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記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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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이슥하여 황이 짖는 소리에 나는 숙면에서 깨어나 옥외(屋外) 골목까지 황을 마중나갔다.

주먹을 쥔채 잘려 떨어진 한 개의 팔을 물고 온 것이다.

보아하니 황은 일찌기 보지 못했을만큼 몹시 창백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주치의(主治醫) R의학박사(醫學博士)의 오른팔이었다.

그리고 그 주먹 속에선 한 개의 훈장(勳章)이 나왔다.

ㅡ희생동물공양비(犧牲動物供養碑) 제막식기념(除幕式紀念)ㅡ

그런 메달이었음을 안 나의 기억은 새삼스러운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개의 뇌수(腦髓) 사이에 생기는 연결신경(連結神經)을 그는 암(癌)이라고 완고히 주장했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그의 참으로 뛰어난 메스의 기교(技巧)로써 그 신경건(神經腱)을 잘랐다.

그의 그같은 이원론적(二元論的) 생명관(生命觀)에는 실로 철저한 데가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가 얼마나 그 기념장을 그의 가슴에 장식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는가는 그의 장례식 중에 분실된 그의 오른팔ㅡ현재 황이 입에 물고 온ㅡ을 보면 대충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래 그가 공양비(供養碑) 건립기성회(建立期成會)의 회장이었다는 사실은 무릇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균형한 건축물들로 하여 뒤얽힌 병원구내(病院構內)의 어느 한 귀퉁이에 세워진 그 공양비(供養碑)의 쓸쓸한 모습을 나는 언제던가 공교롭게 지나는 길에 본 것을 기억한다.

거기에 나의 목장으로부터 호송돼 가지곤 해부대(解剖臺)의 이슬로 사라진 숱한 개들의 한(恨)많은 혼백(魂魄)이 뿜게 하는 살기를 나는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더더구나 그의 수술실을 찾아가 예(例)의 건(腱)의 절단을 그에게 의뢰해야 했던 것인데ㅡ


나는 황을 꾸짖었다. 주인의 고민상(苦悶相)을 생각하는 한 마리 축생(畜生)의 인정(人情)보다도 차라리 이 경우 나는 사회일반(社會一般)의 예절을 중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ㅡ

그를 잃은 후의 나에게 올 자유ㅡ바로 현재 나를 염색(染色)하는 한 가닥의 눈물ㅡ나는 흥분을 가까스로 진압하였다.

나는 때를 놓칠세라 그 팔 그대로를 공양비(供養碑) 근변(近邊)에 묻었다.

죽은 그가 죽은 동물에게 한 본의 아닌 계약을 반환한다는 형식으로......


기이(記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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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오월(五月). 화원시장(花園市場)을 나는 황을 동반하여 걷고 있었다.

완상(玩賞) 화초종자(花草種子)를 사기 위하여......

황의 날카로운 후각은 파종후(播種後)의 성적(成績)을 소상히 예언했다.

진열된 온갖 종자(種子)는 불발아(不發芽)의 불량품이었다.

허나 황의 후각에 합격된 것이 꼭 하나 있었다.

그것은 대리석 모조(模造)인 종자(種子) 모형이었다.

나는 황의 후각을 믿고 이를 마당귀에 묻었다.

물론 또 하나의 불량품도 함께 시험적 태도로ㅡ

얼마 후 나는 역도병(逆倒病)에 걸렸다.

나는 날마다 인쇄소의 활자 두는 곳에 나의 병구(病軀)를 이끌었다.


지식과 함께 나의 병(病)집은 깊어질 뿐이었다.

하루 아침 나는 식사 정각에 그냥 잘못 가수(假睡)에 빠져들어갔다.

틈을 놓치려 들지 않는 황은 그 금속의 꽃을 물어선 나의 반개(半開)의 입에 떨어뜨렸다.

시간의 습관이 식사처럼 나에게 안약(眼藥)을 무난히 넣게 했다.

병(病)집이 지식과 중화(中和)했다.

ㅡ세상에 교묘하기 짝이 없는 치료법ㅡ

그 후 지식은 급기야 좌우(左右)를 겸비(兼備)하게끔 되었다.


기삼(記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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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화술(複話術)이란 결국 언어의 저장창고의 경영(經營)일 것이다.

한 마리의 축생(畜生)은 인간이외의 모든 뇌수(腦髓)일 것이다.

나의 뇌수(腦髓)가 담임(擔任) 지배하는 사건의 대부분을 나는 황의 위치에 저장했다ㅡ냉각되고 가열되도록

ㅡ나의 규칙을ㅡ그러므로ㅡ리트머스지(紙)에 썼다.

