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괴기 인물 이근
- 괴기(怪奇) 인물 이근(李謹)
기괴한 사람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혹은 모양이 기괴한 사람도 있고, 행동이 기괴한 사람도 있고, 또 혹은 성벽이 기괴한 사람, 재주가 기괴한 사람도 있다.
그 여러 가지 기괴한 일 중에 한 가지만 있어도 기괴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한 사람으로서 그 여러 가지 기괴한 일을 겸유하였다면 그 누가 절세 무비의 큰 기괴한 사람이라고 아니하랴.
이러한 기괴한 사람이 혹 외국(外國)에도 더러 있을는지 알 수 없지마는 우리나라에도 역대에 꼭 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선조시대(宣祖時代)에 유명하던 이근(李謹)이라 하는 사람이다.
그는 원래 상당한 문벌가에 태어났으나 생김 생김이 아주 기괴망측하게 생겼는데 전신에 털이 담뿍 나서 얼른 보면 돼지(豚[돈]) 같으므로 처음 낳을 때는 부모들이 크게 괴악하게 생각하고 걷어 기르지를 않고 뒷동산 과목나무 밑에다 내다 버렸더니 까마귀와 까치의 무리들이 뫃여들어 쪼아먹으려고 하여 때때로 악착한 소리를 치며 우니, 부모도 다시 측은한 생각이 들어 할 수 없이 거두어 기르게 되었다.
그는 성장한 후에도 키가 석자에 차지 못하여 일개 난쟁이었으나 머리털은 유난히 길어서 땅에까지 닿게 되고 수족(手足)에도 짐승과 같이 털이 많이 났으며, 또한 걸음걸이 조차 이상야릇하게 걸으니 난쟁이 중에서도 천하 기괴한 난쟁이었다.
그는 형용이 그렇게 기괴하게 생기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도 기괴한 병신으로 자처하고 남과 상대하기를 부끄러워하여 항상 방 속에만 숨어 있었다.
그러나 천재는 비상하여 무슨 글이나 한번만 보면 일람첩기로 모두 기억하여 사기(史記)와 경전(經傳)을 무불통지 하고 문장이 능란한 동시에 글씨가 또한 명필이요, 시(詩)와 노래와 휘파람을 모두 절창으로 잘 부르니 그의 족척(族戚)되는 장계 황정욱 선생(長溪黃廷彧先生)이 한번 보고 크게 기이하게 생각하여 운자(韻字)를 부르고 시(詩)를 지으라 하였더니 그는 응구첩대로 시(詩)를 짓되 또한 걸작으로 잘 지으매 황선생이 더욱 칭찬하되 천하기재라 하고 그의 부모에게 권고하여 장가까지 들이게 하였다.
용사란(龍蛇亂) 때 일이다.
그는 난(亂)을 피하여 자기 집 선산(先山)이 있는 광주(廣州) 땅으로 임시 우거하였더니 별안간 적군이 몰려들어와서 동리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가게 됨에 그 또한 함께 잡혀가게 되었다.
적군들은 처음 그를 보고 귀신인지 사람인지 알지를 못하여 크게 기괴하게 여기어 혹은 먹을 것도 던져주고 혹은 채찍 같은 것으로 때리기도 하여 그의 행동을 시험하려 하였으나 그는 원래 성질이 강경하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하는 생각이 없으니 적군들은 더욱 이상히 생각하였다.
그때 마침 어떤 늙은 적장이 왔다가 그를 보고 말하되
『저러한 괴물을 어찌하여 죽이지 않고 살려두느냐.』
하고, 또 말하되
『저와 같은 괴물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편전(片箭〓작은 활)을 잘 쏜다.』
하니 적군들은 크게 놀라 일제히 칼을 빼들고 그를 죽이려 하자 그중 한 장교가 말리어 중지하고 밤이면 마치 원숭이 모양으로 대롱(竹籠) 속에다 넣어두어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또 점자(占者)를 불러서 점(占)을 쳐보니 점자가 말하되
『그것은 곰(熊[웅])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라, 옛날 주문왕(周文王)이 강태공(姜太公)을 얻은 괘상과 똑같으니 그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
하니 적장이 크게 기뻐하여 그 뒤부터 그를 특별히 대접하였다.
