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하늘은 묵은 얘기책을 편 듯
돌담울이 古城(고성)같이 둘러싼 산기슭
박쥐 나래 밑에 황혼이 묻혀오면
초가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지고
고향을 그린 墨畵(묵화) 한 폭 좀이 쳐.

띄염띄염 보이는 그림 쪼각은
앞밭에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 간
가시네는 가시네와 종달새 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레짠 두 뺨 우에 모매꽃이 피었고.

그네줄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더니
앞내江에 씨레나무 밀려나리면
젊은이는 젊은이와 뗏목을 타고
돈벌러 항구로 흘러간 몇 달에
서릿발 잎져도 못 오면 바람이 분다.

피로 가꾼 이삭에 참새로 날아가고
곰처럼 어린 놈이 북극을 꿈꾸는데
늙은이는 늙은이와 싸우는 입김도

벽에 서려 성애 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의 密告者(밀고자)인 강물조차 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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