露雀

할미꽃 全 一幕

인물

장대식(張大植) 의사, 근 30세 미남, 침착한 동작
정영명(丁鈴鳴) 간호부, 34~5세, 독신자 곰보
도은옥(都隱玉) 간호부, 18~9세, 근대형 미인
노옹(老翁) 병자, 60세 이상, 기독교 독신자
노동자(勞働者)

시일

현대, 2월 상순경, 눈 많이 온 일요일 아침

장경(場景)

서울 어느 병원 진찰실, 우편은 출입구, 좌편은 일광을 받는 창, 창 밖은 설경, 창 위는 시계, 정면은 벽, 벽에는 예수의 초상화, 위생통계표 내과병계도 등, 그 밑에 침대, 중앙에는 의자 3,4각(脚), 침대 좌편은 의학용 기구, 우편은 스팀.
(도은옥은 실내 기구를 정돈하는 듯 창 옆에 섰고 張大植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丁은 그 옆에 섰다. 張은 흑색 양복, 都와 丁은 백색 간호부복.)

丁, 어떡하면 좋아요, 다른 과에서는 벌써 다들 됐나 보던데.

張, 글쎄요.

丁, 선생님께서 아무거나 얼른 하나 맨들어내셔요. 그저 익살스러운 희극이면 고만이지 무얼.

張, 익살스러운 것은 영명씨가 잘 알걸요.

丁, 저야 사람만 이렇게 익살스럽게 생겼지 어디 그런 거야 무식해 됩니까. 그저 선생님께서 하나만 맨들어주셔요. 그러시면 익살스러운 것은 제가 맡아 하지요. 또 곱고 보드런 것은 저 은옥씨더러 하라고…… 어서 하나 맨드세요.

張, 글쎄 온 어떻게 했으면 좋을런지. 그런 건 소양도 없고 또 별안간 연극이 될만한 거리도 없으니…… 또 웃음거리란 것과 희극이란 것은 뜻이 다르다는데 그래도 아무 뜻도 없이 값싼 웃음만 괜히 웃기는 그런 소극(笑劇)은 싫고……

丁, 아따 소국(小國)이나 대국(大國)이나 그건 선생님 맘대로 아무렇게나 얼른 하나만 맨들어내셔요. 2월 스무날이 벌써 지났으니 이제 기념회는 며칠이나 남았습니까. 그 동안에 또 연습이라도 좀 해보아야죠. 이번에 잘만 하면 상으로 은컵을 준다는데 그 은컵을 다른 과에 뺏기면 온 분해서……

張, 하긴 이번 기념이 이 병원 설립 이래 처음 큰 것이고 또 연극도 이번이 처음이라니까 아마 잘만 하면 상도 많겠지.

丁, 그러게 말예요. 온 이걸 어떡하나 안타까워서.

都, 참 기념 축하에는 비극은 아마 못쓸걸.

張, 글쎄요. 무엇이든지 일부러 거꾸로나 삐뚜로만 보려는 것이 사람의 호기심이니까요. 그러나 연극이란 것이 인생의 한 사실을 예술화한 거라고 볼 것 같으면 그리 또려지게 희극이고 비극이고 기쁘나 슬프나 그것은 다만 극을 보는 그 사람이 그저 자기의 흥미가 예술적 향락을 느낄 뿐이니까. 시방 종로 네거리에서 벌거벗은 한 거지가 춤을 춘다 하면 그것을 보고 웃는 이도 있고 우는 이도 있겠죠. 사람은 그저 그대로가 근본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을 애를 써 기쁜 일만 본다면 그야말로 눈물로 세수(洗漱)하고 콧물로 분바르는 격이죠.

丁, 그렇지. 무엇이든지 제 멋의 진국으로 그대로 그대로 노는 게 좋지. 그럼 아따 선생님께서 아무 거라도 얼른 맨드셔요.

都, 참 외과에서는 오늘 무대 연습을 한대.

丁, 저것 봐요. 그럼 내 거기 좀 가볼까.

張, 거기는 또 무엇 하러 가.

丁, 아따 거기서 잘만 해 봐요. 내 한바탕 헤살을 놀 걸. (퇴장)

都, 아이 수선도…… 어저께도 자다가 아주 야단였답니다.

張, 왜요.

都, 연극 연습을 한다나요. 자다가 일어나 “장대식씨─” 하며.

張, 왜 내 이름을 불러.

都, 그건 남자 이름을 아는 게 그뿐이라나요.

張, 오─라 만만한 내 이름이.

都, 그래 쉴손 장대식씨를 부르면 연방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당신도 나를 생각해주십니까” 하며 아양을 부리고 야단이었답니다.

張, 망할 거, 그 왈패가 그건 또 무슨 짓이야. 속 모르는 이가 그걸 들으면 괜히 수상쩍게 알겠지.

