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이효석)

찔레순이 퍼지고 화초 포기가 살아났다고 해도 원체가 고양이 상판만큼밖에 안되는 뜰 안이라 자복히 깔아놓은 조약돌을 가리면 푸른 것 돋아나는 흙이라고는 대체 몇 줌이나 될 것인가. 늦여름에 해바라기가 솟아나고 국화나 우거지면 돌밭까지 가리워 버려 좁은 뜰 안은 오종종하게 더욱 협착해 보인다. 우러러보이는 하늘은 지붕과 판장에 가리워 쪽보만큼 작고 언덕 아래 대동강을 굽어보려면 복도에서 제기를 디디고 서야만 된다. 이 소꿉질 장난감 같은 베이비 하우스에서 집을 다스리고 아이를 돌보고 몸을 건사해야 하는 아내의 처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별수없이 새장안의 신세밖에는 안되어 보이면서 반날을 그래도 밖에서 지울 수 있는 남편의 자리에서 보면 측은히도 여겨진다. 제 스스로 즐겨서 장안에 갇히워진 ‘죄수’라면 이 역 하는 수 없는 노릇, 누구를 탄하려면 남편 된 입장으로서 나는 사실 같은 처지의 세상의 수많은 아내들에게 한 조각의 미안한 생각이 없지 않다. 기껏해야 한 달에 몇 번씩 영화 구경을 동행하거나 거리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거나 하는 것쯤으로 목이 흐붓이 축여질 리는 없는 것이요, 서양 영화에 나오는 넓은 집안과 사치한 일광실 속에서 환상에 잠기다가 일단 협착한 현실의 집으로 돌아올 때 차지 않는 속에 감질이 안날 리가 없다. 현대의 무수한 소시민의 생활의 탄식은 참으로 부질없는 감질 속에 숨어 있는 듯싶다.

아내의 건강이 어느 때부턴지 축나기 시작해서 눈에 뜨이게 되었을 때 나는 놀라며 그 원인을 역시 이 감질에 구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구미가 떨어지고 불면증이 생기고 그 어딘지 없이 몸이 졸아들면서 하루 세 때 약 그릇을 극진히 대한대야 하루 이틀에 되돌아서지도 않는 것이다. 의사도 이렇다 할 증세를 집어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 나는 그 원인을 감질로 돌려서 도시 도회 생활에서 오는 일종의 피곤증이라고 볼 수밖에는 없었다. 삼십 평짜리 베이비 하우스에 피곤해진 것이다. 협착한 뜰에 숨이 막히고 살림살이에 지친것이다. 그 위에 그의 신경을 한층 피곤하게 만든 것은 남편의 욕심이라고 할까. 세상의 남편들같이 고집스럽고 자유로운 욕심쟁이는 없다. 아내의 알뜰한 애정을 받으면서도 그밖에 또 무엇을 자꾸만 구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서는 범사에 봉건왕이요, 폭군 노릇을 하면서 마음속에는 항상 한없는 꿈과 욕망을 준비해 가지고는 새로운 밖 세상을 구해 마지않는다. 참으로 그리마의 발보다도 많은 열 가닥 백 가닥의 마음의 촉수를 꾸미고 그 은실금실의 끝끝마다 한 개의 세상을 생각하고 손닿지 않는 먼 데 것을 그리워하고 화려한 무지개를 들어본다. 그 자기의 마음 세상 속에 아내는 한 발자국도 못 들어서게 하고 엄격하게 파수 보면서 완전히 독립된 왕국을 몰래 다스려 간다. 일생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아내가 그 왕국에서는 가장 먼 것이다. 이것이 세상 남편들의 어쩌는 수 없는 타고난 천성머리니 나 역 그런 부류에서 빠진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며, 세상에서 꼭 한 사람밖에는 없다고 생각해 주는 아내의 정성의 백의 하나도 갚지 못하게 됨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 된 특권인 듯이도 부질없이 마음의 왕국을 세우면서 그것이 아내를 얼마나 상하게 하고 다알게 하나를 눈으로 볼 때 날카로운 반성이 솟으며 불행한 것이 여자요, 악한 것이 남편이라는 생각만이 난다. 삼십 평 속에서 속을 달리고 신경을 일으켜 세우고 하는 동안에 아내는 몸이 어느 때부턴지도 모르게 피곤해진 것 같다. 나는 남편 된 책임을 느끼고 과반의 허물을 깨달으면서 평화와 건강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나 아무튼 도회의 삼십 평은 숨을 쉬기에는 너무도 촉박한 것이다. 이 촉박감이 마음을 한층 협착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어서 어느 결엔지 막연히 그 무슨 넓은 것, 활달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 아내는 하루 아침 문득 계획을 말하는 것이었다.

