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편집

내가 불러 주고 싶은 이름은 ‘욱(旭)’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욱이라고 불러 두자.

1930년만 하여도 욱이 제 여형단발(女形斷髮)과 같이 한없이 순진하였고 또 욱이 예술의 길에 정진하는 태도, 열정도 역시 순진하였다.

그해에 나는 하마터면 죽을 뻔한 중병에 누웠을 때 욱은 나에게 주는 형언하기 어려운 애정으로 하여 쓸쓸한 동경 생활에서 몇 개월이 못 되어 하루에도 두 장 석 장의 엽서를 마치 결혼식장에서 화동이 꽃 이파리를 걸어가면서 흩뜨리는 가련함으로 나에게 날려 주며 연락선 갑판상에서 흥분하였느니라.

그러나 욱은 나의 병실에 나타나기 전에 그 고향 군산에서 족부(足部)에 꽤 위험한 절개수술을 받고 그 또한 고적한 병실에서 그 몰락하여가는 가정을 생각하며 그의 병세를 근심하며 끊이지 않고 그 화변(花辨) 같은 엽서를 나에게 주었다.

네가 족부의 완치를 얻기도 전에 너는 너의 풀죽은 아버지를 위하여 마음에 없는 심부름을 하였으며 최후의 추수를 수위(守衛)하면서 고로운 격난도 많이 하였고 그것들 기억이 오늘 네가 그때 나에게 준 엽서를 끄집어내어 볼 것까지도 없이 나에게는 새롭다.

그러나 그 추우비비(秋雨霏霏)거리는 몇 날의 생활이 나에게서부터 그 플라토닉한 애정을 어느 다른 한군데에다 옮기게 된 첫 원인이었는가 한다.

욱은 그후 머지아니하야 손바닥을 툭툭 털듯이 가벼운 몸으로 화구(畵具)의 잔해를 짊어지고 다시 나의 가난한 살림 속으로 또 나의 애정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것같이 하면서 섞여 들어왔다.

우리는 그 협착한 단칸방 안에 100호나 훨씬 넘는 캔버스를 버티어 놓고 마음 가는 데까지 자유로이 분방스러히 창작생활을 하였으며 혼연한 영(靈)의 포옹 가운데에 오히려 서로를 잇는 몰아의 경지에 놀 수 있었느니라.

그러나 욱 너도 역시 그부터 올라오는 불 같은 열정을 능히 단편단편으로 토막쳐 놓을 수 있는 냉담한 일면을 가진 영리한 서생(書生)이었다.


관능 위조(官能僞造) 편집

생활에 면허가 없는 욱의 눈에 매춘부와 성모의 구별은 어려웠다.

나는 그때 창작도 아니요 수필도 아닌 〈목로의 마리아〉라는 글을 퍽 길게 써보던 중이요 또 그 중에 서경적인 것의 몇 장을 욱에게 보낸 일도 있었다. 항간에서 늘 목도하는 ‘언쟁하는 마리아 군상’ 보다도 훨씬 청초하여 가장 대리석에 가까운 마리아를 마포강변 목로술집에서 찾았다는 이야기다.

이 〈목로의 마리아〉 수장(數章)이 욱에게 그 풍전등화 같은 비밀을 이야기하여도 좋은 이유와 용기와 안심을 주었던지 그는 밤이 으슥하도록 나를 함부로 길거리로 끌고 다니면서 그 길고도 사정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 주었다.

그것은 너무도 끔찍하여서 나에게 발광(發狂)의 종이 한 장 거리에 접근할 수 있게 한 그런 이야기인데 요컨대 욱의 동정이 천생 매춘부에게 헌상되고 말았다는 해피엔드,

집에 돌아와서 우표딱지만한 사진 한 장과 삼팔수건(三八手巾)에 적힌 혈서 하나와 싹독 잘라낸 머리카락 한 다발을 신중한 태도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사진은 너무 작고 희미하고 하얘서 그 인상을 재현시키기도 어려운 것이었고 머리는 흡사 연극할 때 쓰는 채플린의 수염보다는 조금 클까말까한 것이었고 그러나 혈서만은 썩 미술적으로 된 것인데 욱의 예술적 천분이 충분히 나타났다고 볼 만한 가위 걸작의 부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그 매춘부 씨의 작품은 아니고 욱 자신의 자작자장(自作自藏)인 것이었다. 삼팔 행커치프 한복판에다가 선명한 예서로 ‘罪(죄)’ 이렇게 한 자를 썼을 따름 물론 낙관도 없었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탄생하여서 참 처음으로 목도한 혈서였고

그런 후로 나의 욱에 대한 순정적 우애도 어느덧 가장 문학적인 태도로 조금씩 변하여 갔다.

