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적 양심
편집1
편집욹하고 자동차가 멎기가 바쁘게 오 창윤은 차에서 뛰어 내리자 그 육중한 몸으로 일로 개찰구를 향하여 씩씩거리면서 달려 갔다.
「백군에게 이 일을 알려야만 하겠다!」
뛰어 가면서 오 창윤은 문득 주머니에다 손을 넣었다. 아까 생각으로는 홈안에 까지 들어갈 요량으로 사 두었던 입장권이 요행으로 들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고 제지하는 역원을 가신히 물리치고 개찰구 안으로 들어 섰을 때는 이미 一[일]분 동안의 발차 종이 딱 멎어 버렸을 때였다. 멎어 버리면서 뒤이어 뚜뚜우하는 기적 소리가 오 창윤의 고막을 요란히 울렸다.
그래도 오 창윤은 달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층층대를 뛰어 내려 갔다.
끝까지 다 뛰어 내렸을 때는 벌써 스름스름 움직이던 육중한 차체가 휘익 속력을 내기 시작할 때였다.
「왜 조금만 더 미리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까?」
하였다. 그러나 오 창윤은 영민을 중심으로 한 최 달근과 박 준길이와의 관계를 독자 제씨 처럼 상세히는 몰랐기 때문에 생각이 미쳐 튀어 나오지를 못한 때문이었다.
「그러면 이 일을 어떻걸 것인고?……」
헐떡거리며 원망스럽게 떠나 가는 기차를 멍하니 바라보고 섰다가
「옳지, 전보를 치자!」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오 창윤은 다시금 용기를 얻은 듯이 개찰구를 나와 전보 취급소로 찾아 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보다도 더욱 위험한 일이 아닌가!
차장이 백 영민의 이름을 부르면서 찻간 안을 싸돌아 댕길 것이 아닌가.」
그렇다. 혹시 운이 좋아서 그들의 눈에 띠이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갈 수도 있을런지 모를 영민의 운명을 일부러 그들 앞에 끌어 내놓은 결과 밖에 맺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앗, 그렇다. 영민은 유 경학이라는 오 창윤의 비서로서의 이름을 또 하나 갖구 있는 것이다. 됐다!」
그러나 막상 전보 용지에다 전문을 쓰려고 보니 그 절박한 위험을 어떻게 표시해야 할런지가 문제였다. 박 준길이와 최 달근이가 같은 차에 탔으니 주의하라고 할 수도 없었다 . 그러면 도리어 백 영민이란 인물을 차장이나 경찰관이 더욱 눈여겨 볼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오 창윤은 생각다 못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 잠시도 자리를 비이지 말라. 오 ─」
그것은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 一[일]등 찻간에서 절대로 나오지 말라는 의미였다. 최 달근과 박 준길이가 탄 것은 三[삼]등 차에 틀림 없을테니까 一 [일]등 찻간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러니까 하룻밤 동안 영민이가 찻간 밖에 나오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 전보가 언제 쯤 본인의 손에 들어 갈까요?」
「늦어도 개성(開城)역에서는 받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좀 속히 연락을 취해 주시요.」
「염려 마시요.」
이윽고 오 창윤은 밖으로 나와 자동차를 탔다.
그 즈음, 영민은 차차 멀리 사라지는 서울의 하늘을 창너머로 바라보며 아버지를 생각하고 어머니를 생각하고 운옥을 생각하고 유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끼고 금같은 논을 또 팔아서 三[삼]천 원을 만들어 주신 아버지, 부엌 뒷문 밖에 콩나물과 흰 밥을 지어 놓고 손이 발이 되도록 외아들의 행운을 빌고 계시는 쇠약한 어머니, 불우한 운명을 질머지고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운옥이, 불신의 사나이의 피를 받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하룻밤의 정열을 저주하며 눈물 흘리는 유경이를 영민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것을 생각하다가 영민은 문득 생각이 난듯이 옆에 놓인 가방을 열어 보았다. 광산에 관한 무슨 서류라는 것이 갑자기 보고 싶어 졌던 것이다.
그러나 가방 안에는 광산에 관한 몇 장의 간단한 서류와 청서진이 들어 있을 뿐, 그 보다도 먼저 영민의 시선을 놀랍게 붙잡은 것은 목침만한 시퍼런 지폐 뭉치였다.
「오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무슨 신기스러운 행운의 주인공과도 같은 착각을 일으키면서 영민은 실로 망연자약한 일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十[십] 원 짜리로 二[이]천 장, 二[이]만 원이라는 대금이었다.
「선생님, 저는 이와같은 은덕을 힘입을 아무런 자격도 없는 사람임을 선생님께서는 멀지 않아서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엇 보다도 그것이 그때가 한없이 무서워 집니다. 선생께서 후회하시는 그 얼굴빛이 몸서리치도록 무섭습니다!」
영민은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조용히 중얼 거렸다.
2
편집오 창윤의 생각으로선 최 달근과 박 준길이가 三[삼]등 차에 탔을 줄로만 알았는데 기실은 二[이]등차에 타고 있었다. 헌병대 「파스」를 얻어 가지고 왔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 창윤이가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영민이와 그들의 사이가 훨씬 가까워지는 결과를 맺은 것이다.
