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제10장
실제록(失題錄)
편집대복이가 윤직원 영감의 머리맡 연상(硯床)에 놓인 세트의 스위치를 누르는 대로 JODK의 풍류(風流)가 마침 기다렸던 듯 좌악 흘러져 나옵니다.
"따앙 찌―찌― 즈응 증지 따앙 증응 다앙……."
잔영산입니다.
청승스런 단소의 동근 청과, 의뭉한 거문고의 콧소리가 서로 얽혔다 풀렸다 하는 사이를, 가냘퍼도 양금이 야물치게 메기고 나갑니다.
"다앙 당 동, 다앙 동 다앙당, 증찌, 다앙 당동당, 다앙 따앙."
이윽고 초장이, 끝을 흥있이 몰아치는 바람에 담뱃대를 물고 모로 따악 드러누워 듣고 있던 윤직원 영감은,
"좋다아!"
하면서 큼직한 엉덩판을 한 번 칩니다.
무릇 풍류란 건 점잖대서, 잡가나 그런 것과 달라, 그 좋다!를 않는 법이랍니다. 그러나 그까짓 법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윤직원 영감은 좋으니까 좋다고 하면 그만이지요.
이렇게 무식은 해도, 그거나마 음악적 취미의 교양이 윤직원 영감한테 지녀져 있다는 것이 일변 거짓말 같기는 하지만, 돌이켜 직원 구실을 지낼 무렵에 선비들과 주축한 그 덕이라 하면 그리 이상튼 않겠습니다.
라디오를 만져 놓고 마악 제 방으로 물러가는 대복이와 엇갈려, 춘심이년이 배시시 웃으면서 들어섭니다.
"어서 오니라. 이년, 왜 이렇게 늦게 오냐?"
윤직원 영감은 반가워하면서 욕을 하고, 춘심이는 욕을 먹어도 타지는 않습니다.
"일찍 올 일은 또 무엇 있나요? 오구 싶으믄 오구, 말구 싶으믄 말구 하지요. 시방 세상은 자유세상인데!"
춘심이가 단숨에 이렇게 씨월거리면서 얼굴 앞에 바투 주저앉는 것을, 윤직원 영감은 멀거니 웃고 바라다봅니다.
"대체, 네년 주둥아리다가넌 도롱태를 달었넝개비다? 어찌 그리 말허넌 주둥이가 때르르허니 방정맞냐?"
"도롱태가 무어예요?"
"떠들지 말구, 이년아…… 나 풍류 소리 들을라닝게 발치루 가서 다리나 좀 쳐라, 응?"
"싫여요! 밤낮 다리만 치라구 허구……."
불평을 댈 만도 하지요. 비록 반푤 값에 영업장을 가졌고, 세납을 물고 하는 기생더러 육장 다리를 치라니요.
춘심이는 금년 봄부터 시작하여 윤직원 영감의 다섯 번이나 내리 실연을 한 여섯 번째의 애인입니다.
작년 가을, 그 살뜰한 첩이 도망을 간 뒤로 윤직원 영감은 객회(?)가 대단히 심했고, 그뿐 아니라 밤저녁으로 말동무가 없게 되어 여간만 심심치가 않았습니다.
사랑은 쓰고 있으되, 놀러 올 영감 친구 하나 없습니다. 정 무엇하면 객초(客草) 몇 대씩 허실하면서라도 바둑 친구나 청해 오겠지만, 윤직원 영감은 바둑이니 장기니 그런 것은 자고 이후로 통히 손을 대본 적이 없습니다. 웬만한 노인들은 대개 만질 줄은 아는 골패도 모르고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런 기국이나 잡기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은, 소싯적에 남들이 노름꾼 말대가리 자식놈이라고 뒷손가락질과 귀먹은 욕을 하는 데 절치부심을 한 소치라고 합니다.
말동무 하나 없이 밤이나 낮이나 텅 빈 삼 칸 장방에 담뱃대를 물고 혼자 달랑 누웠다 앉았다 하자니, 어떤 때에는 마구 다리가 비비 꼬이게시리 심심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마침 올 삼월인데, 윤직원 영감이 작년 추석에 성묘 겸 고향을 내려갔을 제 술자리에서 수삼 차 불러 논 기생 하나가 그 뒤 서울로 올라왔다고, 그래 고향 어른을 뵈러 온다고 우정 이 계동 구석까지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그 기생이 제 동생이라고, 머리 딴 동기아이 하나를 데리고 와서 같이 인사를 드렸고, 윤직원 영감은 그놈 동기아이가 매우 귀여웠습니다.
"너, 가끔 놀러 오니라. 와서 날 이얘기책두 읽어 주구, 더러 다리두 쳐주구 허머넌, 내 군밤 사먹으라구 돈 주지……."
덜머리진 총각녀석이 꼬마둥이더러, 엿 사주께시니……달라는 법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행티겠지요. 깊이 캐고 보면 말입니다.
설마 그런 눈치야 몰랐겠지만, 동기아이는 웃기만 하지 대답을 않는 것을 형 되는 큰기생이 제 동생더러 그래라 올라와서 모시고 놀아 드려라. 노인은 애들이 동무란다고 타이르던 것입니다. 역시 무슨 딴 의사가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고, 다만 제 생색을 내어 놀음발이라도 틀까 하는 요량이던 게지요.
윤직원 영감은 하기야 큰기생이 종종 와주었으면 해롭진 않을 판입니다. 더러 와서는 조용히 시조장이나 부르고, 콧노래 섞어 잡가 토막도 부르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이야기나 하고…….
물론 그것뿐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큰기생 그한테 뜻이 있을 필요는 전연 없습니다. 털어놓고 오입을 한다든지 하자면야 서울 장안의 기생만 하더라도 얼굴이 천하일색이 수두룩하고, 또 가령 얼굴은 안 본다 칠 값에 노래가 명창으로 멋이 쿡 든 기생이 또한 하고많은데, 그런 놈 죄다 젖혀 놓고 하필 인물도 노래도 다 시원찮은 이 기생을, 같은 돈 들여 가면서 그러잘 며리가 없는 게니까요.
