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편집1
편집사흘만에 준길이의 장례를 치른 날 오후, 서울서 내려 온 박 삼룡이가 술이 잔뜩 취해 가지고 백 초시의 집 뜰로 선뜻 들어섰다.
「년 놈들 다 집에 있겠지? 그래 내 아들을 죽여 놓구두 다리를 뻗구 자?……내 놔라! 운옥이 년을 내 놔라!」
대추 알처럼 붉어진 곰보딱지 얼굴이 무섭게 히번득거리며 토방으로 성큼성큼 올라섰다.
그때 방 안에는 어머니와 영민이가 깊은 우수에 잠긴채 침울하게 마주 앉아 있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동기는 여하튼 사람을 죽이지 않았느냐? 영민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뭣이 어때? 할 말이 없어? 왜 없어? 할 말이 많을텐데…… 어디 말 좀 해 봐라, 이놈! 눈 하나 병신 된 것만 해두 이가 갈리는데 내 아들을 죽여?
이놈, 아가리가 있거든 말을 해 봐라!」
「…………」
영민도 대답이 없고 어머니도 말이 있을 수 없다.
「오늘이야 말로 내가 끝장을 보구야 갈테다. 이놈!」
살기를 띤 삼룡의 무서운 얼굴이 번쩍 들리면서 획하니 바람을 일으키며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자 부뚜막에 놓여있는 식칼을 들고 나왔다.
「아이구머니나? ─」
어머니는 간장이 철석하고 내려앉는 무서운 순간을 전신에 느끼면서 두 손을 벌리고 영민의 앞으로 막아 섰다.
「아이구머니나! 여보시요, 여보시요!」
새파랗게 질린 어머니의 얼굴, 와들와들 키질하듯이 떨리는 어머니의 몽뚱이다.
「이 놈, 운옥이 년을 냉큼 내 놔라! 내 놓지 않으면 네 가슴에 칼이 들어 간다!」
그러면서 삼룡은 뜰 한 복판에 까치다리를 하고 펄썩 주저앉으며 식칼을 땅에 쿡하고 꽂아 놓았다.
「자아 ─」
삼룡은 두 팔을 걷어 올리며
「내 내놔라! 빨랑빨랑 내 놔라. 내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내 놔라! 내 손으루 그년의 멱을 딸 테다! 빨랑빨랑 내 놔!」
「아, 글쎄 여보시오. 없는 운옥을 어떻게 내 노라는 말이요?」
어머니는 정신을 못 차린다.
「자아 ─」
삼룡은 일단 땅에 꽂았던 식칼을 다시 빼들고 땅바닥을 벅벅 그으며
「잔말 말구 내 놔라. 운옥이 년이 없으면 아들이 있을 테다. 아들이라두 내 놔라!」
아이구 여보시요 「 , ! 당신은 무슨 말을…… 내 아들이 무엇을 잘못 했다구……?」
영민은 그저 머리를 수그린채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운옥을 위하여 이 모욕을 참는 것이 영민의 마음엔 흡족하다.
「듣기 싫어! 누구든지 좋으니 한 놈만 내 놔라. 아들 새끼두 좋구, 어미도 좋구, 영감 쟁이두 좋다! 돼지 멱을 따듯이 내 손으로 멱을 딸테다!」
그 순간까지도 죽었소 하고 수그리고 있던 영민의 고개가 번쩍 들리었다.
「얘야, 영민아? ─」
아들의 안색이 심상치가 않다. 어머니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얘야, 영민아, 얘야, 영민아!」
를 연거푸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아들의 자유롭지 못한 몸뚱이를 두 팔로 꽉 부둥켜 안았다.
2
편집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의 귀에다 입을 대고 속삭이듯이
「안 된다! 일어 나면 안 된다! 죽었소 하구, 죽었소 하구, 가만 좀 앉아 있으려므나!」
그렇다. 어쨌던 사람을 죽인 운옥이가 아니냐! 운옥을 위하여, 불쌍한 운옥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자! ─ 영민은 다시 앉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운옥을 나무래는 것은 좋읍니다만 제발 집의 아버지의 인격을 훼손하는 그런 말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어떻다구? 이 놈 봐라? ─」
독기가 시퍼렇게 서린 삼룡의 얼굴이 후딱 들리면서 땅을 벅벅 긋던 식칼을 움켜잡고 벌떡 땅에서 일어 났다.
