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20장
20. 白眞珠 先生
진시황의 아방궁과도 같은 이 지하궁전에서 신영철 청년은 주인이 권하는대로 주육을 들면서
『주인께서는 어떠한 동기로서 이러한 생활을 하시는지 모릅니다만, 주인의 얼굴에는 이 호화로운 생활면과는 정반대인 그어떤 심각한 번민이 숨어있는것 같습니다.』
하고 물었더니, 주인은 한번 유쾌한듯이 빙그레 웃으면서
『그것은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겠지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는 말하자면 창조(創造)의 왕자입니다. 나는 세상의 법률을 비웃는 사람이지요. 나는 나 이외의 그 어느 누구가 어떻게 할수 없는 나 혼자만의 법률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아모런 번민도 있을수 없지요』
『그러나 주인님의 눈은 보통 사람의 눈이 아닌듯 싶습니다. 그 어떤 종류의 복수에 불타는.......』
『복수라고요?』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사회의 무서운 박해를 받고, 그 사회에 대하여 불타는 복수의 일념을 품으신듯한 그러한 인상을 나는 솔직히 주인께서 받았습니다.』
『하하하...... 보아하건대 당신은 예민한 관찰력을 가진 분인듯 싶습니다만 그러나 그말 만은 맞지 않았습니다. 나는 말하자면 하나의 단순한 자선가(慈善家)에서 더 지나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사회의 부당한 박해를 받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다사로운 동정의 뜻을 표하고 싶은 자선가!』
『그리고 정의를 위하여 불의를 물리치는 현대의 홍길동!』
『홍길동이라고요? 누구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여 준 진주환의 선장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허허...... 현대의 홍길동! 허허.......』
하고 주인은 웃었다. 신영철은
『언제 서울에 오시게 되면 저를 꼭 찾아 주십시요. 오늘 밤의 이 호화로운 대접의 十분지一이라도 갚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글세 올시다. 그럴 때가 오거던 찾아 뵙겠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아까 마신 한잔의 불로주(不老酒)는 신영철 청년을 감미로운 꿈의 세계로 점점 끌고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 불로주로 말하면 유명한 불로초(不老草) 인도대마(印度大麻)로 만든 술로서 이 술을 한잔 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잃었던 청춘을 다시 찾을수 있는 아름다운 꿈나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이튼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신영철은 어느새 자기가 진주환 배 위의 사람이 된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선장. 그러면 모든것은 꿈입니까? 내가 언제 이 배로 돌아 왔습니까?』
『어제밤 노형을 궁전으로 안내한 사나이가 조금아까 노형을 모시고 이리로 왔습니다.』
『그러면 꿈이 아니고 역시 현실이었던가요?』
『암, 현실입지요. 수령은 오늘 아침 갑자기 무슨 긴급한 일이 생겨서 싱가폴로 떠났다고요. 자아, 그러면 우리도 어서 상해로 출범을 하야겠습니다.』
아직 황홀한 꿈의 세계에서 채 깨어나지 못한 신영철 청년을 태운 진주환은 일로 국제도시 상해를 향하여 황해바다의 거센 파도를 헤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이틀 후― 즉 성탄제 전전날 무사히 상해에 도착한 신영철은 『카세이 • 호텔』 일실에서 약속하였던 송준호를 만났다.
그러나 『카세이 • 호텔』이라면 『삿슨』 재벌의 경영인만치 상해에서도 일류급의 호텔인데, 송준호가 투숙한 방으로 말하면 대학생의 하숙방 보다도 더 초라한 방임에 신영철은 적지않게 놀랬다.
『송군, 어째 이런 방밖에는 없다던가?』
『말 말게. 이 방도 지배인한테 특별교섭을 해서 겨우 얻어 들은 줄이나 알게. 국제도시 상해의 성탄제는 상해의 명물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라고, 우리 같은 시굴둑이가 각곳에서 몰려들었기 때문에 상해의 쓸만한 호텔이란 호텔은 전부 만원이라는 말이야. 알겠나?』
그러면서 송준호는 『파레스 • 호텔』을 비롯하여 몇몇 호텔에 교섭을 하여보았으나 모두 헛수고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이방은 너무한걸! 이런 방에서 잠을 자면서야 어떻게 즐거운 성탄제 기분을 가질 수가 있겠나 말이야.』
『음, 지배인두, 이방은 三류 四류급의 방이니 그런줄 알라구.......』
『체면문젠데! 이건 우리 한국사람의 체면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적어도 서울 장안에서는 손을 꼽는 송춘식 대인(大人)의 령식의 몸으로 이런 三류급에 속하는 방에 투숙한다는것은 좀 생각해볼 문젠걸!』
『신군, 왜 또 자꾸 추켜 올리는거야? 자네 체면은 어따 갖다 팔아 먹었나?』
『나야 노루 사냥이나 할줄 아는 하나의 야인(野人)에서 지나지 못하는 사람이니 말할것 없지만, 자네처럼 고귀한 문화인의 신분으로서야 될법한 일인가! 가만 있게, 내가 한번 다시 교섭을 해보지.』
『안되네 안돼! 소용 없어. 모두가 돈 없는 탓이니 할수 있겠나?』
『돈이라구? 아니, 그맛 돈이 우리에게 없다는 말인가?』
『그런 코묻은 돈으로는 잘 안될걸. 자네, 이 호텔 三층 전부를 혼자서 독차지할만한 돈을 갖구 왔는가?』
『아니, 송군, 그게 대체 무슨 뜻인가?』