다섯 해 세월이 지나간 오늘 엊그제께 하마터면 나를 배반하려 들던 너를 나는 오히려 다시 그리던 날의 순정에 가까운 우정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만큼 너의 현재의 환경은 너로 하여금 너의 결백함과 너의 무고함을 여실히 나에게 이야기하여 주고 있는 까닭이다.

생활에 면허가 없는 욱의 눈에 매춘부와 성모의 구별은 어려웠다.

나는 그때 창작도 아니요 수필도 아닌 〈목로의 마리아〉라는 글을 퍽 길게 써보던 중이요 또 그 중에 서경적인 것의 몇 장을 욱에게 보낸 일도 있었다. 항간에서 늘 목도하는 ‘언쟁하는 마리아 군상’ 보다도 훨씬 청초하여 가장 대리석에 가까운 마리아를 마포강변 목로술집에서 찾았다는 이야기다.

이 〈목로의 마리아〉 수장(數章)이 욱에게 그 풍전등화 같은 비밀을 이야기하여도 좋은 이유와 용기와 안심을 주었던지 그는 밤이 으슥하도록 나를 함부로 길거리로 끌고 다니면서 그 길고도 사정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 주었다.

그것은 너무도 끔찍하여서 나에게 발광(發狂)의 종이 한 장 거리에 접근할 수 있게 한 그런 이야기인데 요컨대 욱의 동정이 천생 매춘부에게 헌상되고 말았다는 해피엔드, 집에 돌아와서 우표딱지만한 사진 한 장과 삼팔수건(三八手巾)에 적힌 혈서 하나와 싹독 잘라낸 머리카락 한 다발을 신중한 태도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사진은 너무 작고 희미하고 하얘서 그 인상을 재현시키기도 어려운 것이었고 머리는 흡사 연극할 때 쓰는 채플린의 수염보다는 조금 클까말까한 것이었고 그러나 혈서만은 썩 미술적으로 된 것인데 욱의 예술적 천분이 충분히 나타났다고 볼 만한 가위 걸작의 부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그 매춘부 씨의 작품은 아니고 욱 자신의 자작자장(自作自藏)인 것이었다. 삼팔 행커치프 한복판에다가 선명한 예서로 ‘罪(죄)’ 이렇게 한 자를 썼을 따름 물론 낙관도 없었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탄생하여서 참 처음으로 목도한 혈서였고

그런 후로 나의 욱에 대한 순정적 우애도 어느덧 가장 문학적인 태도로 조금씩 변하여 갔다.

다섯 해 세월이 지나간 오늘 엊그제께 하마터면 나를 배반하려 들던 너를 나는 오히려 다시 그리던 날의 순정에 가까운 우정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만큼 너의 현재의 환경은 너로 하여금 너의 결백함과 너의 무고함을 여실히 나에게 이야기하여 주고 있는 까닭이다.


하이드 씨 편집

내가 부를 이름은 물론 소하(小霞)는 아니올시다.

그러나 소하라고 부른들 어떻겠습니까? 소하! 운명에 대하여는 마조히스트들에게 성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성욕! 성욕은 그럼 농담입니까? 성욕에게 정말 스토리가 없습니까? 태고에는 정말 인류가 장수하였겠습니까?

소하! 나에게는 내가 예술의 길을 걷는데 소위 후견인이 너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일찍이 사디슴을 알았을 적에 벌써 성욕을 병발적(竝發的)으로 알았습니다. 이 신성한 파편이요 대타(對他)에 실례적인 자존심을 억제할 만한 아무런 후견인의 감시가 전연 없었습니다.