“잠깐 시골이나 다녀오겠어요.”

새삼스런 뚱딴지같은 소리는 아니었다. 해마다 한번쯤은 다녀오는 고향이었고 이번 길도 착상한 지는 벌써 오래 그동안에 현안 중에 걸려 있었던 문제이다.

“몸두 쉬이구 집안 형편도 살필 겸…….”

그러나 막상 이렇게 현실의 문제로서 눈앞에 나타나고 보니 선뜻 작정하기도 어려워서,

“글쎄…….”

하고 얼삥삥하게 대답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제가 지금 제일 보고 싶은 게 무언데요. 울 밑의 호박꽃, 강낭콩, 과수원의 꽈리, 바다로 열린 벌판, 벌판을 흐르는 안개, 안개 속의 원두꽃…….”

“남까지 유혹하려는 셈인가?”

“제일 먹구 싶은 건 무어구요. 옥수수라나요, 옥수수. 바알간 수염에 토실토실한 옥수수 이삭. 그걸 삐걱하구 비틀어 뜯을 때 그 소리 그 냄새―생각나세요? 시골 것으로 그렇게 좋은 게 또 있어요? 치마폭에 그득히 뜯어 가지고 그걸 깔 때 삶을 때 먹을 때 우유맛이요, 어머니의 젖맛이요, 그보다 웃길 가는 맛이 세상에 또 있어요? 지금 제일 먹구 싶은 게 옥수수예요. 바다에서 한참 잡힐 숭어보다두 뒤주 속의 엿보다두 무엇보다두…….”

“혼자 내빼구 집안은 어떻게 하라구?”

그러나 마침 일가 아이가 와 있던 중이었고 아내의 시골행의 결심도 사실은 거기에서 생겼던 까닭에 이것은 하기는 헛걱정이기는 했다.

“나 혼자 남겨 두구 맘이 달지 않을까?”

“에이구, 어서 없는 새 실컷 군것질해두 좋아요. 얼마든지 하라지, 지금에 시작된 일인가 머. 이제 다 꿈만 하니.”

“큰소리 한다. 언제 맘이 저렇게 열렸던구. 진작…….”

장담은 해도 여린 아내의 마음이다. 두 마디째가 벌써 그의 마음을 호비는 것을 나는 안다. 눈썹을 찌푸리면서 그 말은 그만 그것으로 덮어버리고 천연스럽게 말머리를 돌리는 아내의 눈치를 나는 더 상해서는 안 된다.

“또 한 가지 이번 길의 이유로는.”

다 듣지 않아도 나는 뜻을 짐작한다. 늘 말하는 일만 원건 인 것이다. 그의 어머니보다도 오빠가 용돈으로 일만 원을 약속한 것이다. 그것을 얻으러 가겠다는 말이다.

“만 원은 갖다 무얼하게. 그까짓 남의 돈 누가 좋아할 줄 아나. 사람의 맘을 괜히 얽어 놀까 해서.”

“아따 큰소리 그만 둬요. 돈 보구 침만 흘렸다 봐라.”

“지금 내게 그리울 게 무어게.”

“그까짓 피아노 한 대 사놓고 장담 말아요.”

“방안에 몇 권의 책이 있구 뜰 안에 몇 포기 꽃이 있으면 그만이지, 또 무어가 필요한데.”

반드시 시인을 본받아 그들의 시의 구절을 외인 것이 아니라 사실 이런 청빈의 성벽이 마음속에 없는 바가 아니다. 때때로 사치를 원할 때가 없는 것도 아니나 뒤를 이어 청빈에 대한 결벽이 자랑스럽게 솟곤 한다. 이 두 마음 중의 어느 것이 더 바른지는 헤아릴 수 없으나 두 가지 다 한몫씩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지금에 있어서는 사치에 대해서 일종의 경멸과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속임 없는 사실인 것이다. 허나 아내의 말이 바른 것이라면 그가 또 내 마음을 곁에서 한층 날카롭고 정직하게 관찰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이기는 하나.

“만 원에 한 장도 어김없이 가져올께 어서 이리같이 약탈이나 하지 마세요.”

