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골 춘심이
편집1
편집춘심이가 들어 앉는다. 다방골 기생 촌에는 그런 소문이 쫙 퍼졌다.
영민이가 탑골동 집을 쫓겨난지 바루 사흘째 잡히는 저녁 무렵, 다방골 춘심이네 집에서는 땅개 최 달근과 애꾸눈이 박 준길이가 술상을 펴고 있었다.
춘심이의 콧 노래가 흘러 나오는 안방을 향하여
「춘심이 술 한 잔 안 따라 줄테야?」
하고 아까부터 최 달근은 재촉이다.
「기생더러 따라 달래구료. 난 기생이 아냐.」
안방 경대 앞에서 파프로 콧잔등을 두드리면서 하는 대답이다.
「허어! 다방골 춘심이가 기생이 아니다?」
「미안합니다.」
「거 너무 뽐내지 말구……사흘 후엔 오 창윤씨의 소실인지 몰라두 아직까진 다방골 춘심이야. 자아, 그러지 말구 한 잔만 따라. 중매비를 너무 박대하면 못쓰는 법이야.」
「또 중매비 타령이야? 아이 지긋지긋두 해라.」
「그러지 말어. 저두 못 먹구 아끼던 인절미를 옆집 늙은 개한테 떼운 셈이다! 너무 박절하게 그러지 말아라 얘.」
그래서 준길이도 웃고 부엌에서 밥을 짓던 춘심이 어머니도 하하하하 하고 한바탕 웃었다. 그때 대문이 찌익 열리며
「박 춘심이, 천일관에서 왔읍니다.」
하고 인력거군이 들어 섰다.
「천일관?……」
하고, 최 달근이가 대신 문을 왈칵 열며
「박 춘심인 기생이 아니야. 이거 왜들 들락날락하는 거야? 늙은 개한테 떼운 것만두 복통을 할 노릇인데, 어떤 잡놈의 개한테 인절밀 또 떼워?」
그래서 집안이 떠나갈 듯이 한바탕 또 웃어댔다.
차부는 히쭉히쭉하며
「나리, 거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 냉큼 돌아가지 못하겠나?」
그때 춘심 어머니가 행주치마에 손을 문지르면서 주방에서 나왔다.
「춘심인 요즘 몸이 좀 편치 않어서 나가질 않는다우.」
「네, 그러셔요! 아, 그렇다면 그렇다구 애당초 말씀하실 것이지…… 이건 어두운 밤중에 홍두깨 모양으루……」
차부는 주절거리며 나가 버렸다.
「하하하하……핫, 핫, 핫, 핫……」
최 달근과 박 준길은 유쾌히 웃었다. 그때야 춘심이도 웃어 죽겠다는 듯이 허리를 꼬며 술상 옆에 건너와 않았다.
「그저 징그러운 걸 봐선……」
그러면서 춘심은 술병을 들었다.
「얘 거 춘심이 술 한 잔 얻어 먹기가 이처럼 힘이 들어서야……」
그때 또 대문 소리가 찌익 났다.
「아니, 또 어떤 잡놈의 개가……」
하고 최 달근은 또 방문을 탁 열어 제쳤다.
「아, 난 또 누군가 하고……박 주사 어른 아니요?」
곰보딱지 삼룡이가 주첨주첨 들어 온다.
「어머니, 아버지 오셔요.」
춘심이가 일어서며 아버지를 맞이 한다.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됐소?」
어머니가 부엌에서 얼굴을 비쭉 내밀면서 물었다.
「다방골 박 주사야 괄세를 하나?」
삼룡이가 두루마기를 벗으면서 하는 만족한 대답이다.
「그래 정식으루 혼사가 됐소?」
「되다 마다! 며칠 후에 준길일 내려보내마구 그랬지.」
「자아, 박주사 어른, 한 잔 드시요. 운수가 대길하여 만사 형통인가 봅니다. 자아 축배를 한 잔……」
「모두가 그저 나리의 덕택이지요.」
2
편집탑골동엘 갔던 삼룡이다.
