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40장

노루 사냥

편집

오징어와 부란디 ─ 한병을 다 마신 최 달근과 박 준길은 어지간히 목이 갈했다. 그래서 기차가 개성역에 도착하자 최 달근은 들창을 열고 머리를 내밀면서

「오챠(차)!」

하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차를 파는 애들이 모다 三[삼]등 찻간 앞으로만 모여 들어 있었다.

「오챠!」

하고 이번에는 박 준길이가 고함을 쳤다. 그래도 애들은 들은척 만척으로 대여섯 객실이 주루루 달린 三[삼]등 찻간 앞에서만 분주히 오락가락 할 뿐, 고함치는 소리에 이리로 달려 온 것은 벤또 장사였다.

「위선 벤또 부터 삽시다.」

준길이가 지갑을 꺼내 벤또 두 개를 사고 또

「오챠!」

하고 고함을 쳤으나 좀처럼 차 장사는 오지를 않는다.

「자식들이 모다가 귀머거리야!」

「어물어물 하다가는 차가 떠나네. 내려 가서 사 갖구 오는 것이 빠를걸.」

그 말에 박 준길은 몸을 일으켜 승강구로 나갔다. 승강구에서 홈으로 내려서려는데

「아, 박군, 이편 쪽이 빠르겠네.」

하고 들창으로 머리를 내민 최 달근이가 준길이에게 고함을 쳤다.

그 소리에 식당차를 한간 사이에 둔 三[삼]등 객실 앞으로 달려 가려던 준길이가 발길을 돌려 또 하나 달린 바로 옆 간인 二[이]등 객실 앞에서 차를 팔고 있는 아이를 향하여 달려 갔다.

그러나 준길이가 채 달려 가기 전에 그 또 바로 옆 간인 一[일]등 차 손님이 들창을 열고

「오챠!」

하고 불렀다.

「네이.」

아이는 자기 등 뒤에서

「어챠! 오챠!」

하면서 따라오는 준길이의 목소리를 듣고도 一[일]등 차 손님에게로 뛰어갔다. 一[일]등 차 손님은 태반 거스름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아이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왕 따라 나선 김이니 준길이도 아이의 뒤를 그냥 쫓아 갈 수 밖에 없었다. 三[삼]등 차가 달린 뒷꽁무니로 가는것 보다 一[일]등 차가 달린 앞대가리로 가는 것이 차가 떠나더라도 타기가 편리도 했다. 一[일]등 차 손님은 五[오]○ 줄이 가까운 일본 사람이었다. 차를 한 종지 들고 거스름은 필요 없다며 돈을 아이에게 쥐여 준다.

「고맙습니다.」

아이가 꺼북하고 인사를 하는데 준길이가 달려 갔다.

「오챠.」

준길은 돈 부터 먼저 쥐어 주면서 차를 청했다.

「네이.」

커다란 주전자에서 김이 물물 나는 뜨거운 차를 토병에다 따라 넣는다. 따라 넣는 동안 준길이는 담배 연기를 후우 하고 내뿜으면서 문득 찻간 안을 들여다 보다가 애꾸눈이 얼굴이 후닥닥 놀래면서 양볼편이 푸루루 경련을 일으키었다.

「으, 으, 응?……」

그것은 五[오]○객이 머리를 도로 디밀은 바로 그 들창 안이다. 하나의 낯익은 얼굴이 신문을 들여다 보고 있지 않는가!

「고맙습니다.」

아이가 쥐여주는 토병을 준길이의 손은 정신없이 받아 들었다.

「영민이 자식이 아닌가?……」

그렇게 의식하는 순간, 준길은 자기 몸을 차체에 다 박쥐처럼 납작 붙여 버렸다. 자기의 존재를 감추고 상대자를 관찰하자는 것이다.

「음, 양복을 입고 중절모를 썼다?……」

처음에는 자기의 눈이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혹시 착각이 아닌가고 생각한 준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착각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백 초시의 아들 영민 임에 틀림이 없었다.

뚜우, 뚜우, 뚜우 ─ 기차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다음 순간, 준길은 홱 돌아서자 스름스름 다가오는 자기 찻잔을 향하여 쏜살같이 맞받아 달려갔다.

「오장!」

절반은 차를 쏟뜨리면서 찻간으로 뛰어들어간 준길이다.

「응? ──」

그러나 준길은 다음 말을 잇지 않는다.

「왜 그러는 거야?」

「히틀러」의 「마인 · 캄프」를 읽고 있던 최 달근이가 준길의 손에서 토병을 받아들고 종지에 한잔따라 마시면서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 거야, 응?」

그때야 비로소 준길은 그 험상궂은 얼굴에 이상한 웃음을 히쭉하고 웃으면서

「오장, 재미있는 애기 하나 할까요?」

「재미있는 얘기?」

「네, 무척 재미있는 얘기!」

「옛말인가?」

「누가 그런 곰팡내 나는 애길 합니까?」

「그럼? ─」

「흐, 흥 ─」

박 준길은 또한번 이상한 웃음을 입가에 지었다.