매춘부에게 대한 사사로운 사상, 그것은 생활에서 얻는 노련에 편달되어가며 몹시 잠행적으로 진화하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영화로 된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1편이 그 가장 수단적인 데 그칠 예술적 향기 수준이 퍽 낮은 것이라고 해서 차마 ‘옳다, 가하다’ 소리를 입 밖에 못 내어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에 소하의 경우를 말하지 않고 나에게는 가장 적은 ‘지킬 박사’와 훨씬 많은 ‘하이드 씨’를 소유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는 물론 소하의 경우에서도 상당한 ‘지킬 박사’와 상당한 ‘하이드’를 보기는 봅니다만 그러나 소하가 퍽 보편적인 열정을 얼른 단편으로 사사오입식 종결을 지어 버릴 수 있는 능한 수완이 있는데 반대로 나에게는 윤돈(倫敦) 시가에 끝없이 계속되는 안개와 같이 거기조차 콤마나 피어리드를 찍을 재주가 없습니다.

일상생활의 중압이 나에게 교양의 도태를 부득이하게 하고 있으니 또한 부득이 나의 빈약한 이중성격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하이드 씨’와 ‘하이드 씨’로 이렇게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악령의 감상(感傷) 편집

발광에서 종이 한 장 거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어린애 같은 의지밖에 소유하지 못한 나는 퍽 싫어합니다. 그러나 거기 혹사(酷似)한 농담을 즐겨합니다. 이것은 소하! 자속(自贖)인가요? 의미의 연장이 조금도 없는 단순하고도 정직한 농담·성욕! 외국인의 친절을 생리적으로 조금 더 즐거워하는 나는 매춘부에게서 국제적인 친절과 호의를 느낍니다. 소하! 소하도 그런 간단한 농담과 외교는 즐기십디다그려.

교양은 우리들에게 여분의 상식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3인의 매춘부의 손에 묻은 붉은 잉크에 대하여서 너무 무관심하였습니다. 나중에 붉은 잉크가 혈액의 색상과 흡사한가 아닌가를 시험한 것인 줄 알았을 때에 폭소를 금치 못하는 가운데에도 그들의 그런 상식과 우리의 이런 상식과는 영원히 교섭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요사이 더욱이 이렇게 나와 훨씬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의 심리에 예술적 관심을 퍽 가지게 된 나로서 절망적인 한심을 느꼈습니다.

물론 붉은 잉크와 피와는 근사하지도 않은 것이니까 그네들도 대개는 그 혈서가 붉은 잉크는 아닌 무슨 가장 피에 가까운(위조라고 치고 보아도) 재료로 씌어진 것이라는 것은 깨달았을 것인데도 핏빛 나는 잉크가 있느냐는 둥 다른 짐승, 예를 들면 쥐나 닭이나 그런 것들의 피도 사람 피와 빛깔이 같으냐는 둥 그때에 내 마음은 하여튼 소하의 마음은 어떠하셨습니까? 자― 이것 좀 보세요, 하고 급기야 집어내어 온 것이 봉투 속에 든 한 장 백지. 우리들이 감정하기도 전에 역시 그네들은 의논이 분분하지 않습디까? 그 혈서는 과연 퍽 문학적인 것으로 천결(闡潔) 명확, 실로 점 하나 찍을 여유가 없는 완전한 걸작이라고 나는 보았습니다. 왈,

"사랑하는 장귀남 씨 / 나의 타는 열정을 / 당신에게 바치노라 / 계유세정월 모일."

나는 그때 우리들의 농담이 얼마나 봉욕(逢辱)을 당하고 있는가를 느꼈습니다.

소하! 소하는 그때 퍽 신사적인 겸손을 보이십디다만 소하의 입맛이 쓴 것쯤은 나도 알 수 있읍디다. 하여간 이 ‘앨리스’ 나라 같은 불가사의한 나라에 제출된 외교 문서에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법률을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도로요 무효일 줄 압니다.

그네들은 입을 모아 그 이튿날 그 발신인이 살고 있고 또 경영하고 있는 점포에 왕림하시겠다는 결의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좀 나도 따라가서 그 천재의 얼굴을 좀 싫토록 보고 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재는(그중의 한 분이 그것이 확실히 사람의 피라는 감정을 받은 다음 별안간 막 술을 퍼붓듯이 마시는 것을 나는 말릴까말까 하고 있다가 흐지부지 그만두었습니다만) 나이 마흔 가량이나 되는 어른이시라고 그러지 않습디까?