그때 적들이 진(陣) 친 곳이 바로 한강 상에 있는 제천정(濟川亭)이라 때 마침 중추 팔월 한가위가 되었는데 달빛이 유난히 밝아서 대낮과 같고 물결은 고요하여 비단결 처럼 흐르며 가을 바람은 산들산들 부는데 모든 벌레소리조차 처량하게 들리니 누구나 다 여러 가지 감회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는 잡혀 갇힌 몸으로 농 속의 새와 같이 가깝하게 있다가 심회 울적한 바람에 휘파람을 한번 부니 그 소리가 참으로 처절 비절하여 만리 타향에 집떠난 외로운 손이라든지 이팔청춘 홀로 우는 과부 같은 사람들은 아무리 철석같은 간장이라도 눈물을 아니 흘리지 못하였다.
밤이 깊어 갈수록 소리는 점점 처량하여 한소리는 높고 한소리는 낮어 가을 바람과 같이 흘러서 적군의 진중으로 흘러 들어가서 마치 계명산 추월야(鷄鳴山 秋月夜)에 항우(項羽)의 팔천 장사가 장자방(張子房)의 옥통소 소리를 듣듯이 일반 군병들이 모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국을 생각하는 노래를 부르니 적장이 크게 놀라서 일어나 듣다가 또한 눈물을 흘리고 비로소 농(籠)을 열고 그를 내어놓으며 말하되
『어떤 괴물이 그렇게 기특한 재주를 가졌느냐. 전날에 점쟁이가 한 말이 허사가 아니구나.』
하고 무한하게 감탄을 하였다.
이근(李謹)은 그렇게 오랫 동안 적진 중에 잡혀서 괴로운 생활을 하다가 하루는 생각하기를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남과 같이 보통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한 기괴한 인물로 태어나고 그중에 또한 적군의 포로가 되어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 바에야 또다시 무슨 꺼리낄 것이 있으랴. 이러할진대 차라리 무슨 방법으로든지 힘을 다하여 벗어나갈 길을 찾다가 뜻대로 안 되며는 자결이라도 하여 죽고 요행이 벗어나게 된다면 집에 돌아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여생을 보내는 게 좋겠다.』
하고 그날부터 결심한 후 마음을 턱 놓고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입을 열어서 하고 싶은 말도 자유로 하고 웃고 싶은 때에는 웃기도 하고 하니 적장이 더욱 신기하게 여겨서 가끔 술을 권하니 그는 원래 주량이 큰 데다가 화가 나는 판이라 양대로 맘껏 먹고 취한 다음에는 가진 목청을 다 쏟아 평소부터 잘하는 노래를 크게 하니 그 노래는 원래 초사(楚辭)로서 곡조가 매우 비창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수많은 적군들은 그의 노래를 한번 듣고 일시에 눈물을 흘리니, 그는 다시 일어나 춤을 추는데 춤도 천하의 명무어니와 그 춤이 보통 춤이 아니요 기기괴괴한 춤이어서 요두전목에 손장단 발장단을 일시에 마추어 가며 또 별안간 몸짓을 다하여 하니 그때까지 눈물을 비오듯 흘리던 적군들이 일시에 눈물을 씻고 박장대소에 포복절도들을 하였다.
그는 그와 같이 적군들을 마음대로 울리고 마음대로 웃기고는 또 다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소리를 높여 크게 통곡하니 보는 사람들이 또한 동정하여 눈물을 흘리었다.