「오장」

「응?」

「영민이가 말야요.」

「영민이?……」

그 영민이가 이번 졸업을 「 했을텐데 오장의 생각으로선 지원을 했을것 같습니까, 안 했을것 같습니까?」

「안 하구야 견데 배기나?」

「왜 내빼는 수는 없는가요?」

「아, 그건 모르지만……」

「흐흐흥!」

「뭐가 흐흐흥이야?」

「그런데 오장께서는 이번 학병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다니?」

「찬성이십니까?」

「아따 이양반 보게. 찬성 안 하구 헌병 노릇 해먹을 수 있어? 내가 직접 가정 방문을 해서 지원을 시킨 게 몇 사람이나 되는 줄 알아? 무려 한타 ─스는 될꺼네.」

「참 오장께서는 용하셔요.」

「왜 또 갑자기 비행기야?」

「제가 말이예요. 제 친척이나 친구가 지원을 거부하고 내빼는 걸 보구두 슬쩍 눈을 감아 준다면 오장께서는 저를 어떡하시겠읍니까?」

「당장에 이거지!」

하고 최 달근은 손으로 제 모가지를 베어 보인다.

박 준길이가 이러한 다짐을 받아 최 달근을 꼼짝도 못하게 밧줄로 동여매 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五[오]년 전 만주서 아편장사를 하던 준길이와 관동군에서 일을 보던 최 달근이가 우연히 합작을 하여 다소간의 돈을 잡은 후부터 오늘날까지 두 사람이 걸어 나가는 인생의 길에는 별로 이렇다 할 의견의 충돌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 겨울 최 달근이가 천일관에서 장 일수를 살짝 빼돌린 백영민과 신 성호를 그대로 놓아줘버린 후부터 준길은 최 달근의 태도에 불만을 품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두 달 전 허 운옥이를 놓쳐버린 것이 아무리 생각하여도 준길이에게는 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최 달근이가 자기 앞에서 쓰러진 것도 쓰러진 것이지만 금방 일어나서 따라 올라간 최 달근이가 운옥의 그림자를 놓칠 리가 없을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 최 달근이가 운옥을 동정할 하등의 이유도 없을것 같아서 준길이의 의혹은 다만 하나의 의혹대로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두어 온 것이다.

어쨌던 지금 박 준길은 최 달근을 옴짝달짝 못하게 동여매놓았다. 동여매 놓고 준길은 비로소 영민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장, 심심한데 사냥이나 한번 해 볼까요?」

「사냥?」

최 달근은 후딱 주위를 돌아다 보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술두 한잔 얼근히 걸친 김이니 어디 노루 사냥이나 한번 해 보지요.」

「노루가 어디 있어?」

「노루가 한마리 一[일]등차 안에 앉아 있답니다.」

「뭔데?……」

「학병 기피자! 두 주일 후에는 황송하옵게도 천황의 적자로서 출정하지 않으면 아니 될 작자가 아주 멋진 신사 양복을 입고 一[일]등 차 안에 호화롭게 앉아 있는 노루 한 마리! 어떻습니까? 식욕이 통하지 않습니까?」

「누군데? 아는 이야?」

「백 영민!」

「누구?……」

최 달근은 놀란다.

「오장과 중학 동창인 백 영민!」

「음 ─ 백, 영, 민!」

그 순간, 최 달근의 눈초리가 그 어떤 격렬한 투지(鬪志)를 싣고 번쩍 빛났다. 빛나는 그 눈동자 앞에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가는 한 토막의 장면은 ─ 달빛 어린 부벽루 앞 마당에서 영민의 패에게 무참하게도 패해 버린 자기의 무기력이었으며 땅개 최 달근의 불명예였다.

지나간 겨울, 천일관에서 백 영민과 신 성호를 관대히 처분한 것을 준길은 나무랬다. 그러나 그것은 영민이나 신 성호의 직접적인 죄과는 아니었고 단지 장 일수와 동석을 했다는 데서 더 깊은 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영민의 입장은 그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지원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인지두 모르지 않는가?」

「천만에! 내 육감에는 틀림이 없지요! 두고 보면 알지만 자식이 평양역에서 내리는지 않을 꺼니까요.」

최 달근도 실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물은 질문이었다. 신사복을 입고 一 [일]등 차를 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였다.

「하여튼 절 한번 따라와 보시요. 그늘 밑에서 안식처랍시고 숨어있는 노루 새끼의 모양을 한번 보아 둘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 말에 최 달근도 따라 일어섰다.

너무 가까이 가면 노루 「 새끼가 호닥닥 호닥닥 놀낼테니까 먼 발로만 보기로 합시다.」

二[이]등 차 한간을 더 지나고 조그만 차장실을 하나 지나서 두 사람은 마침내 一[일]등 찻간 문 밖에 다달았다.

