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하늘이여
편집1
편집준길은 선뜻 안으로 들어서면서 희번득거리는 애꾸눈으로 방 안을 한 번 휘이 둘러 보았다.
간호부 한 사람과 이불을 쓰고 돌아 누운 여자 환자 두 사람 뿐이다. 준길은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방 구석과 침대 밑을 들여다 보았으나 어느 쥐구멍으로 홀랑 숨어 들었는지 운옥의 자태는 보이지 않는다.
「빨리 이 방을 나가시요! 당신은 이 이상 더 이 신성한 산실을 모독할 권리는 없을 것입니다!」
간호부장은 앞을 막아서면서 이 무지한 인간을 떠밀었다.
「나는 다만 나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할 따름이요.」
극히 퉁명스런 대답이 무자비하게 흘러나왔다.
「당신은 신의 존재가 무섭지 않습니까?」
「나는 교인이 아니요! 나는 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요.」
「신은 교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양심에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러한 거치장스런 양심이 필요치가 않소.」
그 한 마디에 부장은
「오오, 주님이시여! 이 불쌍한 인간을 구제하십시요!」
하면서, 하늘을 우러러 합장을 하였다.
「흥, 누구더러 불쌍한 인간이라구? 당신이야 말로 불쌍한 인간이요. 신이 어디 있으며 하느님이 어디 있다는 말이요?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속이지 말아요.」
그러다가 준길은 이불을 푹 쓰고 돌아 누운 두 사람의 환자를 그 어떤 의혹에 찬 눈초리로 번갈아 바라보고 섰다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다른 방에서는 자기가 들어서자 이불을 쓰고 돌아 누었던 환자들도 모두 무슨 일이 생겼나하고 얼굴을 내놓고 자기를 바라보았건만 어찌된 셈인지 이 방만은 그렇지가 않다 . 그러니까 환자의 얼굴을 볼 수가 없는 것이 준길은 무척 마음에 걸렸다.
「미안하지만 잠깐만 이편으로 돌아 누워 주시요.」
준길은 그러면서 뚜벅뚜벅 운옥의 침대 옆으로 걸어 가질 않는가!
「앗, 안 돼요! 당신은 신성한 산부를 모욕하면 안 돼요! 당신은 하늘이 무섭지 않소?」
부장은 깜짝놀라 두 팔을 벌리고 다시금 준길이 앞에 막아 섰다.
그때까지 죽은듯이 고요하던 외인편 쪽 산부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이불을 바싹 끌어올려 새까만 뒷덜미가 약간 보이던 머리가 완전히 감추이도록 뒤집어 썼던 것이다.
그 순간, 준길이의 눈초리가 번쩍 빛났다. 그것은 확실히 준길이의 눈에는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운옥이 곁으로 걸어갈려던 준길이의 발걸음이 홱 돌아서면서 만류하는 부장을 떠밀치고 외인편 침대로 걸어 가자마자 머리까지 푹 뒤집어 쓴 수상한 산부의 이불을 홱 벗겨버리며 산부의 얼굴을 덥썩 들여다보았다.
아니, 들여다보려는 바로 그 찰나, 죽은 듯이 누어 있던 젊은 산부가 침대 위에 발딱 일어나 앉으며
「이 배운것 없는 놈아!」
하고, 외치자마자 희번득거리는 애꾸눈이의 험상궂은 면상을
「찰싹!」
하고, 내갈겼다.
「이 놈아! 너두 사람이야? 너두 네 어미가 있어?」
젊은 산부는 흐트러진 옷깃을 바로잡으며 분노로 말미암아 온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발악을 하듯이 부르짖었다.
「그처럼 사리를 분간하여 이야기하시는 부장 어른의 말씀이 아직도 당신의 귀에 들어가지가 않는다는 말이요?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의 산실에두 함부로 드나들 인간이구……아니, 당신은 당신 예편네 산실에 뭇 사나이가 들어와서 이불자락을 벗겨두 그래 마음이 편하겠다는 말이요? 대답을 해봐요!
어서 대답해봐요. 내 앞에서 똑똑히 대답을 해요!」
거치장스런 양심 같은 것은 필요없다던 준길이에게도 이 젊은 산부의 날카로운 마지막 한 마디가 마음을 찔렀다.
「좀 지나쳤다!」
하는, 생각이 금수(禽獸)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준길이에게도 들었다.
「아, 실례를…… 그만 실례를 했읍니다.」
준길은 꺼불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때 부장이 산부 옆으로 달려들며 너무 흥분하지 마시요 「 . 순산이 임박한 귀중한 몸인데……원장 선생님이 이 일을 아신다면 큰문제가 일어 나겠소.」
하고, 수선을 떨면서 은근히 준길이를 위협하였다.
「가만 계세요, 부장 어른!」
하고, 그때 산부는 매서운 눈초리로 준길을 쏘아보며
「당신의 이름이 뭔지 대구 가요! 당신은 말마다 직무니 직권이니 하지마는 그래 내 남편두 못 들어오는 이 방에 당신이 들어와두 좋다는 그러한 떳떳한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내 남편에게 물어 볼테야요! 내 남편의 말 한마디면 당신 같은 인간의 목은 열 개라두 잘라버릴 수 있어! 이름을 대구 가요!」
젊은 산부는 똑바로 사나이를 쏘아보면서 호되게 대들었다.
