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43장

태극령을 넘어서 경

편집

백 초시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어머니와 아들도 따라 일어났다.

「아니, 바로 그 오 창윤의 딸이야?」

「예에.」

「그래 내 아들 보구 나가서 죽어라 하던 오 창윤이야?」

「그렇습니다.」

「그래 그런 사람과 이 백 초시가 사둔을 맺어야만 한다는 말이냐?」

영민은 머리를 숙였다. 정말 딱한 입장이다.

「…………」

영민은 대답을 못했다.

「그래 내 아들을 끌어내다 죽이겠다는 작자와 사둔을 맺어?」

「지당한 말씀입니다만 그러나 그 분은 아버지의 아들을 사지에게 구해 주려고 노력을 하신분입니다.」

「응? 내 아들을 구해 준다?……아니, 일본을 위해서 죽어라 죽어라 한 것은 누군데 너를 구해 준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죽으라고 고함을 친 것도 그 분이고 뒤로 슬쩍 저를 빼준 것도 그 분입니다.」

「빼 줬다?……」

「예 ──」

「무슨 뜻인고?…… 알기쉽게 좀 똑똑히 이야길 못 하겠니?」

「말씀 드리겠읍니다.」

살기를 띄었던 백 초시의 마음이 약간 누구러지기 시작하였다.

거기서 영민은 학병 권유차로 동경에 왔던 오 창윤씨의 도움으로 국경을 탈출 하려다가 불행이도 준길이에게 붙들린 과정을 쭉 이야기 하고 났을 때 백 초시 영감은 무릎을 탁 치며

「거 사람은 났는데!」

하였다.

「음, 걸출은 걸출이야! 삼국지만 읽어 보더라도 영웅호걸은 대개가 다 그런 위인이었어. 우리 처럼 수신제가(修身齊家) 만을 일삼는 작은 인물이 아니고 그이야 말로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 할인물인걸!」

「아버지, 그 분을 한 번 만나 보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나를 이 두메 산골에 찾아 준다면야 쾌히 만날 수 있지만…… 그러나 내 발루 터불터불 서울까지 찾아 갈 수는 없어! 백 번 죽었다 살아두 백 초시는 언제까지나 백 초시야!」

그렇다. 백 초시는 언제까지나 백 초시 대로 꼿꼿하였다.

아니 그 뿐인가 아들 「 , ! 가진 사람이 딸자식 가진 이에게 먼저 머리를 숙일 수는 없잖아요?…… 내가 뒷탑골 허 상진이를 찾아 가서 먼저 머리를 숙인 것은 아들 가지고 딸 가졌다는 문제가 아니야. 한 사람의 뜻 가진 이를 궁핍으로부터 구해보자는데 있었거든. 제 아무리 세상의 오 창윤인들 내 앞에 와서 머리를 숙여야지. 될 뻔 한 일인가! 에헴!」

백 초시 영감은 수염을 쓸었다.

「아, 참 운옥이의 소식을 들었읍니다.」

「뭐, 운옥이? ──」

어머니와 아버지는 똑같은 놀라움이다.

「예, 운옥은 약 반 년 전까지 서울 어떤 병원에 있었답니다.」

「병원에?……」

「예, 병원에 간호부로 있었다는데 그후 또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읍니다.」

「아이머니나! 어쩌면 운옥이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는 놀랍고 기쁘고 기적과도 같은 한 마디었다.

「음 ── 운옥이가 역시 살아 있구나!」

아버지는 팔장을 끼고 깊은 명상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느냐?」

「네, 자세한 것은 전혀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알고 있는 운옥이는 성품이 착하여 어딜 가던지 뭇 사람의 귀여움과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그러면서 영민은 선량한 실연자 김 준혁을 생각하는 것이다.

