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이가 그의 제자 이준식의 아내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이상한 찬스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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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는 어떤 보통학교의 훈도였다. 준식이는 그 보통학교 출신이었다. 사람됨이 고지식하고 고지식하니만치 또한 인정 깊은 일은 준식이가 재학 시부터 준식이를 퍽 사랑하였다.

그 사랑하는 까닭은 공부를 잘한다든가 재주가 있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요, 준식이는 천애의 고아로서 돌보아줄 사람이 없으니 자기가 사랑한다 하 는 것이었다. 준식이는 이 스승의 아래에서 보통 학교를 끝냈다. 고등보통 도 일이의 원조로써 3학년까지 다녔다.

그러다가 차차 자기 철이 들면서, 공부보다도 취직이 더 큰일임을 이해하게 되자 어떤 인쇄회사의 직공의 자리를 얻으면서 공부를 중지하였다. 전매국의 여공으로 있던 지금 아내와 눈이 맞아서 부부가 되었다.

이리하여 준식이는 가정생활을 하면서는 직접으로는 일이의 원조를 벗어났다 하나 역시 일이는 게으르지 않고 준식이의 생활을 돌보아주며 틈틈이 물질상의 원조도 해주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준식이가 그 인쇄공장에서 해직이 된 이래로는 생활비의 대부분은 일이에게서 나왔다. 준식이가 청하는 바가 아니로되 일이는 기회를 보아서 늘 원조하고 하였다. 원조할 의무가 있는 것같이 생각되어서였다.

말하자면 일이와 준식이는 사제의 관계라기보다도 서로 감춤 없는 가까운 친구 혹은 친척의 관계와 같았다. 따라서 준식이의 아내는 일이의 눈으로는 딸이나 조카며느리쯤으로 보이는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자기의 앞에서 응석을 부리고 어리광을 부릴지라도 관대한 웃음으로써 그것을 굽어보아야 할 자기의 지위였다.

그러던 것이 어찌어찌하여 일이와 준식의 아내 사이의 기괴한 육체적 결합까지 맺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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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떤 여름날이었다.

집이라는 명사를 붙이기에는 너무도 참혹한 준식이의 오막살이를 일이가 찾아간 것은 무더운 여름날 공기가 온 천지를 녹여낼 듯이 삶아내는 오후 4 시쯤이었다. 일이는 문밖에서 한번,

“있나?”

하고 의례상 찾아보고는 서슴지 않고 문고리를 잡아챘다.

그러나 최일이를 맞은 것은 일이의 예기해던 바와 같이 이준식이가 아니요,

“아이구, 선생님 오시네.”

하면서 문을 맞받아 연 것은 준식이의 젊은 아내였다.

일이는 주춤하였다. 그 주춤한 일이의 앞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준식이 의 아내의 흰 얼굴이 불끈 솟아 나왔다.

“준식 군 어디 갔어요?”

“네, 곧 돌아오실 텐데 잠깐 들어와 기다리시지요.”

“괜찮습니다. 어린애는?”

준식이의 어린애가 탈이 났다 해서 그 병문안 겸 왔던 것이었다.

“좀 그렁그렁해요.”

“네…….”

여인 교제에 능하지 못한 일이는 어색하여 어름어름하면서 병 앓는 어린애를 위하여 사온 과자 봉지를 내주면서,

“이거 어린애 군것질이라두 하라구 주십쇼. 준식 군 오거든 내가 다녀갔다구 좀…….”

하고 그냥 돌아서버리려 하였다.

“아이구, 이런 건 왜 사오세요. 곧 돌아오실 텐데 잠깐 들어오시지요.”

유난히도 고음(高 音)의 주인인 이 여인의 목소리는 일이의 귀에 쨍쨍 울렸다.

“뭐 또 오지요.”

시야의 한편 끝으로 준식이의 아내의 흰 얼굴을 걸핏 보면서 일이는 황황히 돌아섰다.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 일이가 뜻 없이 돌아볼 때 준식이의 아내의 흰 얼굴이 그냥 오막살이 문에서 자기를 바래주고 있었다.