(일동 웃는다)

都, (창 밖을 내다보고) 아이 눈도…… 아직 봄은 이른 봄이지만 무슨 눈이 저리 많이 왔어. 조선도 이제 눈나라가 되려나 쓸쓸한 눈나라…… (방긋 웃는 듯)

張, 끝없이 눈 덮인 하얀 벌판으로 이따금 이따금 쓸쓸하게 걸어가는 흰옷 입은 무리들, 그것을 마음 있이 여겨보는 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언다고 그것이 조선을 읊조린 남모르는 설움이 아니오. 그러나 시골서 농사짓는 이들은 아마 이런 때 눈물겨운 기쁨도 있을 거야.

都, (의자에 앉으며) 기쁨이 있다니.

張, 눈이 많이 오는 해는 보리풍년이 든다고.

都, 무얼요. 그것도 다─ 제철이 있죠. 파릇파릇 움 돋는 어린 싹이 찬 눈에 쌓이면 어째요.

張, 그렇지만 아직도 기계 문명의 은덕보다는 거룩한 신화나 어렴풋한 전설이 그들에겐 굳은 신앙이고 든든한 기쁨이니까. 그러기에 요새도 입춘날 입춘시에 보리 뿌리 하나를 캐어 보고서 그 해의 풍흉을 미리 점 쳤다고 기뻐들 하지요.

都, 참 입춘만 지나면 봄철이 된다지요.

張, 네 그것도 아마 그들의 전설 속에 그렇다 하지요.

都, 참 분(忿)해서.

張, 무엇이 그리.

都, 정초라고 윷도 한 번 못 놀고…… 이번 주말엔 꼭 선생님을 뫼시고 들로 바람이라도 쐬러 갈랬더니……

張, 나하고요. 왜 해열산(解熱散) 신세나 실컷 지게.

都, 왜 해열산은?

張, 바람을 쏘이면 감기가 들지.

(일동 웃는다)

張, 바람이야 정 쏘이고 싶으면 십 전에 셋씩 주는 값싼 부채도 있고 그것도 아주 개평을 댈려면 전기치료실에 들어가서 선풍기를 좀 틀어놓든지 무어 그렇게 낙망할 것도 없이.

(일동 웃는다)

都, 그러면 바람은 취소.

張, 또 감기 잘 드는 그 바람보다는 눈 온 데 설경이 어때. 거기는 해열산도 들지 않구……

都, 아이 선생님도 (소간小間) 참…… 설경은 싫어요. 눈에서 눈물이 얼게.

張, 오─라 참 은옥씨는 눈물이 많은 시인이시니까.

(일동 웃는다)

都, 정말 눈은 너무도 쓸쓸해.

張, 암 그럴 테지. 예술가의 보드러운 느낌에. (웃는다)

都, 아이 참 선생님도…… 그러면 난 다시 말 안 할 테야.

張, 그것도 좋지. 말마다 금방울 소리 같은 당신의 그 고운 마음이 금방 얼음처럼 얼어붙는다.

都, 마음이 얼면 죽게요.

張, 천만에…… 마음이 근본 뜨거운 것만도 아니니까. 얼음에 채워 둔 붉은 과실이 썩는 법도 있습디까. 더구나 당신같이 아직 이 세상 수학으론 풀어 볼 수 없는 미지의 나라에서 붉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당신의 목숨을 시방도 지배하고 있을 그 법칙은 우리는 알 수가 없으니까.

都, 그러면 그게 무얼까. 아마 죽음이나 무덤 속보다 더 깊고 먼 곳으로 떨어져 간 게지.

張, 아니 그렇지도 않어. 차고 잠잠하던 그 넋이 금방 도둑고양이같이 우리의 가슴 속으로 속 깊이 숨어 들어와서 고요히 졸고 있던 마음의 거문고 줄을 징당동당 흐늘거려 울리니까.

都, 아이고 고양이가 거문고를 어떻게 타.

(小間)

張, 그야 무얼. 얼음 속에서 우는 할미꽃이 있을라고. (빙긋 웃는다)

都, 선생님. 참 할미꽃도 시방쯤은 아마 꽃봉오리가 졌을걸.

張, 그렇지. 늙기도 전에 꼬부라졌다는 할미꽃.

都, 피기도 전에 스러졌을 테죠. 그만 찬 얼음 속에서.

張, 그래도 무얼. 봄은 봄이니까.

都, 할미꽃도 꽃은 꽃이죠. 그러나 그 꽃도 눈물은 눈물이야.

張, 왜 나물캐는 아가씨들의 메나리 가락이 슬퍼서.

都, 녜─ 철없는 에누다리도 목이 메어요. 이른 봄에 맨먼저 설움을 가지고 오니……

張, 할미꽃이 눈물 짓는 봄철이라. 그렇지. 벌써 이 달도 거진 다─ 갔군. 하는 것 없이 세월만……

都, 참 선생님 논문을 쓰신댔지요. 그것은 다─ 마치셨어요. 의사회에 제출하신다는 것.

張, 웬걸. 아직도 생각이 점점 어려워만 지니까.