『말 말게. 오늘 내가 여기 도착하기 바루 한시간 전에 어떤 굉장한 부자가 와서 이 三층 전부를 빌렸다면 알법한 일이 아닌가? 덕택에 우리는 체면유지도 할수 없는 이런 하숙방 살림을 하게 된것이야. 알겠나?』
『혼자서 三층 전부를 빌렸다구?』
『음.』
『아니 그게 대체 어떤 인물인가? 중국에는 굉장한 부자가 많다는 말은 들었지만두, 왕가석숭이가 다시 살아나온 것은 아니겠지?』
『왕가석숭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얼핏 듣자니 무슨 백진주 선생이라던가 뭔가 하는 굉장한 부자라구.......』
『백진주 선생?』
『음, 고대 중국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 같은 예쁜 이름이야. 성은 백가요 이름은 진주라구― 그리고 반다시 선생이라는 존칭이 항상 붙어 돌아가는 양반이라구.』
『그럼 백진주는― 아니, 백진주 선생이란 여자가 아니고 남자란 말인가?』
『암, 우리와 꼭 같은 생리적 조건을 가진 남성이지.』
송준호와 신영철이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 녹크소리가 나면서 지배인이 들어왔다. 지배인은 은근한 태도로 허리를 굽히며
『이런 협착한 방밖에 없어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런데 지배인, 이런 하숙방 같은데서 어떻게.......』
하고 신영철이가 입을 열었을 때, 지배인은 공손히 손으로 막으며
『네네, 말씀 안하시더라도 잘 알아 모시고 있습니다. 타국에서 오신 귀한 손님을 이런 방에다 모셔서 황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 무슨 좋은 대책이 섰다는 말이요?』
『네네, 거기 대해서 아까부터 여러가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저, 저 혹시 이 三층에 계시는 백진주 선생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은 들었지요. 그 백진주 선생이라는 사람 때문에 우리가 다시 하숙생활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으니까요.』
하고 신영철은 적지않게 불유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더니 지배인은
『아, 바루 그 백진주 선생 말씀입니다. 제가 두분의 딱하신 사정을 그 백진주 선생께 의논을 하여 보았습지요. 그랬더니 선생은, 원로에서 수고로이 오신 분을 그렇게 대접해서야 되겠느냐고 하시면서 두분을 위하여 특등실 두방을 무료로 빌려 드리겠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무료라구요?』
『네, 선생은 두분의 딱하신 사정을 충심으로 동정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초면으로 대하는 분에게 너무 예를 잃는것이 아닐까요?』
『선생의 논법으로서는 그렇지 않으시답니다. 동정이라던가 호의라던가 하는것은 대가(代價)를 필요로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청년은 잠깐동안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거실렵니까? 선생은 지금 두분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의향이 계시다면 제가 안내하여드리겠습니다.
두 청년은 또 한번 서로의 얼굴을 마조 처다보았다.
『어떻거실까요? 선생의 호의를 받으시려거던 제가 그리로 두분을 모시겠습니다.』
지배인이 다시 한번 공손히 물었을 때
『그럼 그 백진주 선생이라는 분의 호의를 받도록 하지요.』
하고 신영철은 대답을 하였다.
『아, 그러십니까. 그러면 제가 그리로 안내를 하여 드리겠습니다.』
하고 지배인은 두 청년의 츄렁크를 지나가는 뽀이에게 운반하도록 명령을 하였다. 그때 신영철은
『그런데 잠깐 지배인에게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시던지.......』
『대관절 그 백진주 선생이라는 분은 어떠한 신분을 가진 사람입니까?』
『글세 올시다. 저도 자세한 것은 알수 없습니다만 보와하니 꼭 옛날의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원님과 같은 분이지요. 아니, 그보다도 어느 조그만 왕국의 제왕과도 같은 훌륭하신 분입니다.』
『허어! 제왕이라고요?...... 그래 국적은 어느 나라 사람으로 되여 있습니까?』
『숙박부에 기록된 것은 중국으로 되여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어, 조선어, 일본어, 영어, 인도어의 오개국의 언어를 어느 것이던지 본국의 국어처럼 능통하시는 분이지요.』
『허어!』
『허어!』
두 청년은 감탄하기를 마지 안는다.
『그래 돈을 물쓰듯 한다니, 대략 얼마나한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것 같습디까?』
그것은 송준호의 무름이었다.
『글세 올시다. 재산목록을 보지 못했으니 정확한 말씀을 여쭙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보와하니 꼭 일국의 왕자와 다름 없습니다.』
『그래 연세는?』
『四十의 고개를 한둘 넘어선듯 한 분입니다.』
『아직 독신인가요?』
『호적상으로는 독신인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스물이 될락말락 한 아주 절세의 가인을 한분 동반하고 계십니다.』
『절세의 가인?』
이리하여 마침내 두 청년은 지배인의 뒤를 따라 三층에 있는 이상한 인물, 백진주 선생의 방으로 한발을 들여 놓았을 때,
『어서들 들어 오십시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면서 두 청년 앞에 홀연히 나타난 인물― 오오, 그것은 한편 황해에서 현대의 홍길동이라고 불리워지는 진주도 주인 그사람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