아직껏 무관심하게 보아오던 준식이의 아내였다. 그만했으면 이쁘거니 애 교도 있거니 그러나 내 생활 감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거니 이만치 보아오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이 우연한 대면은 일이의 머리에 꽤 깊이 새겨졌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쑥 솟아 나오던 준식이의 아내의 흰 얼굴이 성가시게도 눈앞에 어릿거려서 일이는 그날 밤 자리에서 몇 번을 스스로 혀를 찼다. 사랑하는 친구요 후배인 준식이의 아내면 자기에게도 당연히 며느리나 혹은 조카딸과 같이 사랑스러울 사람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좀 다른 기괴한 감정의 움직임 때문에 비교적 도덕률이 강한 일이는 자기의 마음에 채찍을 가하고 하였다.

나이로 보아도 자기는 벌써 마흔이 지난 중년이요 준식이의 내외는 스물 안팎 되는 젊은이며 관계로 볼지라도 스승과 제자의 사이, 어느 모로 뜯어 보더라도 별다른 감정을 품어서는 되지 않을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때 어두운 방 안에서 불끈 솟아 나오던 젊은 여인의 얼굴의 인상만은 지우려야 지워지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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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륜의 죄라도 범한 듯한 기괴한 감정 때문에 그 뒤에는 일이는 준식이를 찾지 못하였다.

실직을 하고 그 위에 몸까지 약하며 그들의 어린애도 백일해에 걸려서 신고하고 있는 줄을 번히 알며 부족하나마 좀 생활상의 조력이라도 해주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나 기괴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일이는 준식이를 찾아보지를 못하였다. 지금 한 푼의 수입도 없는 준식이의 살림이 얼마나 고달플지 그 점을 생각할 때는 준식이를 찾아서 위로며 격려도 해주고 싶고 자기의 힘 자라는껏 생활의 조력도 해주고도 싶지만 죄 아닌 죄 때문에 이 고지식 한 일이는 준식이를 찾아보지를 못하였다.

한번은 언젠가 길에서 마주 오는 준식이를 보고 자기 편에서 질겁을 해서 길을 비켜선 일까지 있었다.

그러면서도…… 준식이에 대하여 미안한 생각이 더하면 더할수록 일이의 눈에는 번번이 그 어떤 여름날 어두운 방 안에서 쑥 밝은 곳으로 솟아 나오던 젊은 여인의 얼굴이 어릿거렸다. 잊어버리려면 더욱 어릿거렸다. 생각 안 하려면 더욱 생각나서 그를 괴롭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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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을 일이는 다시 준식이를 찾지 않았다. 준식이도 웬일인지 일이를 찾아오지 않았다. 준식이가 자기를 찾아오지 않는지라 일이는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이치로 캐보자면 결코 그런 일이 있을 까닭도 없겠지만, 일이에게는 준식이가 자기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그 때문에 찾아보지 않는 것같이 만 생각했다.

이리하여 기괴한 자책지념 때문에 준식이와 만날 기회를 피해오던 중에 그 여름도 다 가고 초가을 어떤 날 일이는 부득이 준식이의 집에 가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백일해로 앓던 준식이의 어린애가 기관지염이 병발하고 폐렴으로 되어서 죽었다는 기별이 왔으므로 인제는 어찌할 수 없이 준식이의 집에 가보지 않 을 수가 없었다.

그사이 한동안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이나 서먹서먹하여 찾기가 힘든 것을 찾아서 문밖에서 두어 마디 위로를 한 뒤에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린애는 어제 낮에 죽어서 엊저녁으로 매장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준식이의 아내는 속이 상해서인지 아랫목에 자리를 쓰고 누워 있다가 일이 가 들어오는 바람에 벌떡 일어났다.

벌떡 일어날 때에 이불에서 난 바람이 홱 일이의 얼굴에 끼쳤다. 바람과 함께 무슨 그다지 향기롭지 못한 냄새까지 일이의 코로 몰려들어왔다.

일이는 눈이 아찔하였다. 젊은 여인의 몸에서 나는 냄새…….

“참, 이런 변이…….”

머리를 외면을 한 채로 몇 마디 중얼중얼 위문은 하였지만, 일이는 자기로 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하였다.

머리를 다른 데로 향하였다. 하나 일이의 마음의 눈은 연하여 아랫목으로 내려갔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이며 혹은 그의 흰 허리든가 배가 치마 틈으로 보이지나 않나. 그것이 마음에 느껴져서 안정할 수가 없었다.

“왜 그사이 한 번도 안 오셨어요?”

