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편집1
편집쏜살같이 달리는 밤 기차 속에서 영민은 유경의 생각을 잠시 멈추고 야마모도 선생의 파란 많던 신혼생활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四[사]년 전 영민은 선생의 집 이층에 하숙을 하고 있었다. 「와 까마츠쵸오」에 있는 조그만 문화 주택이었다. 가족이라고는 늙은 어머니와 철도성에 취직해 다니는 동생과 단 세 식구였다. 생활은 그리 풍족하지는 못하나 중류였다. 一[일]년 후 동생은 남만주 철도 회사로 전근이 되어 가고 선생은 「마루노 . 우찌」에 있는 어떤 상사회사의 업무주임으로 들어 갔다.
「백군은 너무 마지메 해서 틀려. 내 백군에게 베삔상을 소개해 주지.」
하면서 어느날 선생은 제도좌(帝都座) 三[삼]층에 있는 「땐스 . 홀」로 데리고 갔다.
「홀」에 한 발을 들여 놓자 영민은 확하고 얼굴이 닳아 올라 왔다. 영화에서는 흔히 본 광경이었으나
「이럴 수야 있나?」
하는 도덕적 감정이 무섭게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단지 육체의 정열 뿐이다. 성(性)의 신비성(神秘性)을 무자비하게 박탈하는 육체의 난무가 있을 따름이 아닌가.
현대의 사조(思潮)는 성에서 그 신비성을 박탈함으로써 능사(能事)라 삼지만 그러나 성의 신비로움을 신봉하는 자를 우매한 야만인이라고 경멸을 한다면 성의 신비성을 박탈하는 현대인은 영리한 야수(野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영민은 도저히 눈을 뜨고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발 걸음을 돌렸을 때
「이거 왜 이래?」
하고, 선생은 영민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저편 빈 의자로 가 앉았다.
이윽고 「밴드」가 멎고 손벽 소리가 나더니 추잡한 형태로 부여 안고 돌아가던 남녀가 중앙에서 흩어져 걸상으로 돌아온다.
「이거 왜 만나 보기가 힘드시우?」
하면서 선생 앞으로 다가 온 여인이 바로 후일 야마모도 부인이 된 나미에 였다.
나이는 스물 서넛, 얼굴은 어여뻤으나 그의 성품은 남성에 가까운 여성이었으며 여성에 가까운 남성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상해에서 춤을 추던 나미에였다.
「내 사랑하는 제자를 데리고 왔는데 춤 좀 가르쳐 줘.」
「흥, 사랑하지 않았댔음 지옥으로 안내할 뻔했겠구료.」
그러면서 영민을 바라보다가
「오오, 핸썸 . 보이!(미소년) ──」
하고, 서양 여자들 처럼 과장된 감탄사로 영민을 맞이 하였다.
영민은 얼굴을 붉히며 약간 머리를 숙였다.
그러는데 다시 뺀드가 울리며 사람들은 의자에서 일어 난다.
나미에는 선생과 손을 잡고 일어서며 잠깐만 기다려요 「 . 내 한 차례 추고 춤 가르쳐 줄께요. 그렇지 않음 누구 맘에 드는 색씨 있어요?」
「아, 아, 아니요. 난 그저 구경만 하겠읍니다.」
「호호호호……키만 컸지 어린애야.」
어디서 들은 말 같다.
그렇다 똑같은 의미의 말을 一[일]년 전 영민은 춘심에게서 들었다.
나미에는 선생과 리드미칼한 원을 그리며 영민의 앞을 지날 때마다 코케팃 쉬한 웃음을 던졌다.
2
편집선생과 몇 차례 춤을 추고 난 나미에가 영민을 향하여
「자아, 일어 나요.」
하며 다가 왔을 때는 정말 영민은 당황하였다.
「아니요, 난 정말 출줄 모릅니다.」
하고, 굳이 사양하는 것을 선생이
「아니 누가 춤 출줄 안다고 데리고 왔나?」
하면서 영민을 잡아 일으켜 나미에에게 인도하였다.
「아니, 정말 전…전……용서하십쇼.」
그러나 그때는 벌써 나미에는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을 영민의 어깨에 올려 놓으면서 스탭을 내짚는다.
「이렇게 오른 손으로 내 허리를 잡아요.」
나미에는 영민의 손을 자기 허리로 돌려 대며
「남 하는대루 함 되잖어요? 아차차, 남의 구두코는 밟지 말 것! 내일 구두 하나 사 갖구 오세요.」
불덩어리 처럼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온다. 아아, 이것이 대체 무슨 추태인고! 이럴줄 알았으면 아예 아까 말을 냈을 때 선생님을 뿌리치고라도 돌아갔으면 좋을 뻔 했다고 영민은 생각하였다.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를 않았고 눈 앞이 핑글핑글 도는 것 같았다.
「나 히데쨩과 결혼할지 몰라요.」
나미에의 빨간 입술이 영민의 귀 밑에 종알거린다.
「히데쨩이라니요?」
영민이가 연방 나미에의 구두 코를 밟으면서 하는 당황한 대답이다.
「야마모도상 말이예요.」
아, 참 선생의 이름이 히데오(秀夫[수부])가 아닌가?
「아 약혼 반지 지금 받은 거야요.」
그러면서 나미에는 영민의 어깨 위에 올려 놓았던 손을 댕겨 다이야가 번쩍이는 반지를 보였다.
그러나 영민은 구두 코를 밟을래기에 나미에의 이야기를 잘 귀에 들어 오질 않았다.
「내일 꼭 구두 사 갖구 와야 돼요.」
「아, 미안합니다. 인제 그만하고 나를 놓아 주시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 들어가고 싶은 영민이었다.
