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42장

최후의 밤

편집

평양지구 병사 사령부(平壤地區兵事司令部)에서 신체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지 사흘 만에 부락 연맹 이사장을 대동한 주재소 소장이 다음과 같은 요지의 통지서를 갖고 몸소 영민을 찾어 왔다.

「── 二[이]등 보병 백 영민, 소화 十九[십구]년 一[일]월 十五[십오] 일, 용산 제二十五[이십오]부대에 입영할 것 ─」

평양 부대에 입영할 줄 알았던 영민의 기대가 약간 어긋났다.

이 다까다(高田[고전])라는 주재소 소장은 영민이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백초시를 그동안 세 번이나 불러다가 호되게 문초를 하고 야단하던 것은 언제였더냐는 듯이

「오메데도오 · 고자이마쓰(축복합니다)! 아드님이 이번 검사에 훌륭히 합격된 것을 충심으로 축하합니다.」

하고 아주 상냥하기 짝이 없도록 인사를 하였다. 그것을 부락 연맹 이사장이 조선 말로 번역을 하여 백 초시에게 들려 주는 것이다.

사랑방 문갑 앞에서 담배만 뻑뻑 피고 있던 백 초시가

「이건 등을 치구 배 만져 주는 거야?」

하였다. 그 말에 이사장은 원 백 초시 어른두 「 별 말씀을…… 소장이 조선 말을 모르기가 다행이지, 우리 말을 안다면 큰 일나지요.」

「내가 왜 말을 모르는 게 한이라구 그렇게 말해 줘요. 빠가야로!」

백 초시 영감이 동리 아이들 한테 얻어 듣고 아는 말이라고는 이 한 마디 뿐이었다.

「응? 이마 · 난또 · 잇다?(인제 뭐라 했소)……」

소장이 표정을 가다듬으며 이사장에게 물었다.

「빨리 돌아 와서 지원을 하지 않고 공연히 아버지만 고생시킨 자기 아들을 욕하는 것이랍니다.」

「아, 소오까(그런가)!……」

소장은 알뚱말뚱이다.

담배를 피우며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면서 백 초시는 또 한번

「빠가야로!」

했다.

「저거 보시요.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렇게 자꾸만 아들을 욕하겠소.」

「아, 소오까!」

「백 초시 어른, 인젠 정말 그만 하시요. 잘못 하단 내 목이 달아 날까 무섭습니다.」

그럴듯 하니 답변은 해 놓았으나 이사장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내가 왜말을 몰라서 욕을 못한다구 그러니까 뭐라구 하던가?」

「그저 세상이라니 물결치는 대루 따라가면서 사는 것이 제일 편하다구 하면서, 자기두 직무상 할수 없이 그랜 것이지, 뭐 백 초시 어른이 미워서 그랜건 아니라구요.」

「매끈매끈한 녀석 같으니! 요놈들은 미꾸라지 처럼 살짝 빠지기가 일수지.」

「이마 · 난또· 잇다?(지금 뭐라 했소?) ──」

「이처럼 소장께서 몸소 찾아와 주시니 주재소에서 받은 감정은 물로 씻은 듯이 없어지고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 뿐이라고요.」

「아, 소오까!」

그리고 갈 임시에 이사장은

「오늘이 十三[십삼]일이니까요. 내일 밤 열한 시 차로 평양역을 떠나서 모래, 즉 十五[십오]일 아침에 용산 부대에 입영하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내일 평양으로 들어 가서 정거장 앞에 집합을 해야만 되지요. 그러면 내일 다시 뵙겠읍니다. 주재소에서두 사람들이 나와서 정거장까지 전송해 주시겠다고요.」

전송 「 ?……말만은 좋다! 도망할까봐 무서워?…개새끼 같은 놈들!」

「아, 글쎄, 백 초시 어른두!」

「그래 잘 알았네. 어서 내 눈 앞에서 빨랑빨랑 사라져 버리라구 그러게!」

「이마 · 난또 · 잇다?……」

「먼 길에 수고로이 가시라구요.」

「아, 소오까!」

이리하여 두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영민은 아버지 옆에 꿇어 앉아서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 주일 전, 영민을 주재소까지 인도해 주고 나서 박 준길과 최 달근은 다시 평양으로 들어가 사오 일동안 놀다가 오늘 다시 탑골동으로 나왔다. 내일이 준길이가 장가를 드는 날이다.