이전에는 심상히 듣던 애교 있는 음성이었지만, 그 고음이 일이의 신경을 쿡쿡 찔렀다.

“글쎄, 이럴 줄 알았더면 와보았을 걸 말이외다.”

준식이의 집에 한 30여 분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일이는 자기의 마음이 너무도 어지럽기 때문에 당연히 할 위문조차 변변히 하지 못하였다. 좁은 방 안, 젊은 여인이 두르고 앉아 있는 이불 틈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 듯하여 그것 때문에 일이의 신경은 다른 데로 갈 틈이 없었다.

한 30분 앉아 있다가 자기 사관으로 돌아가려고 일어날 때에 일이는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하였다. 몸을 일으키는 기회에 한순간 걸핏 눈을 준식 이의 아내에게 던졌던 일이는 그 순간 준식이의 아내의 허리 혹은 배쯤에서 유백색의 피부를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날 밤 일이는 몹시도 흥분하였다. 맹렬히 일어나는 성적 충동 때문에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준식이에게 대해서는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미안하지만 일이는 그 젊은 여인의 유백색 피부에 향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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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최일이는 이튿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도 엊저녁의 일을 회상하고는 스스로 혀를 차고 하였다.

“에익.”

소리까지 하여서 자기를 책망도 하였다. 교수에는 정신이 안 들고 연방 어젯밤의 기괴망측한 자기의 행동만 생각되어 뚱딴짓소리를 군소리같이 하다 가는 학생들을 웃기고 말았다.

아직도 독신인 최일이라 성적 자위행동은 없을 바가 아니었다. 거리에서 본 에로틱한 광경이며 혹은 신문 기사의 간통 사건들을 회상하며 상상의 날개를 펴가면서 흥분을 더욱 돋우고, 흥분이 극도에 달할 때에 자위행동을 한 일은 결코 두세 번뿐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젯밤의 사건은 상대자가 자기의 딸이라 하여도 좋을 만한 준식이 의 아내라는 점에서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였고 그의 양심을 아프게 하였다. 진실로 용서할 수 없는 불륜의 죄를 범 한 것 같이 생각되어 그리로만 마음이 쏠려서 학과에는 정신을 둘 수가 없었다.

‘배나 허리나 넓적다리가 뵐 까닭이 없다. 옷을 입고 이불까지 둘렀는데 어떻게 그런 곳이 뵐까. 헛눈이다, 악희로다!’ 배나 허리나 혹은 그보다 더한 곳을 보았더라도 거기다가 흥분을 느낀 자기의 죄악을 무엇으로 벌하랴!

불쾌한 하루.

다시 이제 준식이의 아내를 만날 기회가 있거든 마치 딸과 같이 흠 없이 대접해주리라. 준식이는 아들로 알리라. 다시는 결코 준식이의 아내를 ‘여 인’으로 보지는 않으리라. 일이는 이런 결심을 단단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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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죽은 것을 기회로 준식이는 틈틈이 일이를 찾았다. 가뜩이나 고단 한살림에 아이의 병까지 과하여 찾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일이는 준식이가 오면 할 수 있는 대로 쾌활한 양을 보여주고 하였다. 자기의 죄악을 감추기 위하여 그리고 겸해서 준식이와의 사이를 더욱 흠 없이 하게 하기 위하여…….

“여보게.”

“네?”

“자네 부인, 잘 계신가?”

“네.”

이 말이 처음에는 듣기가 매우 거북하였다. 그러나 일이는 준식이가 오면 애써 이 말을 묻고 하였다. 어느 때에는 두 번 세 번 물은 일까지 있었다.

준식이에게 이 말을 물어서 자기가 준식이의 아내를 단지 사랑하는 며느리 같이 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꽤 애를 썼다.

“음식 잘 자시나?”

“또 어린애 없나?”

“매우 쓸쓸해 하시겠군 그려.”

필요 이상 이런 말을 횡설수설해서 자기가 별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다는 점을 애써 나타내려 하였다. 준식이가 자기의 아내까지 데리고 일이의 사관을 찾아오는 때도 있었다. 그런 때에도 일이는 무관심한 태도로 대했다.

준식이의 아내가 아무 흠도 없는 윗사람으로 대접해주는 것이 좀 쓸쓸하면서도 기뻤다. 자기의 괴악한 죄악이 자기 한 사람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때에 적이 안심이 되었다. 준식이의 아내가 올 때는 할 수 있는 대로 눈은 그편으로 돌리지 않도록 하였다.

