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는 사실을 부인하였다.

그것은 복심법원이었다. 사건은 살인이었다.

어떤 사람이 교외 외딴곳에서 참살을 당하였다. 흉기는 날카로운 칼로서, 그 칼은 범행의 현장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그 피해자는 교외에 사는 사람으로서, 짐작컨대 밤늦게 돌아가다가 그런 변을 당한 듯하였다. 피해자에게서는 시계와 돈지갑이 없어졌다. 반지도 끼었던 자리는 있는데, 현품은 없었다.

그 피의자로 잡힌 것이 S였다. S의 집에서 피해자의 돈지갑과 시계와 반지가 발견되었다. 더구나 강도 전과, 협박 전과 등등 몇 가지의 전과는 그의 범행을 이면으로 증명하는 증거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피고는 제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공소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1심에서부터 피고는 꾸준히 범행을 부인하였다. 자기는 그날 밤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가 웬 참살당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달빛에 그 가슴에 금시곗줄이 번쩍이는 데 욕심이 나서 그것을 떼었으며, 그러는 가운데 욕심이 더욱 나서 몸을 뒤진 결과 돈지갑과 반지를 얻었다. 이것이 피고의 변명이었다.

그러나 이 변명은 아무도 믿지를 않았다. 더욱, 그의 이전의 거친 생활은 듣는 이로 하여금 그의 말을 더 불신하게 하였다.

검사의 요구로써 몇 사람의 증인도 불렸다.

한 사람은 어떤 카페의 여급이었다. 그 여급은 범행이 있은 날 저녁에 그 피해자도 자기네 카페에서 술을 먹었으며, S도 같은 시간쯤 하여 술을 먹은 것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피해자가 셈을 할 때에 돈이 수북이 든 지갑을 S가 보고,

“어떤 놈은 돈이 저리도 많은가.”

고 탄식하였다는 말까지 하였다.

둘째 증인이 나섰다. 그것은 현장 근처에 살던 어떤 노인이었다. 그 노인은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서, 밤이 깊도록 문밖에 나와 앉아서 밝은 달을 우러러보며 자기의 젊었을 때의 추억에 정신을 잠그고 있었다. 새벽 3시쯤 하여 그 노인은 제 앞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에 펄떡 정신을 차렸다. 그때에 지나가던 사람은 무엇에 정신을 잃은 듯이 허든허든 앞만 바라보면서 저편으로 가버렸다. 그 사람이 분명 S라 하였다.

의사의 검증에 의지하건대, 범행은 3시 전후하여 생긴 것이었다.

이리하여 S에 대한 불리한 증거는 두세 가지가 나타났다. 그러나 유리한 증거는 없었다.

S를 위하여 일어섰다는 변호사조차 시원한 변론은 안 하였다. 변호사는 자기부터가 S의 범죄를 시인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S의 불행한 환경이 낳은 결과이지 S가 나쁜 것이 아니라 하였다. 그리고 S의 환경을 한참 설명한 뒤에, 이러한 환경 아래서 자라난 S가 비록 살인이라는 무서운 죄악까지 범했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용서할 점이 없지 않으니 현명한 각하는 그런 점을 잘 이해하고 관대한 처분이 있기를 바란다, 결론하였다.

검사의 논박은 물론 극단의 것이었다. 검사는 S가 아직껏 범한 모든 죄악을 차례로 엮어내리고, 이러한 상습적 범죄자, 더구나 마지막에는 살인까지 한 범죄자를 그냥 살려둔다는 것은 양의 무리 가운데 이리를 섞어둠과 마찬가지이니, 법의 목적이 선량한 인민을 보호하는 데 있는 이상에는 이러한 무서운 사람을 사회에 그냥 살려둘 수는 없다. 따라서 원 판결의 사형이 지극히 적당하니, 공소를 기각해달라 하였다.

재판장 I씨는 묵묵히 그것을 들은 뒤에, 다시 피고에게 향하여 변명할 말이 없느냐 물었다.

피고는 다시 자기의 무죄함을 역설할 뿐이었다. 죄가 있다면 횡령이나 절도이지, 살인강도는 아니라 하였다.