「음, 그럴테지! 그러구 말구! 내 눈에 든 아이니 어딜 간들 눈 밖에 나리! 음, 하여튼 천행이다!」

「그런데 아버지께 최후의 한 가지 부탁이 있읍니다.」

「뭣이든 말을 해라. 너를 위해서 죽어야만 한다면 당장에라도 죽어 보이겠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다른 것이 아니오라, 아들 가지신 아버지께서 딸 가진 오 선생께 먼저 한번 찾아 뵈이여야만 되겠읍니다.」

「응?……어째서?……」

백 초시는 의외였다.

「이번 제가 국경을 탈출할 임시에 오 선생께서는 제게 일금 二[이]만 원이라는 대금을 여비로 주셨읍니다.」

「음, 二[이]만 원?……」

「아이 어쩌면!」

그것은 실로 대금이었다.

「그러나 제가 이처럼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이상, 그 돈을 도루 갔다 드려야만 하겠읍니다. 제가 용산부대로 입영은 하지만 군대생활이라 아무래도 자유가 없을 것만 같고 또 그러한 대금을 가지고 갈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음 ──」

「아버지, 저를 위해서 한 번만 오 선생께 머리를 숙여 주십시요.」

「알겠다! 잘 알겠다! 염려 말고 편히 가거라!」

「이것입니다.」

하고 영민은 그때 가방 맨 밑에 신문지로 싸 넣었던 지폐 뭉치를 아버지 앞에 내 놓았다.

이튿날 오후, 주재소 소장 이하 두 사람의 순사와 면사무소에서 몇 사람, 그리고 부락연맹 이사장을 비롯하여 동리 사람들의 전송을 받아 영민은 울며 따라 오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미끌미끌한 눈얼음 길을 태극령 고개로 묵묵히 올라가고 있었다.

「반자이(만세)! 반자이!」

만세 소리는 매양 이사장의 선창으로 불리워진다. 그러면 거기에 따라 사람들이 깃발을 쳐들면서

「반자이! 반자이!」

를 소리높이 불러준다.

「개놈들 같으니, 내 아들이 죽으러 나가는 것이 그리도 기쁘냐?」

아들의 트렁크를 들고 따라 가면서 백 초시는 만세 소리가 들릴 적마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것은 정녕 자기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재촉하고 환영하는 짓궂인, 너무도 짓궂인 악마의 소리와도 같았다.

자칫하면 미끄러지려는 어머니의 걸음이시다. 영민은 어깨 동무를 하듯이 한 팔로 어머니의 몸을, 불면 날아 갈 것처럼 가볍고 수척하신 어머니의 쇠약하신 몸을 부축하며

「아버지에게 약주 너무 많이 사다 드리지 마셔요, 네?」

「아무래도 당분간은 술루 벗을 삼으실걸 뭐.」

「어머니, 인젠 우지 마셔요, 네?」

누가 울고 「 싶어서 울겠니? 그저 자꾸만 눈물이 나오니까, 울지.」

「자아, 눈물을 씻으시구……」

영민은 자기 허리에 찼던 손수건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씻어 드리면서

「어머니, 꼭 약속해요! 제가 꼭 다시 돌아와서 어머니를 뵐테니, 그때를 꼭 기다리셔요, 네?」

「그랬으면 오작이나……오작이나……」

그러는데 일동은 태극령 고개 위 도라지탑 앞에 다달았다.

「자아, 어머니, 인젠 들어 가셔요. 길두 사나운데 인젠 그만 들어 가셔야겠어요.」

어젯밤에 한 약속이었다. 어머니는 태극령까지 나오시고 아버지는 정거장까지 가시기로 굳은 약속이되어 있었던 것이다.

「반자이! 반자이!」

만세 소리가 또 터져 나왔다.

