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야곡
편집1
편집산모와 산아가 입원실로 도로 옮겨 온것은 거의 저녁 무렵이 가까웠을 때였다.
들창 밑에 산아용 소침대가 세 개 놓여 있었다. 그중 한 대에 어린애는 누워서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주먹만한 빨간 얼굴을 굼벵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유경은 눈물을 거두고
「저, 금순 언니.」
「네?」
「고아원으론 갈 수 없으시죠?」
「네, 거긴…… 거긴 벌써 그 놈들의 손이 뻗쳤을꺼야요.」
「그럼 다른데 어디 갈데 있어요?」
「다른 데라구……별루……」
망서리는 운옥을 보고
「그럼 언니, 이렇게 함 어떠세요? ── 여기서 며칠 같이 지내다가 저희 집에 같이 감 안될까요?」
「고맙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믄…… 그래두 어떻게 그처럼 염치 없게……」
운옥은 정말 황송하다. 정말로 갈래야 갈 곳이 없는 운옥이가 아닌가.
「아냐요. 언니의 사정이지만 언니 같은 이가 당분간 제 옆에 계셔 주신 담…… 제 몸이 추셀 때까지만……」
해산 직전까지도 제 몸 하나 제가 못 건사하겠느냐고 자기의 기력을 굳게 믿고 있던 유경이었지만 이처럼 탁 몸을 풀고 보니 언제 몸이 추세서 제 손으로 끼니를 끓일 것 같지가 전혀 않았다.
「그렇게도 외로운 몸이시나요?」
「…………」
그 말에는 대답이 없이 유경은 한참동안 잠자코 있다가
「그렇게만 해주신담 그 은혜 일생 두고 고맙겠어요.」
「아니야요. 그렇게만 해 주신다믄 전 정말로 눈물이 나도록 고마워요.」
「그럼 됐어요. 피차 좋은 일이니 됐어요.」
부장에게도 그런 말을 전하고 며칠 동안 병원에서 유경이의 심부름을 보아 주기로 하였다.
「정말 잘 됐어요. 보아하니 두 분이 다 외로운 몸인것 같은데 참 잘 되셨구먼요.」
간호부장도 이 기연(奇緣)을 중심으로 축복하였다.
「다 부장 선생님의 덕택이야요.」
운옥은 부장과 산부를 하늘처럼 우럴어 보며 존경하는 것이다.
부장의 알선으로 환자용 식사를 한 사람 분 더 청하여 운옥이와 유경은 정말 다사로운 형제처럼 저녁을 먹고 나서
「정말 아무도 안 계시나요? 아까는 어머님을 불러 달라구 그러셨는데 ……」
운옥은 물었다. 유경은 쓸쓸히 웃으며
「아무도 없어요.」
「애기 아버지두요?」
「네 ──」
「그래두 아까는……」
「그거야 누구든 급해 짐 어머니를 찾구, 남편을 찾구, 그러는 거지 뭐야요?」
무슨 말 못할 깊은 사정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운옥의 겸손함은 그 이상 캐묻지를 않았다.
전등불이 갖 들어온 조용한 병실이다. 꿈틀거리든 갖난애도 인제는 잠이 들었다.
두 젊은 여인은 후딱 말을 끓고 황혼 속에 고요히 저물어가는 삭막한 가을 하늘을 들창 밖에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후우우 ──」
하고, 꺼질것 같은 긴 한숨을 동시에 쉬었다.
그것은 외롭고 거치러운 청춘항로(靑春航路)의 뱃사공인 두 젊은 여인의 고달픈 영혼의 오열(嗚咽)이었다.
삭막하게 저물어가는 그 가을 하늘을 내다 보다가 운옥은 문득 나나를 생각하였다.
「아주머니, 아빠 꼭 데리고 오세요! 꼭요, 꼭요!」
앙상하게 잎이 떨어진 은행나무 밑에서 나불거리든 나나의 손길을 운옥은 생각한다. 그 나나가 날이 저물도록 돌아 올 줄을 모르는 아주머니를 얼마나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을 것인고! 운옥은 가슴이 아펐다.