都, 어째서요.

張, 처음에는 혈통과 유전병의 관계를 연구해보려고 했었는데 요새 흔한 얼 과학자들은 좀 어렴풋한 곳에는 의례히 생활력 생활력하며 멘델법칙이니 무엇이니도 다─ 소용없고 그저 생활력이라는 그거로만 밀어버리니. 그렇게 말하면 어디 학술에 새로운 연구라는 것이 있을 필요가 있겠소. 그래 우선 생활력이라는 것부터 톡톡이 좀 연구를 해 그 썩은 냄새가 나는 묵은 학자들의 머리를 좀 깨트려 주려고 시방 논문을 다시 기초(起草) 중이나 아직 시일 관계로 연구도 부족하고 증명할 만한 재료도 변변치 못해서.

都, 하긴 종교 생활하는 이들은 과학은 아직 불완전한 것이라고 그런대요.

張, 흥, 불완전도 하지요. 그러나 오늘날 소위 종교란 그것도 과학적이 아니면 역시 불완전한 것이니까요. 종교를 신앙한다는 것보다도 자기를 해석하느냐 묻고 싶어요. 나는 불행히 과학자라서 그런지 모든 해석이 과학적이 아니면 양심으로 허락치 않으니까.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린 뒤 물을 찾은 것을 종교가들은 아주 이상하고도 거룩한 말로 길다랗게 늘어놓지만 의학자는 다만 그것을 빈혈이 되면 목이 마른 거라고 한 마디로 단정을 하지요.

都,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도 예수를 믿으시죠.

張, 네─ 그렇죠. 그러나 아니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라는 한 훌륭한 인격자로 “나”라는 한 자기에다 확충하는 것이요. 천국이라는 한 원대한 세계에까지 자기의 세계를 확장하려는데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기에 제 눈으로 자기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겠소. 더구나 신이라는 그것을 고안해 놓은 사람으로서 사람의 생명력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기의 전(全)존재를 긍정하지도 못하는 것들이 도리어 신을 의뢰하고 구원을 청한다고요. 그거야말로 참 우스운 미신이야. 그것들이 믿기는 무엇을 믿었겠소. 도리어 미신 속에다 자기라는 한 실재까지 잃어버린 게지요.

都, 그렇지만 예수교가 어디 미신입니까. 죄 많은 우리 인생이니 하나님께 구원을 청할 수밖에……

張, 그렇죠. 그러나 그것이 잘못 생각입니다. 무서운 사자의 한 마디 영악한 울음소리가 법왕(法王)의 깊은 꿈을 깨트리고 수많은 면죄부를 불살라 버리니 그것을 평범한 머리를 가진 역사가들은 루터 선생으로 말미암아 종교가 소생(甦生)된 줄로 알지만 실상은 그 때부터 종교를 태워버리려는 무서운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죠. 그 때부터 미신하던 신과는 이별하고 자기를 확충하려는 곳으로 새 길을 떠난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쓸데없이 딴 것은 의뢰하지 마시요. 그보다는 우리의 인생관을 고칩시다. 가치의 유전(流轉), 생명의 현재, 개성의 생동, 모든 것이 영혼의 본성임을 긍정하는 그 때는 구원을 청한다는 그것은 벌써 아무러한 필요도 없는 군소리가 될 것이 아닙니까. 나라고 하는 한 인생이 아무리 변변치 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변변치 못한 그대로 완전한 존재니까 그밖에 또 무엇을 구해요.

都, 그러면 자기의 생활력이란 그것만을 믿는단 말씀입니까.

張, 그렇죠. 그러나 생활력 그것만 가지고도 될 수 없죠. 생활력이라는 그것도 한 허무니까. 우주의 생활력의 일부를 우연히 얻었다고 기뻐만 하면 우리의 생명이라는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 생활을 자기가 의지해 곧 뜻해서 새로운 것으로 뜯어고쳐야, 마음의 움직이는 것이 곧 뜻이니까. 의지라는 것은 동적(動的)의 생명이죠. 건설이나 파괴나 실현이나 희망이나 모두가 내 뜻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세균검사실에서 현미경으로 수많은 세균을 봤지만 우리의 몸뚱아리도 마치 조그마한 그 세균과 같은 거예요. 이 커다란 우주로 봐서는 가장 하잘 것 없는 작은 물건이야 세상에 있어서 그 세균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쓸 것인지 못쓸 것인지 그것은 다─ 아무렇든지 다만 자기가 몇 해쯤은 살다가 죽겠다고 뜻하게 된다면 그것은 얘기가 잠깐 다르지만 거기는 새로이 시간이란 걸 의미하니까. 그러나 다만 종족이 그 세균의 종족이 말이야 그냥 몇 백대(代)든지 서로 이어 사는 거라면 그것은 시간이란 것도 없이 다만 우주의 한 타성(惰性)일 뿐이죠. 자기가 의지라는 것을 비롯하는 그때부터 시간도 있는 것이니까요. 여보시요. 우리가 이세상에서 극락이니 천당이나 하는 것이 다─ 무엇이요. 인생의 가장 높은 한 의지가 정해 놓은 가장 먼─ 시간이 아닙니까. 참 몇 시나 되었을까. 예배 시간이 너무 늦지나 않았는지. (자기 팔뚝을 본다. 시계도 없으면서)

都, (벽시계를 보고) 무얼 아직 열시 반인데요.