그날 저녁 술이 한잔 얼근해 진 준길이와 최 달근이가 몇몇 동리 청년들과 함께 영민의 장행회를 한다고 욹 몰려 왔으나 백 초시는 대문을 꽉 잠그고 열어 주지를 않았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또 닭을 잡았다. 오늘째 한주일 동안 종자 암닭을 네 마리나 잡은 어머니였다. 十[십]리나 되는 장터로 가서 어머니는 돼지고기, 소고기를 사 오고 사과도 사 오고 꽂감도 사왔다.

사 오고 싶으신 대로 영민은 어머니를 내버려 두는 것이다.

저녁 상을 끼고 마주 앉아서 충분히 성장한 이 아들과 소주를 몇 잔씩 나누는 것이 백 초시의 가장 으뜸 가는 낙이 되었다.

「세상엔 운이라는 것이 확실히 있기는 있느니라.」

공교롭게 박 준길이에게 붙잡혀 버린 아들의 불운을 백 초시는 한탄하고 나서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빼지 않고 입에 담았다.

「아무리 총알이 비오듯이 쏟아져도 살 놈은 사는거야! 전장에 나갔다고 다 죽는건 아니래두!」

아들의 무릎에다 자기의 무릎을 덧두기듯이 앉아서 진 살만 뜯어서 아들에게 권하면서 쿨쩍쿨쩍 울고 있는 아내에게 하는 백 초시의 서글픈 위로의 말이었다.

「오늘밤을 최후로 내 귀여운 아들이……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으러 나간다!」

그렇다 백 초시 내외에게는 . 아들이 전쟁을 하러 나간다는 의식은 전혀 없었다. 죽으러 나간다. 제발로 걸어서 사형장으로 나간다는 의식 밖에 없었다.

「누구를 위해서 죽는 거냐? 왜 왜놈들 때문에 내 아들이 죽어야 하느냐?

──」

하는 것도 인제는 벌써 낡은 감정이 되어 버린 백초시 내외였다. 다만 한 가지, 이 늙은 아버지와 늙은 어머니에게는

「내 아들이 죽으러 나간다!」

하는, 오로지 그 원통한 일념 뿐이다.

오랫동안 전쟁을 모르고 살아 온 백 초시 내외의 생리로서는, 사람은 자기들처럼 늙어서 죽거나 무슨 돌림 병에 걸려서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물에서 헤엄을 치다가 다리에 쥐가 뻗쳐서 죽거나 ── 하는 것 이외에는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않는가.

전쟁에 나가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조자룡, 관운장 시대에나 있을 것이 고(삼관지를 백초시는 외이다 시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악독한 왜놈들이나 또는 우둔한 대국 사람, 아라사 사람들이나 할 것으로(노일전쟁과 청일 전쟁을 말함이다)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전쟁이 오늘날 직접 백 초시의 뼈를 저리게 하였다.

그것이야 말로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그것도 내 조국을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건, 대체 무어란 말이냐?」

원통하고 기가 막혀서 백 초시는 담뱃대를 꺼꾸로 쥐고 한월(寒月)을 원망스럽게 우러러보며 엄동설한 찬바람 속에서 성난 짐승처럼 뜰안을 삥삥 돌아 다니면서 며칠 밤은 꼬박 뜬 눈으로 새웠다.

그러나 인제는 그러한 희망도 지쳐 버리고 다만 한 줄기 희망 ── 남은 다 죽어도 내 아들 만은 살아 돌아 오겠지, 하는 그것 밖에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하늘이 무심하지 않느니라. 五十[오십]평생 남한테 못할 짓을 한 백 초시는 아니야! ──」

술이 얼근히 취한 백 초시의 눈에서 주먹같은 눈물이 뚝뚝 흘렀다.

아까부터 아들의 손을 다정스레 꼭 잡고 앉아서 쿨쩍쿨쩍 울고 계시던 어머니가 입을 삐죽거리며서

「손에 가시만 배겨두 아플 싸라 마음이 설레구…머리만 따근따근 해두 가슴이 덜컹 내려앉던 아들인데……」

「어머니, 글쎄 울지 마시라는데……」

영민은 꿇어 앉아 자기손을, 그 누구가 뺏어나 갈까 보아 꼭 쥐고 계시는 어머니의 주름살 진 조그만 손등을 영민은 남은 한 손으로 자꾸만 쓸어 드린다.