「재밤 중에 몰래 가 볼까?」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다. 나나에 대한 가엾음 보다도 한 걸음 먼저 제 몸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자기 자신이 운옥은 한없이 얄미워 지는 것이다.
운옥이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유경은 영민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해산은 했다면 「 그이는 기뻐할 것일까, 슬퍼할 것일까? ── 그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九[구]월에 졸업이니까 지금 쯤은 집에 돌아와 있을런지도 모르지. 아니, 그때의 그 일본 여자와 동경서 그냥 살림을 채려 놨을런지도 모르지, 내가 이 애를 업고 집으로든지 동경으로든지 그이를 찾아 들어 감 어떨꼬?…… 그래두 제 핏줄기를 받은 어린 것을 설마 모른다고야 할라구? 나쁜 사나이! 사람을 글쎄 그렇게 골탕을 먹일 줄이야!」
그러다가 유경은 입술을 꼭 깨물며
「아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아비가 없어도 어린애는 자라는 법이다. 어떠한 곤란이 부닥쳐도 나는 어린애를 훌륭히 키워야만 한다! 나는 자신이 있다! 어서 바삐 내 몸만 추세어라! 구두 신던 발에 고무신을 끌고 가방 들던 손에 나는 사과 광주리를 들을 테다! 들을 테다!」
어린 것의 그 무심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유경은 비장한 부르짖음을 마음으로 부르짖었다.
2
편집「애기 이름, 지어 줘야지 않아요?」
운옥이가 어린애를 붙안고 유경의 옆으로 다가 왔다.
「좋은 이름 하나 지어 주세요.」
「거야 어머니가 지어야지요. 원래는 아버지가 짓는법이지 만두……아버지 성이 뭣이지요?」
「아, 아버지 성은……」
유경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사생아(私生兒)에게 아버지가 어디 있담!
결국에 있어서는 유경 자신의 성을 따를 수 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버지의 성을
「백씨예요.」
하려던 혀 끝이 뺑 돌아
「오씬데요. 아버지 성은……」
하였다.
「아, 오씨 ── 그럼 오씨 성엔 무슨 이름이 좋을까?」
그러면서 운옥은 어린애를 들여다 보았다.
「금순 언니, 무슨 금자예요?」
「거문고 금(琴)잔데요.」
거문고 금 무척 「 ! 예쁜 글자예요. 언니 이름자 하나 따서 짓구 싶어요.
괜찮죠?」
「아이, 괜찮지만두……너무 황송해요!」
「거문고 금! 사내 이름엔 좀 지나치게 가냘프지만……아, 금동(琴童)임 어때요?」
「금동이?」
「네, 거문고를 품은 동자(童子) ── 금동이! 오 금동이!」
「그러구 보니 참 좋은 이름예요. 금동이! 그래두 아이동 자가 들어가서 어딘가 약간 시굴뚜기 같잖어요?」
「언니, 시굴뚜기 싫으슈?」
「그렇지두 않지만요.」
「너무 뺀질뺀질 한것 보다 수수한데 또 좋은 점두 있죠.」
그러면서 문득 유경은 영민을 생각했다. 유경이가 맨처음 영민을 보고 느낀 가장 좋았던 인상은 그 어딘가 시꿀뚜기 티를 떨쳐 버리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수수한데 있었다. 동경 물을 몇달만 먹고 나면
「내가 언제 돼지똥이나 소똥 냄새 품기는 시굴 태생이었드냐?」
는 듯이, 유학생의 태반이 뺀질뺀질해 지는 꼴들을 보아온 유경이었다.
그러한 학생일쑤록 자존심이 없고 인생관에 심지(.)가 없다. 조금만 이편에서 호의를 보여 주면 개처럼 비굴해 지고 양처럼 온순해 진다.
영민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영민의 자존심을 꺾는 오로지 단 하나의 무기는 이편에서 보이는 호의(好意)가 아니고 이편에서 보이는 순정이었다. 진실이었다.