그러나 일변, 기생으로 보면 새파란 젊은 년이 무슨 그리 살뜰한 정분이며 알뜰한 정성이 있다고 제 벌이 제 볼일 젖혀 놓고서, 육장 이 구석을 찾아와서는 놀음채 못 받는 개평 놀음을 논다, 아무 멋대가리도 없는 늙은이 시중을 든다 하고 싶을 이치가 없을 게 아니겠습니까.
경위가 이러하고 본즉 윤직원 영감은 단지 눈앞의 화초로만 데리고 놀재도 이편에서 오라고 일러야 할 것이요, 오라고 해서 오고 보면 그게 한두 번일세 말이지, 세 번에 한 번쯤은 소불하 십 원 한 장은 집어주어야 인사가 아니겠다구요.
그러나 돈이 십 원, 파랑딱지 한 장이면 일 원짜리로 열 장이요, 십 전짜리로 일백 닢이요, 일 전짜리로 일천 닢이요, 옛날 세상이라면 엽전으로는 오천 닢이요, 오천 닢이면 만석꾼이 부자라도 무려 일천 칠백 번이나 저승을 갈 수 있는 노수요, 한 걸 생판 어디라고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함부로 쓸 법은 없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옹근 기생이 아니요 동기고 볼 양이면, 이런 체면 저런 대접 여부 없이 가끔가다가 돈 장이나 집어주곤 하면 제야 군밤을 사먹거나 봉지쌀을 사들고 가거나 이편의 아랑곳이 아니요, 내가 할 도리는 넉넉 차리게 될 테니까 두루 좋습니다.
그런 고로 해서, 동기를 데리고 노는 것이 돈 덜 드는 규모 있는 소일일 뿐만 아니라, 또 윤직원 영감은 기왕 소일거리로 데리고 놀 바에야 기집애가 더 귀엽고 재미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 소일거리 이상의 경우를 고려해서, 역시 돈은 적게 들고 비공식이요 그러고도 취미는 더 있을 게 기집애입니다.
사람이 나이 늙으면 늙을수록 어린 계집애가 귀여운 법이라구요. 그거야 귀여워하는 법식 나름이겠지만, 윤직원 영감의 방법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리하여, 계제가 마침 좋은지라 윤직원 영감은 기생 형제가 하직 인사를 하고 일어설 때에 큰기생더러,
"그럼 자네가 더러 좀 올려보내소. 내가 거 원, 이렇게 혼자 있으닝개 제일 말동무가 읎어서 심심히여 못 허겄네…… 그러니 부디 가끔가끔……."
하고 근천스런 부탁을 했습니다.
큰기생은 종시 선선히 응답을 하고 돌아갔고, 그런 지 사흘 만인가 윤직원 영감이 혼자 누워서 심심하다 못해, 그년이 어쩌면 올 성도 부른데 이런 때 좀 왔으면 작히나 좋아! 몰라 또, 말은 그렇게 흔연히 하고 갔어도 보내기는 웬걸 보낼라구? 아―니 그래도 혹시 어쩌면…… 이리 궁금해하면서 기다리노라니까, 아닌게아니라, 훨씬 낮이 겨운 뒤에 그 애 동기아이가 찰래찰래 오지를 않겠습니까.
젊은것들끼리 제 애인을 고대고대하다가 겨우 와주어서 만날 때도 아마 그렇게 반갑겠지요. 윤직원 영감도 대단 반갑고 일변 신통스럽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 살뜰한 아기 손님을 옆에 중소히 앉히고는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입도 들여다보고, 꼬챙이로 찌르듯 빼악빽하는 노래도 시켜 보고, 하면서 끔찍한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럭저럭 날이 저무니까 간다고 일어서는 것을 달래서, 전에 없이 맞상을 내다가 같이 저녁을 먹었고, 저녁을 마친 뒤에는 시급히 춘향전을 사들여 그 애더러 읽으라고 하고는 자기는 버얼떡 드러누워서 이야기책 읽는 입을 바라다보고, 하느라고 그야말로 천금 같은 봄밤의 한 식경을 또한 즐겁게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초저녁부터 몇 번 붙잡아 앉힌 것은 물론이고, 마침내 열시가 되자 할 수 없이 놓아 보내는데, 윤직원 영감은 크게 생색을 내어 인력거를 불러다가 선금을 주어서 태워 보내는 외에, 일 원 한 장을 따로 손에 쥐어 주기까지 했습니다. 대단한 적공이지요.
보내면서, 내일도 오너라 했더니 과연 이튿날 저녁에, 저녁을 일찌감치 먹곤 올라왔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어제 저녁처럼 옆에다가 앉혀 놓고는, 이야기도 시키고 이야책도 읽히고, 내시가 이 앓는 소리 같은 노래도 듣고, 오늘 저녁 개시로 다리도 치라 하고, 그러면서 삼남이를 시켜 말눈깔사탕 십 전 어치도 사다가 먹이고, 머리는 물론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고, 그러구러 밤이 이슥한 뒤에 돌려보냈습니다.
대접상으로는 역시 인력거를 태워 주었어야 할 것이지만, 인제 앞으로 자주 다닐 텐데 그렇게 번번이 탈 수야 있느냐고, 그러니 오늘 저녁부터는 이 애더러 바래다 달래라고, 그 알뜰한 삼남이를 안동해 보냈습니다.
인력거를 안 태웠으니 돈이라도 일 원을 다 주기가 아깝거든 오십 전이나마 주었어야 할 것이지마는 그것 역시 자꾸만 그래쌓다가는 아주 버릇이 되어서, 오기만 오면 으레 돈을 탈 것으로 알게시리 길을 들여서는 안 되겠다 하여, 짐짓 입을 씻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고서 그저 세 번이나 네 번에 한 번씩 일 원 한 장이고 쥐어 줄 요량을 했습니다.