동리 청년들이 들고 왔던 술병을 좔좔좔 밥그릇에 부어 가지고 영민에게 권하며

「자아, 한잔만 들게. 아까 아침부터 권하는 술이 아닌가? 자네가 그처럼 한잔도 안 들고 나간다는 건 우리들의 성의를 너무도 무시하는 것 같아서 말이네.」

오늘은 뒷탑골 준길이가 장가를 드는 날이다. 아까 새벽에 준길이와 최 달근을 비롯하여 동리 청년들이 찾아와서 영민에게 한잔 술을 권했으나 영민은 끝끝내 그것을 거절했던 것이다.

영민은 청년의 손을 힘차게 부여잡으며

「고맙네. 그러나 자네가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줄 마음이 있다면 나에게 술을 권하지 말고 내 아버지가 듣는 데서 반자이를 불러 주지 말게.」

「그런가! 그럼, 아, 잘, 잘 알았네.」

「당신은 인젠 내려 가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역정이나 하듯이 툭 말했다.

「내가 글쎄 널 보내구야 어떻게 살겠니?……」

어머니는 아들의 옷 자락을 바로 잡아 주며 좌악좌악 울기만 한다.

「야아, 어서 내려 가자!」

아버지가 아들의 손목을 잡아 끌고 다자꾸 비탈길로 내려 간다. 끌리어 가며 영민은 목이 메어 외쳤다.

「어, 어머니! 안녕히……안녕히……」

「오, 오, 오냐! 몸 조심……몸 조심 늘……늘……」

그러다가 어머니는 그만 도라지 탑 앞에 펄썩 주저 앉으며

「아이구우, 가슴이야!」

어머니는 가슴을 무섭게 치며 하늘을 우러러 대성통곡을 마침내 하셨다.

「야아, 뒤를 돌아 보지 말아라!」

백 초시는 아들의 손을 꽉 부여잡고 후닥닥 후닥닥 비탈길을 뛰어 내려갔다.

영민은 입술을 꼭 깨물고 아버지가 끄시는 대로 빠른 걸음으로 허벙지벙 따라 내려갔다.

일동은 너 나 할것없이 모두 뜨거워 지는 눈시울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소장도 외면을 하고 멀리 솔밭 사이를 바라보았다.

뒷탑골 동리 밖까지 다달았을 때 영민은 비로소 뒤를 돌아다 보았다. 동리 아낙네들이 서너 사람, 주저앉은 어머니를 잡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조그맣게 쳐다보였다.

살을 베듯이 매서운 날씨다.

오후의 태양이 눈 덮인 태극령 고개 위에서 바늘처럼 눈부시다. 어제 하룻밤을 어머니 품에서 울어새운 영민의 눈에는 흰 눈길이 노랗게 바라보였다.

어렸을 때 거의 배를 잘 앓던 영민이가 금계랍을 먹고 바라보던 하늘의 노랗던 생각이 불쑥 난다.

뚜당 뚱땅, 뚜당 뚱땅……

장구 소리가 멋지게 들려온다.

뒤이여 술장사 평양 아주머니의 수심가가 흘러 나왔다.

「노자 노자, 젊어 청춘에 맘대루 노자, 늙어 백수가 지며는 못 놀리로구나, 참으로 진정에 세월 가는 것 설어서 나는 못 살리로다……」

「좋다, 좋구나!」

준길이와 최 달근을 중심으로 한 주객들은 무릎을 쳤다.

「야아, 평양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젊었을 땐 사내 간장을 몇 개나 녹여 놓았소?」

「한 쉰아문 녹여 보았지.」

「하하하하, 하하하하……」

주석은 자못 흥이 겨웁다.

준길이의 아내 윤 선생네 집은 뒷탑골을 께어 나가는 바로 한길 가에 있었다 오전에 신랑 잔치를 . 마치고 오후에 들어서는 주석이 벌어진 것이다.

「소장 나리는 아직두 안 넘어 오시나?」

준길이가 팔뚝시계를 자랑삼아 들여다 보았다.

