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시집)/기억

달 아래 시멋없이 섰던 그 여자,
서있던 그 여자의 해슥한 얼굴,
해슥한 그 얼굴 적이 파릇함.
다시금 실벗듯한 가지 아래서
시꺼먼 머릿길은 번쩍거리며.
다시금 하룻밤의 식는 강물을
평양의 긴 단장은 싣고가던 때.
오오 그 시멋없이 섰던 여자여!

그립다 그 한밤을 내게 가깝던
그대여 꿈이 깊던 그 한동안을
슬픔에 귀엽음에 다시 사랑의
눈물에 우리 몸이 맏기웠던 때.
다시금 고즈넉한 성밖 골목의
사월의 늦어가는 뜬눈의 밤을
한두 등불 불빛은 울어새던 때.
오오 그 시멋없이 섰던 여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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