그 뒤로부터 그 애는 윤직원 영감의 뜻을 곧잘 받아, 이틀에 한 번, 또 어느 때는 매일같이 올라와선 놀곤 했고, 그렇게 하기를 한 이십여 일 해오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밤은 아직 초저녁이었고, 그들먹하게 뻗고 누웠는 다리를 조막만한 계집애가 밤만한 주먹으로 토닥토닥 무심히 치고 있는데, 문득 윤직원 영감이,
"너 멫 살 먹었지?"
하고 새삼스럽게 나이를 묻던 것입니다.
"열늬 살이라우."
동기아이는 아직도 고향 사투리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윤직원 영감 같은 사람은 십 년이 되었어도 종시 '그러닝개루'를 못 놓지만요.
"으응! 열늬 살이여!"
윤직원 영감은 또 한참 있다가,
"다리 구만 치구, 이리 온?"
하면서 턱을 까붑니다.
아이는 발딱 일어서더니 발치께로 돌아 윤직원 영감의 가슴 앞에 바투 앉고, 윤직원 영감은 물었던 담뱃대를 비껴 놓고는 아이의 머리를 싸악싹 쓸어 줍니다.
"응…… 열늬 살이먼 퍽 숙성히여!"
"……"
"야?"
"얘?"
"으음…… 저어 거기서, 저어……."
"……"
"야?"
"얘?"
"저어, 너……."
"얘애."
"너 내 말 들을래?"
"얘?"
아이는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고는 눈을 깜작깜작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히죽 웃으면서 머리 쓸던 팔로 슬며시 아이의 목을 끌어안습니다.
"내 말 들어라, 응?"
"아이구머니!"
아이는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화닥닥 놀라면서 뛰쳐 일어나더니, 그냥 문을 박차고 그냥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나 버립니다.
가뜩이나 덩지 큰 영감이 좀 모양 창피했지요. 그러나 뭘,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고, 또 보았기로서니 게, 양반이 파립(破笠) 쓰고 한번 대변 보기가 예사지 그걸 그다지 문벌 깎일 망신으로 칠 것은 없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에― 거 애여 어린 계집애년들 이뻐하고 데리고 놀고 할 게 아니라고, 얼마 동안을 다시 전대로 소일거리 없이 심심한 밤과 낮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한번 걸음을 내친 게 불찰이지, 일 당하던 당장에 창피하던 기억은 차차로 잊혀지고, 일변 심심찮이 놀던 일만 아쉬워집니다. 뿐 아니라, 맛을 보려다가 회만 동해 논, 그놈 식욕이 아예 가시지를 않습니다.
윤직원 영감의 이 계집애에 대한 흥미는 일찍이 고향에 있을 때부터 촌 계집애들을 주무른 솜씨라 오늘날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아니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계집애들은 열칠팔 세가 아니면 기껏 어려야 열육칠 세이었었지, 열네 살배기의 정말 젖비린내 나는 계집애에까지는 이르질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그 식욕을 엄밀히 구별한다면 시골 있을 무렵에 기집애(어리기는 해도 기집으로서의 기능을 갖춘) 그놈을 잡아먹던 식성(食性)과 시방 열네 살 그 또래의 기집 이전인 계집애에게 대해서 우러나는 구미(口味)와는 계통이 다르다 할 것입니다. 더욱이 방물장수아씨더러, 첩 더디 얻어 들인다고 성화를 대는 그런 순수한 생리와도 파계가 다릅니다.
윤직원 영감의 이 새로운 식욕은 그런데 매우 강렬하기까지 해서 도저히 그대로 참지를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드디어 대복이가 나섰습니다.
경지영지하시니 불일성지라더니, 뉘 일일새 범연했겠습니까. 대복이는 골목 밖 이발소의 긴상한테 청을 지르고, 긴상은 계제 좋게 안국동 저의 이웃에 사는 동기아이 하나가 있어, 쉽사리 지수를 했습니다. 사실 별반 힘들 게 없는 것이, 그런 조무래기야 장안에 푹 쌨고, 그런데 이편으로 말하면 이러저러한 곳에 사는 재산 있고 칠십 먹은 점잖은 아무 댁 영감님인바, 노인이 심심소일삼아 옆에 앉혀 놓고서 말동무도 하고 이야기책도 읽히고 노래도 시키고 다리도 치이고, 이렇게 데리고 논다는 조건이고 본즉, 만약에 춘향이가 인도환생을 한 에미애비라 하더라도 감히 거기에 어떠한 위험을 느끼진 안 할 게니까요.
하물며 계집애 자식을 논다니판에다 내놓아 목구멍을 도모하자는 에미애비들이거든 딱히 그 흉헌 속내를 알았기로서니, 오히려 반가워할 것이지 조금치나 저어를 할 며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발소 긴상의 서두리로, 사흘 만에 한 놈이 대비가 되었는데, 나이는 이편에서 십오 세 이내로 절대 지정한 소치도 있겠지만 마침 열네 살이요, 생긴 거란 역시 별수없고 까칠한 게 갓 나논 고양이새끼 여대치게 어설펐습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은 계집애면 만족이니까 별 여부 없었고, 흔연히 맞아들여 노래도 우선 시켜 보고, 머리도 쓸어 주고, 이야기책도 읽히고, 다리도 치게 하고, 눈깔사탕도 사먹이고, 이렇게 며칠 두고서 적공을 들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낯을 안 가릴 만하니까 비로소, 너 몇 살이냐……? 응, 숙성하구나! 너 내 말 들을늬? 하면서 머리 쓸던 팔로 허리를 그러안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 아이는 서울 태생이라 그런지 좀더 영악스럽게,
"이 영감이 왜 이 모양야? 미쳤나!"