張, 그러면 아직도 30분은 남았군요. 그것 보오. 이렇게 얘기에 취할 때는 시간도 없지.

都, 그래도 사람 기다리는 덴 시간이 있대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퍽 더디 간다는데.

張, 그것은 또 그렇죠. 기다린다는 그것이 벌써 사랑이라는 한 사실에 시간을 놓고 의지하는 것이니까. 사랑이 뜨거운만치 의지하는 도수도 높을 것이요 의지하는 도수가 높을수록 기다리는 것도 못 견딜만치 되겠지요. 그러나 의지는 움직이는 것이고 또 변화가 많은 것이니까 그렇게 애써 기다리는 것도 서로 만나면 고만이지요. 또 어느 때에 누구를 다시 사랑할런지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都, 참 사랑이라는 그것은 생각할수록 퍽 재미도 있고 이상도 한 거야. 천 사람 만 사람 모인 가운데 하필 그 사람은 따로 있고 또 몇 억만 인류의 누구에게든지 다─같이 가진 한 조그마한 그 사랑. 옛날 신화에는 남자와 여자가 천상에서는 한 몸뚱이던 것이 반쪽씩 갈라져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라죠. 그래 이 세상에서 그 반쪽 몸뚱이가 서로 그 반쪽을 찾는 것이라데요. 내 애인은 그 반쪽 몸뚱이는 시방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요.

張, 그러나 그것도 사람의 의지의 작용일 바에는 한 사람만 상대해서 어느 때까지든지 움직일 수 없는 관계로 얽어매어 놓은 것은 인생의 본능인 것도 아니야. 그것은 다만 사회의 질서를 보전하기 위해서 억지로 만들어 놓은 후천적 작위(作爲)인 듯싶어요.

都, 그런데 참 선생님께서는 왜 이때까지 결혼을 안 하셔요?

張, 어쩐 일인지 아직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都, 왜요. 여자의 마음은 변하기가 쉽다니까 또는 결혼하신 뒤에 더 훌륭한 여자를 만나시면 그 전에 결혼하신 것이 후회되실까 봐서요?

張, 아뇨. 무어 그런 것도 아니지만……

(정영명 등장)

丁, 아주 한창 야단들야.

都, 그래 외과에선 연습들을 잘 해요?

丁, 응. 그러나 거기도 틀렸어.

張, 왜, 연극이름은 무언데.

丁, 무슨 아가씨꽃이라나요.

都, 할미꽃도 피기 전에 아가씨꽃은 또 왜.

張, 아가씨꽃, 그것도 좋긴 좋군. 매우 어여쁘고 고운 이름인데.

丁, 곱다마다요. 박선생이 애인이고 영춘(英春)씨가 아가씨라나.

都, 영춘이가 누구요?

張, 영춘이라고 있지. 접때 들어온 간호부, 그래서.

丁, 그래 한창 연애하는 장면인데 애인이라는 이가 오─ 어여쁜 님이여 하고 아가씨의 입을 그만. (도의 입을 맞춘다)

都, (피하느라고 입을 막고 고함치는 소리) 으─음.

丁, 이렇게 쪽 맞추겠지.

都, (입을 씻으며) 이런 더러운 입을 씻지도 않고.

丁, 이런. 연애에 미칠 지경인데 입 씻을 새가 어디 있어. 정말 참 경험 없는 아가씨로군.

都, 이런 늙은이가 숭칙스럽게. 훅 하면 연애 연애 하고. 그래도 무슨 독신생활을 해.

丁, 아따 독신생활하는 이면 몸으론 연애를 안 하지만 입으로도 못해?

都, 아따 말은 좋지. 성경 말씀에 마음으로 벌써 간음한 것이란 것이 뭣인데. 밤마다 잘 때면 남을 막……

(丁은 張이 듣는다는 듯이 주먹질)

都, 괜─히 아주 못살게 굴며.

丁, 내가 언제

(張, 빙그레 웃는다)

丁, 동생처럼 귀여우니까 그렇지.

都, 귀여우면 왜 그런가 아주……

丁, 아이 추워. 스팀이 병이 났나. (딴전을 피우는 어조)

都, 왜 스팀이 식었어요? (잠깐 놀라는 듯이)

丁, 그럼요. 어쩐 일인지 어저께부터 차디찬대.

張, 저런 그런 걸 나는…… 사람의 의지란 것이 참 이상한 것이로군. 나는 그래도 뜨겁거니 하니까 등이 후끈후끈 해서.

