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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 소설

염 상섭 ・ 그림 김 규택

거리에 맺은 인연

1

처서(處暑)가 지났으니 노염(老炎=늦더위)도 마지막 고비다. 제법 선들한 가을 바람이 가벼이 후루룰 끼치면, 땀에 밴 샤쓰가 등에 척근 하고 붙는 것이 시원은 하나, 폭양 밑에서 일에 삐친 완식(完稙)이는 몸이 하두 고달퍼서, 얼굴에서 부터 전신에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그 찬 기운이 도리어 뼈에 저리게 스미며 싫다. 오수수한 품이 감기나 들리지 않았나? 병이 나려나? 하는 생각을 완식이는 어린 마음에도 혼자 해가며 조약돌을 깨뜨리는 마치질을 쉬지않고 있다. 땟덩이 수건을 쓰고 마주 앉아서 돌을 깨는 어머니도, 아무 소리 없이 장도리를 든 손만 부지런히 놀린다.

햇발은 까맣게 쳐다보이는 산기슭에 이울어가고, 선들바람도 나기는 하였지마는, 학교 운동장보다도 더 넓은 이 채석장 안은, 한나절, 불볕에 아직도 이글이글 끓는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이 벌판에서, 간신히 대패밥 모자 하나로 얼굴을 가리우고, 종일을 앉았는 완식이의 등은, 여전히 따갑고 머릿속은 띵하니 닳았다.

쨍그렁 땅- 하고 큰 돌을 쪼개는 모진 금속성(金屬性)의 큰 망치 소리, 여기 저기에 널려 앉아서 또드락 또드락 하고 돌다듬는 소리가 하얗게 깎아질린 화강암(花崗巖)의 절벽 밑에서, 이 넓은 마당으로 퍼져 흘러 나오는 사이로 어느덧 한가롭게도 뽈 지르는 소리가 뻥뻥 나기 시작하였다. 똑같이 깨끗한 운동복에, 검정 목다리 구두를 신은 어린아이 둘은 절벽을 등지고 섰고, 바깥쪽에 서서 이리로 공을 질러 넣는 좀 큰 아이는, 소년 축구단의 선수인지, 본격적으로 스탁킹에 축구화를 신었다. 어린아이의 발길이건마는 공은 제법 팽 팽 날은다. 단조로운 일에 찜증이 난 완식이는, 처음에는 호기심과 부러운 생각에, 손을 쉬고도 바라보고 마치 든 손을 놀리면서도 가끔가끔 고개를 들어 보았으나, 인제는 그것도 심상하여졌다.

커다란 공이 뒤로 띡디굴 띡디굴 굴러간다. 완식이는 무심코 돌려다 보며 벌떡 일어나서 한번 질러보았으면 시원할 것 같았으나 참아버렸다. 생전에 저런 공은 발길에 대어본 일이 없다. 전쟁통에는 풑뽈커녕 고무공도 없던 시절이라 국민학교에서 돌맹이를 굴리며 고무신짝의 앞뿌리를 금시로 꿰뜨려서 어머니한테 야단도 조이 맞았던 것이다.

완식이는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하며 마치 든 손을 여전히 놀리고 앉았자니, 별안간 윙 소리가 나며 무엇인지 관잣노리를 내 받는 바람에, 어찔하고 귓속이 잉하며, 그만 장도리를 손에 든채 쓰러졌다. 채 눈을 뜰새도 없었으나, 뺨을 껄끔하고 스친 것이 뻣뻣한 가죽인 모양이니, 공인가 보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요, 그 다음 일은 까맣다. ……

정신이 들며 눈을 먼히 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