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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는 이 공판정에서는 이전 검사국에서 공술한 바를 좀 부인하는 듯하지만, 피고의 범죄 사실은 증거가 확실하다. 피고는 오월 O일 저녁 여섯시 즘, 용산 △△공장 앞에서 전차를 타고 동대문 밖 자기 집으로 가는 길에, 남대문 앞에서 피해자 ×××가 전차에 타는 것을 우연히 보고 피해자의 미모에 눈이 앗겨서, 중도 종로에서 (피해자를 따라) 전차를 내려서 뒤를 밟아 피해자의 집까지 보아둔 뒤에, 그 근처에 사는 자기의 친구 T와 새벽 두시까지 내외술집에서 술을 먹고, 새벽 네 시쯤 다시 피해자의 집에 이르러 몰래 들어가서 강간을 하려다가 그만 붙들려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피해자가 경찰서와 검사국에서 진술한 바이며 피고도 그 사실은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피고는 오늘 와서는 ‘사실은 인정하나 강간하러 들어갔던 것은 아니라’고 하는 듯하나, 이것은 다만 일소에 붙일 일이지 믿을 수는 없는 말이다. 이만큼 적확한 증거가 나타난 뒤에는 아무리 부인을 하나 쓸데없는 일이다. 그러매 피고는 형법 제177조와 179조에 의지하여 2년의 징역형을 구한다.

검사가 그에게 대하여 이렇게 논고하였다.

그 뒤에는 소위 ‘관선변호인’이라는 사람이 일어서서 (그를 위하여) 이렇게 변론하여주었다.

―피고의 죄는 한낱 술 때문이고, 그의 평상시의 품행은 극히 좋았으니 특별히 그의 죄를 용서하여 경한 형을 지워주시기를 바란다.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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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신한 감방 안에 사람들 틈에 꼭 끼어 앉아서, 아까 재판소에서 당한 광경을 회상하는 그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허허 하니 웃어버리고 말았다.

자기는 과연 그 현명한 검사와 또는 소위 ‘피해자’라는 사람이 한 말과 같이, 그곳에 그런 (생각만 하여도 몸이 떨리는) 악칙한 짓을 하러 들어갔던가. 들어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는 과연 그런 못된 놈이었던가.

“아니다! 아니다!”

그는 머리를 저었다.

그럼 무얼 하러 들어갔던가?

무얼 하러? 이렇게 물어보고 그는 스스로 놀랐다. 참말 자기는 무얼 하러 그 집에를 들어갔던가. 들어갈 필요 혹은 이유가 있었던가. 아닌 밤중에, 남의 집 귀중한 딸의 방에를 무얼 하러 들어갔던가?

“역시 내가 그런 못된 놈인가”

이때에 그는 40여 일 전에 생긴 그 ‘사건’을 회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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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그가 한주일 동안을 땀을 흘려 번은 돈을 찾은 날이었었다.

그는, 그리 술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었다. 그러나 친척 없는 홀몸인 그는, 돈을 타는 때마다 친구들을 작반하여 내외술집에 술을 먹으러 돌아다니는 일은 흔히 있었다. 그것은 술을 먹고 싶은 것이라는 것보다, 오히려 틈 있고 돈 있을 때마다 친구들과 한 번 즐겁게 놀아보겠다는 것이었었다.

이날도 주머니에 돈냥이나 들은 날이라, 그는 안국동 사는 (껌공장에 다니는) T라도 찾아서 한잔 먹고 싶은 생각이 나서, 전차를 타고 종로로 향하였다. 전차는 탔지만 그의 눈에는 전차 속의 사람들은 들지도 않았다. 시방 파업인가 무엇인가로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T를 찾아가서, 한턱내겠노라고 고함치면 T는 얼마나 기뻐할까. 입을 탁 벌릴 때에 주먹을 그 입 속에 넣어 주리라. 그는 속으로 T의 기뻐할 양을 그려보면서 코로는 주어들은 이팔청춘가를 부르면서 눈을 멀거니 뜨고 앉아있었다.

남대문 곁을 지나갈 때에 전차는 급각도로 돌았다. 그는 몸이 한편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펄떡 눈에 정신을 차리며 아까 정신없이 보고 있던 곳을 보매, 거기는 (언제 탔는지) 열예닐곱에 난 예쁜 여학생이 하나이 책보를 무릎 위에 얌전하게 올려놓고 앉아있었다. 문득 그의 눈은 환하니 밝아졌다.

“저런 계집애를 마누라로 삼아보았으면”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돌이켰다. 그러나, 뜻하지 않고 그의 머리는 다시 그리로 돌고 하였다.

전차는 종로에 이르렀다. 그는 그 계집애 대신으로 이제 만나볼 T를 생각하면서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하여 좀 가다가 어떤 담뱃가게에서 (그에게는 향그럽다 생각되는) 피죤을 한 갑 사서 한 고치 붙여 물고 다시 걸었다.

그러나 두 걸음을 가지 못하여 그는 아까 그 계집애가 자기의 한간 쯤 앞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저런 계집애를 마누라를 삼아 보았으면’

그는 다시 한 번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은 벌써 그것을 잊어버리고 향그러운 피존을 기껏 들이마셨다.