하면서 욕을 냅다 갈기고 통통 나가 버렸습니다.
이래서 두 번째의 무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암만 무렴은 보았어도 윤직원 영감은 본시 얼굴이 붉으니까 새 채비로 홍안은 당하지 않았지만,
"헤에! 그거 참!"
하면서 헤벌씸 웃지 않진 못했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 뒤로도 처음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렇게 대거리를 구해 들였고, 그러나 그러는 족족 실연의 쓴 술잔이 아니라 핀잔을 거듭거듭 마셔 왔습니다.
대단히 비참한 노릇입니다. 그, 아무렇게나 생긴 동기 계집애년 하나를 뜻대로 다루지 못하고서,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 무려 다섯 차례나 낭패를 보다니, 윤직원 영감으로는 일대의 치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사실이지, 백만의 거부를 누리는 데도 그대도록 힘이 들지는 않았고, 평생을 돌아보아야 한 개의 목적을 놓고 앉아, 내내 다섯 번씩 실패를 해본 적이라고는 찾고 싶어도 일찍이 없었습니다.
하기야 전연 딴 방도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시골 있는 사음한테로 기별만 할 양이면, 더는 몰라도 조그마한 소녀 유치원 하나는 꾸밈직하게 열서너 살짜리 계집애를 한 떼 쓸어 올 수가 있으니까요.
작인들이야 저네가 싫고 싫지 않고는 문제가 아니요, 어린 딸은 말고서 아니할말로 늙어 쪼그라진 어미라도 가져다가 바치라는 영이고 보면, 여일히 거행하기는 해야 하게끔 다 되질 않았습니까.
진실로 그네는 큰 기쁨으로든지, 혹은 그 반대로 땅이 꺼지는 한숨을 쉬면서든지 어느 편이 되었든지 간에, 표면은 씨암탉 한 마리쯤 설이나 추석에 선사삼아 안고 오는 것과 진배없이 간단하게, 그네의 어린 딸 혹은 누이를 산〔生〕제수로 바치지 않질 못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러므로, 가령 세 번째의 허탕을 치고 나서부터는 시골 계집애를 잡아 올까 하는 궁리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과연, 당장 편지를 해서 그 머리 검은 병아리를 구해 보내라고 할 생각을 몇 번이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그렇게 하기는 했어도, 한편으로는 보는 데가 없지 않아 아직 주저를 했던 것입니다.
만약 시골서 계집애를 데려오고 보면, 그때는 동기를 불러다가 말동무를 삼는다는 형식이 아니요, 단박 첩을 얻어 들인 게 되겠으니, 원 아무리 뭣한들 칠십 먹은 늙은이가 열세 살이나 열네 살배기 첩을 얻다니, 체면도 아닐 뿐 아니라, 또 체면 문제보다는 시골 계집애는 노래를 못 하니까 서울 동기보다 쓸모는 적으면서, 오며가며 찻삯이야 몸수발이야 뒷갈무리야 해서 돈은 훨씬 더 듭니다.
이러한 불편이 있는 고로 해서, 그래 시골 계집애를 섬뻑 데려오지 못하던 것인데, 그러나 이번 춘심이한테까지 낭패를 보고서도 종시 그런 주저를 하겠느냐 하면, 그건 도저히 보장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일변 생각하면 춘심이의 소임이 매우 중대하고도 미묘한 의의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조건이 붙었다면 붙었달 수 있는 춘심이요, 한데 다니기 시작한 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습니다.
이제는 그만하면 낯가림은 안 할 만큼 되었고, 또 공력도 그새 다른 아이들한테보다는 특별히 더 들이느라고 들였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시방, 그런 것 저런 것 속으로 가늠을 해보면서, 손치에 퍼근히 주저앉아 다리를 안 치겠다고 대가리를 쌀쌀 흔들며 암상떨이를 하는 춘심이를 히죽히죽 올려다보고 누웠습니다.
옆으로 앉아서 고개를 내두르는 대로, 뒤통수의 몽창한 단발이 까불까불합니다. 치렁치렁하던 머리채가 다래를 뽑아 버리면 이렇게 여학생이 됩니다. 흰 저고리 통치마에 양말이 모두 여학생 차림입니다. 춘심이는 이런 여학생 차림새를 좋아해서, 권번에 갈 제와 또 권번 사람의 눈에 뜨일 자리말고는, 대개 긴치마에 긴머리를 늘이고 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윤직원 영감한테 오는 때도 권번에서 바로 가는 길이 아니면 언제고 여학생 차림입니다.
그 주제를 하고 앉아서,
"사안이이로구나―아 헤."
하는 꼴이, 대체 무어라고 빗댔으면 좋을지 모르겠어도, 저는 이상이요, 간혹 윤직원 영감이, 야 이년아! 여학생이 잡가도 한다더냐고 더러 조롱을 하지만, 역시 그만한 입살은 탈 아이가 아닙니다.
마침 라디오는 풍류가 끝나고, 조금 있더니 지랄 같은 깡깽이 소리(洋樂)가 들려 나옵니다. 윤직원 영감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스위치를 제쳐 버립니다.
"너 이년, 다리넌 안 치기루 힜냐?"
"싫여요! 누가 암마야상인가, 머!"
"허! 그년 참……! 그럼 다리 안 치넌 대신, 노래나 한마디 불러라!"
"노랜 하죠! 풍류 끝엔 텁텁한 걸루다 잡가를 들어야 하신다죠?"
"그런 걸 다아 알구, 제법이다!"
"어이구, 참! 나구는 샌님만 업신여긴다구……! 자아, 노래하께 영감님 장단치시오?"
"장단은 이년아, 장구가 있어야 치지?"
"애개개! 장구가 있으믄 영감님이 장단을 칠 줄은 아시구요?"
"헤헤, 그년이. 이년아 늬가 꼭 여수 같다!"
"내애. 난 여우 같구요, 영감님은 하마 같구요? 해해해!"