가무잡잡한 햇볕에 짜들은 손등이시다. 一[일]년 전만해도 손수 농사를 짓지 않아도 좋았던 어머니의 손이었다. 그러던 것이 올 一[일]년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는 손수 농사를 지시었다. 아아 누구를 위한 이 거룩한 노력이 시었던고!

「글쎄 어떤 아들이라구 놈들은 너를 붙들어 간다는 말이냐! 희쭉희쭉 웃을 때 들었던 정……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음마를 할 때 들었던 정……

곤지곤지 짝짝궁, 돌이돌이 짝짝궁…… 말 배우고 글 배워서 훌륭한 사람 되라던 것이……」

좌악좌악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을 생각도 없이 이 늙으신 어머니는 훌륭하게 성장한 아들의 팔을, 어깨를, 등을 돌아 가면서 살뜰히 만져 보시며

「이 살 한점, 이 뼈 한 마디가 자라고 굵을 때마다 엄마의 정이 포옥 포옥 들었단다!」

「어머니!」

그 순간, 영민은 왈칵 어머니를 부여안으며 흑흑 느껴 울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눈물을 보이지 않고 떠나려던 영민이었다. 그 영민이가 마침내 지고 말았다.

「어머니, 울지 마셔요! 저를 울리지 마세요!」

그때 백 초시 영감이 팔소매로 주먹같은 눈물을 뻐억 씻으면서

「울어라! 실컨들 울어라! 울고 싶을 땐 울어야지 별 도리가 있다느냐?…… 나중에 울지 못한 걸 한할 필요는 없다! 개백당 같은 놈들아! 멸망할 놈들아!」

그리고는 제 손으로 술병을 들어 좔좔좔좔, 밥 그릇 뚜껑에다 부었다. 그 눈물 섞인 술을 단 숨에 꿀꺽꿀꺽 냉수를 마시듯 백 초시는 들이켰다. 그리고 연거퍼 또 한 잔 좔좔 붓는 것을 보고 영민은 달려들어 막으며

「아버지, 가따나 쇠약하신 몸에 너무 지나치십니다!」

「몸쯤 쇠약한 게 무어냐? 네가……내 아들이 죽으려 나가는 것이다!」

「원, 아버지두! 전쟁에 나가면 다 죽는가요?」

「아, 참 그랬지! 내 아들 만은 죽지 않을테니, 음, 술은 그만 두겠다.」

백 초시는 입에 댔던 밥 뚜껑을 아들에게 권하면서 쭉 들이켜라 「 . 이 술은 술이 아니고 천년장수(千年長壽) 만병약이다!」

그리고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권주가를 서글프게 읊기 시작하였다.

「권군갱진 일배주 하노니(勸君更進一盃酒), 서출향관 무고인이라(西出鄕關無故人) ─」

흑흑 느끼면서 계산이 처럼 거쉬인 목소리로 흘러 나오는 그 권주가 ── 그것은 이미 노래가 아니고 단장(斷腸)의 아픔을 가진 오열(嗚咽)의 연속이었다.

영민은 눈을 꽉 감고 벌컥벌컥 술을 들이킨다.

이윽고 밤이 깊어서 ── 아들의 트렁크에다 양말, 셔츠, 손수건, 칫솔, 비누 같은 잔자부런한 물건을 채곡채곡 챙겨넣고 있는 어머니의 가엾은 모양이 영민의 가슴을 한없이 아프게 하였다.

「어머니, 저 오늘 밤 어머니 곁에서 자고 싶어요.」

「오냐, 내가 널 품고 자던 것이 얹그제 같은데…」

어머니는 트렁크를 다 챙겨놓고 자리를 깔았다.

「야아, 나두 네 옆에서 하룻 밤만 자 보고 싶구나.」

「아버지, 그러세요. 제가 가운데 눕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양편에 누으시고……」

「오냐, 어디 그래 보자.」

람프 불을 가느다랗게 낮추고 셋은 나란히 누워 자리에 들었다.