배ㅡ그 속ㅡ의 결정(結晶)을 가감(加減)할 수 있도록 소량의 리트머스액(液)을

나는 나의 식사에 곁들일 것을 잊지 않았다.

나의 배의 발음은 마침내 삼각형의 어느 정점을 정직하게 출발하였다.


기사(記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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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 나신(裸身)은 나의 나신(裸身)을 꼬옥 닮았다. 혹은 이 일은 이 일의 반대일지도 모른다.

나의 목욕시간은 황의 근무시간 속에 있다.

나는 천의(穿衣)인채 욕실에 들어서 가까스로 욕조로 들어간다.

ㅡ벗은 옷을 한 손에 안은채ㅡ

언제나 나는 나의 조상(祖上)ㅡ육친(肉親)을 위조(僞造)하고픈 못된 충동에 끌렸다.

치욕(恥辱)의 계보(系譜)를 짊어진채 내가 해부대(解剖臺)의 이슬로 사라질 날은 그 어느 날에 올 것인가?


피부는 한 장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거기에 나는 파랑잉크로 함부로 근(筋)을 그렸다.

이 초라한 포장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ㅡ해골에 대하여......묘지에 대하여

영원한 경치(景致)에 대하여.


달덩이 같은 얼굴에 여자는 눈을 가지고 있다.

여자의 얼굴엔 입맞춤할 데가 없다.

여자는 자기 손을 먹을 수도 있었다.


나의 식욕은 일차방정식같이 간단하였다.

나는 곧잘 색채(色彩)를 삼키곤 한다.

투명한 광선 앞에서 나의 미각은 거리낌없이 표정(表情)한다.

나의 공복(空腹)은 음향(音響)에 공명(共鳴)한다ㅡ예컨대 나이프를 떨군다ㅡ


여자는 빈 접시 한 장을 내 앞에 내어 놓는다ㅡ

(접시가 나오기 전에 나의 미각은 이미 요리을 다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여자의 구토는 여자의 술을 뱉어낸다.

그리고 나에게 대한 체면마저 함께 뱉어내고 만다(오오 나는 웃어야 하는가 울어야 하는가)

요리인(料理人)의 단추는 오리온좌(座)의 약도(略圖)다.

여자의 육감적인 부분은 죄다 빛나고 있다.

달처럼 반지처럼.

그래 나는 나의 신분에 걸맞게시리 나의 표정을 절약하고 겸손하고 하는 것이었다.

모자(帽子)ㅡ나의 모자. 나의 병상(病床)을 감시하고 있는 모자.

나의 사상(思想)의 레텔. 나의 사상(思想)의 흔적. 너는 알 수 있을까?

나는 죽는 것일까. 나는 이냥 죽어가는 것일까.

나의 사상(思想)은 네가 내 머리 위에 있지 아니하듯 내 머리에서 사라지고 없다.

모자 나의 사상(思想)을 엄호해 주려무나!

나의 데드마스크엔 모자는 필요 없게 된단 말이다!

그림달력의 장미가 봄을 준비하고 있다.


붉은 밤. 보라빛 바탕.

별들은 흩날리고 하늘은 나의 쓰러져 객사(客死)할 광장(廣場).

보이지 않는 별들의 조소(嘲笑).

다만 남아 있는 오리온좌(座)의 뒹구는 못(釘)같은 성원(星員).

나는 두려움 때문에.

나의 얼굴을 변장하고 싶은 오직 그 생각에 나의 꺼칠한 턱수염을 손바닥으로 감추어본다.


정수리 언저리에서 개가 짖었다. 불성실한 지구를 두드리는 소리.

나는 되도록 나의 오관(五官)을 취소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을 포기한 나는 기꺼이

ㅡ나는 종족의 번식을 위해 이 나머지 세포를 써버리고 싶다.

바람 사나운 밤마다 나는 차차로 한 묶음의 턱수염 같이 되어버린다.

한줄기 길이 산(山)을 뚫고 있다.

나는 불 꺼진 탄환처럼 그 길을 탄다.

봄이 나를 뱉어낸다. 나는 차거운 압력을 느낀다.

듣자 하니ㅡ아이들은 나무 밑에 모여서 겨울을 말해버린다.

화살처럼 빠른 것을 이 길에 태우고 나도 나의 불행을 말해버릴까 한다.

한 줄기 길에 못이 서너개ㅡ땅을 파면 나긋나긋한 풀의 준비ㅡ봄은 갈갈이 찢기고 만다.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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