"네라끼년! 허허허허…… 그년이 꼭 어디서 초라니같이 까분당개루?"
"초라니? 초라니가 무어예요?"
"초라니패라구 있더니라. 홍동지 박첨지가 탈바가지 쓴 대가리를 내놓구서, 서루 찧구 까불구, 꼭 너치름 방정맞게 촐랑거리구, 지랄을 허구 그러더니라…… 떼―루 떼―루 박첨지야― 이런 노래를 불러 가먼서……."
"해해해해, 어디 그 소리 또 한번 해보세요? 아이 참, 혼자 보기 아깝네! 해해해……."
"허! 그년이!"
이렇게, 그야말로 찧고 까불고 하는 소리를, 누가 속은 모르고 밖에서 듣기만 한다면 꼭 손맞은 애들이 지껄이고 노는 줄 알 겝니다.
방 안을 들여다보면……? 그런다면 저네들 말마따나, 동물원의 하마와 여우가 한 울안에서 재미있게 노는 양으로 보이겠지요.
"춘심아?"
"내애?"
"너어……."
"내애!"
"저어, 무어냐……."
윤직원 영감은 다리를 비비 꼬면서 말끝을 어름어름합니다.
못 견디겠어서 인제 웬만큼, 너 몇 살이지? 응, 숙성하다. 너 내 말 들을늬…… 이, 이를테면 사랑의 고백을 해야만 하겠는데, 그놈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는 도로 넘어가곤 하던 것입니다. 역시 다섯 번이나 창피를 본 나머지라, 어쩔까 싶어 뒤를 내는 것도 그럴듯한 근경입니다.
그게 젊은것들 사이라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소릴 텐데, 그 소리 한마디 나오기가 어렵기란, 아마도 만고를 두고 노소 없이, 또 사정과 예외를 통틀어 넣고 일반인가 봅니다.
"인제 구만 까불구, 어서 노래나 시작히여라."
윤직원 영감은 드디어 망설이다 못해 기회를 뒤로 미뤘습니다.
"내―내, 무얼 하까요? 아까 낮에 명창대회서 영감님이 연신 조오타! 조오타! 하시던 적벽가 새타령 하까요?"
"하아따! 고년이 섯바닥은 짤뤄두 침은 멀리 비얕넌다더니, 이년아, 늬가 적벽가 새타령을 허머넌 나는 하눌서 빌을 따오겄다!"
"애개개! 아―니 내 그럼 내일이라두 권번에 가서 그거 한마디만 배워 가지구 영감님 듣는 데 할 테니깐 정말 하눌 가서 별 따오실 테야요?"
"누가 인자사 배각구 말이냐? 시방 이 당장으서 말이지……."
"피― 아무렇게 해두 하기만 하면 고만이지, 머……."
"그년이 노래허라닝개루 또 잔사살을 내놓너만!"
"내―내햄…… 자아 합니다. 햄…… 망구강사안 유람헐 제……."
단가로는 맹자 견 양혜왕짜리요, 한데 망구강산의 망구는 오식(誤植)이 아닙니다.
고저가 옳게 맞을 리도 없고, 장단이 제대로 갈 리도 없는데다가, 소리 선생 앞에서 배울 때에 쓰던 그 목을 그대로, 고래―고래 내시처럼 되게 지르고 앉았으니, 윤직원 영감의 취미 아니고는 듣기에 장히 고생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음악입니다. 게다가 윤직원 영감의, 역시 장단을 유린하는, 좋다! 소리가 오히려 제격이요, 겨우 노래가 끝나니까는, 에 수고했네! 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근천의 절창이라 하겠습니다.
"너, 배 안 고푸냐?"
윤직원 영감은 쿨럭 갈앉은 큰 배를 슬슬 만집니다. 춘심이는 그 속을 모르니까 뚜렛뚜렛합니다.
"아뇨, 왜요?"
"배고푸다머넌 우동 한 그릇 사줄라구 그런다."
"아이구머니! 영감 죽구서 무엇 맛보기 첨이라더니!"
"저런년 주둥아리 좀 부아!"
"아니, 이를테믄 말이에요……! 사주신다믄야 밴 불러두 달게 먹죠!"
"그래라. 두 그릇만 시키다가 너허구 한 그릇씩 먹자!"
"우동만, 요?"
"그러먼?"
"나, 탕수육 하나만……."
"저 배때기루 우동 한 그릇허구, 또 무엇이 더 들어가?"
"들어가구말구요! 없어 못 먹는답니다!"
"허! 그년이 생부랑당이네! 탕수육인지 그건 한 그릇에 을매씩 허냐?"
"아마 이십오 전인가, 그렇죠?"
윤직원 영감의 말이 아니라도 계집애가 여우가 다 되어서, 탕수육 한 접시에 사십 전인 줄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삼남이는 이 소리를 마치 중이 염불하듯 외우면서 나갑니다. 사실 삼남이한테는 그걸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루 세 끼 중에 한 끼를 잊어버리지 않음과 일반으로 중요한 일이어서, 그만큼 긴장과 노력이 필요하던 것입니다.
무슨 그림자가 지나간 것처럼 방 안이 잠깐 교교했습니다. 이 침정의 순간이 윤직원 영감에게 선뜻 좋은 의사를 한 가지 얻어 내게 했습니다.
전에 아이들한테 하듯, 단박에 왁진왁진 그러지를 말고서, 가만가만 제 눈치를 먼저 떠보아 보는 것이 수다…… 이런 말하자면 점진안(漸進案)입니다.
동티가 나지 않게, 또 창피를 안 당하게 가만히 슬쩍 제 속을 뽑아 보고, 그래 보아서 싹수가 있는 성부르면 그 담에는 바싹 다그쳐 보고…… 미상불 그럴 법하거니 싶어 우선 혼자 만족을 해 싱그레니 웃습니다.
"춘심아?"
