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30장
30. 豪華로운 膳物
응접실안으로 한발을 선뜻 들여놓은 장현도부인 심봉채— 「이 남편에 이 안해가 있다」는 말이 꼭 들어맞을만큼 허영에 춤추는 심봉채— 그는 거의 四十에 가까운 연세이건만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청춘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어여쁜 애교가 소녀인 양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는 벌써 조봉구 청년의 입을 통하여 백진주 선생의 비범한 인품과 아울러 그의 무진장과 같은 재산에 대하여 적지않은 흥미를 느끼고있던 터이다.
『여보, 백선생께 인사를 하시유. 이번 상해교역은행으로부터 정중히 소개를 하여온 분인데 인제부터 약 一년동안에 수백만원, 아니 수천만원의 돈을 물쓰듯이 쓰실 분이요.』
백진주 선생을 장현도는 안해에게 그렇게 소개하였다.
『수고로히 오셨습니다.』
하고 두취부인은 극도의 흥미를 느끼는 눈치로 인사를 하였다.
『부인, 처음 뵙겠습니다.』
백진주 선생은 그렇게 인사를 받으면서 문득 아현동 별장 뒷뜰안에 외로히 서있는 한구루의 앵두나무를 연상하였다.
『그러나 백선생, 상해같은 국제도시에 오랫동안 계시던 선생이 이런 보잘것없는 조그만 서울에 오셔서 무슨 흥미를 느끼시겠어요?』
『부인,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세계 각국을 편답하다 싶이한 사람입니다만 그중 제가 제일 흥미를 느끼는 곳은 바루 이 서울입니다.』
『호호호...... 백선생도 참 말씀을 무척 잘하셔요. 그래 이 서울에 무엇이 보잘것 있다구 그처럼 흥미를 느끼신다는 말씀이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부인처럼 아름답고 세련된 사교술을 가지신 분을 오늘 이자리에서 뵙지를 않었습니까?』
『아이머니나 어쩌면.......』
부인은 처녀처럼 얼굴을 붉힌다.
그것은 확실히 한국 사람으로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찬사임에 틀림 없었다. 하물며 그의 남편인 장현도가 옆에 있는데서랴. 그러나 이 가정에 한발을 드려놓는 순간, 남달리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 백진주 선생으로서는 벌써 이 가정에 흐르는 공기를 재빨리 포착할수가 있었다. 남편의 존재를 무시하는 이 허영에 뜬 안해의 방종한 생활이며 남자 동무인 조봉구 청년과 안방에 단둘이 마조앉아 있어도 괜찮은 이 태기(怠氣)가 충만한 가정— 옆에 있던 장현도와 조봉구도 백진주 선생의 이 지나친 인사를 다년간 외국인들과 많이 접촉한 탓이라고 관대히 처분할수 밖에 없었다.
그때 아까 백진주 선생을 안내하던 하인이 들어와서 부인을 향하여 정중히 허리를 굽힌 후에
『저, 지금 유검삿댁 운전수가 와서 자동차를 좀 빌려 달라고 하는뎁쇼.』
그말을 들은 부인은 아주 득의만만한 얼굴로 백진주 선생도 좀 들으라는 듯이
『아, 그래?...... 그럼 저 두팔(斗八)이더러 차고에서 내주라고 그래요.』
『네.』
하인이 나간 후에 부인은 백진주 선생을 향하여
『저 혹시 아실런지 모르지만 저 유검사 부인이 내일 뭐 어린애를 다리고 드라이브를 하겠다고요. 그래서 꼭 저희집 자동차를 한번 타보겠다는구먼요. 호호호.......』
『아 그렇습니까. 부인께서 가지신 자동차라면 오작 좋은 차겠습니까. 언제 기회가 있으면 저도 한번 타보고 싶습니다.』
『네. 꼭 한번 백선생을 드라이브에 모시겠어요. 총독이 사람을 내세워서 자꾸만 저희집 차를 양도해달라고 교섭을 한답니다. 호호호.......』
『아, 그처럼 훌륭한 차라면 정말 꼭 한번 타보게 해주십시요.』
『백선생께서만 괜찮으시다면 언제던지 모실테예요.』
『고맙습니다. 그런 기회가 올때를 마음속에 잘 치부해 두고 기다리겠습니다.』
부인과 백진주 선생 사이에 이러한 대화가 오고가는 동안, 장현도의 얼굴은 칠면조처럼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나갔던 하인이 운전수 두팔이를 다리고 들어오면서
『차고에 차가 없는뎁쇼. 어데 있느냐고 물어봐두 두팔이는 통 대답을 않습니다 그려.』
『뭐, 차고에 차가 없다니...... 두팔이, 그게 정말이야?』
부인의 음성이 저윽이 날카롭다.