都, 아이 참 변(變)스러워라.

(일동 웃는다)

丁, 어디 기관실엘 좀 가봐야 정말 병이나 그런가. (퇴장)

張, 생활력과 의지. 암만해도 내 이번 연구가……

都, 아무쪼록 이번 연구에는 선생님께서 꼭 성공하십시요. 저는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빕니다.

張, 고맙습니다. 글쎄 온 이번에는 될는지…… 물론 꼭 되겠지요. 은옥씨의 성의로만 해서도.

都, 무얼 저는 선생님을 친오빠같이 여기는데요. 그러나 영명씨는 그것을 질투한답니다.

張, 질투라니요.

都, 영명씨는 張─ 저를 연애한다고 그래요.

張, 연애 무어. 그야말로 동성연애ᅟᅵᆫ가요.

都, 녜─ 독신생활을 하면 사람이 퍽 이상해지나봐요. 영명씨는 저희들 같이 젊은 동무를 보게 되면 아주 좋아서 죽겠대요. 그렇다가도 또 날궂은 밤 저녁 같은 때는 아주 마음이 쓸쓸하다 못해 그래서 저를 연애한대요. 그리고 또 사랑이란 것은 누구를 사랑하든지 그를 가장 사랑한다고 한다나요. 다른 경우에는 가장이라는 그 최고급의 말을 다만 한 군데에만 한해 쓰게 되지만 사랑에는 더구나 여자는 누구에게든지 동시에 나는 가장 당신을 사람합니다라고 한대요. 일상 여자의 맘이 사랑에는 그렇게 어수룩한 것을 깨달은 까닭에 그는 저를 질투하는 것이라나.

張, 그러나 그 질투는 매우 쑥스러운 질투로군.

都, 그렇게 말이죠. 괜히 성가셔 죽겠어.

(丁 등장)

丁, 병난 게 아니라 오늘은 주일(主日)이라 불을 안 핀대.

都, 아따 이제 조금 있으면 예배 보러 갈 걸 무어.

張, 아무튼 사람에게는 성욕이라는 것도 큰 문제야. 대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모두 그 까닭이니까. (신문을 들며) 신문기사에도 날마다 오르내리는 무서운 범죄 참혹한 사건이 모두.

丁, 그러게 금욕주의가 좋죠. 나처럼 독신생활이.

張, 그렇지만 금욕주의가 종교생활상 어느 시대에 있어서는 더러 필요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정신적 미화(美化)로 봐선 연애만 훨씬 못할 것이니까.

都, 그렇지만 그것 까닭에 죄를 짓는데.

張, 천만에…… 옛날 어느 시인의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삭지 않는 향내를 가진 한 송이 어여쁜 꽃과 같이 한 송이의 어여쁜 죄악은 수줍은 아가씨의 일평생을 축복하기에 넉넉하다. 남자는 맨 나중 키스도 벌써 잊어버리었건만 여자는 아직도 맨 첨의 키스까지 기억하고 있다고요.

(노동자 등 등장)

勞一, 의, 의사 양반 계십니까.

都, 왜 그러셔요.

一, 남포질에 산이 무너졌는데, 온 저를 어째요.

丁, 여보 산 무너진데 의사가 어떡한단 말요.

一, 아니 그만 사람이 치어 다리가 부러졌어요.

都, 다리 부러진 건 외과로 가 말하쇼. 여긴 내과니까.

一, 아니 저 아래층에서 여기만 의사가 있다던데.

丁, 안돼요. 주일날은 의사 선생님이 한 분 당직만 하시지 병은 안 봐요.

一, 아니 사람이 거진 죽게 됐는데.

(이하 一, 二, 三이 동시에 부르짖음)

一, 그래 인간처에서 사람을 그냥 죽게 내버려둔단 말요?

二, 병원은 뭣하러 지어놨어. 병자 구하잔 병원이지.

三, 경칠 놈의 자식이 신호도 없이 터뜨려서 사람을 생으로 죽게 만드니……

張, 아니 이럴 것들 없어.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일을 하시니까. 그래 환자는 어디 있소

二, 환장은 무슨 빌어 먹다 죽은 환장(換腸)이야. 이건 의원이 별안간 환장이 됐나.

張, 아니 무슨 환장이 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리 부러졌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말이요.

一, 녜─ 시방 여기 데리고 왔습니다.

張, 그럼 시방 그 떠들던 이요.

一, 아뇨. 그이는 입때 까물쳐 정신도 없습니다.

張, 그럼 얼른 이리 들여오시요. 내 까운.

(都, 張에게 수술복을 입혀준다)

二, (환자를 들것에 메고 들어오며) 온 어찌 달려왔던지 숨이 차서 “휘─” 여기다 올려 뉠까요.

張, 예─ 저렇게 몸을 돌려서.

二, 이렇게요 아차.

