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1권/51장

이별도 즐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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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육체 속에 또 하나의 생명이 움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 때마다 유경은 자꾸만 자연의 신비로움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어린애들이 「 별을 셀 때 왜 자기도 함께 세느냐는 물음에 대답해 주셨죠?」

「그랬지요?」

「또 하나 대답해 주세요, 네?」

「너무 어려운 건 묻지 말아요.」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왜 손가락을 다섯으로 한정을 했을까요?」

유경은 영민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어린애처럼 재롱을 부려 보는 것이다.

「그건 어렵지 않은 문제지요.」

「말해 보세요.」

「만일 손바닥만한 넓이에 손가락을 열 개 달아 놓았다고 가정해 보아요.

총채나 비 같아서 우습지 않아요?」

「그럼 왜 두 개나 세 개는 달지 못했을까요?」

「그건 또 멍텅구리 장갑 같애서 쓰겠어요?」

「하하하……」

유경은 허리가 끓어지게 웃으면서

「명답, 명답!」

「그러니까 손바닥만한 넓이에는 요만큼씩 한 손가락 다섯 개라야만 비로소 균형이 잡히는 것이니까요.」

「그럼 또 하나 ── 눈은 왜 두 개죠? 한 개두 좋구 대여섯 개도 좋을 텐데……」

「그것도 쉽지요. 한 개면 평면만을 볼 수 있으니까 입체(立體)의 미를 모를 것이고, 대여섯 개 되구 보면 초점(焦點)을 맞추기가 어려우니까 잘못하면 양편 옆구리에 있는 눈은 사팔 눈이 되기 쉽지 않아요?」

「명답, 명답!」

유경은 손벽을 치며 좋아한다.

「또 없어요?」

「또 있죠.」

「어디 말해 보아요.」

「아주 척척 박사가 되셨네 ── 코는 왜 둘이야요?」

「코가 어디 둘인가요? 코 구멍이 둘이지.」

「아 참, 코 구멍, 코 구멍!」

「감기 들었을 때 가만히 보아요. 이편 놈이 막히면 저편 놈은 터지구 저편 놈이 막히면 이편 놈이 터지군 하지 않아요?」

「하하핫…… 그래 왜 여나문 개는 못 뚫러 놓는담?」

「벌 둥진 줄 알구 벌들이 날아 들었단 큰일 나게요?」

「하하하…… 아이, 참 웃기네! 인젠 그만 두세요 허리 끓어질까 봐 무서워요.」

「왜 아직 시간이 있는데 하나쯤 더 해 보지요?」

영민은 유쾌하다. 술 기운도 있었지만 유경이를 이처럼 자즈러들게 웃겨 보는 것이 무척 기뻤다.

「그럼 입은 왜 하나야요?」

「입은…… 입은 왜 하나냐구?…… 입은……」

영민은 그만 말이 막혔다.

「모르죠?」

「아, 입은…… 입은……」

「항복하세요!」

「입은…… 아, 모르겠는 걸.」

「그건 모를 이유가 있어요.」

「어째서?」

「다른건 다 신이 묘기(妙技)를 발휘해서 창조했었지만 입만은 신의 실패작이야요. 그러니까 모르죠」

「어째서?」

「나 같음 서넛은 만들어 놨을꺼야요.」

「입이 셋이면 식량난은 현재의 三[삼]배나 더 긴급할텐데……」

「아냐요. 나 같음 먹는 입과 말하는 입과 그리고, 그리고……」

「그리구 애무하는 입을……」

「그래요. 나 같음 따로이 만들어요. 그처럼 중요한 역활을 하는 입을 단 하나로써 세 가지 것을 겸용시킨다는 건 확실히 신의 실패작인걸요.」

천금으로 살 수 없다면 만금으로라도 사보고 싶은 봄 밤을 영민과 유경은 마음껏 즐기려 한다.

이윽고 두 사람은 외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 타고 동경 역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다.

자동차가 「히비야」 공원 앞을 지날 무렵에

「나 이번 집으로 돌아가는 데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러면서 유경은 가방에서 전보 한 장을 꺼냈다.

「어제 저녁에 온 전보야요.」

영민은 전보를 들여다 보았다.

「── 하하ㆍ기도꾸ㆍ스구ㆍ가에레. (모친 병환 위독 곧 돌아 오라) ── 」

영민은 시선을 들며 근심스런 얼굴로

「무슨 병이시게 이처럼 갑자기?……」

「저번에도 한 번 돌아오라는 편지가 있긴 있었어요. 원체 허겁을 잘 부리는 어머니가 돼서 그대루 내버려 두었죠. 그랬더니 이처럼 전보가 오지 않았어요. 감기만 좀 심해두 어머니는 집안 사람을 못살게 구는걸요, 뭐.」

어머니의 허겁 떠는 성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유경은 전보를 받고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유경씬 좀 불효군요.」

「뭘요. 작년에두 그런 일이 한 번 있었어요.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기겁을 해서 돌아가 보니 감기로 누워 있겠죠. 그래 요만 병에 사람을 그처럼 놀라게 하느냐고 했더니, 병두 병이지만, 내가 보구 싶어서 죽겠다나요. 아이 참 어머니두, 하고 나무랬더니, 어머니가 일어나서 벽장을 열어 보이겠죠.」

「벽장을 왜요?」

「실과랑 과자랑 떡이랑 양식이랑 ── 먹을 것이 하나 가뜩 차 있어요.

혼자서 먹으려니 넘어가질 않는다고 하면서 그걸 좀 다 먹어 치우고 가라는 거야요. 아이 참 기가 막혀서 말이 나가야죠.」

「하하하하…… 참 재미 있는 어머니시군요.」

그러는데 자동차가 동경 역 현관에서 멎었다.