준길은 손잡이를 돌려 문을 방싯 열었다. 방싯 열어 잡은 그 문 틈으로 네 개의 눈동자가 사냥꾼의 그것 처럼 살기를 띄고 번적 빛났다.

영민은 들고 있던 신문을 옆에 내려놓고 어둠이 총알처럼 흐르는 캄캄한 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 보고 있었다.

서울이 자꾸만 멀어지면 질수록 유경이가 호흡한 공기가 그 거리(距離)와 정반대로 그만큼 희박해 지는것 같아서 영민은 서글퍼지는 것이다.

「나의 의욕과는 정반대로 기차는 무신경하게도 자꾸만 달리는구나!」

자기의 욕망과 정반대로 자기의 몸이 움직인다는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다.

「살아선 무엇 하느냐? 유경일 이대로 서울 바닥에 혼자 남겨두고 갈 바엔 차라리 전장에 나가서 쓰러지는 편이 얼마나 마음이 편할 것인가!」

그렇게도 영민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영민의 생리를 형성하고 있는 감정의 몸부림일 따름이요, 그의 의욕과 지성까지를 포함시킨 영민의 전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결론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민은 유경을 내버려 두고 탈주를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영민은 생명에 대한 애착 보다도 무고한 사람에게 총부리를 내 댐으로써 취해 질, 자기의 가치없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관념이 더 한층 큰것 같았다.

자기가 책임 질 수 없는 행동을 영민으로서는 도저이 취할 수가 없었다.

영민에게는 항시 자기의 행동을 옆에서 감시하는 또 하나의 자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강렬한 자의식(自意識)이 항상 영민의 행동을 장작개비처럼 탄력성을 잃어버리게하는 것이다.

콘사이스의 감상(感傷)이 영민에게 없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영웅주의가 영민에게 결핍된 것이 아니다. 땅개의 출세주의(出世主義)가 영민에게 없는 것이 아니다. 허 운옥의 순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영민에게는 그러한 모든 요소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해서 취하고자 하는 가치 판단이 항상 자기의 의식 세계 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간 백 영민은 운옥의 순정을 버리고 유경의 지성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늘에 와서는 유경에게 대한 연연한 심정을 억제하고 좀더 커다란 가치 의식의 명령에 복종하여 국경을 탈출하려는 것이다.

그때 네 개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던 문이 홱 열리면서 차장이 뚜벅뚜벅 들어왔다.

「야나기상, 야나기 · 게이가꾸상 안 계십니까?」

하고 영민의 가명이 불려진다.

「아, 제가 야나깁니다.」

영민은 명상에서 깨어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봅니다.」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영민은 전보를 받았다.

차장은 전보를 내주고는 다시금 네개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는 문으로 나가 버렸다.

「오 선생께서 갑자기 무슨 전볼까?……」

유 경학이라는 가명을 알고 있는 것은 오 창윤씨밖에 없었다.

「 ─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말라. 오 ─」

영민은 후딱 전보문에서 머리를 들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평양에 도착할 때까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거라. ─ 바꾸어 말하면 그말인데…… 그러니까 또한번 바꾸어 말하면 자리를 비우면 이롭지 못하다는 말이 아닌가! 음 ─」

영민은 머리를 돌려 휘이 한번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러나 평양을 지나면 그 이롭지 못한 것 ─ 다시 말하면 그 어떤 위험이 사라진다는 뜻인데……가만 있자!」

영민은 전보를 친 시간을 들여다 보았다. 그것은 자기가 경성역을 떠난 지 약 十[십]분 후의 일이었다.

「그러면 그 동안에 그 어떤 돌발적인 위험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연을 구체적으로 쓰지 못하고 이처럼 추상으로 쓴 것은?……」

그 순간, 영민은 그 어떤 강력한 권력을 가진 한개의 위험이 자기 신변에 절박한 사실을 충분히 알아채렸다.

그 때까지 방싯 열렸던 도어가 가만히 닫히면서 박 준길과 최 달근은 바로 자기 등 뒤에 달린 차장실로 들어갔다.

박 준길은 자기의 신분 증명서를 차창에게 내 보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요.」

「아, 그러십니까?」

차장은 급실하였다.

「인제 그 전보를 받는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요?」

「야나기 · 게이가꾸장 입니다.」

「야나기 · 게이가꾸! 흥, 백 초시 영감이 언제 창씨를 했었던고?…… 흐흐흥……」

준길은 회심의 웃음을 최 달근에게 싱긋이 웃어보였다.

「탑골동에서 창씨를 안 한건 백 초시 고집쟁이 한사람 뿐인 걸 오장은 모르시겠지요.」

「음 ─」

「야로오(자식), 변성명을 하면 무사히 빠저 나갈 줄 알구?……흥, 잘 안 될걸!」

전보를 칠 때 잘 하노라고 사용한 변성명이 이처럼 도리어 영민의 입장을 불리하게 만들 줄을 전연 몰랐던 오 창윤이가 아니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