「아이구머니?……여보시요, 여보시요!」
어머니의 눈이 찢어질 듯이 확대가 되며 두 팔을 쫙 ─ 벌리고 영민의 몸을 방패하였다.
「이 놈 봐라? 네 놈이 일어서면 어떡헐 테냐? 나오너라, 이리 좀 나오너라, 이 놈! 네 아비에게두 인격이 있다? 인격이 있는 놈이면 며누리 년과 내통을 하여 남의 귀한 자식을 죽여버려? 이 놈, 썩썩 이리 좀 나오너라!」
그때 영민은 자기 몸을 꽉 부둥켜 안고 있는 어머니에게 조용히 말을 하였다.
「어머니, 어머니가 참되게 저를 사랑하신다면 어머니, 저를 자유로이 놓아 주시요.」
「안 된다! 못 놓겠다!」
어머니는 있는 힘을 다하여 아들을 꼭 부여잡고 놓아 주지를 않는다.
그때였다. 언제 돌아 왔는지, 반쯤 열려진 대문 밖에서 집안에 벌어진 광경을 물끄러미 돌아다 보고 섰던 백 초시가 대문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섰다. 대문간이 컴컴해서 백 초시가 거기 서 있는 줄을 삼룡이도 몰라 보았고 영민이 모자도 몰라 보았다.
「어머니, 저를 놓아 주세요!」
영민은 다시 한번 그것을 어머니에게 애원하였다.
「안 된다, 글쎄 안 된대두!」
「어머니가 아버지를 참되게 존경하신다면 저를 놓아 주세요. 만일 이 자리에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아버지께서는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요? 저는 아버지의 인격과 명예를 위하여 이런 경우에 아버지가 취하실 행동을 아버지 대신 제가 취하여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두 야, 너는 다리 병신이 아니냐? 그리구 또 앞두 잘 못 보는……」
「아니야요, 어머니. 우락부락 싸움을 할려는 것이 아니니까 조금도 염려 마세요.」
그러면서 영민은 꽉 부여잡은 어머니의 팔을 힘을 주어 끌렀다.
「이놈아, 어서 나오너라. 네 놈이 나오면 어떡헐테냐?」
삼룡은 칼을 독수리처럼 움켜쥐고 뜰 한가운데 우뚝 버티고 섰다.
「아이구, 야 영민아!」
영민은 문 밖에 세워 놓았던 나무다리를 짚고 앞을 더듬으며 토방을 내려 서서 삼룡이 앞에 역시 우뚝 마주 섰다.
「이놈, 자아, 운옥이 년을 내 놔라!」
「운옥이가 없어서 당신 말대로 대신 내가 나왔습니다.」
「여보세요! 그 애는 다리도 병신이려니와 앞도 잘 못 본답니다. 그저 지나간 일이니 참으시구…」
「앞을 못 본다?……흥, 천벌이다! 남의 눈을 못 보게한 천벌인 줄 알아라, 이 놈!」
삼룡은 칼을 쥔 손을 둘러 메었다.
그때 영민은 떠들지 않고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극히 침착하게 입에 담았다.
「나를 운옥이라고 생각하고 그 칼을 가슴 한 복판에 찔러 보시요!」
영민은 눈을 똑바로 뜨고 가슴패기를 바싹 삼룡이 앞에 내밀었다.
「이놈아! 내가 그럼 못 찌를 줄 알아?」
삼룡은 팔을 걷어 올리며 식칼 끝으로 영민의 명치 끝을 질긴질긴 건드러 본다.
「찔르시요! 그 칼 끝이 내 심장 한 복판에 들어 백힐 때까지 내 손은 절대로 당신의 손을 막지 않을테니, 자아, 찔르시요!」
그때였다. 어둑컴컴한 대문간에서 백 초시의 목소리가 무섭게 튀어 나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렇다! 박 삼룡이의 칼이 내 아들의 가슴을 뚫으지 못할 때, 그 칼날은 거꾸로 박 삼룡이의 가슴패기로 뚫고 들어 갈 줄만 알아라!」
3
편집삼룡이도 그렇고 영민이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실로 이 뜻하지 않은 백 초시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다 글자 그대로 화닥닥 놀랐다.
「아이구, 여보! 이 일을 글쎄……」
「아, 아버지!」
달려드는 마누라와 아들을 손으로 물리치며 백 초시는 영민이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로 걸어 가서 삼룡이 앞에 우뚝 마주 섰다.
