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산문시

잠깐 보는 서울에는-표면에 드러난 인상에 관한 한도 안에서는-그다지 신기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처음으로 여행하는 사람같이 새로 선 건축물에 놀랄 필요도 없고 백화점에 들어가 정신을 빼앗는 것도 없고 상품의 무지쯤은 지릅떠볼 것 없이 냉정하게 무시할 수도 있다. 도희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무례하고 거만한 여행자라고 책하여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눈이 가는 것은 솔직하게 말하면 여인풍경이니 이렇게 실토를 하면 그만한 여행자도 결국 투구를 벗고 흰 기를 든 셈이 되나. 사실 잠깐 만에 보는 장안에 무엇보다도 변하고 있는 것은 여인의 자태인 것이다.

변하여 가는 용모. 철에 맞는 치장이 늘 새로운 풍경을 지어 불과 한철만이면서도 자연 괄목 상대하게 된다. 결국 도회 문화의 앞잡이를 서는 것은 여인풍경이요. 색정문화의 발달이 곧 건전한 도회를 걸어간다-고 말함은 일종의 역설일까. 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여인의 표정을 살피고 나부끼는 마플러에 주의를 보내는 마음은 건전치 못한 것일까. 여행을 하는 마음은 그 무엇을 찾는 마음이니 그 무엇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절대의 탐구」를 쓴 발자크 자신이 찾은 절대는 우주의 마지막 원수도 아니오 그렇다고 ‘인간 희극’의 진리도 아니오 실로 몇 사람의 여인이 아이었던가. 그는 예술의 지팡이를 짚고 여인을 찾은 한 사람의 평범한 나그네였다. 세상에 많은 사람도 결국 그런 여행자가 아닐까.

도서관에 들어가 손때 묻은 인간 희극의 진리를 찾기보다 하숙의 방에 들어박혀 추운 변을 보는 것보다도 목적 없이 거리를 거니는 것이 한결 여정을 복돋는다. 세상에서 제일 떨어지는 음악이라도 쓰린 고독보다는 낫고 거리에서 제일 아랫길 가는 술이라도 추위를 덜어줄 수는 있는 까닭이다.

하숙의 이층은 춥고 을씨년스럽다. 방바닥에는 숯불이 있고 이 방 속에는 식은 물통이 있을 뿐이오 호텔이 바라보이는 외겹 유리창으로는 먼지와 바람이 새어들어 가방과 책상망이 있는 방안을 한층 더 스산하게 휘덮어 놓는다. 얇은 벽 하나를 걱한 이웃장에서는 하급 회사원인 홀아비가 어미 없는 사남매를 데리고 쓰린 아침 저녁을 보내는 눈치다. 숙성한 맏딸에게서 유행가를 배우머 한 구절 한 구절 서투르게 받는 중년 사나이의 재치 없는 목소리가 밤이면 처량하디 측은하게 흘러온다. 아래층에서는 몇 호실에선지 회사에 다니는 여사무원이 해산한지 삼칠일도 못 되었다. 유성기 회사에 다니는 아이 아비의 꼴은 볼 수 없이 밤중이면 어린것만이 목에 불이 달이게 우는 것이다. 그 안타까운 아우성이 이웃방 홀아비의 유행가와 우연히 이부합창이 될 때가 있다. 주인 노파는 식당에서 이러쿵더러쿵 갓난애 어미의 흉을 조다가도 그가 돌들어오면 슬쩍 다른 사람의 흉을 들어내군 한다. 이 모든 옆방의 사람들은 맞은편 큰 호텔의 모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각자의 초라한 생활을 좁은 방 속에 꾸깃꾸깃 움츠려버리는 것이다.

잘났든 못났든 제 생활이다. 하숙의 층 위와 층 아래는 인생의 수술대와 같이 앙상한 뼈대를 감출 바 없다. 수술에 익숙한 이층 끝 방 치과전문이 다니는 친구는 수술대의 현실을 피하여 때만 먹으면 거리로 나가버린다. 젊은 마음은 일반인 모양이다. 방의 생활이 주접들 때 거리는 확실히 일종의 유혹인 것 같다.

