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문영왕후 김문희

文明 (문명) 王后 (왕후) 金文姬 (김문희)

신라 김유신(新羅 金庾信)은 누이가 두 분이 있었으니 손위의 누이는 보희(寶姬)요 손아래 누이는 문희(文姬)였다. 보희는 처녀 시대에 일찌기 꿈을 꾼즉 자기가 서악(西岳)산에 올라가서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흘러서 왼 서울에 가뜩하게 되었다. 보희는 놀라 깨어 그 아우 문희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문희는 그 꿈을 자기가 사겠다 하고 비단 치마 한 벌을 형에게 주고 자기의 옷가슴을 풀며 그 꿈을 받는 형용을 하고 보희는 또 내 꿈을 너에게 파니 그리 알고 잘 받어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한지 십여 일 뒤에 김유신은 김춘추(金春秋)와 같이 정월 오기일(正月 午忌日=그때 國俗에 每正月 上亥 上子 上午日을 忌日이라 하여 그날에는 아무 일도 아니하고 出入도 아니하였다)에 자기 집 문 앞에서 제기(蹴鞠)를 차다가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 뜨리고 자기 집으로 다리고 와서 큰누이 보희더러 꼬매라 하였더니 보희는 병이 있다고 칭탁하고 굳이 사양하므로 다시 적은 누이 문희를 불러 꼬매게 하였더니 춘추는 문희의 아리따운 얼굴과 모양을 한 번 보고 마음이 풀리어서 그날부터 유신의 집을 자조 출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왕을 하는 동안에 춘추와 문희는 서로 정을 통하게 되어 정식의 혼인도 하기 전에 먼저 아이를 배게 되니 유신이 그 사실을 알고 크게 분하여 문희를 불러 책망하되 계집애가 부모의 승락도 없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인즉 네 죄를 장차 일국에 공포하고 불에 태워 죽이겠다 하고 하인을 시켜서 뜰 안에다 나무를 잔뜩 쌓아 놓고 불을 지른 다음 문희를 태워 죽이려고 끌어 내니 문희의 생명이 경각의 위기에 있었다. 그때에 마침 선덕왕(善德王)께서 남산(南山)으로 놀러 오셨다가 멀리 화광을 바라보고 시신에게 그 화광이 어쩐 화광이냐고 물었더니 시신은 대답하되

『김유신의 누이가 처녀로 애를 밴 까닭에 유신이 그것을 징벌하기 위하여 그 누이를 태워 죽이려고 지금 불을 놓는 중이올시다』고 하였다.

선덕왕은 그 말을 듣고 말하되 그 여자의 소행도 소행이니와 그 상대자의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하니 옆에 모시고 있던 김춘추가 별안간 얼굴빛이 딸구 빛 같이 붉어졌다. 왕은 그 기색을 보고 다시 말하되 그것은 필경 너의 소위인 듯하니 속히 가서 구해 주라 하였다.

춘추는 그렇지 않아도 문희의 죽는 것이 안타까워 견디지를 못하던 차에 왕의 그 말씀을 듣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급히 말을 달려 쫓아가서 문희를 구해내고 왕명으로 다시 정식의 결혼을 하게 되니 춘추는 그 뒤 삼국을 통일하던 신라의 유명한 임금 태종 무열왕(太宗 武烈王)이요 문희는 또 현숙하기로 유명한 문명 왕후였다. 왕후는 또 아들 六형제를 낳았으니 맏아들은 신라의 성군 문무왕(文武王)이었다.

—(三國遺事參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