머리를 싸악싹 쓸어 주면서 부르는 음성도 은근합니다.
"내애?"
"너, 멫 살이지?"
"그건 새삼스럽게 왜 물으세요?"
"아―니, 그저 말이다!"
"열다섯 살이지 머, 그새 먹어서 없어졌을라구요?"
"응 참, 그렇지…… 퍽 숙성히여, 우리 춘심이가……."
"키는 커두 몸은 이렇게 가늘어요! 아이 참, 영감님은 몇 살이세요?"
"나……? 글씨 원, 하두 많이 먹어서 인재넌 나이 먹은 것두 다아 잊어뻬맀넝가 부다!"
"애개개, 암만 나일 많이 잡수셨다구, 잊어버리는 사람이 어디가 있어요……? 이렇게 머리랑 수염이랑 시었으니깐 나이두 퍽 많으실 거야!"
춘심이는 백마꼬리같이 탐스런 수염을 쓰다듬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다른 한 손으로 춘심이의 나머지 한 손을 조물조물 주무릅니다.
"춘심아!"
"내애?"
"너, 내가 나이 많언 게 싫으냐?"
"싫은 건 무엇 있나요……? 몇 살이세요? 정말……."
"그렇게 알구 싶으냐?"
"몸 달을 건 없지만……."
"일러 주래?"
"내애."
"예순…… 으응…… 다섯 살이다!"
"아이구머니!"
춘심이는 입이 떡 벌어지고, 윤직원 영감은 윤직원 영감대로 또 속이 있어서, 입이 벌씸 벌어집니다.
윤직원 영감의 나이 꼬박 일흔둘인 줄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 것을, 글쎄 애인한테라서 그 중 일곱 살만 줄이어 예순다섯으로 대다니, 그것을 단작스럽다고 웃어버리기보다 오히려 옷깃을 바로잡고 엄숙히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흔두 살 먹은 영감이 열다섯 살 먹은 애인 앞에서 나이를 일곱 살을 줄여 예순다섯 살로 대던 것입니다.
기생들이 손님에게다가 나이를 속이는 것은 예삽니다. 또 젊은 기집애들이 제 나이를 리베씨한테다가 줄여서 대답하는 수도 더러 있습니다. 속을 알고 보면 그야 근경이 그럴듯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여기, 일흔두 살 먹은 허―연 영감태기가, 열다섯 살배기 동기 계집애를 아탕발림시키느라고, 나이를 일곱 살을 야바위쳐서, 예순다섯 살로 속이던 것이랍니다.
그도, 곧이야 듣건 말건 한 이십 살 꼬아 먹고 쉰 살쯤 댔다면 또 몰라요. 고작 일곱 살. 늙은이의 나이 예순다섯에서 일흔두 살까지 거리가 그리 육중스럽게 클까마는, 그래도 열다섯 살배기 애인한테 고거나마 젊게 보이고 싶어, 그 일곱 살을 덜 불렀더랍니다, 예순다섯 살이라고.
그 우람스런 체집에 어디를 눌렀는데, 그런 간드러진 소리가 나왔을까요.
저어 공자님 말씀에,
"소인이 한가히 지낼 것 같으면 아름답지 못한 꿍꿍이를 꾸미나니라."
하신 대문이 있겠다요.
그 대문을 윤직원 영감한테 그대로 적용을 말고서 죄꼼 고쳐 가지고,
"소작인이 바쁘게 지낼 것 같으면 지주 영감은 약시약시하느니라."
이랬으면 어떨까요.
인간이 색의 기능을 타고나는 것은 생물로서 운명적 필연이요, 그러니까 결단코 그걸 나무랄 일은 못 됩니다. 또 누가 나무라고 시비를 한다고 그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해서 비판이나 간섭의 피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윤직원 영감처럼 나이 칠십여 세에, 연령의 한계를 마구 무시하는 그의 야만스러운 정력은, 부질없이 생물로서의 선천적인 운명이라고만 처분은 안 됩니다.
본시 체질을 좋게 타고났다고 주장을 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신돈이 같은 체질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윤직원 영감이 윤직원 영감다운 팔자를 얼러서 타고나지 못했으면 그 체질은 성명이 없고 말 것입니다.
몇백 명이나 되는 윤직원 영감의 소작인 중엔 윤직원 영감만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 몇은 없을 이가 있다구요.
그렇건만 그 사람네는 온전히 도조를 해다가 바치기에 정력이 죄다 말라 시들고, 보약 한 첩 구경도 못 했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攝理) 이하로 오히려 떨어지고 만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가령 특별한 예외나 기적으로, 윤직원 영감네 소작인 가운데 윤직원 영감처럼 칠십이로되 능히 계집을 다룰 정력을 지탱하고 있는 자 있다 치더라도, 그가 감히 첩질과 계집질을 할 팔자며, 그럴 생심인들 하겠습니까.
그러니 결국 그것은 늙은이한테는 생물적 필연이라는 관용도 안 될 말이요, 타고난 선천이니 체질이니 하는 것도 다 여벌이고, 주장은 한갓 팔자(시체말로는 환경) 그놈이 모두 농간을 부리는 놈입니다.
소작인이 바빠 벼가 만 석이 그득 쌓이기 때문에, 그의 생리와 건강과 행동과 이 모든 것이 화합되어(혼합이 아니라 화합이 되어) 오늘날의 싱싱한 윤직원 영감을 창조한 것이니라…… 이런 해석도 그러므로 고집은 해볼 만합니다.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이 예순다섯 살이란 말에, 계집애가 까부느라고 아이구! 예순다섯 살이라니, 퍽도 많이 자시기는 했네! 그러면 가만있자, 나보다 몇 살 더한고? 응, 가만있자, 예순다섯이라, 열다섯을 빼면 응…… 쉰, 아이구 어찌나! 쉰 살이나 더 잡수셨구려! 이러고 허겁떨이를 해쌉니다.