「안돼, 안돼! 내가 놓아 주고 싶어야 놓아 주지, 안돼 학교에선 당신이 대장일지 몰라두 여기선 내가 대장이야 샹하이 나미에가 숙녀(淑女)인 줄로 알구? ── 흥, 당신은 뱀 앞에 개구리야. 내 구두 코를 함부로 문질러 준 벌루……」
그러면서 영민의 어깨를 힘껏 꼬집어 주었다.
향기로운 지분의 냄새와 함께 나미에의 풍만한 육체에서 발산하는 일종의 헤아릴 수 없는 감미로운 향기가 시골뜨기 영민의 오관(五官)을 사로 잡는다.
「보오야(어린것), 하숙이 어디랬지?」
「야마모도 선생과 같이 있읍니다.」
「흥, 거 마침 잘됐구료. 내가 멀지 않아 그 집으로 시집을 갈는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너무 학대함 안돼요!」
그러나 그 순간의 영민의 눈 앞에는 주름살 잡힌 아버지의 얼굴과 눈물 젖은 운옥의 얼굴이 알알이 떠올랐다.
「나는 실례하겠읍니다.」
부여잡은 나미에의 몸둥이를 떠밀고 유랑한 왈츠에 흐느적 거리는 사람의 물결을 헤치며 영민은 종시 뛰쳐 나오고야 말았다.
「흥, 노는 것이 귀여워!」
영민의 등 뒤에서 그런 말이 들렸다.
그러한 일이 있은지 두 달만에 야마모도 선생과 나미에는 결혼을 하였다.
3
편집야마모도 생선의 신혼생활도 다른 사람의 그것처럼 처음에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하꼬네 로 아다미 「 」 「 」로 번질나게 신혼 여행을 다녔다. 저녁만 먹으면 신죽이나 은좌로 돌아 다니며 소시민으로서의 향락을 열심히 도모하였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는 동안에 아래층 침실에서는 때때로 싸움 판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걸핏하면 선생은 나미에를 갈겨 주는 것이다.
그런 때 나미에는 울고불고 하면서 다섯 손가락 자리가 벌겋게 난 얼굴을 가지고 이층 영민의 방으로 쫓겨 올라 오곤 하였다.
「사람 살려요. 저 놈이 사람을 막 쳐요!」
하고, 부르짖으며 공부를 하고 있는 영민의 앞에 엎드려져서 흐늑흐늑 느껴 우는 것이었다.
그러한 나미에를 위로해야 될는지 나무래야 될는지 영민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묵묵히 앉아 있노라면
「저놈은 도까다 같은 놈이야요. 이러다가는 저놈한테 맞아 죽을지두 몰라요.」
하고, 영민에게 호소를 하는 것이었다.
「어째 그리 자주 쌈을 하십니까?」
하고, 너무 잠자코 있기가 미안해서 물으면
「아, 글쎄 거리에서 아는 이를 만나서 인삿말 해도 너 그 사나이와 무슨 관계가 있는게 아니냐고 막 야단이야요. 그래 나미에가 그럼 처년 줄 알았느냐고, 애당초 땐서와 결혼한 당신이 잘못이 아니냐고 하면, 행길에서까지 막 패주려고 들어붙는게 아니야요. 악마야요. 그 놈은 짐승이야요!」
그러한 나미에를 아니 그러한 부부 싸움을 영민으로서는 어떻게 와해시킬 도리가 없어서
「하여튼 내려가 주무시요. 날이 밝으면 화가 풀리겠지요.」
「누가 내려가 줘요? 나를 모셔 가기 전에는 안 내려가요.」
「안내려 가시면 어떡허세요?」
「나 여기서 잘테야요. 나 여기서 좀 재워 주세요. 당신까지 나를 학대하지 말아요.」
그런때 하는 수 없이 영민은 나미에를 자기 방에 혼자 남겨 두고 자기는 아래 층으로 내려와서 방으로 들어가면 선생은 혼자서 푸푸 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백군도 한 잔 들게. 아무리 생각해도 계집이란 요물이야. 군이니까 숨김없이 이야기 하지만 이런 창피가 어디 있겠나 말이야?」
「………」
영민은 무어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술잔만 받고 있노라면 글쎄 아침에 집을 나갈 「 때는 제법 바로 입었던 슈미즈가 저녁에 돌아왔을 때는 뒤집혀 졌거든, 그래두 백군 같으면 주먹을 안 들겠나?」
「……」
무슨 의미인지 얼른 알아 듣지를 못하고 어리벙벙해 있는 영민을 향하여
「하여튼 나미에는 피가 너무 많은가 보이. 백군이나마 나미에를 학대하지 말게.」
그러면서 선생은 누워버렸다.
「………」
영민은 선생의 이 뜻하지 않은 마지막 한 마디를 선생의 옆에 누워서 밤을 새우면서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내일이라도 곧 하숙을 옮겨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이튿날 아침 영민이가 이층으로 올라가 보니 나미에는 영민의 이불 속에서 어린애 처럼 무심히 잠들어 있었다.
그날 저녁 영민은 「도츠카」로 하숙을 옮겼다.
그런 일이 있은지 약 반 년만에 선생과 나미에는 이혼을 하였다.
그후 나미에는 다시 상해로 건너 갔는지 그냥 동경에 눌러 있는지 자세한 것은 물론 알 수 없었다.
차창에 몸을 기대고 영민은 생각한다. 초대장을 받고도 참석 안해도 무방한 방법을 종시 강구하지 못한 야마모도 선생과 자기 이부자리 속에서 어린애 처럼 무신경하게 하룻밤을 잠자던 나미에를 영민은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