우리들의 예술적 실력은(표현 정도는) 수박 겉핥기 정도밖에 아니 되나 보더이다. 나는 거리로 쫓겨 나와서 엉엉 울고 싶은 것을 참 억지로 참았습니다.


혈서기삼(血書其三) 편집

이것이 내가 평생에 세 번째 구경한 혈서인데 나는 이런 또 익살맞은 요절할 혈서는 일찍이 이야기도 못 들어 보았다. W카페 주인이 "글쎄, 이것 좀 보세요" 하고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 그 한강에 가 빠져 자살한 여급은 자기 아내(첩)인데 마음이 양처럼 순하고 부처님처럼 착하고 또 불쌍하고 또 자기를 다시없이 사랑하였고 한데 자동차 운전수 하나가 뛰어들어와 살살 꾀이다가 말을 잘 안 들으니까 이따위 위조 혈서를 보내서 좀 놀라게 한다는 것이 그만 마음이 약한 Y자(子)가 보고 너무 지나치게 놀라서 그가 정말 죽는다는 줄 알고 그만 겁결에 저렇게 제가 먼저 죽어 버렸으니 생사람만 하나 잡고 그는 여전히 뻔뻔히 살아서 자동차를 뿡뿡거리고 다니니 이런 원통하고 분할 데가 또 있습니까? 그러면서 글쎄 이게 무슨 혈섭니까, 하고 하얀 봉투 속에서 꺼내는 부기지(簿記紙)던가 무지(無地)던가 편지 한 장을 끄집어내어 보여준다. 펜으로 잘디잘게 만리장서 삐뚤삐뚤 시비곡직이 썩 장관이었다.

나는 첫머리 두어 줄 읽어 내려가다가 욕지거리가 나서 그만두고 대체 피가 어디 있느냐고, 이것은 펜 글씨지 어디 혈서냐고 그랬더니 이게 즉 혈서라는, 즉 피를 내었다는 증거란 말이지요, 하며 저 끄트머리 찍혀 있는 서너 방울 떨어져 있는 지문 묻은 핏자국을 가리킨다. 코피가 났는지, 코피치고도 너무 분량이 적고 빈대 지나가는 것을 아마 터뜨려 죽인 모양인지 정체 자못 불명이다. 그런데 그 장말(章末)에 왈(曰)이, 혈서가 당신에게 배달되는 때는 나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낙원에 가 있을 것이라고……. 요컨대 낙원회관에 애인이 하나 생겼단 말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Y자는 죽었다. 정말 그 편지가 배달되자 죽었다. 그래 이 편지 한 장이 ○○코 ― 사람 하나를 죽일 수가 있을까? 정말 이 편지에 무섭고 겁이 나고 깜짝 놀라서 죽었을까? 나는 또 다른 ○○코들에게서…….

두 사람은 정사를 약속하고 자동차로 한강 인도교 건너까지 나갔다. 자동차는 도로 돌아갔다. 인도교를 걸어오며 두 사람은 사(死)의 법열을 마음껏 느꼈겠지. 마지막으로 거행되는 달콤한 눈물의 키스. Y자는 먼저 신발을 벗고 스프링오버를 벗고 정말 물로 뛰어들었다. 그 무시무시한 낙하, 그 끔찍끔찍한 물결 깨어지는 소리, 죽음이라는 것은 무섭다. 무섭다. 그 번개같은 공포가 순간 그 남자의 머리에 스치며 그로 하여금 Y자의 뒤를 따라 떨어지는 용기를 막았다. 반쪽만 남은 것 같은 어떤 남자 한 사람이 구두와 외투를 파출소에 계출(屆出)하였다. 그 사람은 이 무서운 농담을 소(消)하려고 자기적(自棄的)으로 자동차에 속력을 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지 W카페 주인은 Y자의 동생 ○○학교 재학하는 근면한 소년학도에게 참 아름다운 마음으로 학자(學資)를 지출하여 주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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