「자아, 아주머니의 그 꾀꼬리 목소리를 한 번 만 더 들어 봅시다.」

「그럽시다가레. 목소리 모자라서 소리 못 하갔소? 자아, 이번엔 산 념불 ── 」

「좋지, 좋아!」

뚜당 뚱땅, 뚜당 뚱땅……

「아아아, 나무아미타불이로다, 황천 길이 얼마나 머언지 한번 가며는 못 오누나, 아아아, 나무아미……」

백 초시는 후딱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 어서 가십시다.」

영민은 아버지의 손을 부득부득 잡아 끌었다.

소장이나 면소 친구나 기타 전송 나온 동리 사람들의 대개는 다 이 혼인 집에서 한잔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모두 걸음을 멈추고 최후의 만세를 불러 주었다.

그러는데 문이 탁 열리면서 주객들이 욹 쓸어 나왔다.

「반자이! 반자이!」

준길이가 앞장을 서서 두 손을 쳐들고 기가 나서 만세를 불렀다.

백 초시는 그때 발을 동동 굴며 발악을 하듯이 고함을 쳤다.

「야이, 이놈들아! 아가리들 닥치구 좀 가만들 못 있겠니! 기가 막힌다, 야이, 이놈들아!」

그러나 그런 것쯤 준길은 태연하다. 그는 술잔과 술병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 오자

「자아, 백 초시 어른, 얼마나 기쁜 날입니까, 술한잔 권하겠읍니다.」

그 순간, 백 초시는 준길의 손에서 술잔을 받아 쥐자 희번득거리는 애꾸눈이 면상을 향하여 내갈겼다.

「이 죽일 놈들아!」

백 초시는 입에다 거품을 물고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최 달근은 시종여일, 혼자 방 안에 앉아서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푸푸 술을 마시면서 중얼거리는 것이다.

「달근아, 너는 왜 준길이처럼 뛰쳐 나가서 만세를 못 부르느냐? 네 동창생이 명예의 출정을 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만세를 못 불러 주느냐? 달근아, 굳세어라! 약해져서는 아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영 사람의 머리 위에 올라 서지를 못할 것이다!」

강 숙희의 죽음 이래 최 , 달근은 걸핏하면 약해지려는 자기 자신을 무섭게 채찍질 하면서 살아 왔던 것이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아버지를 모시고 영민이가 동리 밖으로 빠져 나왔을 즈음 사람들은 모두 준길이와 함께 떨어져 버리고 세 사람의 동리 청년과 두 사람의 주재소 순사가 정거장까지 바라다 준다고 따라 나섰다. 소장으로부터 정거장까지 호송하라는 내명을 받은 두 사람의 순사였다.

그날 밤, 열한 시 차로 영민은 한 사람의 일본인 수송지휘관(輸送指揮官)의 감독 아래 일곱 명의 학도병과 함께 평양 역을 떠났다.

떠날 때 영민이가 아버지의 귀에다 입을 대고 속삭인 한 마디는 이러 하였다.

「아버지, 염려 마셔요. 저는 결코 쌈터까지 끌리어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응?……」

백 초시는 후딱 아들의 비장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 뺍니다! 도중에서 내 뺍니다!」

「음 ──」

「그러니까 아버지 약속하십니다. 제가 집에다 편지를 할 때, 제가 무사히 탈출을 하면 흰 봉투를 사용하겠읍니다.」

「흰 봉투!」

「네, 그러니까 흰 봉투의 편지를 받으신 때는 내용은 어떻던 제가 무사히 탈출한 줄로 믿으시고 안심하여 주십시요.」

「음, 해 봐라! 네 힘껏 해 봐라!」

백 초시도 비장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끄덕 하였다.

「그러니까 보통 때는 누런 봉투를 올릴테니 그리아시고 누런 봉투로 예를 갖추지 못하는 것을 관대히 보아 주십시요.」

「오냐, 오냐, 알았다! 잘 알았다!」

백 초시는 팔소매로 뻐억 눈물을 씻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