2
편집권력을 믿는 자는 권력에 약한 자다.
목을 베인다는 말이 떨어지자 정말로 준길이의 목이 흠칫하고 자라처럼 줄어 들었다.
「정말……정말 실례하였읍니다!」
준길은 또 한번 꺼불하고 이번에는 허리를 굽혔다.
그때 부장이 준길이의 등을 떠밀며
「자아, 젊은이, 어서 나가시요. 당신두 그만 너무 직무에 열중해서 저지른 행동이지, 뭐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럼 부장 어른, 실례하겠읍니다.」
준길은 등을 떠미는 대로 밖으로 나가면서 운옥을 힐끗 바라보았으나 그 이상 더 용기가 나지 않았다.
「후우 ──」
하고, 일동은 긴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준길이의 발자욱 소리가 층층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마지막까지 문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던 부장이 침대로 뛰어오며 젊은 산부를 와락 끌어 안았다.
「어쩌면……어쩌면……」
치가 덜덜 떨며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아, 부장 선생!」
젊은 산부도 와들와들 떨고 있다.
「젊은이가…… 젊은이가 어쩌면 그처럼 담이 있으시우?」
그러다가 오뚜기처럼 눈이 동그래서 서 있는 젊은 간호원을 향하여
「숙자, 빨리 내려가서 그 녀석들이 갔나 안 갔나, 살피고 와요.」
「네.」
숙자는 밖으로 뛰어 나갔다.
이윽고 숙자가 돌아왔다.
「갔어요. 둘이서 전차 길로 내려갔어요.」
「그래? ── 그럼 숙자는 나가 있어요. 당분간 이 방엔 필요 없으니 들어오지 않아도 좋아요. 내가 찾을 때까지 들어오지 말아요. 그 대신 절대로 오늘 일을 입 밖에 내면 안 돼요!」
「잘 알았읍니다.」
숙자는 물러갔다.
그때 부장은 운옥의 침대로 가서 가만히 이불을 들쳤다.
「안심해요! 돌아갔어요.」
그 말에 운옥은 새우처럼 꼬부리고 누웠던 허리를 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오듯이 흘러내리는 구슬땀 ── 그 땀에 흠뻑 젖은 운옥의 얼굴이 형용할 수 없는 커다란 감격과 감사의 일념으로 말미암아 번쩍 빛났다.
「선생님!」
운옥은 왈칵 달려들어 부장의 품 안에 얼굴을 파묻으며 한참동안 말없이 느껴 울었다.
「울지를 마시요. 그 놈들은 갔으니까 안심하시요.」
「고맙습니다!」
「나 보다도 저이 때문에 당신은 난을 피한 것이요.」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운옥은 그렇게 외치면서 맞은편 침대 앞으로 뛰어 가자 방바닥에 펄썩 꿇어 앉으면서 머리를 땅에다 조았다.
「어떤 분이시길래 생면부지인 저 같은 사람을 위하여 그처럼도……」
정에 격하여 운옥은 다음 말을 잇지 못하였다. 땅에 조은 운옥의 눈에서 한없이 흘러나오는 감사의 눈물 뿐이다.
「일어 나세요. 머리를 들고 나서 이 걸상에 앉으세요.」
젊은 산부는 가쁜 몸을 약간 움직이어 단정히 침대 위에 꿇어 앉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서 이 걸상에 걸터 앉으세요.」
그러나 운옥은 사형대 앞에 끌려 온 사형수처럼 머리를 들지 못한채 그저 흐늑흐늑 느껴 울 따름이었다.
「베풀어 주신 이 은혜는 죽어도 잊을 수가 없읍니다!」
그때 산부는 부장을 향하여
「선생님, 미안하지만 이 분을 일으켜 주세요.」
그 말에 부장은 엎드러진 운옥의 몸을 잡아 일으켜 가지고
「자아, 걸상에 앉아서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세요.」
하고, 운옥을 걸상에 앉히었다. 그러나 일단 걸상에 앉았던 운옥은 그때 와락 달려들어 젊은 산부의 무릎 위에 얼굴을 파묻으며
「고맙습니다! 어떻거면 저는 이 은혜를 갚을 수가 있겠읍니까? 제게 그 방도를 알으켜 주셔요!」
「무슨 말씀을……」
산부는 격정에 물결치는 운옥의 어깨를 다정스럽게 쓰다듬으며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지만……자아, 얼굴을 드세요.」
그렇게 위안의 말을 주면서 젊은 산부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조그만 장 위에서 벗어 놓았던 안경을 댕겨 썼다.
그러나 운옥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침대 위에 엎드려진채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자꾸만 자꾸만 울었다. 一[일]년을 울어도 十[십]년을 울어도 운옥의 눈물은 좀처럼 그칠것 같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