추위에 꽁꽁 얼었던 곰보딱지 얼굴이 몇잔 술에 금방 대추알처럼 무르 익었다.
「돈이 날개지! 세상에 잘난 놈 있나?」
아들의 혼사가 비교적 순조롭게 된 것을 삼룡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참 미친 놈 다 보겠어. 이 박 삼룡의 돈은 돈이 아닌지 평당 일원 씩을 더 준대도 이 박 삼룡에겐 땅을 못 팔겠다는 미친 놈이 세상엔 있거든.」
그러면서 삼룡은 앞 탑골 백 초시 이야기를 쭉 늘어 놓았다. 그러나 태극령 눈길에서 영민이와 승강이를 했다는 대목에서는
「아, 건방진 자식이 종시 길을 비끼지 않길래 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 그 자식의 목덜미를 잡아 눈 구덩이에 쓰러 넣고 말았지.」
하며, 팔소매를 걷어 보였다.
「그까짓 자식 때려 죽이면 어때요?」
삼룡의 분노를 그대로 받아 들인 준길이의 대답이다.
「그이가 뭘 잘못했기에 때려 죽여요?」
그때까지 술상 옆에서 잠자코 않았던 춘심이가 그 어떤 감정을 품은 날카로운 어조로 톡 쏘았다 . 준길은 무서운 눈초리로 춘심을 날새게 흘기며
「넌 좀 가만 있거라! 되지 못하게……」
「흥, 잘 돼서 고것 밖에 못 됐수?」
「뭣이 어때?」
「때려 죽이려우?」
「요것이!」
「아얏!」
춘심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며 방바닥에 엎드려졌다. 준길의 그 우악스런 손바닥이 춘심의 연약한 볼을 찢어지게 내갈겼다.
「얘, 내버려 둬라.」
그 한 마디 뿐, 삼룡은 본척만척이다.
「너는 애비두 없고 오빠두 없느냐?……너는 매일처럼 이 외눈깔을 못 보느냐?」
「그것과 그이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야요?」
춘심은 발칵 얼굴을 들었다.
「그래두 아가리를 못 닫치겠니?」
준길은 재차 주먹을 들었다.
「박군!」
그때야 비로소 최 달근은 준길이의 주먹 쥔 손목을 막았다.
「그 주먹은 함부로 쓸 것이 아니야. 쓸 데가 따로 있어.」
침착한 어조였다. 그리로
「그런데 듣자니 백 영민이라는 이름은 나두 어디서 듣던 이름 같은데……
어렸을 적에 약혼을 하구……평양서 중학을 마치구……」
「그렇습니다. 그리구 지금 동경 무슨 대학엘 다니는……」
「조도전 대학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조도전 대학……그래 그 자식을 아십니까?」
「아다 마다! 나와 중학 동창인데……」
「아, 그래요?」
그순간, 춘심이의 청각(聽覺)이 사냥개 처럼 날새진다.
「그러면 저 신 성호와도 같은 동창이 아닙니까?」
「왜 아니야? 그리구 지금 우리가 찾아 다니는 장 일수와도 같은 동창이구……음, 그러면 박군을 그처럼 애꾸눈으로 만든 사람이 바루 그 백 영민이의……」
「아내지요.」
「아아, 그랬던가! 예배당에서 애국가를 불렀다는 이가 바루……」
「그렇지요. 그저 그 년을 붙잡기만 하면 양쪽 눈깔에다 깜정 콩알을 박어 버릴 테요!」
「음 ──」
최 달근은 넓고도 좁은 세상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 그이의 소식은 통 모르는가?」
「일 년 전까지는 평양에 있었다구 하는데, 또 누구의 말을 들으면 서울서 얼핏 보았다구두 하구요.」
「벌써 만주 같은 데루 내뺐지, 내 뺐어!」
하고, 삼룡이가 말을 받았다.
