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보
편집1
편집병원으로 돌아 오니 열두 시가 가까웠다.
「아이 어쩌면, 정말 돌아오시네!」
유경은 마실 간 어머니를 기다리 듯이 운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처럼 저를 기다려 주셨어요?」
운옥은 기뻤다. 외로운 몸에는 그러한 조그만 한 마디가 뼈에 저리게 고마운 법이다.
「기다리지 않구, 그럼.」
「아이 참 혜경씨두.」
「혜경이 ── 그래 주세요.」
「아이유, 황송해요. 나 같은 걸 다 그처럼……」
「언니.」
「응, ── 그래요.」
「아이 어떻게 그처럼 갑자기……」
「고아원에 별 일 없었수?」
「아, 별루……」
「헌병대서 오지 않았어요?」
「아까 낮에 왔었대요. 그래 옷 봇다리랑 가지구 왔어요.」
「나 언니가 그냥 고아원에 눌러 있게 됨 나두 같이 그런데나 가 있어 볼까 했어요.」
「안 되요. 아까 그 애꾸눈이가 혜경씨 얼굴 알고 있지 않아요?」
「참 그랬지!」
유경은 쓸쓸히 말하며
「언니, 꼭 나와 같이 우리 집에 가 있어야 돼요.」
「그렇게 해 주신담……」
「아까 얘기가 한번 울었다우. 배가 고픈게 아냐요?」
「아냐요. 스물 네 시간 동안은 아무 것두 안 먹여도 괜찮아요.」
「젖은 언제부터 나나요?」
「이삼 일 있음 나와요?」
「언니, 애 낳 본 적 있수?」
「애?」
운옥은 머리를 흔들며
「없어요.」
「그럼 언닌 아직 결혼 안 했수?」
「결혼?……글쎄, 내가 결혼을 했었던가, 안했던가?……잘 기억이 안 나요.」
「아이 참, 언니두 사람을 곧잘 웃기셔.」
이리하여 하룻밤을 이야기로 지내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벌써 아침 일곱 시가 가까웠을 무렵이었다.
숙자가 검온을 하려 들어오면서
「아이, 큰 일 났대요!」
하고, 고함을 쳤다.
「왜요?」
유경이와 운옥은 깜짝 놀래어 숙자의 울룽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글쎄 부장 선생님의 아드님이 병정으로 뽑혀 나간대요!」
「병정?……지원으로?」
「아니야요. 연희 전문 학교를 댕기는데 이번에 죄다 학병으로 뽑혀 나가게 됐대요.」
「학병이라구요?」
「네, 지금 아래층에선 신문들을 보고 야단 법석이랍니다. 대학생, 전문 학생들이 쌈터로 나간대요.」
「아니, 그건 일본인 학도병이 아냐요?」
하고, 유경은 물었다.
「아냐요. 일본인 학생이야 나가는게 당연하지만 조선 학생들이 죄다 나가게 됐대요. 신문 가져다 드려요?」
「네, 좀 갖다 주세요!」
긴장한 표정으로 유경이가외치 듯이 대답하였을때, 갖난애의 낯을 닦아 주고 있던 운옥이의 얼굴이 역시 긴장미를 띄고 번쩍 들리었다.
이윽고 숙자가 다시 나갔다가 신문을 들고 들어왔다.
「이걸 보세요. 조선 학생들이 죄다 쓸어 나가게됐대요.」
유경의 얼굴이 해말쑥 해지면서 신문 제1면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그보다 못지 않게 창백한 또 하나 운옥의 얼굴이 바로 그 옆에서 뚫어지도록 신문지를 들여다 보고 있었던 것이니 ── 우리들도 천황의 적자(赤子)!
── 조선, 대만인 학도의 특별 지원병의 길은 마침내 열리다!
이러한 제목 밑에 대서특서된 그 기사의 내영인즉 일본인 재학생의 징병 연기의 전면적 정지로 말미암아 법문과 계통의 전문 학교, 대학교에 재학중인 징병적령(徵兵適齡)을 지난 자는 전부 학창으로부터 출정하게 되었거니와 이와 동시에 아직 징병제가 실시 되지 않은 재학중에 있는 조선, 대만의 동포에게는 금번 특별 지원병과 한 걸음 더 나가서 간부 후보생(幹部候補生)이 될 영광의 길은 마침내 열리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채용검사는 十二[십이]월 十一[십일]일부터 十二[십이]월 말일 까지에 시행되고 합격자는 곧 현역(現役)에 편입되어 입영(入營) 기일은 소화 十九[십구]년 一[일]월 二十[이십]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문 제二[이]면에는 이 영광스러운 제도를 찬양하는 여러 명사들 사이에서 유경은 자기 아버지 오 창윤의 사진을 발견하고 놀랐다.
「혜경씨, 누구 학병으로 나갈 사람이 있나요?」
유경의 핏기 잃은 얼굴을 쳐다보면서 운옥은 조용히 물었다.
「아, 아니요.」
유경은 살랑살랑 머리를 흔들다가 후딱 운옥의 창백한 안색을 바라보며
「누구 나갈 사람이 있어요?」
하고, 물었을 때
「아, 아니요.」
운옥도 똑같이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것은 一九四三[일구사삼]년 十[십]월 二十[이십]일 아침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