『네, 정말이 올시다.』
두팔은 힐끗 장현도를 처다보며 머리를 자꾸만 긁다가
『저...... 저 오늘 아침 선생님께서 차를...... 차를...... 팔아 버렸습니다.』
『뭐, 차를 팔아버려?......』
부인은 그순간, 새파랗게 얼굴이 변해지면서
『옳지! 차를 팔아 버렸구려!』
부인은 치를 바들바들 떨며
『에이 더러운 인간! 돈밖에 모르는 더러운 사람! 총독이 팔래두 안 판 차를 그래...... 아아.......』
부인은 낯설은 손님 앞에서 남편에게 받은 이 모욕을 어떻게 분풀이 해야만 될런지를 모르는 듯이 당홍무처럼 얼굴을 붉혔다.
장현도는 하는수 없이 허허 웃으며
『이거, 손님 앞에서 추태를 보여서 안됐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부인 옆으로 다가가서 속삭이듯이
『여보, 실은 엄청나게 돈을 많이 내겠다는 어떤 시골뚝이를 만나서 그만 팔아 버린것이요. 아, 글세, 총독두 四만원밖에 안본 차를 六만원에 팔았구려, 그러니까 二만원의 이익이 아니요? 당신에게 一만원, 옥영이에게 一만원을 줄테니 좀 참아요. 그리구 자동차는 또 자동차대로 사줄테니까.......』
그렇게 귓속말을 하고 나서 백진주 선생을 향하여
『물론 백선생께서도 차를 준비하셨겠지만, 정말 선생께 권하고 싶을만한 차였지요. 그런것을 아주 싼 값에 팔아 버렸지요.』
『아, 그렇습니까. 실은 오늘 아침에 그리 비싸지 않은 값으로 쓸만한 것을 하나 샀습니다. 바루 저것입니다.』
하고 들창밖으로 현관앞을 가리켰다. 부인과 장현도와 그리고 조봉구 청년이 일시에 현관 쪽을 내다보았다.
그순간 부인은 깜짝 놀래면서
『아, 저것은...... 저것은 우리 차가 아니예요?』
하고 부르짖었다. 장현도도 놀랬다. 그리고 백진주 선생도 놀래 보이면서
『그렇습니까? 정말 저것이 댁의 찹니까?』
그러나 아무도 그말에 대답하는 이가 없다.
『실은 오늘 아침 우리집 운전수를 시켜서 손에 넣은것인데, 그것이 댁의 찬줄은 정말 꿈밖이 올시다. 하하하...... 그러나 부인, 저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데는 그것이 부인의 것이거나 제 것이거나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가 부인을 드라이브에 청하면 그만이 아닙니까?......』
그러나 장현도 부인 심봉채는 대답이 없다.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금방이라도 불똥이 튀여나올것 같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남편을 무섭게 쏘아보고 섰을 뿐이다.
「폭풍우가 온다. 그렇다. 저 거만하고 더러운 은행가 장현도의 가정에는 멀지 않어 무서운 폭풍이 일것이다. 그들의 가정의 평화는 벌써 내 손아귀에 쥐여졌다. 그러나 내가 꼭 만나고저한 장현도의 딸 옥영일 보지못하고 돌아오는것이 약간 섭섭하지만 장옥영이, 장옥영이! 그렇다. 멀지않어 계옥분의 며누리가 될 장옥영이란 대체 어떤 인물인고?......」
백진주 선생은 오늘의 성공을 은근히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속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일이 있은지 약 두시간 후에, 장현도 부인 심봉채는 백진주 선생으로부터 한장의 친절한 편지를 받았다.