‘온갖 죄악은 눈에서 생기느니’ 다시 잘 보지만 않으면 이전과 같은 불륜한 생각은 다시 생기지 않으려니 이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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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그해 가을에 준식이는 다른 어떤 인쇄회사에 직공으로 취직이 되었다. 취직이 되면서는 놀 때와 빈번히 일이를 찾지를 못하였다. 아침 8시부터 저녁6시까지 공장에서 일을 해야하는 준식이는 일이를 찾을 시간이 없었다.

결국 이것이 일이에게는 무지에서 해방을 당한 것같이 시원하였다. 준식이 가 오면 아무리 흠 없이 놀다 간다 할지라도 고지식한 일이에게는 양심상 얼마간 괴로웠다. 준식이가 아내까지 데리고 오면 일이는 자기의 허심을 보이느라고 무척 애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귀찮은 의무에서 인제는 해방이 된 것이었다.

때때로 신문 사회면이나 지방면에서 몹시 성적으로 자격시키는 기사를 보고 그 때문에 흥분되어 기괴한 행동을 시작하다가도 문득 준식이의 아내의 일이 생각나면 즉시로 성욕이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물건에 따르는 그림자와 같이 준식이의 아내의 일이 생각 나고 하는 것이었다.

‘준식이의 아내를 엄숙히 보자. 나의 딸과 같이 엄숙히 보자.’ 이렇게도 생각도 하고 이렇게 보려고 애도 꽤 썼다. 그런 엄숙히 보려는 한편에는 엄숙하지 못한 생각이 반드시 따라서 그를 성가시게 하고 그의 얼굴을 붉어지게 하였다.

여인 교제라는 것을 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여인 친구가 없는 이일이에게는 준식의 아내는 유일한 ‘아는 여인’이었다. 더구나(스스로 그렇지 않기를 바랐지만) 성적으로 그를 충동한 유일의 여인이었다. 일이가 다른 일로 다른 여인의 생각을 하다가라도 그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성적 방면으로 뻗으면 반드시 준식이의 아내가 그의 마음에 불끈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자기의 마음의 따귀를 갈기고 하지만 그가 이 생각을 피하려면 더욱 그를 성가시게 하고 하였다.

성적 방면의 생각을 온전히 끊어버리면 혹은 다시는 그런 불쾌한 생각이 아니 날까 하여 그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마흔이 넘은 건장한 이 독신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머리에 뛰쳐나오는 이 방면의 생각은 금할 수가 없었다.

준식이의 아내의 존재라 하는 것은 일이에게 있어서는 꽤 불쾌한 일이었 다. 도리어 어떤 처녀, 그렇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사람의 아내에게 이런 관념을 가졌었더라면 그는 아무 양심상 가책이 없이 자유로이 온갖 공상을 다 날렸겠거늘…….

그해 가을도 가고 어느덧 겨울이 이르렀다. 준식이는 취직을 한 이래로는 꽤 바쁜지 한 번도 일이를 찾아오지 않았다. 일이는 자기의 기괴한 비밀상 그의 집을 찾지를 않았다.

그런데 양력 연말이 다 된 어떤 날 이른 아침에 준식이가 허덕허덕 일이를 찾아왔다.

겨울방학 때라 좀 편안히 지내느라고 아직도 번히 자리에 누워 있노라는데 준식이가 허덕거리며 밖에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기는 들어오지도 않고 그냥 밖에 선 채로,

“선생님, 주무세요?”

시근거리며 일이를 찾았다.

일이는 몸을 이불로 얼싸매며 반만큼 일어났다.

“어…… 준식인가?”

“선생님, 미안하지만 저희 집에 좀 가봐주세요.”

“어…… 왜 그러는가? 좌우간 들어오게나.”

“아니, 공장에 가는 길이야요. 한데 그 사람(제 아내)이 감기루 좀 지금 중해요. 열이 39도에서 40도로 내왕하도록 중해요. 그런데 출근은 해야겠고 누구 집에도 한 사람 보아주는 이가 있어야겠고 참 탈났습니다. 그래서 집 일은 선생님께 좀 부탁을 할랴고 그럽니다. 좀 가봐주세요.”

“어…….”