안국동까지 이르러서, 그는 T의 집으로 들어가는 샛길로 들어가려 할 때에 아까 그 계집애가 먼저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는 다른 골로 돌림길을 하여 갈까 하였으나, 어느덧 발은 그 골목에 들어섰다.

T의 집으로 가는 몇 골목을 돌았다. 계집애는 마치 그의 길을 인도하듯 꼭 그의 가려는 골목마다 앞서서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골목을 돌 때마다 해끗 뒤에 오는 그를 돌아보고 하였다. 그는 그때마다,

“이쁜데 마누라로 괜찮아”

하였다. 이리하여 마침내 T의 집까지 이르러서 쑥 들어가려 하면서 문득 앞을 보매 그 계집애는 T의 집에서 한 서너 집 앞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직까지 의심나거니와) 그는 자기가 무엇 하러 그 집으로 달려가서 그 집 대문 안까지 들어섰는지 모를 일이었었다. 그는 그 집까지 걸어간 생각은 나지 않는데, 어느덧 그 집 대문 안에 들어서 있었다.

깨끗하고 맵시 나는 집이었었다. 크지는 않지만 드높은 대청과 정한 건넌방이며 뜰 앞의 조그만 화단, 모두 그의 마음에 맞았다.

‘이런 집에 살아보았으면’

그는 어느덧 계집애의 일은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집을 구경하고 있었다. 만약 그네와 같은 사람에게 가장 큰 야심이 있다하면, 그것은 학교 공부한 마누라와 깨끗한 집밖에는 다시 없을 것이다. 큰 방은 부처에서 살고, 건넌방은 때때로 놀러오는 T와 술이나 먹을 방으로 쓰고, 뜰에는 저 다니는 공장의 공장주의 뜰과 같이 맵시 나게 ‘축지’나 쌓고, 해타라는 담배까지 먹어보고……. 아아, 이것은 얼마나 그리운 살림이랴. 그러나, 나도 언제든 한번 그렇게 살아보고야 말겠다.

이때에 건넌방 문이 덜컥 열리며 아까 그 계집애의 머리가 쑥 나오다가 그를 발견하고 도로 성가신 듯이 문을 탁 닫아버렸다.

그는 펄떡 정신을 차리며, 대문을 뛰쳐 나와 T의 집으로 달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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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시간쯤 뒤에는, 그와 T는 T의 집 근처 어떤 내외술집에, 기껏 취하여 마주 앉아 있었다.

먹어보면 역시 술은 좋은 것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말없고 얌전하던 그도, 말을 들으며 연설까지 하였다. 잘 취한 T와 그의 두 사람은, 연하여 서로 어깨를 흔들면서 맑스를 칭찬하고 또한 일 삯을 잘 내어주는 공장주를 맑스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칭찬하였다. 이리하여 새벽 두시 쯤 정신없이 취한 두 사람은, 서로 하이칼라한 머리를 맞잡고 그 술집을 나와서 작별하였다.

그는 T와 작별을 하고 동대문 밖 자기 집으로, 길 이편 쪽에서 저편 쪽으로 왔다갔다 헤매면서 향하였다. 그러나 이전에는 꽤 먼 줄 알았던 동대문은 축지법을 한 것과 같이 손쉽게 그이 앞에 나타났다. 아직 동대문의 삼분의 일도 못 왔을 텐데 어느덧 커다란 문이 그의 앞에 가로 막혀 섰다. 그는 취한 눈을 이리 찡기고 저리 찡기며 그 문을 쳐다보았다.

“? ?”

남대문이었다.

“어― 취했군.”

그는 돌아섰다.

그러나 길은 어찌 돌았는지, 두 번 세 번 (어떻게 돌아선지) 남대문으로 돌아오고 하였다.

“내가 취했어. ― 여우란 놈이 나를 홀렸나? 어― 고약하군.”

그리하여 길 이리로 빠지고 저리로 빠져서, 그가 자기 집(이라고 믿은 곳)까지 이르렀을 때는, 그는 온 몸이 죽게 피곤하였다. 그러나 거기 또한 뜻밖에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대문 밖 조그만 집의 건넌방을 얻어가지고 있던 그는, 자기 집이 온전히 달라진 것을 발견하였다. 크지는 못하나마 깨끗한 대문짝이며 대문을 열어젖힐 때에 처음에 눈에 뜨인 화단을 무은 뜰들은, 그가 때때로 공상에 그려보던 그 이상적 집에 다름없었다.

그는 스스로 자기의 정신없음을 책하였다. 아무리 술을 많이 먹었기로 이렇듯 중대한 일을 잊었다가 이제야 겨우 생각이 난다는 것은 과연 혀를 채일 만한 성가신 일이었었다. 그는 서슴지 않고 대청에 올라서서 건넌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벗어 던지고 이미 펴둔 자리 위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계집의 날카로운 부르짖음 소리에 펄떡 일어나 앉았다.

이리하여 그는 경찰소로 거쳐서 감옥까지 넘어온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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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일 뒤에 그는 징역 2년의 판결을 받았다.

그는 공소도 안하였다. 하여야 쓸데없음을 그는 이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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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선량하고 얌전하던 그는 지금 강간미수라는 죄명 아래서 서대문 감옥에서 징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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