“내 마음 제발 이리 되지 맙소서!”

합장하는 나의 시늉을 흘겨보고는 아내는 그날부터 행장을 꾸리기에 정신이 없다. 행장이라야 지극히 간단한 것이나 잘고 빈틈없는 여자의 마음씨라 간 뒤의 집안 살림살이의 요령과 질서까지를 일가 아이에게 트여주고 거기에 맞도록 집안을 온통 한바탕 치우고 정돈하기에 여러 날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눈에 뜨이리 만치 말끔하게 거두어진 것을 나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집안이 정돈된 것보다도 더 신기한 일이 생겼다. 떠나는 그날 저녁 거리에서 돌아온 아내의 자태에 일대 변혁이 생겼던 것이니, 머리를 자르고 퍼머넌트를 건 것이다. 집안이 정리된 이상의 정리였다. 멀끔하게 추려서는 고슬고슬 지져놓은 머리는 용모를 일변시켜 총명하고 개운한 자태로 만들어놓았다. 굳이 펄쩍뛰며 놀랄 것은 없었던 것이 퍼머넌트에 대한 의논도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충충대고 권한 장본인은 결국 나 자신이었던 까닭이다. 여자의 머리로서 퍼머넌트를 나는 오래 전부터 모든 비판을 떠나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해 왔다. 모방이니 흉내니 한다면 이 땅에 그럼 현재 모방이 아니고 흉내가 아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살로메가 요한의 머리를 형용해서 에돔 나라의 포도송이 같다고 한 머리, 그것을 나는 남녀 간의 머리의 미의 극치라고 생각해 왔던 까닭에 아내의 머리에 그 운치를 베풀자는 것이었다. 내가 놀란 것은 도리어 아내의 그 결단성이었다. 아무리 충충대도, 오랫동안 주저하고 머뭇거리던 것을 그날로 단행한 그 결단성인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 아내의 동무들의 실물교육이 직접 도와 힘이 된 모양도 같다. 집에 놀러오는 그들이 하나나 그 풍습을 벗어난 사람이 없다. 아내가 그들이 보이는 모범에서 용기를 얻었을 것은 사실 어떻든 그날 저녁 그 변모로 나타난 아내의 자태에 비록 놀라지는 않았다고 해도 일종의 신기하고 청신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피곤하던 종래의 인상을 다소간이라도 떨쳐 버린 셈이요. 그 모든 아내의 행사는 결국 고달픈 피곤증에서 벗어나자는 일종의 회복책이었던 것이다. 도회의 피곤에서 향수를 느끼고 잠간 전원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그의 해방의 의욕의 표시이었던 것이다. 머리를 시원스럽게 자르고 삼십 평을 떠나 넓은 전원의 천지에서 숨을 쉬자는 것이다. 바다로 열린 벌판에서 안개를 받고 원두꽃을 보고 풋옥수수를 먹자는 것이다. 내 자신 도회에 지쳐 밤낮으로 그것을 그리워하고 향수를 느끼고 하던 판에 원래부터 찬성하는 바이다. 아내의 전원행은 어느 결엔지 자연스럽게 응낙되었다. 같이 떠나지 못하는 것이 한 될 뿐 별 수 없이 나는 서리우는 향수를 가슴속에 포개 넣은 채 마음속으로 시골을 그리는 수밖에는 없게 되었다.

이튿날로 아내는 짙은 옥색으로 단장하고 퍼머넌트를 날리고 홀가분한 몸으로 길을 떠나는 것이었으나 차창에서는 금시 눈물을 머금고 쉬이 돌아올 것을 거듭 말한다. 차가 굽이를 돌 때까지도 작아가는 얼굴을 창으로 내놓고 손수건을 흔드는 것을 보고는 그럴 것을 그럼 왜 떠나는구 하는 동정도 솟았으나, 한편 이왕 떠나는 것이니 어서 실컷 시골 맛이나 맡고 몸이나 튼튼해져서 오라고 축수하는 나였다. 호박꽃, 강낭콩 실컷 보고 옥수수 숭어 실컷 먹고 좀 거무잡잡한 얼굴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간 후 집안이 텅 빈 것 같고 삼십 평이 좁기는커녕 넓게만 여겨지면서 휑휑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으나,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또한 기쁨이 되었다.