이 순간 일이의 머리는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졌다. 불현듯 가고 싶은 생각도 났다. 가기가 겁도 났다. 가기 싫기도 하였다. 병실의 광경, 간호하는 광경, 거절할 생각……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일어나서 그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눈만 껌벅껌벅하고 있었다.

준식이의 말을 듣건대 아내는 혼자 있기를 매우 겁을 내며 최일 선생님이라도 좀 폐를 끼치도록 해달라고 당부를 하므로 선생님을 청하러 이리로 왔다는 것이었다 양력 섣달그믐께라. 인쇄소는 일이 여간 많지 않아서 임시로 도 직공을 채용하는데 원직공인 자기가 ‘사보루(게으름 피우다)’하면 이 뒤의 성적 문제에 관계되므로 자기는 집에 머무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믿습니다. 제 아버지로 알고 이런 염치없는 떼를 씁니다. 믿고 저는 갑니다.”

일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준식이는 이렇게 말하고 자기의 소속된 인쇄공장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로 알고? 그러면 자기는 준식이를 자식으로 알고 그의 아내를 며느리로 알고 가서 보아주어야겠다.

뒤이어 일어나는 모든 과거의 불쾌한 기억이며 장래 일에 대한 경멸할 만 한 순간적 공상을 모두 물리치며 일이는 자기의 커다란 의협심의 발로를 보이고자 자리에서 용감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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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 때문에 벌겋게 된 얼굴…… 그 가운데 또한 열기 때문에 미칠 듯이 번득이는 눈…….

“아이구, 선생님. 아유, 아유, 아유……”

일이가 들어서는 순간 준식이의 아내는 몹시도 기다렸던 듯이 윗목으로 윗목으로 몸을 돌이켜 누우며 인사와 신음을 겸하여 하였다.

그가 돌아누울 때에 너울 속에서는 뜨거운 김이 홱 하니 일이의 얼굴로 몰려왔다. 거기에서 지난 가을 맡은, 그 기막힌 냄새를 다시 맡은 일이는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수습하며 방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어떠시오?”

하고 인사를 하였다.

“아이구, 선생님. 미안합니다.”

열에 들뜬 얼굴에 미소를 나타내며 여인은 이렇게 말하며 이불 속에 있던 팔을 꺼내 제 이마에 얹었다.

그때였다. 일이는 보지 못할 것,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았다. 이불이 펄떡하는 순간 그 틈으로(저고리와 치마만 입은 듯한) 젊은 여인의 흰 젖가슴과 흰 허리와 흰 배의 일부분을 보았다. 냄새는 또 한번 홱 일이의 얼굴에 얹혔다.

모든 일이 일이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고약하고 기막힌 희롱이었다.

“저…….”

무슨 말을 하려 하였지만 목소리가 떨려서 나오지를 않았다. 성욕의 흥분 이 놀랍게도 일어나서 그를 괴롭게 하였다. 하반신에서는 육체상의 아픔까지 느꼈다. 딸과 같이 보고 친절히 간호해주려던 의협심은 어디론가 사라져 없어지고 강렬히 일어나는 성욕과 그 때문에 생기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일 이는 어쩔 줄을 모르고 희번덕거렸다. 큰일이로다, 어쩌나 어쩌나, 이런 생각만 연하여 일어났다.

엉거주춤하고 앉아서 눈은 할 수 있는 대로 뒤로 치뜨고 머리를 좀 안돈시키려고 애를 썼다.

“선생님.”

“어? 아니, 네?”

“미안합니다.”

“좋습니다.”

“이 열 좀 보세요.”

눈은 감은 채 미소 비슷한 기색을 얼굴에 나타내고 하는 말이었다.

“네, 열이…… 방 안까지 화끈화끈 다는걸요.”

“제 이마를 좀 짚어보세요.”

“…….”

“네? 여기를…….”

짚어볼 자리까지 지적하였다. 체모 없는 일을 잘하는 준식이의 아내의 이 체모 없는 청구에 일이든 혼돈된 머리로 잠깐 생각한 뒤에 드디어 용기를 냈다. 마음에 타오르는 성욕의 불길은 감추고 하다못해 표면으로라도 딸로 여기고 친절히 간호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기라도 하여야 할 것이다.

일이는 앉은걸음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자, 여기요.”

가리키는 이마에 손을 갖다 대어보았다.

