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하지마는 불유쾌한 결과가 누구나 그 신변에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이것을 횡액(橫厄)이라고 하여 될 수만 있으면 이것을 피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이 보통이지마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란 한 사람도 예외없이 이러한 횡액의 연속연을 저도 모르게 방황하는 것이, 사실은 한평생의 역사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배를 타다가 물에 빠져서 죽었는가 하면, 소나기를 피하여 빈집을 찾아 들었다가 압사(壓死)를 한 걸인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 축들은 대개 사람에게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때는 무슨 수를 꾸며서라도 그 주위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제 존재를 살리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꼭 알맞은 정도의 결과를 가져 온다면 여러 말 할 바 아니로되, 때로는 그 효과가 너무 미약하여 이렇다할 만큼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땐 너무나 중대한 결과가 실로 횡액이 되고 말 때가 많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간편한 효용을 생각해 낸 것이 연전에 작고한 중국의 문호 노신(魯迅)이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나던 전전 해 여름에 쓴 수필집에서 <병후 일기(炳後日記)>를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씌어 있다.

"...... 나는 지금 국가나 사회로부터 그다지 중요하게 보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들까지도 차츰차츰 사이가 멀어져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요즘 나는 병으로 해서 이 사람들 주의를 갑자기 끌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병이란 것도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닌 듯도 하다. 그러나 기왕 병을 앓는다 하면 중병이나 급병은 대번에 생명에 관계가 되니 재미가 적어도 다병(多炳)이란 것은 세상의 모든 귀골들이 하는 것이니, 나 자신도 매우 포스라운 사람들 틈에 끼일 수가 있게 되나보다....."

이런한 노신 씨 말을 따른다면 병도 때로는 그 효용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나라는 사람은 실로 천대받을 만큼 건강한 몸이라 365일에 한 번도 누워 본 기록이 없으니 이러한 행복조차도 누릴 길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 하늘이 돌봄이었는지, 나는 마침내 뜻하지 않은 횡액에 걸려 들었다는 것은 어느 날 전차를 타고 종로로 돌어오는 길에 황금정(黃金町)에서 동대문(東大門)에 다다르자, 우리가 탄 전차보다 앞의 전차가 아직 떠나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가 탄 전차도 속력을 줄이고 정차를 하려던 것이 앞의 차의 출발과 함께 새로운 속력으로 급한 커브를 도는 바람에 차 안의 사람들은 모두 일시 안정되었던 자세를 가눌 여지도 없이 몸을 흔들고 넘어가는 것이었고, 나는 아차 할 사이에 넘어지며 머리가 유리창에 닿으려는 순간, 바른손으로 막은 것만은 문자 그대로 민완(敏腕)이었으나, 그다음 내 팔목에는 전치(全治) 2주일의 열상(裂傷)을 내었고, 유라창은 산산이 깨어졌다.

내 지금도 그 사람의 직함을 알 바 없으나, 차장 감독이라고 부를 듯한 장신 거구(長身巨軀)의 40쯤 되어 보이는 헬멧을 쓴 사람이 나에게 와서 친절 정녕히 미안케 되었다는 인사말을 하고, 운전수와 차장의 번호를 적은 뒤에 먼저 사고의 전말을 보고한 다음, 나를 의무실이라는 데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내 마음으로는 종로로 빨리 와서 친한 의원을 찾아 신세를 질까 했으나, 이 사람의 친절을 무시하기도 거북해서 따라가는 것이었지마는, 사람들이 오해를 하려면 혹 전차표라도 속이려다가 감독에게 발로라도 되어 붙잡혀 가는 것이나 아닌가고 하면 사태는 자못 난처한 것이었다.

그래 우선 의무실이란 곳을 들어서니 간호양(看護孃)이 황망히 피투성이 된 내 손을 옥시풀로 깨끗이 닦은 뒤에 닥터 씨가 매우 냉정한 태도로 핀세트를 잡고 나타났다.그러고는 가위 소리와 내 살이 베어지는 싸각싸각하는 소리가 위품좋게 돌아가는 전선(電扇) 소리와 함께 분명히 내 귀에 돌려 왔다.

붕대를 하얗게 감고 비로소 너무도 조잡한 의무실이고나 하고 생각하며 나오려 할 때, 직업과 성명을 묻기에 그것은 알아 무엇하느냐고 했더니 규칙이라기에 써주고 말았다.

그래도 또 전차를 타야 했다. 전차 속은 여전히 덥고 복잡하건마는, 싸각싸각하는 살 베어지는 소리는 좀처럼 귓가에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올해 봄이었다. K란 동무가 맹장염으로 수술을 했다기에 문병을 갔더니, 제 귀로 제 창자를 싸각싸각 끊는 소리를 들었다고 신기해서 이야기하던 생각을 하고, 자위(自慰)를 해보아도 기분이 그다지 명랑해지지 않기에, 다시 붕대 감은 내 팔목을 들여다보고 아픈 정도를 헤아려 보아도 중병도 급병도 다병(多炳)도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R이란 동무와 한강 쪽에 나가서 배라도 타고 화풀이를 할까 하고 가던 도중, R군의 말이 "자네 팔목 수술을 했으니 낫겠지마는 양복 소매는 어쩔 텐가" 하기에 벗어 보았더니, 연전(年前)보다 배액이나 들여 만든 새 옷이 영원히 고치지 못할 흠집을 내고 말았다. 세상에 전화위복(轉禍爲福)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건마는, 나의 횡액은 무엇으로 보충할 수 있을까? 이것을 적어 D형의 우의(友誼)에 갚을밖에 없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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