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시집)/물마름
주으린 새무리는 마른 나무의
해지는 가지에서 재갈이던 때.
온종일 흐르던 물 그도 곤(困)하여
놀지는 골짜기에 목이 메던 때.
그 누가 알았으랴 한쪽 구름도
걸려서 흐드끼는 외롭은 영(嶺)을
숨차게 올라서는 여윈 길손이
달고 쓴 맛이라면 다 겪은 줄을.
그곳이 어디더냐 남이장군(南怡將軍)이
말 먹여 물 찌었던 푸른 강(江)물이
지금에 다시 흘러 둑을 넘치는
천백리(千百里) 두만강(豆滿江)이 예서 백십리(百十里).
무산(茂山)의 큰 고개가 예가 아니냐
누구나 네로부터 의(義)를 위하야
싸우다 못 이기면 몸을 숨겨서
한때의 못난이가 되는 법이라.
그 누가 생각하랴 삼백년래(三百年來)에
참아 받지 다 못할 한(恨)과 모욕(侮辱)을
못 이겨 칼을 잡고 일어섰다가
인력(人力)의 다함에서 스러진 줄을.
부러진 대쪽으로 활을 메우고
녹슬은 호미쇠로 칼을 별러서
도독된 삼천리(三千里)에 북을 울리며
정의(正義)의 기(旗)를 들던 그 사람이어.
그 누가 기억(記憶)하랴 다북동에서
피물든 옷을 입고 외치던 일을
정주성(定州城) 하룻밤의 지는 달빛에
애그친 그 가슴이 숫기 된 줄을.
물 위의 뜬 마름에 아침이슬을
불붙는 산(山)마루에 피었던 꽃을
지금에 우러르며 나는 우노라
이루며 못 이룸에 박(薄)한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