윤직원 영감은, 제가 하는 대로 빙그레 웃으면서 보고만 있습니다. 춘심이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제 나이와 빗대 보던 것인데, 윤직원 영감은 그게 무슨 뜻을 두기는 두었던 표적이려니 하고 혼자 느긋해하는 판입니다.
뜻은 있는데, 나이 하도 많으니까 놀라는 것이고, 그러나 뜻이 있었던 것만은 불행 중 다행인즉, 옳지 그렇다면 어디 좀…… 이런 요량짱입니다.
연애는 환장이니라(Love is Blind)란다더니 옛말이 미상불 옳아, 이다지도 야속스레 윤직원 영감 같은 노인에게까지 들어맞기를 하는군요. 그나마 골고루 골고루…….
"내가 나이 많언개루 싫으냐?"
인제는 제이단으로 들어가서, 나이 많은 게 나쁘지 않다는 변명, 혹은 나이 많아도 많지 않다는 주장을 해야 할 차롑니다.
"싫긴 뭐어가 싫여요? 나이 많은 이가 좋죠, 허물없구……."
"그렇구말구…… 그러구 나넌 예순다섯 살이라두 기운은 무척 시단다…… 든든허지!"
"참, 영감님은 늙었어두 몸집이 이렇게 크니깐, 기운두 무척 셀 거야. 그렇죠?"
"호랭이라두 잡을라면 잡넌다!"
"하하하, 그렇거들랑 인제 동물원에 가서 호랭이허구 씨름을 한번 해보시죠……? 아이 참, 하마허구 호랭이허구 씨름을 붙이믄 누가 이기꼬? 하하하, 아하하하……."
"허허, 그년이 또 까불구 있네!"
윤직원 영감은 어느결에 다시 집어 문 담뱃대 빨부리로 침이 지르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흐물흐물, 춘심이를 올려다봅니다. 몸이 자꾸만 뒤틀립니다.
"춘심아?"
"내애?"
"너어…… 저어…… 내 말, 들을래?"
"무슨 말을, 요?"
묻기는 물으면서도 생글생글 웃는 게 벌써 눈치는 챈 모양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오냐 인제야 옳게 되었느니라고 일단의 자신이 생겼습니다.
"내 말, 들을 티여?"
"아, 무슨 말이세요?"
윤직원 영감은 히죽 한번 더 웃고는 슬며시 팔을 꼬느면서,
"요녀언! 이루 와!"
하고 덥석 허리를 안아 들입니다. 마음 터억 놓고서 그러지요, 시방…….
아, 그랬는데 웬걸, 고년이 별안간,
"아이 망칙해라!"
하고 소리를 빽 지르면서 그만 빠져 달아나질 않는다구요.
여섯 번!
윤직원 영감은 진실로 기가 막힙니다. 여섯 번이라니, 아마 성미 급한 젊은놈이었다면 그새 목이라도 몇 번 매고 늘어졌을 것입니다.
글쎄 요년은, 눈치가 으수하길래 믿은 구석으로 안심을 했던 참인데, 대체 웬일인가 싶어 무색한 중에도 좀 건너다보려니까, 이게 또 이상합니다.
그 동안에 다섯 기집애들은 울기 아니면 욕을 하면서 영락없이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을 했는데, 요년은 보아야 그렇게 소리를 바락 지르고 미꾸리새끼처럼 빠져나가기는 했어도, 그저 저기만치 물러앉았을 따름이지, 울거나 골딱지를 냈거나 도망을 가거나 하기는커녕, 날 잡아 보라는 듯이 밴들밴들 웃고 있지를 않겠습니까. 마구 간을 녹입니다.
아무려나, 그렇다면 다시 어떻게 사알살 달래 볼 여망이 없지도 않습니다.
"저런―년 부았넝가! 헤헤, 그거 참……! 이년아, 그러지 말구, 이리 오니라, 이리 와, 응? 춘심아!"
"싫여요!"
"왜?"
"왠 뭘 왜!"
"너 이년, 내 말 안 듣기냐?"
"인제 보니깐 영감님이 퍽 음충맞어!"
"아, 저런년! 허, 그거 참……! 너, 그러기냐!"
"어때요, 머!"
"그러지 말구 이만치 오니라. 내, 이얘기허마."
"여기서두 들려요!"
"그리두 이만치, 가까이 와!"
"피― 또 붙잡을 양으루?"
"너, 내 말 들으면 내가 좋은 것 사주지?"
"존 거, 무엇?"
"참, 좋은 것 사줄 티여!"
"글쎄, 존 게 무어냐니깐?"
용천뱅이가 보리밭에 숨어 앉아서, 어린애들이 지나갈라치면, 구슬 줄게 이리 온, 사탕 줄게 이리 온, 한답니다. 그와 근리하다 할는지 어떨는지 모르겠군요.
윤직원 영감은 미처 무얼 사주겠다는 생각도 없이, 당장 아쉰 대로 어르느라고 낸다는 게 섬뻑 그 소리가 나와졌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꾸만 물어도 이내 대답을 못 하던 것입니다.
"늬가 갖구 싶다넌 것 사주마!"
"내가 가지구 싶다는 걸 사주세요?"
"오―냐!"
"정말?"
"그리여!"
"가―지뿌렁!"
"아니다, 참말이다!"
"그럼, 나 반지 사주믄?"
"반? 지……? 에라끼년! 누가 그런 비싼 것 말이간디야!"
"피― 그게 무어 비싼가……? 저기 본정 가믄 칠 원 오십 전이믄 빠알간 루비 박은 거 사는데…… 십팔금으루 가느다랗게 맨든 거……."
"을매? 칠 원 오십 전?"
"내애."
"참말이냐?"
"가보시믄 알걸 뭐!"
"그래라, 그럼 사주마…… 사줄 티닝개루, 인제 이리 오니라!"