식당을 중심으로 하여 뒤가 三[삼]등 객실이고 앞이 二[이]등 객실, 一 [일]등 객실의 순서로 달려 있었다. 두 개 달린 二[이]등 객실 바로 다음이 하나 밖에 없는 一[일]등 객실이었다.
그러면 그들 박 준길이와 최 달근이가 두 개 달린 二[이]등 찻간 중에서 어느 간에 타고 있었느냐 하면 이것 만은 불행중 다행으로서 一[일]등 찻간과 바로 연접해 있는 객실이 아니고 그 다음 찻간이었다. 그러니까 영민이와 그들은 二[이]등 차 한칸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운이라는 것이 세상에는 확실히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운이라는 것이 우리들 인간처럼 생각할 줄을 아는 이성의 소유자라면 우리들은 소위 행운이라는 것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며 불운이라는 것을 두려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노력만 하고 있으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운이라는 것은 생각할 줄을 모르는 일종의 괴물이다. 그 맹목적인, 그리고 그 무신경한 괴물은 제멋대로 싸돌아 다니면서 사람을 웃기기도 하고 사람을 울리기도 한다.
경성역을 떠난지 이미 한 시간 반이 넘었다. 그 한 시간 반 동안 최 달근과 박 준길은 찻창가에 마주 앉아서 트렁크에 넣어 갖구 온 「니뽕 · 부란 디」를 한병 얼근히 걸쳤다.
「사실 말이지 운옥이 년은 탐이 나요. 오장께서두 보시면 녹초가 되실걸요.」
오징어 발을 깨물면서 하는 박 준길의 말이다.
「음, 그렇게두 잘 생겼나?」
지나간 날 자기 집 四[사]조 반에서 화로를 끼고 마주 앉았던 운옥을 최달근은 생각한다. 생각하면서도 그는 자기가 왜 운옥의 안전을 위하여 노력을 했었는지, 그 이유랄까, 동기랄까 하는 것이 최 달근 자신에게도 명확하지가 아직도 않다. 강 숙희의 임종을 보아 주고 나나를 귀여워 해준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어여쁜 젊은 여인에 대한 남성으로서의 호의였던가?
그러한 것도 물론 있었을 께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도 좀더 뿌리 깊은 이유가 있을것 같았다. 그것을 최 달근 자신도 아직 무어라고 분명히 표현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젠 정말로 만주 같은 데로 내뺐을런지 몰라요. 생각만 해두 분해서 못 견디겠어요.」
그러나 최 달근은 대답을 않고 그후 끝끝내 고아원으로 운옥을 다시금 체포하러 가지 않은 자신을 생각하며
「빠르다. 최 달근이여, 네가 사람에게 인정을 쓰는 건 아직도 빠르다! 소 대가리를 까고 돼지멱을 따면서 사람들 앞에 머리를 굽실거리던 네 아버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날, 너는 네 아버지의 시체를 무섭게 흔들어 대면서 아버지의 직업을 얼마나 저주하고 얼마나 원망하며 울었느냐! 네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내가 너를 낳은지 一[일]년만에 왜 동리 밖 우물에 빠져 죽었느냐? 네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내를 능욕하고도 뻔뻔히 활개를 펴고 다닌 것이 누구냐? 세도가 김창봉의 외아들이 그처럼 뻔뻔스레 얼굴을 들고 다니는데 왜 네 아버지는 똑똑한 말 한 마디 못하고 그냥 급실 거리면서 구데기처럼 살다가 죽었느냐? 올라 서라! 사람의 머리 위에 진흙발로 올라 서라!」
시골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一[일]년 동안 평양 황금정 어떤 일본인 상점의 급사로 들어가 있던 아들을 최 달근의 아버지는 기어코 빼내어 중학교엘 보냈다.
「학교엘 가라. 출세를 해라! 온갖 수단을 다해서 사람 위에 앉는 몸이 되어라!」
최 달근의 아버지는 남이 갖지 못하는 재주를 하나 갖구 있었다. 그것은 도박이었다. 최 달근이가 중학 四[사]학년에 아버지를 여읠 때까지 그의 학비는 태반이 아버지의 도박에서 나왔다.
그와같은 과거를 가진 최 달근이가 오늘날 허 운옥에게 인정을 쓴 것이다.
「그렇다. 나에게는 법률적 양심 만이 필요하되 도덕적 양심은 필요하지 않다!」
최 달근은 혼자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법률적 양심이라는 말은 五[오]년 전 영민이가 법률을 공부하겠다는 의사를 백 초시에게 표시할 때에 쓴 것과 똑같은 말이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각각 입에 담은 이 한 마디에는 그 내포하는 관념에 있어서는 먼 간격이 있었다. 영민의 그것은 건전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후에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있었지만 최 달근의 그것은 현존하는 법망 에만 (法網) 걸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양심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날 최 달근이가 허 운옥에게 인정을 쓴 것은 도덕적 양심은 될는지 모르나 법률적 양심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비양심적인 행동이 아닐 수없는 것이다.
그때
「카이죠오(개성)! 카이죠오!」
하는 역보의 목소리와 함께 기차는 개성역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