(二의 궁둥이가 丁의 엉치에 부딪힌다. 丁, 짜증을 내는 듯 엉치를 만진다. 환자를 침대에 올려뉘었다)

丁, 아이구 응치야. 여보, 조용 조용히 좀 하우. 응치를 함부로 둘러대니……

張, 아따 좀 부딪혔기루…… 그래 언제 그랬어요.

一, 막─ 한 시간쯤 됐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으로 그만……

張, (침대 앞을 장(帳)으로 가리고 들어서서) 응 출혈이 너무 됐는걸.

一, 아주 죽지는 않겠습니까.

(都, 수술기구를 가지고 장(帳) 뒤로 간다)

張, 글쎄요, 아무튼 응급수술은 해보지만.

都, 핀센트요? 가제는 여기 있습니다.

二, 어느 늙은인지 식전 아침에 재수 없이.

三, 그럼 우린 가세. 오정 안에 가야 점심 막걸리 값이나 더 벌지.

二, 그럼 가지.

都, 여보셔요. 환자의 성명이 누구십니까.

一, 모르죠. 그냥 지나가던 노인으로 그렇게 됐으니까요.

都, 아이 가엾은 일도……

(노(勞)등 퇴장) (이하 실내와 실외에서 동시에)

張, (실내에서) 주사.

都, 무슨.

張, ……

都, 몇 그람.

張, …………

一, (실외에서) 하나는 꽤 똑똑하지.

二, 응.

一, 나하군 얘기를 다 했어. “여보셔요. 환자 성명이 누구십니까” 하하하하.

三, 하나는 곰보던 걸. 어쩌면 그리 염(鹽)충교(橋)에서 수수 전병 파는 쇠똥어미같이 생겼나.

一, 이건 자네가 가지고 가세. 이젠 빈 들것이라 가볍겠지.

二, 응. (가면서) 망할 거, 나는 재수 없이 그것하고 엉덩이를 부딪혔어.

(차차 멀리서 일동의 웃음 소리)

丁, 망할 친구들, 컴먼 센스가 없어서.

張, 여보 커먼 셔츤지 하얀 자켓인지 조용이 좀.

(붕대 찢는 소리)

張, 이리로 잡아 당겨.

都, 이렇게요.

張, 옳지.

(장(帳)을 걷는다. 일동은 손을 씻는다)

張, 그럼 나는 예배를 보고 올테니 아무쪼록 조용히들…… 늙은 몸에 또 출혈이 너무 돼서 암만해도 어려운데. 아무튼 안정하게 조금도 정신의 동요를 시키지 않는 것이 저이의 목숨을 잠깐이라도 붙들어주는 것이니까. (퇴장)

(멀리서 종소리, 찬송가, 노인 일어나 사방을 여겨본다. 간호부들 놀란다)

老, 오─ 천당 천당. (예수 초상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듯) 하나님 오른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침대를 만져보며) 하나님의 보좌. (옷을 만져 보고 절뚝절뚝 걸어나서며) 흰 옷 입은 천사들. (간호부를 여겨보더니) 천사…… 아니 마누라, 마누라도 천당엘 다─ 왔구려.

丁, 이거 어떡하나. 얼른 선생님 좀.

老, 옳─지. 내 귀여운 딸도, 너도 어떻게 천당에를……

(都 퇴장)

老, 그렇지. 그 때 걔는 아무 죄 없는 어린 아기였으니까. 아마 천당에는 쉽게 왔겠지. 벌써 그렇게 자랐나. 이제는 바로 어른같이 커─다라서 천상의 복색을 다─입고, 그때는 걔가 다섯 살이었지. 아니 네 살이었군. 조고만 발가숭이가 “엄마 젖 좀 밥 좀” 하며 배가 고파 애도 쓰더니 그래 나는 어린 것이 똥오줌만 싼다고 구박을 했지. 그래 그 죄로 또 가난한 죄로 어린 처자 못 먹이고 못 입혀 죽게 한 죄로 30여년 동안이나 인간에게 홀아비 몸뚱이로 갖은 고생을 다 겪으며 살다가 이제서야 왔지. 천당에는 사람이 늙지도 않는구려. 마누라는 여태껏 그대로 한 모양이니. 벌써 인간에는 몇 해나 됐는지. 그것이 어떤 땐가. 주일날 아침에 나는 예배를 보러 30리 길을 걸어갈제 어디선지 하늘이 그만 땅─ 하고 갈라지며 성신(聖神)이 비둘기같이 날았었던가. 그 뒤는 나는 몰라. 그저 이렇게 천당에를 왔지.

丁, 노인께서는 저, 다리를 다치셨어요.

老, 아니 다치기는 무얼. 늙으면 그저 다리도 무겁지. 천국이 가까웠으리라 하셨지만은 정말 오느라 오니 멀기도 합니다. 그 머나먼 길을 오느라고 벌써 20여년 동안이나 다리도 아프고 또 제일 무릎이 시려서 시방까지도 이렇게 시려. 여보 마누라 나 다리 좀 녹여주. 뽕나무 장작 열 바리를 지퍼서 녹지 않는 무릎도 마누라가 녹이면 따뜻하게 녹는다지. 어서 내 무릎 좀 녹여줘……

丁, 아이 망측스러워라. 나는 당신의 마누라가 아니라 간호부예요. 늙은이가 숭칙스럽게 그게 무슨 짓이야.