그때 적장은 그에게 묻되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우느냐.』
하고 물었더니 그는 지필(紙筆)을 청하여 필담으로 대답하되
『집에 팔십의 늙은 어머니가 계신데 난리에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생사를 알지 못하여 우노라.』
고 하니
적장은 그 사연을 보고 크게 감격하여 더구나 그 글씨와 문장이 아주 훌륭하여 혀를 휘두르며 무한한 칭찬을 하였다.
그리고 인하여 일반 군중(軍中)에게 말하되
『그 인물이 본래 괴상스럽게 생긴 중에 또 여러 가지 행동을 보면 심상치 않은 인물이라 그런 괴물을 함부로 까닭 없이 죽일 수도 없고 그대로 군중에 두었다가는 다른 날에 후회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자를 죽일 수도 없고 그대로 두어야 소용이 없을 뿐더러 장래 화근의 염려가 되는 바에야 하루 속히 놓아 보내서 저의 환심이나 사는 것이 좋겠다.』
하니, 여러 사람들도 그 말이 옳다 하여 모두 놓아 주기로 찬성하였다.
적장은 그를 보고 말하되
『네가 만일 네 집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며는 네 마음대로 가게 하겠다.』
하니 그는 그때까지 그들의 진의(眞意)를 모르는 까닭에 의심이 나서 도리어 시험 삼아 말하되
『지금 각지에 병란이 치열하여 집에 가려고 해도 길이 막히고 위험하여 갈 수가 없은즉 아직 이 진중에 있어서 시일을 기다리는 게 좋겠읍니다.』
하고 말했다.
적장은 다시 말하되
『그러면 무엇이든지 너의 소원대로 들어 줄 터이니 조금도 의심을 두거나 어떻게 생각하지 말고 말하여라.』
하였다.
이근은 그제서야 적장의 의사가 어떤가를 짐작하고 다시 말하되
『나의 친척이 지금 강화도(江華島)에 있으니 그리로 가고 싶습니다.』
하였다.
적장은 쾌히 승락하고 진중에 잡혀 있는 우리나라 사람 사오인을 뽑아 적은 선척(船隻)을 준비하고 식량과 그외 필요한 물건까지 많이 실어 주어 강화도로 보내며 오랫 동안 포로의 몸으로 적진 중에 갇혀있던 이근은 자유의 몸이 되어 순풍에 돛을 달고 강화로 향하였다.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도 그로 인하여 또한 방송이 되니 여러 사람들이 그의 은공을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근이 그 죽을 땅을 벗어나서 간신히 강화를 찾아간즉 거기의 친척은 난리 중 어디로 피란을 가고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일모도중(日暮途中)에 길 잃은 나그네 모양으로 갈곳을 알지 못하여 한참 동안 낙심천만을 하다가 우연히 들은즉 자기 외사촌(外四寸) 되는 박경신(朴慶新)이 새로 해주목사(海州牧使)가 되었다 하므로 매우 반가워하여 다시 그곳으로 떠났다.
포로의 신세에서 고생하던 그는 잠시도 쉴 사이 없이 또다시 먼 길을 걷게 되었다.
어머니를 찾아보겠다는 일편단심으로 끼니를 굶으며 벌에서 노숙(露宿)도 하며 해주(海州)를 향하여 걸어갔다. 도중 깊은 산중에는 난리에는 반드시 생기는 산적떼들이 준동(蠢動)하여 행인들을 괴롭히고 있어 이근도 여러 차례 그놈들의 손에 잡혔었으나 그의 괴상한 용모와 기괴한 행동, 그리고 그의 놀라운 재주를 목격한 산적들은 누구나 혀를 차며 감탄을 마지 아니하여 감히 손을 댈 생각은 못하고 대접을 유숭히 하여 돌려 보내 곤 하였다.
해주(海州)에 도착한 그는 박경신의 주선으로 다시 그 어머니가 있는 곳을 찾아서 모자가 다시 만나 전날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는 몸이 그렇게 괴물로 생겼으나 나이 칠십세까지 살고 자손도 또한 많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