「내 아들이 불행히도 병신의 몸이 되어 박 삼룡이의 그 인자스러운 칼날이 잘 들어 박히질 않는 모양이야. 그러나 이 백 봉학이는 다행히도 병신은 아니야. 운옥이 대신 나린 백 봉학이니 사양 말고 쩔러도 좋아!」
그러면서 백 초시는 두 어깨를 양쪽으로 뻐개면서 가슴을 쑥 내 밀었다.
「아이구, 여보! 그만들 두시요!」
「잠자쿠 못 있겠나?」
백 초시는 꿰엑하고 소리를 쳤다.
「어렸을 적부터 쌈 잘 하는 노름 꾼으로 탑골동에서 판을 치던 박 삼룡이다. 그 박 삼룡이가 오늘 내 집에서 칼부림을 한대니 잠자쿠 구경이나해!」
「음, 잘 만났다, 백 봉학이!」
삼룡은 어깨를 한 번 추켜 올리며
「살인범 허 운옥이와 내통을 하던 백 봉학이를 주재솟 놈들은 눈이 멀어서 벌써 놓아 주었나?…」
「삼룡의 입이 백 봉학이의 성명 三[삼]자를 용감히도 입에 담았어! 허허허…… 개천에서 미꾸라지나 송사리떼나 잡아 먹구, 동리 색시 치마귀나 잘 잡구, 철 모르는 애들을 몰구 댕기면서 돈푼이나 따먹구 살던 삼룡이가 딸년을 팔구 아들 새끼를 , 팔아서 돈푼이나 쥐어 보니 우쭐해서 눈 아래 사람이 않 뵈여? ─」
「이놈아. 백 봉학이가 잘 났어 백 초신 줄 알았느냐? 글줄이나 하구 돈닢이나 있으니 그게 어쨌다는 말이야? 곰보딱지 박 삼룡이두 돈을 모으면 박초시야! 시대가 다르다, 이놈아! 돈 없는 백 초시가 꼼둑만 하면 될 줄 아느냐? ─ 하여튼 운옥이 년을 내 놔라! 그 년을 이 칼로 돼지 멱을 따듯이 따 버릴테다!」
「운옥은 없다. 운옥이 대신이니 백 봉학을 찔러라! 만일에 네가 못 찌른다면 내가 그 칼로 네 가슴을 찌를 테다! 자아, 어서 찔러라!」
그 순간, 칼을 잡은 삼룡이의 손이 번쩍 들렸다.
「이놈의 자식이!」
「아, 앗 ─」
하고 어머니와 영민이가 달려 들었을 때는 벌써 식칼 쥔 삼룡이의 손이 휘 ─ 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음 ─」
백 초시는 비틀비틀 영민의 품안에 쓰러 졌다.
그러나 백 초시의 머리를 내려 갈긴 것은 칼 날이 아니고 칼자루였다.
「놓아라, 영민아!」
백 초시는 다시금 몸을 일키었다.
「아버지?」
「여보!」
백 초시 머리에서 피가 흐른다.
「놓아라. 놓고 저리 물러들 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백 봉학이 부자(父子)가 편역을 들었다고 해. 그것은 백 봉학이의 일생의 수치다! 자아, 놓아라!」
「아버지!」
「여보!」
그러나 백 초시는 아들의 팔을 한사코 뿌리치며
「너는 종시 나를 찌르지 못했다!」
그러면서 백 초시는 한 걸음 바싹 다가 서며
「자아, 그 식칼을 이리 내라. 이번에는 내가 네 뱃대기를 어김없이 찌를 테니까!」
「아버지!」
「가만 있거라! 이건 운옥이나 준길이의 문제가 아니다. 젊었을 적부터 승강을 해 오던 박 삼룡이와 백 봉학이의 최후의 승부다! ─ 자아, 삼룡아, 그 칼을 못 내겠나?」
머리의 피가 창백한 백 초시의 이마를 쭈쭈루루 흘러 내렸다.
「으, 음 ─」
삼룡은 종시 칼을 내놓지 않았다. 아니, 내놓지 못하였다. 굳은 땀이 비 오듯이 삼룡의 이마에 내솟기 시작하였다.
삼룡은 졌다. 확실히 졌다.