老, 뭬─요.

丁, 당신은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온 것예요. 여긴 병원예요.

老, 아이쿠 (쓰러져) 아이구 다리야. (고통, 신음)

(張, 都 등장)

張, 당신은 나의 아까 부탁을 잘 듣지 않았구려.

丁, 예─.

張, 어째서.

丁, 그렇지만 저이가 미쳤는지 날 보고 사뭇 마누라라고 자꾸 덤비니까 어떡해요.

張, 환자보다도 간호부로서는 당신이 정말 미쳤구려.

丁, (울듯이) 미친 게 아니라 이때껏 독신생활하던 몸이 다─죽은 늙은이에게 그런 소릴 들으니 차라리 안 들으니만도……

張, 여보쇼. 노인 일어나십쇼.

老, 나는 다리가 부러져 꼼짝도 못하오. 아이고 다리야……

張, 천만에─ 노인이 다리가 부러지셨으면 천당에를 와요.

老, 그러게 천당이 아니라 병원이래…… 아이구 다리야.

張, 온 노인도. 그것이 천당에 오려면 한 시험이야. 그러면 노인께서는 그 시험에 드셨구려.

老, 아니요.

張, 그러면 분명히 천당에 오셨죠, 무얼.

老, 천당…… 그러면 아까 그것들은 마귀들인가.

張, 녜─ 그것들이 마귀도 되고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도 되고요.

丁, 아이 선생님도 어쩌실라고.

張, 자─ 그럼 일어나시죠.

(張, 都가 노인을 부축해 일으킨다)

老, (일어나며) 천당이라 다리가 어째 이리 서먹서먹할까. (해 비친 창을 보며) 아 햇빛보다 더 밝은 천당…… 천당에도 눈이 많이 왔군.

張, 그게 눈이 아니라 옥이외다. 천상백옥경(天上 百玉京). 자─ 이 위에(침대에 노인을 뉘이며) 노인께서는 먼 길을 오시느라고 퍽 고단하실테니 잠깐 누어 쉬셔요. 하나님 품 안에서 고이.

老, 오─ 복 주시는 주 여호와시여. (잠이 드는 듯)

張, 저이는 믿음이 굳은 사람이요. 억세인 정신은 스스로 모든 것을 의지하니까 다리가 부러졌건만 아픈 줄도 모르고 걸음을 걷지. 몸은 거진 다─ 죽어가면서도 자기가 의지하던 천당을 눈앞에 보고 기꺼워하지요. 그것 보시요. 천당이 아니고 병원이라니까 금방 고통을 느끼며 신음하는 것을 왜 당신은 애써 천당이 아니라고 무서운 고통을 깨우쳐 줬소. 또 그가 의지하던 그때의 그 천당이 정말 천당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무엇으로 그리 역력히 증명할테요. 당신이 그의 아내라면 무엇이 어떻겠소. 보아 하니 저이는 필시 가난한 시골 농군인 듯 싶은데 아마 이렇게 큰 병원에는 못 와봤겠죠. 그래 모든 것이 화려하고 이상하니까 몽롱한 정신에 자기가 항상 뜻하던 천당인가 여기어 천사도 보고 또 자기의 가장 낯익은 아내와 딸을 본 것이 아니요. 나는 의원된 의무로서 그렇게 고통이 있을 이에겐 그의 가장 뜻하던 바로 곧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건강하게 해 준다는 것보다도 나을 줄 아오. 비록 잠깐이나마 그것이 고통을 치료하는 성약(聖藥)이니까.

都, 그렇지만 건강이 곧 행복이죠.

張, 그렇지. 보통 사람에 있어서는…… 그러나 시방 내가 말하는 경우는 다른 것이니까. 저이의 육체는 여지없이 흐너졌지만 다만 피투성이 한 의지가 아직 천당을 보고 있는 것이니까. 만일에 그 의지마저를 깨트려버리면 곧 그의 목숨을 꺼지는 때지요. 아까 당신의 그의 아내가 아니라는 뼈아픈 소리 한마디가 저이에게는 무서운 독약이었소. 이제부터는 될 수 있는 대로 그의 뜻을 어기여 주지 맙시다. 무슨 말을 하든지 모두 옳다고만…… 아무 거리도 의지할 그 때만은 모두가 참된 것이니까. 저 사람의 무감각한 정신이 차차 짙어갈수록 저 아직 남은 목숨은 행복할거요.

丁, 이제부터는 아무쪼록 잘 하겠습니다.

老, (잠꼬대처럼)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모른다 하리라고 어여쁜 마귀가 날 보고 아내가 아니라고.

張, 저것 좀 보오. 이때까지도.