수많은 찻집-그것은 벌써 한가한 젊은 사람들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거의 운명적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천차만별의 술집-어느 집에서든지 바코스는 사람을 푸대접하는 법이 없다. 스치는 여인의 눈동자에 은근한 위안을 발견함은 시인만의 특권은 아닐 법하다. 옆 박스에서 흘러오는 회화에 귀기울임도 흥미 있는 일이니 여자들의 말재주는 나날이 늘어가는 듯하다. 맵시와 함께 재주도 더하여 가는 모양이다. 잘된 회화의 단편을 바람결에 얼핏 듣기란 서투른 소설을 읽기보다도 지루한 각본을 듣기보다도 정신이 번쩍 뜨이는 유쾌한 일이다. 간결하고 윤채 있고 은근하고 넘겨짚어 가는 회화의 구절구절을 줍기한 식탁 위에 풍성한 과실을 찾을 때와도 같은 기쁨을 준다.

회화의 매력! 두 사람의 교섭은 거기서부투 시작되는 것이니 하루 동안 생활의 중요한 부분은 실로 회화인 것이다. 이것을 아는 도회의 여자들은 소설을 착실히 읽어 회화술을 공부하는 모양인가


술집을 몇 번 거치는 동안에 곤드레만그레 취하였다.

취중에는 마음이 쓸데없이 흥분되고 허랑하여지는 것 같다.

그 위에 밤은 용기를 주어 사람을 대판으로 만드는 까닭일까.

혼몽한 정신에 허둥허둥 걸어간 것이 그런 곳이었다.

앞장선 동무는 한 사람의 가장 선량한 시민이요. 얌전한 신사인 것이다.

아침이 천사의 것이라면 밤은 악마의 것이라고 할까. 악마는 가장 착한 사람의 마음도 여반장으로 빼앗는 것이다.

지옥의 문을 들어서 마의 소굴인 으슥한 홀을 거쳐 흔쪽의 방에 이르기까지에는 거의 바른 정신이 없이 온전히 취중의 거동이었다. 동무의 모양은 보이지 않고 조촐한 방 부드러운 의자에 홀로 앉아 있는 자신의 꼴을 문득 깨닫고 정신이 들기는 들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현실 세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이 집에는 꿈에 취한 마음으로 방안을 다시 살피게 되었다.

조촐한 한편의 방-그것은 지옥의 것이 아니오. 확실히 하늘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동화 속의 세상같이 아름답다. 지저분한 거리 속에 연속된 부분이 아니오. 공중이 홀연히 솟은 듯한 세상이다. 방을 장식한 가지가지의 세상이 거뭇하면서도 찬란한 색채 속에 침착하게 잠겨 있는 위로 일종의 향기가 그윽하게 우려있는 것이다. 은근히 타는 난로이며 탁자와 의자까지도 현실의 것이 아니고 방안의 운치를 좋아하기 위하여 놓인 이야기 속의 것 같다. 스크린 저편으로 넓은 침대가 놓이고 그 위에 화려한 금침이 목단같이 피었다. 머리맡 벽에서는 액 속에 넣은 한 폭의 그림이 침대를 굽어보고 있다. 그 이상한 그림은 고요한 방안에 한 줄기의 기괴한 느낌을 붓고 있다. 그림은 한 사람의 나체를 나타낸 것이나 그것은 아담도 아니오. 이브도 아니다. 아니 아담이며 동시에 이브인 것이다. 한 몸에 한꺼번에 두 가지 성을 갖춘-신화 속에 나오는 태고적의 완전한 일원적 인간과도 같은-피차 애써 안타깝게 상대의 성을 찾지 않아도 좋은 기괴한 인생의 화상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방안에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 그림은 확실히 자란이의 동화의 세상에 속하는 것이니 방안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한층 신비로운 기색을 띠었다.

그 신비로운 무대 위에 이윽고 여주인공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는 물론 지옥의 악마가 아니오. 천사인 것이다. 그렇다. 확실히 거리의 천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가리의 천사라느니보다 동화 속의 천사요. 마음의 천사인 것이다. 홀에서 볼 때와 다른 맵시 다른 의장으로 나타난 그의 자태는 마음을 쥐어흔들어 끌어다니는 것이다. 흔한 한 사람의 거리의 천사로 보기는 너무도 가혹하고 아까운 자태이다. 나는 보배나 발견한 듯한 커다란 감격과 놀람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다시 맑은 정신도 들었으나 그렇다고 가혹한 현실로 돌아와 자신이 꼴과 처지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오. 다시 그의 아름다운 자태에 취하여 그 밤의 운명을 한없이 행복스럽게 여기는 것이었다.