...... (전략)...... 그러니까 처음으로 낯설은 타향에 발을 들여놓은 나그네의 몸으로서 한사람의 어여쁜 부인의 비탄을 그대로 간과하는것은 신사로서 예의가 아님을 깨달았소이다. 더구나 명망이 높은 은행가 장현도 두취의 영부인이 유검사 부인에게 일단 빌려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이행치 못하신다면 그것은 또한 부인의 체면에 관계될 염녀도 있고해서 극히 사소한 것이나마 오늘 아침 소생이 손에 넣은 한대의 자동차를 부인께 선물로 드리고저 하오니, 웃고 받아 주시기를 바라는바 올시다...... (후략)......
그러한 내용의 글월이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자동차 한대를 선물로 받았다!」
그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있어서 백진주 선생이 장안 사교계에 호화롭게 출마할 좋은 기회를 만들것이며 따라서 백진주 선생이라는 하나의 훌륭한 인물을 극력 선전하여 마지않을 좋은 재료를 심봉채에게 제공할것이다.
이튼날 아침—.
장현도 부인의 자동차를 빌려 탄 유동운 검사정(檢事正) 부인은 금년 열살 먹은 아들을 다리고 하루의 드라이브를 향락할 셈으로 서대문을 향하여 집을 떠났다.
이날 아침, 운전수는 어젯밤 친구들과 만취했던 술을 해정으로 깨울 셈으로 선술집에 들어가서 약주 한잔을 먹을려던것이 원체 술을 좋아하는 위인이라, 몇잔 지나치게 걸친것이 도대체 잘못이었다.
서대문 로—타리를 지날때, 눈앞이 몽롱해진 운전수는 좌측통행을 무시하고 오른편 쪽으로 로—타리를 돌다가 그만 영천(靈泉) 쪽에서 내려오는 한대의 츄럭과 엇비슴이 부딛처 버렸던 것이니
『앗!』
하는 사이에 유검사 부인의 자동차가 보기좋게 행길 한복판에 나가 자빠지고 말았다.
그때 때마침 검사부인의 뒤로 질주해오던 자동차 한대가 급정거를 하자 한사람의 점잖은 신사와 운전수가 뛰여내리기가 바쁘게 별로 상한데는 없었으나 자동차 안에서 정신을 잃은 검사부인과 그의 어린 아들을 안아 일으키었다.
『상처는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시요!』
신사는 그렇게 부르짖으며 운전수를 시켜 부인과 어린애를 자기 자동차에 모시도록 명령을 하였다.
한편 유검사 부인의 술취한 운전수도 다행히 이마에 약간 상처를 받았을뿐 생명에는 이렇다할 염녀가 없었다.
신사는 교통순사에게 전후사정을 이야기하고 사죄를 하는 술취한 운전수에게 명함 한장을 내주며, 자기는 이 근방에 사는 사람인데 지금 정신을 잃은 여인과 어린애를 내집으로 모실 테니, 후에 연락을 취하도록 친절히 타이른 후에
『실인즉 내집에 좋은 약이 있으니 염녀 마시요. 요지음 병원에서 쓰는 약보다 몇갑절 효과가 있는 약이니까.』
『고맙습니다! 저희 주인 유동운 검사정께서 곧 선생님을 찾아뵙도록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아, 그러면 이 부인은 저 유명하신 유동운 검사정의 영부인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자아, 그러면 우리는 한시바삐 부인을 모시기로 하겠소.』
『고맙습니다!』
이리하여 신사는 다시 자동차를 몰아 아현동 고개로 접어들어갔던것이니, 술취한 운전수는 그때야 비로서 손에 든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아현정 三九번지 ―백진주—」 라고 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