일만 원이니 무어니 도시 아내의 꿈이란 것이 좁은 삼십평의 세계 속에 묻혀 있게 된 까닭에 포태된 것인데, 그의 꿈의 실마리도 이 집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넓은 집을 바라는 곳에서 일만 원의 발설을 알뜰히 명심하게 되었고, 그것이 은연중에 여행의 계획도 된 모양이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아내의 동무들이라는 것이 어찌어찌 모이다 나니 거개 수십만 대 급에 가는 유한부인으로서 퍼머넌트의 실물교육을 하듯이 이들이 어린 아내에게 사치의 맛과 속세의 철학을 흠뻑 암시해 준 모양도 같다. 이웃에서는 며느리를 가진 안늙은이들 입에 오르리만큼 소문이 나서 모범주부로 첫손을 꼽게 된 아내라고는 해도 아직 스물을 조금밖에는 넘지 않은 어린 나이인 것이라, 속세의 철학에 구미가 안돌 리가 없다. 물욕에 대한 완전한 초월 해탈이라는 것은 산속에 숨어 있는 도승에게나 지당할는지 속세에 살면서 그것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노릇이어서 적어도 사치 아닌 것보다는 사치에 마음이 기우는 것은 여자―뿐이 아니겠지만―의 본성일 듯도 싶다.

그러나 사치의 한도란 대체 얼마인 것인가. 천에서 만족할 수 있으면 백에서도 만족할 수 있으려니와, 천에서 만족하지 못할 때 만에선들 만족할 수 있을까. 필요한 것은 만이나 십만의 한계가 아니요, 천에서라도 만족할 수 있는 심정이 아닐까. 십만대 급의 유한부인들의 철학을 나는 속으로 비웃으면서 아내의 일만 원의 일건을 위태하게 여기며 하회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내의 친가는 결혼 당시만 해도 몇십만 대의 호농으로 시골서는 뽐내는 편이었으나, 그 시기에 농가의 몰락이란 헐어지는 돌담을 보는 것같이 빠르고 가엾은 것이었다. 재산이라는 것이 대개는 농토나 산림인 것을 무엇을 하노라고인지 은행과 회사에 모조리 넣은 것이 좀체 빠지지는 않아서 우물쭈물하는 동안에 한몫이 패어나가기만 했다. 낙엽송의 묘포를 하느니 자동차회사를 경영하는 동안에 불끈 솟아오르지는 못하고 점점 쓰러져만 가는 것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두 남매―아내와 오빠, 즉 이 오빠의 손에서 가산은 기우는 형세를 당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에서 문덕문덕 나가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해가 안 지난 것 같은데 집안은 후출하게 줄어들고 말았다. 도무지 때와 곳의 이를 얻지 못한 것이 보기에 딱할 지경이나 생각하면 등 뒤에 그 무슨 조화의 실이 이리 당기고 저리 끌면서 농간을 부리는 것만 같아 어쩌는 수 없다는 느낌도 난다. 부근에 제지회사가 되면서부터 벌목이 성하게 된 까닭에 한고장의 산이 유망하다고 그것을 잔뜩 바라고 있는 것이나, 그것이 십만 원에 팔릴 희망도 지금 같아서는 먼 듯하다. 아내는 오빠에게 이 산에서의 오만 원의 약속을 받은 것이나, 어쩌랴 아내의 꿈은 오빠의 운명과 발을 맞추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지금 당장의 일만 원이란 것도 필연코 읍 부근의 토지의 매매에서 솟을 것인 듯하나, 이 역 운이 대단히 이로워야 차례질 몫일 듯 골패짝의 장난같이도 허황한 것이다.

일만 원이나 오만 원의 꿈은 어서 천천히 꾸기로 하고 시급한 건강이나 회복해 가지고 오라고 마음속으로 축원하고 있을 때, 대망을 품고 고향으로 내려간 아내에게서는 며칠 만에 간단한 편지가 왔다. 대망을 품은 폭으로는 흥분도 감격도 없는 담담한 서면이었다. 어머니의 흰 머리칼이 더 늘었다는 것과 둘째 조카딸이 어여쁘게 자란다는 것을 적어 보낸 것이다. 호박꽃 이야기도 과수원 이야기도 옥수수 이야기도 한마디 없는 것이요, 도리어 놀란 것은 진찰한 결과 신경쇠약의 증세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도회의 병원에서는 증세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이 왜 하필 시골 병원에서 판명된단 말인가. 신경쇠약의 선언을 받으려고 일부러 시골을 찾은 셈이던가. 만약 말과 같이 신경쇠약이라면 그 원인을 만든 내 허물이 한두 가지가 아닐 듯해서 애처로운 생각조차 났으나, 어떻든 병이 병인만큼 일부러 전지 요양도 하는 판에 시골을 찾은 것만은 잘되었다고 안심도 되었다. 살림 걱정도 잊어버리고 활달한 자연과 벗하고 지내는 동안에 차차 회복될 것으로 생각한 까닭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오랫동안 지니고 간 약이나 먹으면서 마음 편히 지내기를 나는 회답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과수원도 거닐고 풋콩도 까고 조카아이들과 놀고 거리의 부인들과도 휩쓸리면서 모든 것 잊어버리고 유유히 지내고 있을 그의 자태를 상상해 보는 것이었다.

