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무서운 죄악 내용


희미하게 불빛이 비치기는 하나마, 으슥하고 컴컴한 방을 셋이나 뚫고 지나서 또 아래로 내려가는 캄캄한 층계를 셋이나 더듬어 내려가니까, 바로 그 옆방에 모여 있는지 사람들의 소리가 귀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상호의 가슴은 덜컥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도로 돌아설 재주도 없어서, 상호는 들키면 잡히고 잡히면 죽을 셈치고 그냥 따라 들어섰습니다.

앞에 선 키 큰 놈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상호도 들어서 보았더니 거기는 마치 학교 교실 둘을 잇대어 놓은 것만큼 크고 넓은 방에 전등을 다섯 군데나 달리어 밝기가 낮 같은 데 무슨 회의인지 30여 명 되는 사람들이 저마다 걸상에 걸터앉아서 단장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고, 아까까지 절름발이 짓을 하면서 걸어오던 능청스럽고도 흉악한 단장은 일어서서 한참 연설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모여 앉은 사람 중에는 중국옷을 입은 사람이 10여 명 되고 나머지는 모두 양복을 입었는데, 그 중에는 단장의 마누라까지 합쳐서 여자가 다섯 사람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단장의 연설이 뚝 그치고 무슨 호령이나 한 듯이 모든 사람의 얼굴과 눈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로 쏠리었습니다. 어찌 되나 싶어서 상호의 가슴에서는 갑자기 두방망이질을 치는데, 키 큰 중국놈은 차려를 하고 서서 단장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체조하듯 힘을 들여 왼손 주먹에 오른 손 두 손가락을 얹고 섰는지라, 겁나는 중에도 상호는 그대로 흉내를 내고 섰습니다.

한참이나 서로 마주 본 후에 단장이 고개를 끄덕하니까, 키 큰 놈은 이제야 한편 끝 걸상에 앉는지라 상호도 그대로 그의 옆 걸상에 앉았습니다.

모여 앉은 사람 중에는 단장의 신임을 받는 사무원이 너덧 사람 섞여 앉아 있는 모양이었으나, 상호가 코 밑에 수염을 붙이고 있고 77의 암호까지 익숙하게 하니까 먼 곳에 갔다 온 자기네 부하로 안 모양인지, 아무 딴 눈치 없이 단장의 연설은 계속되었습니다.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이번에는 조선 경성에 들렀을 떼에 두 남매의 도망질 사건이 생겨서 잘못하면 우리들의 본색이 탄로되겠으므로, 얼른 경성을 떠나고 조선 땅 밖으로 나오는 것이 편하겠다 생각하고 부랴부랴 짐을 거두어 가지고 도망해 오듯 온 것이오.”

상호는 그것이 자기 남매의 이야기인 것을 알고, 정신을 바짝 차리어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두 귀를 바짝 기울이고 앞으로 다가앉았습니다.

“그런데 그 오라비란 놈은 이내 잡지 못하였고 누이동생만 잡아가지고 왔는데, 그러는 통에 곡마단 벌이도 못하였거니와 가지고 갔던 아편을 전부다 처치해 버리지 못하고 간신히 3분의 1밖에 못 치웠는데 그 수입이 1천 3백원! 나머지는 도로 가져왔고 또 조선 계집애 겨우 열세 살 먹은 것 하나밖에는 걸리지 않아서 그것 하나만 숨겨 가지고 왔을 뿐이오. 그러니까 통틀어 말하면 이번 조선에 들렀던 일은 성공하지 못한 셈이오. 그러나 그것은 사정상 경성에서 도망해 오듯 급히 오느라고 그리된 것이니깐 하는 수 없는 일인 줄 아오. 그런즉 3분의 2 그냥 가지고 온 아편은 여기 있는 여러 사람이 활동하여 여기서 팔아야겠고, 새로 잡아온 조선 어린이는 나이가 열세 살이나 되고 인물이 제법 똑똑하니까 적어도 1백 50원 이상은 수입이 될 것 같소. 그런데 새로이 한마디 하여야 할 말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번에 경성에서 저희 외삼촌을 만나서 도망한 것을 도로 잡아 가지고 온 나미꼬(순자의 일본 이름)는 이제는 암만 해도 오래 붙어 있을 리 없고 또 저희 오라비 놈이 자꾸 빼어 가려고 애를 쓸 것이니까, 곡마단에서는 한시바삐 그 애가 하는 재주를 다른 애에게 가르쳐 가지고 얼른 나미꼬를 팔아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여러 사람도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 좋겠고, 또 어느 때고 오라비 놈이 이곳까지 쫓아올는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여러 사람들은 각각 주의하는 것이 좋을 줄 아오.”

이 놀라운 연설을 듣고 있는 상호는 얼굴이 핼쓱해 벌벌 떨며 앉아 있었습니다. 아아, 놀라운 비밀! 흉악한 죄상! 그놈들 칠칠단의 무서운 내용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곡마단은 겉 문패에 지나지 목하고 아편을 가져다 넌지시 장사하고, 또 조선의 계집애를 꼬이거나 훔치거나 하여서는 중국 놈에게 팔아먹고……. 아아, 어떻게 중치를 하였으면 그 원수를 시원히 갚을 것이겠습니까? 상호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리었습니다.

더구나, 나중에 이야기한

“순자를 잃어버리기 전에 미리 팔아넘겨 버리겠다.”

는 말에 상호의 마음은 그냥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미쳐 날뛸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순자가 보이지 아니하니 우선 순자를 어디다 어떻게 감춰 두었는지, 그것을 안 후에 할 일이라 억지로 억지로 진정을 하면서 상호는 힘써 눈치를 채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큰일 났습니다. 상호 옆에 앉았던 그 무섭고 징글징글한 키 큰 중국 놈이 다가오더니, 손목을 확 붙잡았습니다.

상호는 깜짝 놀라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가슴 속에 부르짖으면서도 그래도 어떻게 이놈을 또 속일까 하고 꾀를 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은 아주 틀렸습니다. 그때에 방문이 덜컥 열리더니, 천만뜻밖에도 진짜 문지기 놈(사지가 묶여 매어 길 밖 기호 군에게 붙들려 있을 놈)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얼굴을 수그리면서 황급히 뛰어 들어와 상호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틀렸다!”

하고, 낙심이 될 때 상호의 핼쑥하던 얼굴은 목이 부러진 것같이 푹 수그러졌습니다.

《어린이》 5권 5호 (1927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