한순간 대어보고는 곧 떼려던 노릇이었다. 그러나 일이의 손이 이마에 닿자 여인은 제 두 손으로 일이의 손을 덮어 눌러버렸다.

여인의 양손에 손을 잡힌 채 일이는 허리를 구부리고 움찍 않고 가만있었다. 손을 뽑으려 하지 않았다. 공포와 전율과 쾌감에 어려서 차차 그의 몸까지 떨리기 시작하였다. 허리를 구부렸기 때문에 이불 가까이로 간 일이의 코로는 여인의 기괴한 냄새가 몰려들어왔다.

만약 20분만 이대로 있으면 일이는 과도한 성적 흥분 때문에 반드시 기절을 했을 것이다.

시쯤 오전 “11 …… 말씀이야요. 11시쯤 되면 열기가 올라요. 어제는 정신까지 잃었는데 오늘은 어쩔랴는지…….”

이 말을 기회 삼아 여인은 일이의 손을 놓아주었다

“정신까지 잃으세요?”

필요 이상의 과장된 표정으로 이런 감탄사를 던진 뒤에 일이는 여인이 놓은 제 손을 아까운 듯이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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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잠이 들었다.

열기 때문에 힘없는 신음성을 연하여 발하며 잠이 들었다.

11시 거의 되어 여인은 눈을 번쩍 떴다. 희번덕희번덕 주위를 살폈다. 그런 뒤에는 무엇을 찾는 듯이 손을 내어 휘저었다. 그리고 발로는 이불을 차 던졌다.

‘아아…….’ 일이는 뛰어내려가서 여인의 벗어버린 이불을 씌워주었다. 눈을 꽉 감고 숨을 헐떡이며 그때에 중얼중얼 여인이 무슨 말을 하였다.

“네?”

“마코 갑은 이렇게 붙여요.”

“네?”

“이렇게…….”

여인은 일이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능란한 솜씨로 마코 갑을 붙이는 시늉을 하였다.

헛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열기가 놀랍게 오른 것이 분명하였다.

“정신 차리시오. 정신을…….”

“작년 여름에는 이렇게 안 덥더니.”

“정신을 차려요!”

여인은 두 팔을 높이 들었다. 들었다가 그 팔로 갑자기 일이의 목을 얼싸 안았다. 그런 뒤에는 연하여 알지 못할 소리를 하며 팔을 차차 당겼다.

일이는 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여인의 팔에 끌려 여인의 이불 안으로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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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가 제 이성을 회복한 때에 일이는 이불 곁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여인은 과도한 열기와 피로 때문에 곤히 잠이 든 때였다.

일이는 어쩔 바를 몰랐다. 인제는 삼십육계 줄행랑밖에는 수가 없다 하고 여인이 잠든 것을 다행히 여기고 모자를 쓰고 문을 소리 안 나게 열고 그 집을 피해 나왔다.

그 집을 피해 나온 일이는 그 뒤를 어디서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자기로도 알지 못하였다.

어디를 돌아다녔는지는 모르지만 잠시도 머물지 않고 돌아다닌 것은 스스로도 안다 그리고 그의 . 머리에 깊이 박혀서 그로 하여금 한순간도 안접하지를 못하게 한 한가지의 생각은, 자기는 천륜에 벗어난 짓을 한 놈이라는 생각이었다. 하늘이나 땅에 용납될 곳이 없는 자기는 무서운 죄인이라는 생각이 그의 온몸과 온 마음과 온 신경을 누르고 위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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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얼마 뒤 놀랍게도 초췌한 최일이의 모양이 자그마한 보따리를 하나 들고 영남 어떤 절간에 나타났다.

그 기괴한 사건이 있은 뒤 한때는 자살을 해보려고도 하고 한 때는 경찰에 자수를 해보려고도 하다가 두 가지 다 못하고 드디어 자기가 죄지은 몸의 피신처를 절간에 구하러 온 것이었다. 자기의 지은 바 죄를 씻기 겸하여 또 한 움직이기 쉬운 자기의 마음을 굳게 잡아보기 위하여 인간 고행의 길을 떠나고자…….

이 인간 고행의 길을 떠난 최일이가 장차 그의 예기하였던 바의 목적을 달 할지는 어떨지는 ‘세월’이라는 거인만이 증명을 할 것이다.


(부언 : 연전 어떤 곳을 여행할 때에 어떤 절간에서 들은 이야기를 골자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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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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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