老, 이스카레트의 유다는 지옥에 가서도 모반을 하다 쫓기여 났대지.

丁, (노인에게로 가서) 아니올시다. 안심하십쇼. 저는 당신의 아내올시다. 분명히 하나님께 맹세를 드린 아내올시다. 오─ 주여, 어리석은 딸에게도 귀여운 아드님을 보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여보셔요. 이제 저를 사랑하는 아내라고 불러주셔요. 저는 이 병원에서 독신생활 십여 년에 사랑에 미쳐 우는 가엾은 젊은이를 일곱 번이나 보았습니다. 여덟 번째 불쌍한 이는 제 차롄 것을. 이제는 다행히 면했나봐요. 저는 죽도록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올시다.

都, 저건 또 무슨 짓이야.

張, 아뇨. 가만 두시요. 그것도 좋지…… 나는 시방 이 자리에서 무한한 기쁨을 느끼오. 생활력과 의지에 관한 재료를, 그것을 증명할 좋은 재료를 넉넉히 얻었으니까. 내가 쓰려던 그 논문은 이제 훌륭히 완성되었소.

都, 선생님 그것은 참 감사합니다.

張, 그러나 그것은 뜻밖에 의학이 아니라 철학이었어요. 그리고 또 우리가 이때껏 애써 찾던 그 연극도 이제 이 자리에서 훌륭한 극본을 얻었소.

都, 어떻게 그렇게……

丁, 어떻게요. (都와 동시에)

張, 무어 시방은 극본 얻은 것만 기쁠 뿐이 아니라 상도 우리가 타올 테니까 좋지요. 영광스러운 그 은컵을……

丁, 아이 좋아라.

(동시에)

都, 작히나 좋아.

張, 그러니 그 은컵을 타오거든 그것은 그 연극을 만드느라고 애를 제일 많이 쓴 영명씨에게 드립시다. 상품으로 또 기념품으로 경사로운 일에.

丁, 무얼 저야…… 선생님께서 모두 맨드느라고 애만 쓰셔서.

張, 아니요. 나는 잠깐 연출만 했을 뿐이지 처음부터 힘써 출연을 잘한 공은 영명씨에게 있으니까.

都, 그런데 선생님 저는 어떡합니까. 섭섭해서.

張, 염려 마시오.

都, 한 가지 일도 한 것이 없는데요.

張, 은옥씨는 아까 나와 같이 들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그랬지. 이제 갑시다. 기쁨에 부닺는 뜨거운 가슴으로 찬 바람을 쏘이러 흰 눈 덮인 벌판에서 눈물을 얼리랴고……

(노인, 운명하느라고 숨을 모은다)

張, 저 소리가 들리시요.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그저 늙은 할미꽃 힘없이 내부는 입김이나마 굳은 얼음을 녹이여 뚝뚝뚝 이 나라에도 봄이 온다는 소리. 그럼 은옥씨 어서 가봅시다. 영명씨 이 가운이나 받아 거슈.

都, 녜─. 그럼 내 가운도. (피복을 벗어 丁을 주며) 그럼 영명씨는 여기 계쇼.

丁, 왜 나도 갈걸.

都, 가다니. 저이는 어떡하고.

丁, 그럼 저이도 같이 가자지.

都, 그렇게, 어떻게.

張, 아따 그것도 좋죠. 영명씨는 자기의 출연을 그예 끝까지 마치려고…… 하하하.

(丁이 노인을 잡아 일으킨다. 그러나 노인은 시체)

丁, (놀라 물러서며) 어머나 죽었네.

張, 그렇게 놀랄 것도 없지요. 벌써 아까부터 그렇게 된 것을. 무어 다만 섭섭하니 우리의 입으로 아직 송장이라고 부르기 전에 우리의 연극이 끝날 때까지 우리의 의지는 사람으로 보고 있습시다.

丁, 그렇게 하지요.

(동시에)

都, 좋습니다.

(좌는 노인, 우는 丁, 노인의 옆에는 張, 丁의 옆에는 都, 노인·丁은 백복(白服), 張·都는 흑복(黑服), 서로 팔을 결어 선다)

丁, 참 선생님 연극 이름은.

張, 글쎄…… 할미꽃이라고나 할까.

都, 외과에서는 아가씨꽃, 내과에서는 할미꽃.

(한 발자욱 걸으며)

張, 흰 옷 입은 할미꽃.

(한 발자욱 걸으며)

都, 피기도 전에 스러진 할미꽃.

(한 발자욱 걸으며)

丁, 늙기도 전에 꼬부라진 할미꽃.

(걸음을 걷는 대로 시체의 머리는 근뎅근뎅)

…… (대단원) ……


별(別)로히 연출 대장(臺帳)이 있으므로 시간, 동작, 표정, 배치, 광(光), 기타 무대 효과는 적어 넣지 않았다. 혹 상연할 때에 노련한 연출자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한 번 작자에게 문의해 봄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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