「만일 네가 끝끝내 그 칼을 내놓지 못하겠다면, 가거라! 내 앞에서 물러 가거라!」
「못 가겠다!」
「못 간다? ─」
백 초시의 눈이 번쩍 빛났다.
「정말 못 가겠나?」
「못 가겠다! 너두 장기를 잡아라!」
「이놈의 새끼가!」
백 초시는 획하고 달려 가자마자 추녀 끝에 꽃아 두었던 한 자루의 낫을 빼 들었다.
「앗. 아버지? ─」
「앗, 여보, 여보? ─」
그러는데 대문이 휙 ─ 열리며 성큼성큼 뜰안으로 들어 선 것은, 실로 그것은 이외에도 사복을 입은 땅개 최 달근이가 아닌가.
4
편집이 뜻하지 않은 인물의 출현은 도저히 저지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까지 도달한 유혈의 참극을 수숩하는데 있어서 극히 효과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미 최후를 각오한 바 있는 백 초시였다. 몰락한 가운과 노쇠에 병환까지 겹친 노휴의 몸, 보잘 것은 없으나마 적어도 앞탑골 백 초시가 사나이의 입으로서 지사 허 상진이와 바꾸운 언약(言約)의 불이행에서 오는 욕심한 책임감, 하늘처럼 믿었던 외아들 영민의 배반, 본의 아닌 아들의 출정과 부상, 한 시아비가 두 며느리를 맞지 않을 수 없는 불명예, 운옥의 출타와 살인 등등,……무엇 하나 백 초시의 울화를 풀어 줄만한 계제(階梯)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삼룡이 하나 쯤 없애 버리는 것이 그리 명예롭지는 못 했으나 오늘날 이 마당에 선 백 초시로서는 칼부림을 하는 삼룡을 상대로 최후의 울분을 풀어 보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 못한 노릇은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만일 박 삼룡이가 백 초시 손에 식칼을 내주었던들 백 초시는 서슴치 않고 삼룡의 뱃대기에다 구멍을 뚫었을 것이다.
「앗, 백초시 어른!」
최 달근은 달려들어 낫 자루를 휘두르는 백 초시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놓시요, 놓아 주시요!」
「안 됩니다!」
최 달근은 백 초시의 손에서 쟁기를 빼앗아 앞채 지붕위에 휘 ─ 던져 올리고 나서
「박 주사도 그 칼을 이리 내시요!」
「아, 나리, 서울서 언제 내려 오셨습니까?」
삼룡은 의외라는 듯이 꺼불하고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답을 않고 최 달근은 삼룡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정지간으로 던져 넣은 후에
「돌아 가시요! 술이 너무 취했소!」
「에, 헤헷……」
「할 말이 있거든 서로가 다 법정에서 합시다.」
「춘심이 년을 보냈을 때는 바빠서 못 떠나시겠다구 하셨다던데…… 어떻게 이처럼 갑자기 떠나 오셨습니까?」
「자세한 말은 이따 만나서 합시다. 지금 오던 길에 댁에 들러서 미망인께 인사는 하고 왔소만…… 하여튼 먼저 돌아 가시요.」
「에, 헤헷, 그럼 이따 다시……」
그러는 삼룡을 최 달근은 등을 밀어 대문 밖으로 내보낸 후에
「백 군의 어머니시지요? 저는 백군과 중학 동창인 최 달근이라는 사람입니다.」
「예, 예, ─」
어머니는 영문을 모르고 그저 당황히 허리를 굽혔다.
「그 분이 오늘 서울서 내려 오는 길에 주재소에 들려서 나를 좋도록 힘쓰셔 주셨소. 잘 인사를 하시우.」
「아이구, 그런 고마우신 어른인 줄두 모루구…… 어서 좀 방으로 들어오시오. 야아, 영민아, 너의 친구가 오셨는데 너는 왜 부처님처럼 우두커니 서만 있느냐, 글쎄?」
어머니는 갑자기 정신이 들어 방으로 부엌으로 광으로 들락날락 서둘러 댄다.
백 초시는 마누라에게
「빨리 저녁 상을 차리도록……」
「예, 예, 지금 곧……」
어머니는 허벙지벙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심각한 얼굴을 짓고 돌부처같이 움직일 줄 모르는 영민을 향하여
「먼 길에 수고로이 오신 분을 어째 빨랑빨랑 방으로 모시지는 못할까?」
「…………」
나무다리를 짚고 영민은 언제까지나 우뚝 최 달근이 앞에 묵묵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