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대문 앞에서

중학동 외삼촌 댁 대문 앞에서 동정을 엿보느라고 망설이는 상호에게 뜻밖에 와락 달겨든 사람! 분명히 경찰서의 형사에게 잡힌 것이라고, 상호는 가슴이 덜컥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사가 아니고 외삼촌 노인과 한데 잡혀갔을 통역 학생 한기호였습니다.

“오! 어떻게 안 잡혀 갔소?”

상호는 반갑고 놀라워서, 크게 소리쳐 물었습니다.

“갑시다, 갑시다. 여기 있으면 위험하니, 어디로 얼른 갑시다.”

그는 상호의 손을 잡아끌듯 하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이 근처가 온통 형사 천지요, 빨리 갑시다. 지금 당신을 잡으려고 발끈 뒤집혔으니, 조심해 가야 됩니다.”

하면서, 자기가 먼저 앞서서 급히 걸었습니다. 학생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무거운 쇠방망이로 상호의 가슴을 때리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의 몸은 지금 거미줄에 얽힌 것 같아 까딱하면 독수리의 발톱에 새 새끼가 채이듯이 붙잡힐 것을 생각하니, 한 발 한 걸음을 내어 딛기가 무시무시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점점 저 길로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자기를 노려보는 것 같고, 심지어 여편네 아이들까지 형사의 돈을 먹고 자기의 뒤를 일부러 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두근두근! 상호는 아무 말도 내지 못하고, 학생의 뒤를 따라 잠자코 걸어서, 광화문 앞을 지나, 비각 앞 네거리까지 무사히 나왔습니다.

“어디로 가면 안전할까?”

네거리까지 나와서 학생이 상호를 돌아다보고, 비로소 입을 열어 물었습니다.

“서대문 밖으로 가지…….”

상호는 서대문밖에 몰랐습니다.

“아니, 그리 가면 위험하니 진고개로 갑시다. 그리 가야 안전하겠소.”

두 사람은 걸어서 진고개로 올라가며, 소근소근 궁금하던 일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상호가 들창으로 뛰어 도망한 후 순자와 학생과 외삼촌 노인은 다 같이 경찰서로 붙잡혀 갔던 일, 그 후로 순자는 곡마단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고 노인은 검사국으로 넘어가고 학생은 증거가 없어서 놓여나온 일을 상호는 속이 시원하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모를 일은 순자가 곡마단의 손으로 넘어가서 어찌 되었는지 곡마단 일행은 중국으로 갔는지 안 갔는지 그것이었습니다.

“곡마단 패들이 어찌 되었는지 그것을 알아볼 도리가 없을까?”

상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알아보기도 급하지만 섣불리 하다가는 도리어 잡히게 될 것이니, 우리 저 산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학생의 의견대로 두 사람은 좌우 옆을 흘낏흘낏 눈치 채어 가면서 좁다란 골목만 골라서 남산을 향하고 올라갔습니다.

벌써 순자는 중국 땅에 가 있는 줄은 알지도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