「금동아, 어디 얼굴 좀 보자. 너 이담 커서 재상이 되구 대통령이 돼두 금순 아주머니를 잊지 않겠지? 거문고 금자를 생각할 때마다 나를 생각해 주련?」
사실 운옥은 지나간 날에 있어서 갖난애를 볼 때마다 무척 탐이 났다. 하늘 아래 땅 위에 단 한 사람뿐인 그 지아비 백 영민의 씨를 받아 봤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는 말의 몇 갑절의 행복을 차지 할수 있을것 같았다.
그때 운옥은 불현듯 또 나나를 생각했다. 자기를 어머니처럼 기다리고 있는 나나의 가엾은 모습을 컴컴한 고아원 한 구석에 그려보는 순간, 운옥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러한 나나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여기서 밤을 새 운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하여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성실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을 저바리는 것 같았다.
「어떠한 위험이 있을지라도 나나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이 하룻밤을 새울 수는 없다 그렇다 나는 ! . 나나를 만나야 한다! 강 숙희의 유언을 실행해야만 한다!」
운옥은 갓난애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저 나 잠깐만 다녀 와야겠어요.」
「이 밤중에 어디를 요?」
「제가 있던 고아원엘 좀 다녀 와야겠어요.」
「고아원엘? ── 위험하다면서요?」
「그래두 꼭 다녀 와야 될 일이 있어요. 낮과 달라서 캄캄하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아이머니나! 그래 이 밤으로 다녀 오겠어요?」
「그럼요.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쯤 걸리믄 다녀 와요.」
「꼭 다녀 올테야요?」
유경의 표정이 갑자기 쓸쓸해 진다.
「언니 없음 나 외로워서 혼자 못 있을것 같아요.」
「꼭 다녀 올테니 기다려 주세요.」
유경도 하는 수 없어서
「그럼 꼭 다녀 올것, 약속해요.」
유경은 어린애들처럼 방그레 웃으면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운옥도 같이 새끼손가락으로 약속의 표적을 하였다.
「언니, 몸조심 하세요.」
「염려 마세요.」
그러면서 운옥은 긴장한 얼굴로 살그머니 복도로 빠져 나갔다.
별은 총총 하지만 달 없는 캄캄한 가을 밤이다.
었다.
운옥은 후딱 발걸음을 멈추고 밤 바람이 거세게 이는 어둠 속을 뚫고 고아원에 무슨 이상이 없는가고 가만히 동정을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하등의 이상도 있는것 같지 않았다. 고아들이 잠들어 있는 침방과 저편 쪽 원장실에서 가느다란 불빛이 새어 나올 뿐, 그 고즈넉한 정경이 어느 때와 다름이 없다.
운옥은 발자욱 소리와 숨 소리를 똑같이 죽이면서 캄캄한 고아원 마당으로 들어 서기가 바쁘게 앙상하게 잎이 떨어진 은행나무 아래로 고양이처럼 살살 걸어 갔다.
세 아름이나 되는 묵은 은행나무는 밑동이 썩어서 뻥 구멍이 뚫려 있었다.
운옥은 얼른 그 구멍으로 손을 쓰러 넣어 버선짝 속에 든 권총을 끄내 들었다.
권총 잡은 손을 치마 속으로 쓰러 넣고 운옥은 우선 컴컴한 운동장을 지나 고아들이 잠들어 있는 침방을 향하여 걸어갔다. 바락크 식으로 된 낮으막식한 유리창 하나를 살그머니 열고 一○[일공]촉 짜리 전등 밑에서 고달피 잠든 어린 얼굴들을 한번 삥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 보아도 나나의 얼굴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나는 봉녀나 덕봉이하고 잘 놀았기 때문에 그 두 아이 사이에 반드시 끼어 있을 줄 알았던 운옥이었다.
「어딜 갔을까?」
「그 순간, 운옥은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생각하던 대루 손이 뻗쳤구나! 최 달근과 박 준길이가 나타나서 나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운옥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다. 그렇다면 그 놈들은 필시 이 고아원 근처에 잠복하고 있으면서 내가 돌아오기를 대기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자기 등 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준길이의 독수리 같은 손길이 덤썩 자기의 목덜미를 긁어 댕기는것 같아서 운옥은 홱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어둠을 뚫고 내다보아도 사람의 인기척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