어머니는 이불 속에서 아들의 바른편 손을 꽉 잡고 두 손으로 자꾸만 어루만졌다.

영민은 왼인편 손으로 아버지의 손을 더듬어다가 자기 가슴 위에 가만히 올려 놓았다.

「어머니.」

「응? ──」

「아버지.」

「오냐.」

「이처럼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꼭 쥐고 자니 정말 행복스러워요.」

「오냐. ── 그런데……」

하고 어머니는 말머리를 돌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처럼 좋아하는,」

그 서울 색시를 데려 올걸 그랬구나!

「…………」

「너의 아버지가 고집이 너무 세서 三[삼]대 독자 외아들을 장가두 못 들이 구 이 짓을 치르다니……」

「으, 음 ──」

백 초시의 신음 소리다.

「어머니, 아버지 마음 괴롭히시지 말구 인젠 그런 애긴 그만 두셔요.」

「글쎄 네가 그 색실 얼마나 좋아 하믄 집을 쫒겨나면서 꺼정……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 색실 데려다가 손주라도 하나 봤으면 오작 좋겠니?……」

「……어머니, 그렇게 손주가 보고 싶으시나요?」

「그럼 내가 뭘 믿고 사는 줄 아느냐? 네가 아이를 나면 내가 그 손주를 업고 동네 방네 돌아 댕기면서……그런데 그 색신 지금두 서울 사느냐?

「…………」

「괜찮다. 이야길 해 봐라. 오늘 같은 날 아버지가 뭐라구 그런다믄 내가 가만 안 있을테다. 그래 지금도 서울서 사느냐?」

「예에.」

「가끔 만나 보느냐?」

「오랫동안 못 만나 봤어요.」

「왜? 그 색시가 딴데루 시집을 갔느냐?……」

「아, 아니요.」

「그럼?……」

「어머니!」

하고 영민은 어머니의 조그만 손을 꼭 쥐었다.

「어머니, 다 이야기 할까요?」

「오냐, 어서 헤라. 네 말이라면 무슨 말인들 못들어 주겠니?」

「아버지!」

「오냐, 어서 해 봐라.」

「아버지, 고맙읍니다!」

영민은 자기 가슴 위에 놓인 아버지의 거칠은 손을 꽉 쥐어 보면서 지나간 이야기를 쭉 하였을 때 백 초시는 깜짝 놀란다.

「음 ── 삼룡이 녀석의 딸년이 그 색시 아버지의 소실이야? 그리구 그년 때문에 사이가 벌어졌단 말이지?」

예 그리구는 어딜 「 , 갔는지 반 년 동안이나 통 소식이 없더니, 이번 제가 바루 동경을 떠나기 전날, 유경이에게서 편지가 왔답니다.」

「뭐라구 왔더냐?」

「저를 나쁜 사람이라구 원망을 하는 편지었어요. 그런데 어머니.」

「오냐, 어서 애길 해라.」

「그 편지를 보니, 어린애를 낳다구요.」

「응, 아이를 낳다구?……」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 함께 깜짝 놀라신다.

「그래 사내라더냐?」

「그런 건 모르겠어요. 그저 낳다고만 씌어 있어요. 그러니까 어머니, 그 이 두 사람이 과히 미련하는지 않으니까 언젠가는 오해가 풀릴꺼야요. 제가 만일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몸이 되더래도 그 아이만은 틀림없는 어머니의 손준 줄 아시구……」

「오우냐, 오우냐!」

어머니는 목 메인 소리로 대답을 하면서 이블 깃으로 자꾸만 눈물을 씻어 낸다.

「그 녀석들은 딸년까지 들어 붙어서 우리 집안을 못 살게 구는구나! 방정맞은 년 같으니라구!」

「으, 음 ──」

백 초시 영감은 꺼벅꺼벅 천정만 쳐다보고 누웠다.

「그래 서울서 그 색씰 좀 찾아 보지 않구?」

「주소가 씌어 있지 않아서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 그 색시의 아버지 되는 이가 대체 어떤 사람이냐?」

백 초시는 물었다.

「저 혹시 아실런지도 모릅니다만 오 창윤씨라구…」

「뭐, 누구? ──」

「오 창윤씨라구 저……」

「아니, 학병 안 나간다구 떠들던 놈 말이야? ──」

백 초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