는대로 깨뜨려서
모든 거룩하다는 것위에
벼락불의 세례(洗禮)를 내려라.
지진(地震)이다, 지진(地震), 대지진(大地震)이다!
나무뿌리가 하늘로 솟고
바윗덩이가 굴러 내린다.
지심(地心)에서 불덩어리가 치밀어 올라
지구(地球)는 두 쪽에 갈라지고
모든 것은 가꾸로 섰다, 뒤집혀졌다.
불이야 불이야!
분(粉) 바른 계집의 얼굴을 끄스르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조동아리를 지져 놓아라!
길로 쌓인 인류(人類)의 역사(歷史)를
첫페지부터 살라 버리고
천만권(千萬券) 거짓말의 기록(記錄)을
모조리 깡그리 태워 버려라.
우루루, 우루루!
집채가 넘어가고 산(山)이 무너진다.
십육억(十六億) 사람의 씨알들이
악마구리 끓듯한다, 아우성을 친다.
사람은 잇발을 갈며
사람의 고기를 물어 뜯고
뼉다귀를 다투어 깨무는
주린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
해골(骸骨)을 쪼아 먹는 까마귀의 떼울음!
불길이 훨훨 날으며
온 지구(地球)를 둘러쌌다,
새빨간 혀 끝이 하늘을 핥는다
모든 것은 죽어 버렸다,
영원(永遠)히 영원(永遠)히 죽어 버렸다,
명예(名譽)도, 욕망(慾望)도 권력(權力)도 야만(野蠻)도 문명(文明)도……
바람소리 빗소리!
해가 떨어지고 별은 흩어지며
땅이 울고 바다가 끓는다.
모든 것은 元素(원소)로 돌아가고
남은 것이란 희멀건 공간(空間) 뿐이다,
오오 이제까지의 인류(人類)는 멸망(滅亡)하였다!
오오 오늘까지의 우주(宇宙)는 開闢(개벽)하고 말았다!
- 19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