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암의 애사
편집1
편집조반을 먹고 영민과 유경은 이 어여쁜 항구의 하루를 마음껏 즐겨 볼 셈으로 여관을 나섰다.
여관을 나섰을 때 아까 조반상을 들고 들어오던 하녀 기미꼬가 구두를 가지런히 내놓으며
「저 해안선 맨 끝까지 걸어 보세요. 아주 기분이 좋아요.」
하고, 애교있는 웃음을 웃어 보인다.
「아 저기 보이는 맨 끝에 말이요?」
영민은 현관을 나서면서 물었다.
「네, 바루 거기가 유명한 『우어미가사끼』(魚見崎[어견기])야요. 멋진 바위와 멋진 솔나무가 꼭 손님의 마음에 드실꺼야요.」
「그렇게 좋은 덴가요?」
「좋구 말구요. 그리구 저 맨 끝에 조그맣게 보이는 바위가 두 개 나란히 서 있읍죠?」
「네.」
「그게 바루 『메오도.이와』(夫婦巖[부부암])야요. 지금 마침 물이 찌었으니까 건너 가 보세요.」
「고맙읍니다. 부부암이란 참 재미있는 바위구먼요.」
「재미있는 이름이죠?」
하고, 기미꼬는 웃음 띤 얼굴을 유경에게로 돌렸다.
유경은 방그레 웃으며
「재미 있군요. 그러나 우리 조선에도 그와 꼭 같은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바위가 있지요.」
「그러셔요? 역시 부부암이란 이름이야요?」
「네, 부부암!」
「아이, 어쩌면!」
기미꼬는 눈을 깜박깜박 하면서 유경을 쳐다보다가
「그러나 조심하세요.」
「왜요?」
「저 부부암 위에선 매년 한두 번씩 젊은 분들이 정사(情死)를 한답니다.」
「정사?」
영민과 유경은 이구동성으로 반문을 하였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부둥켜 안구 물 속으로 첨벙 뛰어 들어 가는것 모르세요? 호호호호……」
「하하하하……」
세 사람은 다 같이 흥미있는 웃음을 폭발시켰다.
그때 아까 정거장에 마중나왔던 사나이가 현관 밖으로 나오면서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하고, 굽실 허리를 굽혔을 때
「아이구 이 팔삭둥이야!」
하고, 기미꼬는 사나이의 어깨를 한 번 툭 치며
「너 같은게 따라 나설까봐 지금 손님은 걱정이신줄을 몰라? 아이구 나무 아미타불」
「부처님이 무얼 먹구 사노?」
그리고는 납신하고 허리를 굽히며
「어서 다녀 오세요. 이런 팔삭둥이는 이 항구처에 단 한 사람 밖에 없으니까, 안심하고 많이 즐기세요, 두분 손님의 아기자기한 속삭임을 방해할 사람은 이 넓은 『아다미』에 한 사람도 없으니 그 점은 조금도 염려 마세요. 호호호호……」
「하하하하……」
일동은 유쾌하게 웃었다.
이윽고 영민과 유경이가 「오자끼」의 기념비 앞을 지날 때
「아무리 보아도 꼭 신판(新版) 강이찌.오미야 같은 걸요!」
하는, 기미꼬의 말 소리가 등 뒤에서 명랑하게 들려 왔다.
2
편집영민과 유경은 가장 행복한 순간을 가슴 속 깊이 호흡하면서 바다 바람이 흐르는 해안선을 「우어미가사끼」로 향하여 걸어 가고 있었다.
「재미 있는 하녀지요?」
「네. 그러나 너무 징그러워요.」
「항구처니까 그렇겠지요.」
「항구처에는 어쩐지 꿈이 담뿍 실려있는 것같아요. 바다가 있구, 배 돛대가 있구, 갈매기가 있구……」
「그리고 정처없이 떠 돌아 다니는 마드로스가 있지요.」
「영민씨!」
「네?……」
「저와 약속 하실테야요?」
「약속은 무슨?……」
「오늘은 말야요.」
「어서 말을 해 보세요.」
「오늘 하루만은……」
「오늘 하루만은?……」
「절대로……」
「절대로?……」
「딱딱한 말을 하지 말것! 이론적이구, 사상적이구, 현실적이구 그리구 또 무엇이 있나? ── 하여튼 그런 딱딱한 얘기는 하지 마세요. 약속 하시겠어요?」
「약속 하지요. 말랑말랑한 이야기만 하라는 말이지요?」
「말랑말랑한 얘기! 흥, 그런 형용사도 우리 말에 있었던가요?」
「있었던 없었던 그런 이론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한게 누구요?」
「아이 참, 제가 법률을 만들어 놓고 제가 범법(犯法)을 했었군요. 자아, 벌금!」
그러면서 유경은 쵸코렡 한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 주었다.
「그러나 이런 것쯤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걸요.」
쵸코렡을 혓바닥 위에서 녹이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초범(初犯)이니 관대히 처분하세요.」
「범인이 여성이니 만큼 그럼 말랑말랑하게 처분해 드리지요.」
「나리, 황송합니다.」
「그러나, 한개 쯤 가지고는 안 될 걸요.」
「그럼 한 개 더 드리지요.」
유경은 또 한 개 주었다.
