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도강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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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있는 물건은 모두 내지에서 온 상품들이다. 변문은 벽지이자 오지인데도 귀감이 될 만한 것이 있다 하겠다. 또 다른 집에 들어가 보니 꾸밈은 강영태의 집보다 화려한데 구조와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집과 방의 지어진 모습이 수백 걸음 안의 땅에 길이와 넓이를 적절히 맞추어 평탄하고 반듯하게 깍아 다듬었는데 분명 나침반을 이용하여 터를 정하고 축대를 쌓아 올렸다. 축대는 돌을 기반으로 하였고 어떤 것은 1급 또 어떤 것은 2급이나 3급의 벽돌로 쌓은 뒤 갈아낸 돌로 마감을 하여 담장을 쌓았다. 축대 위로 집을 지었는데 모두 일(一) 자 모양으로 따로 덧이어 붙인 부속 건물은 없었다. (제일 안쪽부터) 첫 번째 집은 안채가 되고 두 번째는 중당, 세 번째는 전당, 네 번째는 바깥채이다. 바깥채가 큰 길과 닿아 점방도 차리고 가게도 차린다. 각각의 집 좌우에 곁방이 있어 (부속 건물인) 낭무나 행랑채를 대신한다. 한 집의 길이는 대략 6 영, 8 영, 10 영 또는 12 영인데 두 기둥 사이의 길이인 영은 제법 넓어 우리나라 보통 집의 2 간 정도 되었다. 제목이 길거나 짧다고 임의로 넓거나 좁게 집을 짓지 않고 반드시 정해진 길이에 맞추어 들보를 올렸다. 집의 들보는 다섯 아니면 일곱인데 땅에서 지붕의 수평마루까지 높이를 재서 그 가운데에 처마가 있기 때문에 기와 고랑이 가파르다. 집의 좌우와 뒷면에는 처마가 없고 서까래가 곧장 벽돌담에 묻힌다. 집 동서의 벽이 꼭대기까지 올라가며 둥글게 만든 창문이 남쪽 면에 나있다. 집의 한 가운데 드나드는 문이 있는데 모두 앞뒤가 곧장 마주하고 있어 집이 (겹겹이 담장을 둘러) 세 겹 네 겹이거나 문이 여섯 겹, 여덟 겹이어도 문을 모두 활짝 열어 재치면 안채에서 바깥채까지 한 번에 보일 정도로 곧다. 이른바 "겹겹이 두른 문을 활짝 열어 재치니 내 마음이 이와 같도다"라는 말은 이와 같은 정직함을 비유한 것이다.
 
길에서 (중추부의) 동지인 이혜적을 만났다. 통역관인데 3품 당상관이다. 이군이 웃으며 "궁벽한 시골에서 볼 만한 것이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나는 "황성에 가더라도 이 보다 못할 것 같소."하고 대답하였다. 이군은 "하기사 크고 작고나 사치스럽고 검소하고의 차이는 있지만 모습은 여기나 거기나 거진 같습니다."한다. 집을 모두 벽돌로 짓는데 벽돌은 길이 1 자, 넓이 5 치로 둘을 합치며 정사각형이 되며 두께는 2 치이다. 하나 하나가 모두 같은 모습이기 때문에 각도가 틀어지거나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거나 몸이 뒤틀린 것은 한 장이라도 쓰지 않아야 집 전체를 정교하게 지을 수 있다. 따라서 한 장 마다 치수가 어긋나 들쭉날쭉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직각자를 써서 검사한 뒤 도장을 찍기 때문에 (규격을 맞추기 위해) 갈고 닦고 하여 가지런히 하기 위해 애써서 벽돌 만 장이 모두 똑같다. 쌓는 법은 하나를 세로로 놓으면 다른 하나는 가로로 놓아 저절로 감괘(☵)와 이괘(☲)의 모양을 이루게 하여 그 사이를 석회로 발라 붙인다. 석회는 종잇장처럼 얇게 겨우 붙을 정도만 바르는데 쌓고 나면 마치 실처럼 보인다. 회를 개는 방법은 거친 모래가 섞이지 않도록 하고 점토도 피하는데 모레가모래가 많으면 접착력이 떨어지고 점토가 지나치면 쉽게 갈라진다. 그래서 꼭 검은 흙에서 가늘고 찰진 것을 골라 석회와 진흙이 반반이 되도록 개서 그 색깔이 마치 눈썹 그리는 먹이나 새로 갖 구워낸 기와 같다. 개어낸 회는 그 성질이 점토도 아니고 모레도모래도 아니며 색상 또한 이와 같아야 한다. 또 어저귀를 털처럼 잘게 잘라 섞는데 우리나라에서 (집 벽에) 흙을 바를 때 말똥을 진흙에 섞어 넣어 질기고 갈라짐이갈라지지 없게않게 하려는 것과 같다. 또 유동나무 기름을 마치 젖처럼 짙게 발라 틈이 없게 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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