3
편집「그런데 영민이 자식이 이번방학에 제 애비에게 집을 쫓겨났단 말이야.」
마음 속이 고수해서 하는 삼룡이의 말이다.
「쫓겨났다구요? 왜요?……」
춘심이가 호닥닥 놀래며 물었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두 애비와 무슨 말 다툼을 한 모양인데……내가 떠나기 이틀 전에 쫓겨 난 것만은 사실이야. 생각컨대 학비 문제 때문일 꺼야.」
「학비 문제라니요?」
춘심이가 바싹 다가 앉는다.
「아들의 학비를 대려구 땅을 내놨다가 내가 사니까 미친 영감이 팔지 않았으니까 학비를 댈 돈이 있나? 그래서 부자지간에 아웅다웅 하다가 결국은 쫓겨 난거지.」
백 영민이가 집을 쫓겨났다?……춘심이의 모든 정열이 그 한 마디에 집중되었다. 四[사]년 전 남행열차 승강구에서 군밤을 까면서 하루 밤을 앉아 새운 키만 컸던 백 영민.
「흥, 집안 꼴 잘 돼 나간다!」
준길은 아버지와 똑같은 감정을 토로하였다.
「오빤 배가 개운 하겠구료?」
「이 년이 아직두 아가리를 못 닫쳐?」
「흥, 잘들 놀구 있다!」
무엇이 이 년아 「 , ? 너같은 것이 암만 그 자식을 싸구 돌아두……흥, 자식이 건방져 먹어서 인젠 너같은 년은 돌아두 안 볼게다! 밸 빠진 년 같으니!」
준길이가 배앝은 그 한 마디는 확실히 춘심이의 기를 꺾어 버리고 말았다.
약이 받친 고양이처럼 춘심은 숨길만이 쌕쌕한다. 춘심은 대꾸를 못한 채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박 춘심이, 천일관에서 왔습니다.」
그때, 또 대문이 열리며 차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 달근이가 또 문을 열어 제친다. 조금 아까 왔던 바루 그 차부였다.
「아니, 몸이 아파서 못 나가겠다면 그만이지, 왜 이리 귀찮게 찾아 다니는 거야?」
「네, 네……그런데 이번엔 손님이 다른뎁쇼. 저 신 선생님께서 특별히 부르신다구요.」
「신 선생?……」
최 달근과 준길이가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네, 그렇게만 여쭈면 잘 아실게라굽쇼.」
그때 춘심이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며
「잠깐만 기다려요! 나 화장 좀 고치구 나갈께요.」
춘심이가 안방으로 건너가서 유달리 짙은 화장을 하고 있을 때 최 달근은
<신 성호다!>
하고, 중얼거렸다.
「신 성호가 특별히 춘심을 부른다?……춘심이가 들어 앉기 전에 한번 더 만나볼 셈인가!……그러나 신 성호로서는 춘심을 요릿집에 부를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한데……그러면……그러면 대체 어떠한 좌석일까?……
누구를 위하여 베풀은 좌석일까?……」
그때 춘심이가 뜰로 내려 서면서
「나리, 술 못따라들여 미안합니다. 호호호……」
하고, 화환(花環)같은 웃음을 남겨 놓고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때 최 달근은 무릎을 탁 치며
「백 영민이가 서울에 온 것이다!」
「백 영민이가요?」
「그렇다. 박 주사가 떠나기 이틀 전에 집을 쫓겨난 영민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신 성호를 태양출판사로 찾아 갔을 때, 동경 가는 길에 한번 서울에 들리겠다는 엽서가 온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아, 그렇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백 영민이가 아니다. 장 일수다! 우리가 찾고 있는 대통령이 틀림없이 동석을 할 것이다.!」
최 달근의 눈초리가 번쩍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