짧은 머리를 풀어 헤트린 천사는 사뿐 날아와서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날개 소리도 내지 않는 고요한 거동이었다. 그림자 깊은 얼굴에 으늑한 미소를 띠었을 뿐리지 한마디 말도 없다. 그러나 그의 표정을 번역하면 “나는 걱정이 많아요. 그러나 지금은 행복스러워요” 하고 역력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회화의 매력을 잘 알면서도 말없는 그 장면은 도리어 즐거운 것이었다. 무대의 말을 잊은 등장인물같이 두 사람은 한참 잠자코만 있었으나 그것은 한 토막의 무언극이 되어서 한층 정서 있는 것이었다.

침묵을 깨트린 것은 불의에 나타난 노파였으나 그는 이야기 속의 잔뜩한 침입자는 아니오. 두 사람에게 차를 가져온 것이다. 탁자 위에 옮겨놓은 찻잔에서는 향기는 빠졌을망정 부드러운 김이 피어올랐다. 김 너머로 천사의 표정이 한층 부드럽게 녹아졌다. 차는 별수없이 천사의 입을 열게 되었다. 사랑은 꿈을 빚어내기에 필요한 물건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차를 달게 하여 마시면서 나는 풀려 나오는 천사의 토막말을 혀끝으로 곰곰이 맛보았다.

“눈이 움푹 빠지고 눈썹이 길고-무섭지 않으셔요.아-우.”

오도깝스럽게 굵은 눈알을 굴리며 흘기는 표정이 말할 수 없이 마음을 댕긴다. 두 귀를 꽉 붙들고 눈을 홉뜨고 내가 더 무섭다는 것을 알리려다가 나는 즉시 그런 무의미한 거동을 단념하였다.

“제게는 드레스가 맞어요.”

하며 나비 날개와도 같은 잠자리옷의 소매를 휘날려 보이는 그의 양자는 바로 천사의 모양 그것이다.

“드레스를 입고 해 나는 날 바다를 구경하였으면요-겨울 바다는 검고 탄탄하고 차고 맑고-눈 오는 날이면 검은 파도 사이에 송이송이 떨어져선 금시에 녹아 버리죠. 항구에 뜬 배는 얼어붙은 듯이 고요히 서서 기적도 잊어버리고 흰 치장을 자랑하구요…….

그의 말은 야릇한 마술과도 같고 향기 높은 술과도 같아서 일종의 맑은 환영을 일으키게 한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붉은 머플러를 날리면서 고요한 겨울 항구를 거니는 그의 자태가 눈앞에 완연히 떠오른다. 희끗희끗 눈이 날려서 뱃전을 스치고 검은 바다 속에 녹아 버린다. 떨어져서는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쉴새없이 눈은 날리고 날린다…….

환상에 잠겨 있는 동안에 문득 짜장 밖에 눈이 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굵은 눈송이가 무대 밖을 방 밖을 보얗게 둘러싸고 부실부실 쉴새없이 퍼부어 어느덧 방안은 허옇게 쌓인 눈 위에 덩실 뜬 듯하다. 방안은 더한층 이야기 속 세상으로 변할 뿐이다.

“약혼자는 있었으나 한 번도 정을 주어 본 일이 없이 이런 세상에 빠져 들게 되었어요.”

현실의 실토도 그 분위기 속에서는 꿈의 거죽을 쓰고 이야기 속의 사실로만 변하는 것이었다.

나는 노파를 시켜서 가져온 한잔의 양주를 그에게 권하였다. 금시에 얼굴이 붉어진 그는 거동이 재고 말이 많아졌다. 정서가 새로워진 것이다. 눈 속의 불꽃같이 곱게 타오른다. 훨훨 불붙는다.

보고 있는 동안에 나의 마음도 어느덧 불붙어 푸슥푸슥-펄펄-훨훨-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두 눈으로 들어온 독한 술에 취한 것이다. 사랑은 눈으로 들어와서 몸을 새빨갛게 불 달아놓고는 그것을 끌 줄을 모르는 영물이다. 외통곬이오 심술궂은 영물이다.

이윽고 그는 일어나서 춤추는 듯이 날아와 나의 팔을 붙들었다. 더워서 괴로워하는 나비다.