뒤를 이어 사흘들이로 편지가 오는 것이 어느 한 고패를 번기는 법이 없이 한가한 전원의 풍경을 그려 보내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멀리 이곳 집안의 걱정과 살림살이의 주의를 편지마다 세밀히 적어 보낸다, 생선을 소포로 보내온다, 편지봉투 속에 돈을 넣어보낸다 하면서 면밀한 주의는 가려운 데 손이 닿을 지경이다. 그리고는 이곳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과 조바심인 것이다. 향수를 못 잊어 고향을 찾는 그의 마음이니 응당 누그러지고 풀리고 놓여야 할 것임을 그같이 걱정이 자심하고야 누그러지기는 커녕 도리어 안타깝게 죄어드는 판이니 그러다가는 병을 고치기는 새로 도리어 더치기가 첩경일 듯싶었다. 혹을 떼러 갔다 혹을 붙여올 것도 같다. 하기는 걱정이라면 내게도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그를 보내고 나니 일상의 불편이 이루 한두 가지가 아님을 당면하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대하는 음식상으로부터 주머니 속에 드는 손수건 하나에 이르기까지가 손이 달라지니 불편하고 맛같지 않은 것이다. 아내란 상 위의 찌개 그릇이요, 책상 위의 옥편이라고 할까. 무시로 눈에 뜨일 때에는 심드렁해서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으나 일단 그것이 그 자리에 빈 때에는 가지가지의 불편이 뼈에 사무치게 알려지면서 그 값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내 없는 불편을 더구나 집안을 거느리고 있을 때의 그 불편을 절실히 느껴 가면서 웬만큼 정양하고 그만 돌아왔으면 하고 내 편에서도 느끼게 되었다.

대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편안하고 마음 놓을 곳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일까. 그립고 안심을 얻을 마지막 안식처가 어디요, 고향이 어디임을 말해 주는 이 없을 듯싶다. 내가 아내 없는 불편으로 해서 그렇게 안달을 하고 갈망을 하지 않아도 아내 편에서 도리어 조바심을 하고 제 스스로 또다시 돌아온 것이다. 별안간 전보를 치고는 그날로 떠난 것이었다. 불과 한 달도 못되어서 협착하다고 버리고 간 도회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 원하던 옥수수 시절도 채 못 맞이하고 우유 맛이요 어머니의 젖맛 같다던 그 즐기는 옥수수 한 이삭 먹어 보지 못한 채 도회에서는 좀 있으면 피서들을 떠난다고 법석들을 할 무더운 무렵에 무더운 도회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향수에 복받쳐 고향을 찾은 그에게 그리운 것이 또 무엇이었던가. 향수란 결국 마지막 만족이 없는 영원한 마음의 장난인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아내는 고향에서 두번째의 향수―도회에 대한 향수를 느낀 것이다. 도회가 요번에는 고향같이만 보였을 것이 사실이다. 시골로 떠날 때와 똑같은 설레고 분주한 심정으로 집을 떠나 삼십평을 찾아든 것이다. 안타깝고 감질이 나던 삼십평이 조촐하고 알맞은 안식처로 보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뜰의 꽃 한 포기까지가 새롭고 귀하고 신기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집안의 구석구석이 시골보다도 나은 곳으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한해를 살아가는 동안에 피곤해지면 또 시골이 그리워질 것이요, 시골로 갔다가는 다시 또 이곳을 찾을 것이요, 향수는 차례차례로 나루를 찾은 나룻배같이 평생 동안 그칠 바를 모르는 것이다.