차표를 사 가지고 푸렛홈으로 들어 가니 벌써 승객들은 차에 모두 올랐다.

二[이]등 침대차에 유경을 태우고 영민은 도루 밖으로 나와 차창 가에서 유경을 쳐다보며

「며칠이나 걸릴지 가 봐야 알겠군요?」

「뭘요. 한 주일이면 댕겨 와요. 벽장에 먹을 것이 하두 많으면 한 열흘쯤 걸리구요.」

「그랬으면 오죽 좋겠어요?」

「꼭 그럴걸요 뭐. 혼자서 못다 먹음 내 한 봇다리 싸 갖구 올께요.」

「너무 오래 있지 말구 빨리 와요.」

「빨리 오래지 않어두 빨리 오구 싶은걸요, 뭐.」

그러면서 유경은 손을 내밀며

「한 번 꼭 쥐어 주세요. 아프도록…… 꼭……」

영민은 귀여운 듯이 유경의 재롱스런 얼굴을 쳐다보며 유경의 장난깜 같은 조그만 손을 힘있게 쥐어 주었다.

「좀 더 꼭……」

「아프다고 소리는 치지 말아요.」

「글세 염려 말아요.」

「아, 아, 아…… 그만, 그만……」

상쾌한 아픔이었다. 그 아픔을 유경은 전신으로써 맛 보며

「아까 신숙역 대합실에서 내가 읽고 있던 책 ── 그게 무슨 책인지 아세요?」

「아, 참말 그게 무슨 책인가요?」

「아주 재미 있는 책이야요. 알으켜 드리까?…… 아이, 그만 둬!」

유경은 어린애처럼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 신통해서 방글방글 웃는다.

아까 신숙 역 대합실에 들어 섰을 때 유경이가 읽고 있던 책을 무슨 큰 비밀이나 숨기듯이 가방에 집어 넣던 것을 영민은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영민은 그것이 무슨 책인지 무척 마음에 걸렸었다.

「그게 무슨 책이기에 그처럼 재미가 있어요?」

「아주 재미 있는 책! 한 턱 하심 알으켜 드릴까?」

유경은 아주 재미가 난다.

「왜 한 턱만 해요?」

「두 턱 세 턱하실테야요?」

「하구 달구요.」

「그래두 안 알으켜 드릴테야요.」

「그렇게 신통한 책인가요?」

「신통하구 말구요. 영민씨가 보심 정말 깜짝 놀랄 책이야요. 호호호……

아이, 우서 죽겠네! 아이, 재미 있어요!」

그러는데 째르랑째르랑 발차의 종 소리가 드넓은 구내에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나 집에 갔다 와서 알으켜 드리께요, 네? 그리구 그때 굉장한 뉴 ─ 스를 하나 제공할테야요.」

「굉장한 뉴 ─ 스……」

영민은 무슨 영문인지 통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공연히 사람 맘만 조리게 하지 말구 알으켜 줘요. 열흘 동안을 어떻게 기다린담?」

「참 그렇기두 하지만…… 그럼 지금 알으켜 드리까?」

그러면서 유경이가 망서리고 있을 때, 발차의 종소리가 딱 멎으면서 뚜뚜우하고 기적 소리가 났다.

유경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가방에서 책 한 권을 끄내 들고

「내용은 보지 말고 제목만 보세요, 네?」

영민은 책을 받아 쥐며 희미한 전등 불에 책 제목을 비치어 보았다.

「── 「임신과 섭생」?」

그 순간 영민은 후딱 머리를 들고 유경이 얼굴을 찬찬이 쳐다 보았다.

유경의 방글방글 웃고 있던 얼굴이 빨개지며 새침하고 외면을 한다. 일단 외면을 했던 유경의 수집어하는 얼굴이 다시 돌아서며

「알으셨죠?…… 알았음 인제 그 책 이리 주세요.」

그러는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영민은 당황한 표정으로 기차를 따라가며, 그러나 무척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유경이, 정말이요?」

유경은 책을 받아 쥐고 따라오는 영민의 귀에다 입을 갖다 대듯이 하며 가만히 속삭인 한 마디는

「신(神)이란 참 정직하죠? 호호호……」

「아, 유경이!」

그러나 그때는 벌써 책을 쥐고 흔드는 유경의 손이 사람들 머리 위로 점점 사라질 때였다.

영민은 사람의 물결을 헤치면서 유경일 따라간다. 따라가면서 영민은 무척 흥분한 목소리로 커다랗게 외쳤다.

「유경이, 빨리…… 빨리 댕겨 와요!」

그러나 영민의 목소리가 유경이에게 들릴 리는 만무하다.

유경이도 뭐라고 외치는 모양이었으나 종처럼 영민의 귀에까지 오지는 않았다 다만 조그맣게 조그맣게 . , 감실감실 사라지는 유경이의 나불거리는 손이었다.

이윽고 그 육중한 체구를 가진 기차가 완전히 구내를 빠져 나갔을 때도 영민은 쓸쓸해진 푸렛홈에 외로히 남아서 기차가 사라진 저편 하늘을 언제까지나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유경이가…… 유경이가 임신을 했다?」

그것은 유경이에 대한 사랑의 노력을 한층 더 신이 요구하는 것 같았다.

「자아, 유경이! 우리는 서로 힘을 합하여 우리가 가진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아니되게 된 것이요!」

영민은 마음 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으며 내일 아침 인찌기 「소화제빵」에 출근하지 않으면 아니 될 자기 자신을 느끼고 창황한 발걸음으로 개찰구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