“일어나 춤추시지 않겠어요. 몸이 타서 쓰러질 때까지 밤새도록……”

더운 입김이 목덜미를 엄습한다.

끌려 일어나기는 하였으나 나는 한 걸음의 스텝도 밟을 줄을 모른다. 휘적휘적 끌리며 그의 발등만 밟다가 기어코 다리에 걸려 그 자리에 그대로 풀썩 넘어져 버렸다. 그의 가벼운 작은 몸이 팔 안에 나긋나긋 휘었다. 한 마리의 나비를 손바닥으로 쳐서 단숨에 눌러버린 듯이도 하잘 것 없이 그의 몸은 고요하게 침묵하였다.

두 몸은 곱절 뜨겁게 타올랐다. 심장의 고동도 곱절 높게 치련만 거친 숨결에 꺼져버려 들리지는 않았다. 애잔한 천사! 그는 거리의 천사가 아니오 마음의 천사였다.


엄숙한 표정을 지니고 사랑과 욕심의 구별을 세우려고 골살을 찌푸림은 칼날로 바닷물을 가르려는 것과도 같아 거의 무의미한 헛수고인 듯하다.

사랑과 욕심은 서로 뗄 수 없는 것이니 사랑이 있으면 반드시 욕심이 생기고 욕심 솟는 곳에 자연 사랑도 붙는 것이다. 즉 사랑 없는 곳에는 욕심도 없는 것이며 욕심 없는 곳에 사랑이 있을 리는 더욱 만무하다. 사랑과 욕심을 가를 수 없음은 술에서 향취를 가릴 수 없음과 같으며 꽃에서 향기를 없앨 수 없음과 일반이다. 다시 말하면 욕심은 책이요. 사랑은 내용이다. 책 없는 내용이 없으며 내용 없는 책이 없다. 내용을 담는 것이 책인 것과 같이 사랑을 담는 것은 욕심이다. 찬란한 내용은 책부터 찬란하듯이 찬란한 사랑이면 욕심도 찬란하여야 한다. 문제는 사랑과 욕심의 전후관계이나 욕심은 반드시 사랑으로부터만 시작되어야 할 법은 없다. 욕심으로부터 시작되는 사랑도 있는 것이니 이렇거든 사랑이 한층 향기롭고 진득한 수가 있는 것이다.

봄이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평생에 사랑도 단 한 번 있기는 드물 듯하다. 사랑으로부터 드는 사랑도 있을 것이며 욕심으로부터 드는 사랑도 있어서 화려하고 찬란한 날과 씨로 일생은 꾸며지는 것이 아닐까. 첫 사람이자 마지막 사람이오. 하늘이 무너지고 바다가 잦아져도 세상에 영원히 그 한 사람뿐이라고 울고불며 설렘은 감상시대의 한때 열병이며 그 시대를 벗어나서 활달하게 생각하게 될 때 진짬 사랑이 오는 것이 아닐까. 그때의 사랑은 붉은 한 빛이 아니오. 무지개와 같이 다채인 것이다.

거리의 천사라고 반드시 욕심의 대상만이 되는 법은 아닌 듯하다. 거리의 천사도 마음의 천사가 될 수 있다. 욕심으로부터 들어와서 마음을 흔든다. 그런 사랑도 있는 것이다.

그 밤의 천사는 마음속에 새겨져서 좀체 잊혀지지 않는다. 산문의 밤이 아니오. 꿈속의 밤이오 이야기 속의 밤이었다.

그가 준 명함은 그의 마음의 표시와도 같이 조그맣고 탄탄하고 꿋꿋하다. 새겨진 글자는 그의 눈망울같이 청청하고 또렷하다.

“정초가 지나면 한가해요. 맑은 정신으로 아침부터 와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지 않겠어요. 디이트리히 가르보 셔어러의 프로마이트를 선물로 갖다 주시겠죠.”

옷섶을 붙들고 신신당부하던 약속을 끝내 밟을 시간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음이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그 미안한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대한 대답이 되었으면 다행이리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즐겁다.

하숙의 살림살이. 거리의 여인풍경. 애잔한 천사의 자태-가지가지의 기억이 마음의 경험 위에 차례차례로 쌓여 즐거운 추억이 되는 것이다.

산문의 경험도 마음속에 적히우면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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