차에서 내리는 아내의 신색은 떠날 때보다 조금 나아진 것도 같고 도리어 못해진 것도 같다. 퍼머넌트를 날리고 옷맵시가 개운하게 보이는 것은 떠날 때와 일반이나 어쨌든 올 곳에 왔다는 듯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떠오른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푸지게 있을 걸 와 그리 설레긴 했던구.”

“어때요. 이만하면 얼굴 좀 그슬렸죠. 군것질 너무 할까봐 걱정이 돼서 뛰어왔죠.”

“그래 옥수수 먹을 동안두 못 참았어?”

“수염이 바알개지는 걸 보구 왔어요. 익거든 철도편으로 두어 푸대 뜯어 보내라구 일러는 두었지만.”

“이 가방 속에는 이게 모두 지전으로 만 원이 들어찼으렷다.”

“찰 뻔했어요.”

아내는 조금 겸연쩍은 듯이 빙그레 웃으면서 재게 걷는다.

“일만 원의 꿈 깨뜨려지도다, 아멘.”

“노상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드릴 수는 없지만 거리에는 군대가 들어와 양식고가 선다구 땅 시세가 갑자기 올라 발끈들 뒤집혔는데 철도를 가운데 두구 바른편 터가 군용지로 작정 되구 왼편 땅이 미끄러질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바로 작정되는 날까지두 어느 쪽으로 떨어질 줄을 몰라 수물들거리다가 그 지경이 되구 보니 한편에서는 좋아라구 뛰는 사람, 한편에서는 낙심해서 우는 사람―오빠는 사흘이나 조석을 굶구 헤매이는 꼴 차마 볼 수 있어야죠.”

“아멘!”

“운이 박할 때는 할 수 없는 노릇 같아요.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어쩌는 수 있나요.”

“안되기를 잘했지. 옳게 떨어졌다간 그 만 원 때문에 또 무슨 걱정이 생겼게. 그저 없는 것이 제일 편하다나.”

사실 당치 않은 꿈 깨어진 것이 도리어 마음 편하고 다행한 노릇이라고 생각한 것은 물질이 가져오는 자잘구레한 근심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 현재 굳이 만 원이 없어도 좋은 것이다. 아내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불편하던 집이 필 것 같아서 반가웠다. 고기를 놓친 것이 아까울 것도 애틋한 것도 없이 빈손으로 간 아내가 빈손으로 온 것이 얼마나 시원한 노릇인지 모른다.

“두구 보세요. 다음 기회는 영락없을 테니. 사람의 운이 한번은 이로울 날 있겠지요.”

“암, 꿈이란 자꾸 멀리 다가갈수록 좋은 것이라나. 그렇게 수월하게 잡혀선 값이 없거든.”

집에 이르렀을 때 아내는 좁은 뜰안에 한 걸음 들어서자 만면희색을 띠고 우거진 꽃 숲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느새 이렇게 만발이야. 카카랴, 사비야, 프록스, 애스터, 따랴, 국화, 해바라기 온통 한창이니.”

무지개를 보는 아이와도 같다. 조금 오도깝스럽게 수다스럽게―기쁨이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당한 듯도 싶다. 카카랴의 꽃망울 하나를 뜯어 가지고는 손가락으로 문질러 물을 들이고 향기를 맡고 하는 것이다.

“호박꽃보다 못하지 않지?”

“호박꽃두 늘 보니까 싫증이 났어요. 흡사 새 집 새 세상에 처음으로 온 것만 같아요.”

복도로 뛰어 올라서는 공연히 방안을 서성거리며 부엌을 기웃거리며 마루방을 쿵쿵거리며 현관문을 열어보며 제기를 디디고 언덕 아래 강을 굽어보며―흡사 새 집으로 처음 들어온 신부의 날뛰는 양이다. 집을 한 바퀴 횅하니 살펴보고야 비로소 안심한 듯이 방에 와 앉으면서 놓이는 마음에 잠시는 어쩔 줄을 모르고 멍하니 뜰을 내다본다.

“다시는 시골을 간다구 발설을 하구 법석을 안하렷다.”

“시골을 다녀왔으니까 오늘의 이 기쁨이죠. 맘이 이렇게 편하구 기쁠 때는 없어요.”

그 즉시로 신경쇠약증이 떨어져 버린 듯이도 건강한 신색에 기쁨을 담고는 새로운 감동의 발견에 마음이 흐붓이 차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그날 찾아온 데는 삼십 평의 집이 아니라 삼만 평의 집이었던지도 모른다. 그날의 그보다 더 기쁠 사람이 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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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