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화희와 치희
- 禾姫와 雉姫
- 펄펄 나는 꾀꼬리는
- 암놈 수놈 노닐건만
- 홀로 있는 이 내 몸은
- 눌과 같이 돌아갈가
- —翩翩黃鳥, 雌雄相依
- 念我之獨, 誰與爲歸
이 황조가란 노래는 고구려의 제이세왕 류리 대왕이 지은 노래이니 조선 최초의 시가(詩歌)다. 이 시가 속에는 천고에 살아지지 않는 정한이 남어 있으니 원래 류리왕은 그 왕비 송씨(松氏) 이외에 화희(禾姬)와 치희(雉姬)란 두 왕희가 있었는데 화희는 고구려 골천(鶻川) 사람이요 치희는 한토(漢土) 사람으로 왕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이다. 그러자 마츰 왕비 송씨가 죽으니 두 여자는 서로 왕비가 되랴고 항상 사랑 싸홈을 하야 풍파가 끄칠 날이 없음으로 왕은 동서(東西)에다 두 궁을 지여놓고 서로 떠러저 살게 하였었다. 그러나 진소위 시앗 싸홈에는 길 아래 돌부처까지도 도라 안는다고 피차에 아모리 집이 다른들 어찌 그 싸홈이 끄칠 수가 있으랴. 하루는 왕이 산양을 하러 갓는데 두 여자가 또 싸홈 시작을 하야 한참 싸우는데 화희가 치희더러 욕하기를 이 더러운 년—한토(漢土)에서 잡아온 종년이 나에게 어찌 감히 무례한 말을 하느냐고 하였더니 치희는 평소에도 자기가 외국에서 와서 천대 받는 것을 한탄하던 끝에 그러한 욕을 먹으니 인도상 참아낼 수가 없음으로 무엇보다도 크게 분개하야 왕께 말도 고할 여지가 없이 그냥 도망을 하였었다. 왕은 산양을 하고 돌아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말머리를 다시 돌려 그 여자를 쫓아가니 때는 벌서 시간이 오래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왕은 낙심천만하야 말을 멈추고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데 우연이 본즉 꾀꼬리 한 쌍이 나무 가지 새로 늠나 들며 노는데 그것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마음에 깊이 감촉이 되야 이 노래를 지였다는 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