"애개개! 먼점 사주어예지, 머."
"먼점 사주구? 그건 나두 싫다!"
"나두 싫다우!"
"고년이 똑 어디서 미꾸람지새끼 같다! 에엥, 고년이…… 그러지 말구, 이년 춘심아!"
"내애?"
"그러지 말구, 이리 오니라, 응? 그럼 내가 인제 내일이구 모리구, 진고개 데리구 가서 반지 사주께!"
"일없어요……! 시방 가서 사주시믄?"
"시방이사 밤으 어떻게 갈 수 있냐? 내일 낮에 가서 사주마. 그러지 말구, 이리 오니라!"
"싫여요!"
윤직원 영감은 칠 원 오십 전이면 산다는 그 반지를 사주기는 사줄 요량입니다. 하기야 돈 칠 원 오십 전만 놓고서 생각하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래도 명색이 동기 쳇것인데, 칠 원 오십 전짜리 반지 한 개로 사탕발림을 시키다니, 도리어 헐한 셈입니다. 제법식대로 머리를 얹히자면 이삼백 원 오륙백 원이 들곤 할 테니까요.
그래, 잘라 먹지 않고 내일이고 모레고 사주기는 사줄 텐데, 춘심이년이 못 미더워서 그러는지 까부느라고 그러는지, 밴들밴들 말을 안 듣고는 애를 태워 줍니다. 생각하면 밉기도 하고 미운 깐으로는 볼퉁이라도 칵 쥐어질러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괜히 함부로 잡도리를 했다가는, 단박 소갈찌가 나서 뽀루루 달아나 버리고는 다시는 안 올 테니, 그렇게 되고 보면 여섯 번 만에 겨우 반성공을 한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게 아니겠다구요.
에라, 그러면 기왕이니 내일 제 소원대로 반지를 사주고 나서…… 이렇게, 할 수 없이 순연(順延)을 하기로 요량을 했습니다.
"그럼, 내일 진고개 데리구 가서 반지 사주께, 그 담버텀은 내 말 잘 들어야 헌다?"
"내애, 듣구말구요!"
아까부터 이내, 죄꼼도 부끄러워하는 내색이라고는 없고, 그저 처억척입니다. 사실 맨 처음에 윤직원 영감이 쓸어 안으려고 했을 때도 소리나 지르고 빠져나가기나 하고 했지, 귀밑때긴들 붉히질 않았으니까요.
"꼬옥 그러기다?"
"염려 마세요!"
"오널치름 까불구 말 안 들으먼 반지 사준 것 도로 뺏넌다?"
"뺏기 전에 얼른 뽑아서 바치죠!"
"어디 두구 보자. 그럼 내일 즘심 먹구서 올라오니라. 같이 가서 사주께."
"더 일찍 와두 좋습니다!"
드디어 흥정은 다 되었습니다. 마침맞게 마당에서 청요리 궤짝이 딸그락거리더니 삼남이가 처억,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어서 빨리 시켜 왔어라우."
하고 복명을 합니다.
춘심이는 대그르르 웃고, 윤직원 영감은 끙! 저 잡것 좀 부아! 하면서 혀를 찹니다.
연애를 하면 밥이 쉬 삭는다구요. 윤직원 영감은 그런데, 저녁밥을 설치기까지 한 판이라 속이 다뿍 허출해서 우동 한 그릇을 탕수육으로 반찬삼아 걸게 먹었습니다.
이렇게 성사가 되고 마음이 느긋할 줄을 알았더면, 기왕이니 따끈하게 배갈을 한 병 데워 오라고 할 것을…… 하는 후회도 없지 않았습니다.
춘심이는 또 춘심이대로 반지를 끼고 권번이며 제 동무들한테며 자랑을 할 일이 좋아서, 연신 쌔왈대왈, 우동이야 탕수육이야 볼이 미어지게 쓸어 넣었습니다.
"너, 그렇지만 춘심아?"
윤직원 영감은 우동 한 그릇을 물린 뒤에, 트림을 끄르르, 새끼손 손톱으로 잇샅을 우벼서 밀창문에다가 토옥, 담뱃대를 땅따앙 치면서, 하는 소립니다.
"……늬 집에 가서 이런 이얘기 허머넌 못쓴다! 응?"
"무슨 얘기요?"
"내가 반지 사주구서 말이다, 저어 거시기, 응? 그 말 말이여?"
"내애 내…… 않습니다!"
"허머넌 못써!"
"글쎄 않는대두 그러세요!"
"나, 욕 읃어먹지. 너, 매 읃어맞지. 그래서사 쓰겄냐……? 그러닝께루 암말두 허지 말어, 응?"
"염려 마세요, 글쎄…… 저렇게 커다란 영감님이 겁은 무척 내시네!"
"늬가 이년아, 주둥이가 하두 방정맞이닝개루 맴이 안 뇐다!"
윤직원 영감은 슬며시 뒤가 나던 것입니다. 호사에 마가 붙기 쉬운 법인 걸, 만약 제 부모가 알고 보면 약간 칠 원 오십 전짜리 반지 한 개 사준 걸로는 셈도 안 닿고, 그것들이 마구 언덕이야 비비려 덤빌 테니 그 성화가 어디며, 필경 돈 백 원이라도 부서지고 말 테니까요.
춘심이는 그런데, 우선 반지 한 개 얻어 가질 일이 좋아, 온갖 정신이 거기만 쏠려서, 제 부모한테 발설을 하지 말라는 신칙도 그저 건성으로 대답을 하다가, 윤직원 영감이 뒤를 내는 눈치니까는, 되레 제가 지천을 해준 것이고, 그런 것을 윤직원 영감은 지천이 되었건 코묻은 밥이 되었건, 그런 체모는 잃은 지 오래고, 애인의 맹세를 믿고서 적이 안심을 했습니다. 자고로 노소 없이 사랑하는 이의 말은 무엇이고 곧이가 들린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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