소금 냄새 그윽히 풍기는 바닷바람이 반원을 그리며 휘여진 해안선을 스치면서 흐른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몸페이」를 입은 여편네들이 생선 함을 어깨에 메고 하느적하느적 걸어간다.
세멘으로 깨끗이 포장을 한 돌다리를 건너서자 거기가 곧 「우 어미가사끼」였다.
웅대한 풍경은 아니었으나 아담한 경치였다.
밀물이 찐 부부암에 파도가 희롱한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두 개의 바위가 다정하게 나란히 서 있다.
「내려 가 볼까요?」
「내려 가 봐요.」
영민은 앞장을 서서 바위 틈으로 비탈 길을 내려갔다.
「손을 붙들어 드릴까요?」
「아이, 괜찮아요.」
그러나 세 걸음도 못 가서 유경의 징을 박은 구두바닥이 바위 위에서 미끄러졌다.
「붙들지 않아도 괜찮겠지요?」
그말에 유경의 고운 눈초리가 영민을 흘기면서 예쁘게 웃는다.
누구 한 사람 보는 이가 없다. 얼마든지 예쁘게 웃어도 하늘과 땅은 질투를 안할 것이다.
「어서 항복을 하고 손을 내미세요.」
「하는 수 없으니 항복을 해 드리지요.」
그러면서 유경은 서슴치 않고 자기 손을 영민에게 주었다.
조그만 손이었다.
아아, 어쩌면 이처럼도 매끄럽고 부드러운 손을 하늘은 창조하셨는고?……
3
편집유경의 손을잡고 영민은 가파러운 돌 길을 바닷가까지 내려갔다.
하얀 파도가 바위 기슭을 간단없이 씻고있다.
「아, 저기 동굴이 있어요.」
험준한 돌 길이 그 조그만 동굴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동굴 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부부암이 보인다.
두 사람은 컴컴한 동굴을 지나 부부암 앞으로 나왔다.
그리 크지 않은 바위 두 개가 물 가운데 둥실 떠 있다. 때마침 간조시(干潮時)라, 영민과 유경은 작은 바위들을 깡총깡총 뛰어 부부암에 올라갔다.
「여기가 좋아요. 여기 않으세요.」
부부암 중턱에 그럴듯한 장소를 발견하고 유경은 어린애처럼 기뻐한다.
두 사람은 가지런히 앉아서 잔잔한 내해(內海)의 수채화(水彩畵)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즐겨본다.
영민은 모자를 벗고 깊이 한 번 심호흡을 하였다. 거센 해풍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산산히 흩으러 놓는다.
「저거 보세요. 『하츠시마』가 아침 보다도 더 똑똑히 보이죠?」
「네, 그림같은 풍경입니다.」
「아 지금 재미있는 얘기 하나 생각해 냈어요.」
「말랑말랑한 얘긴가요?」
「네, 무척 말랑말랑 해요.」
「무슨 이야긴데요?」
「부부암의 전설(傳說) ──」
「아, 참 부부암이 정말 우리 나라에도 있나요?」
「그럼 있죠.」
「어디 있어요?」
「아이, 참 영민씨 고향에 있는 것두 모르셔?」
「내 고향에요?」
영민은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태극령 고개에 「도라지탑」의 전설은 있으나 「부부암」의 전설을 아직 영민은 들은 적이 없었다.
「대동강 하류에 만경대(萬鏡臺)라는 곳이 있죠?」
「아, 있지요. 그런 걸 다 어떻게 아세요?」
영민은 또 한 번 놀랐다.
「다 아는 법이 있어요.」
유경은 깨가 쏟아지게 재미가 난다.
영민은 정말 신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서울 태생인 유경이가 그런 것을 알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글쎄 잠자코 들어 보세요. 바로 그 만경대 위에 부부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요, 바루 이것처럼 크고 작은 바위가 두 개 가지런히 서 있어요.」
「그래요?」
「아이 참 어쩌면 자기 고향의 아름다운 전설도 그처럼 모르실까?」
「정말 금시 초문인데요」
「옛날 얘긴데요. 길동이라는 총각과 보배라는 처녀가 있었대요. 그런데 보배는 명망 높은 재상의 후손이고 길동이는 그댁 하복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사랑은 점점 깊어 가건만 짝이 너무 기운 신분이라, 속세를 저주하다가 어떤날 밤, 두 처녀 총각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만경대 절벽 위에서 대동강 푸른 물 속으로 뛰어 들어 갔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신발을 벗어놓은 그 장소에서 두 개의 돌 뿌리가 움터 나오기 시작하더니, 글쎄 사흘 만에는 두 길이나 되는 커다란 바위가 되었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바위를 「부부암」이라고 불렀다구요. ── 아주 재미 있죠?」
「아주 재미 있구먼요. 그런데 고향 사람인 내가 모르는 걸 어떻게 알아요?」
「그러기에 신통하다지 않아요. 다 아는 법이 있는걸요 뭐.」
「알으켜 주세요.」
「알으켜 드릴까?」
유경은 어린애에게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것같은 흥미를 느끼면서
「소녀 시절에는 읽은 어떤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야요.」
「난 또 실제로 있는 전설이라구요? 하하하하…」
「그만 했음 말랑말랑 하죠?」
「아, 무척!」
그러면서 영민은 슬그머니 유경의 손을 댕겨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