공판은 이리하여 끝이 났다.

그것은 재작년, 어떤 몹시도 달 밝은 가을 저녁이었다. 30년을 동고동락하던 사랑하는 부인을 얼마 전에 잃고, 쓸쓸하고 애끓음에 참지 못하여 I씨는 밤에는 늘 교외에 산보를 다니는 것이 어느덧 버릇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이런 달 밝은 밤은, 그로 하여금 더욱 집에 들어박혀 있지를 못하게 하였다. I씨는 교외에 산보를 나갔다.

피곤하고 쓸쓸한 다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I씨는 어떤 솔밭까지 이르러서, 거기서 잠시 몸을 쉬려 하였다.

잠시 쉬려던 I씨는 좀체 일어서지 않았다.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묵상에 잠긴 I씨는 다시 일어서기를 잊어버린 것이다. 이곳저곳으로, 윗관청의 명령 한마디에 떠나 다니지 않을 수 없는 불안정한 하급 관리 생활의 몇 해…… 그때의 많고 많은 고생이며 어려움을 한마디의 쓰단 말없이 참고 지낸 부인, 현숙하고도 온순하던 부인, I씨의 일생을 통하여 수없이 만난 많은 곤란 앞에, 잘못하면 I씨가 거꾸러지려 할 때마다 뒤에 숨어서 그를 격려하던 부인, I씨가 오늘날 겨우 얻은 복심법원 수석판사란 지위의 뒤에는 부인의 쓰리고 아픈 참을성이 얼마나 많이 섞여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부인을 겨우 지위가 좀 안정된 오늘에 잃었다는 것은 I씨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원통한 일이다.

그 잃은 부인의 추억에 잠긴 I씨는 세상만사를 잊었다. 그리고 묵묵히 앉아서 눈물겨운 생각에 한숨을 짓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I씨는 무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눈을 들어보니까, 저편 앞 길에서 어떤 두 사람이 다투고 있었다. 때때로 들려오는 말귀로, 계집에 대한 원한으로 서로 다투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한 사람이 괴상한 부르짖음을 발하며 넘어졌다. 넘어지지 않은 사람의 손에는 달빛에 칼이 번쩍였다.

I씨는 옴짝을 못하였다.

‘꿈일까.’

몽마(夢魔)의 습격을 받은 듯이 가슴이 서늘하게 되면서, I씨는 옴쭉을 안하고 망연히 그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사이에 많은 범죄 사건을 취급해온 그였지만, 눈앞에서 실행된 이 사건에 대하여는 I씨는 꿈과 같이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가해자는 달아났다. 그러나 I씨는 그냥 망연히 앉아 있었다.

좀 뒤에, 또 한 사람이, 그 길에 나타났다. 비츨비츨 술 취한 사람으로서, 갈지자 걸음으로 지나가다가 방금 그 현장 앞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눈앞에 누워 있는 사람에 몸을 흠칫한 그는, 발로써 툭 한번 차본 뒤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연하여 쓰러지려는 몸을 그곳에 버티고 섰다. 그런 뒤에는 눈의 초점을 맞추는지 머리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참 그 송장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문득 송장 위에 몸을 굽히더니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몇 가지의 물건을 얻어내서 제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에, 그제야 겁이 났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가 쪽을 향하여 달아나 버렸다.

이리하여 법률의 대행인인 I씨의 눈앞에서, 한 가지의 살인 사건과 한 가지의 절도 사건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때의 그 살인의 범인은 체격이 장대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범인으로 잡힌 S는 단단하게는 생겼지만 키가 작았다.

I씨는 자기가 맡은 이 사건이 2년 전에 제 눈앞에서 실행된 그 범죄 사건임을 깨닫는 순간에, S가 진범인이 아니고 한낱 절도에 지나지 못함을 알았다. S의 공술이 사실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남에게 인정시킬 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있다면 그것은 피고의 공술뿐이었다. 피고의 공술뿐을 증거로 인정하기에는 현대의 법률은 너무 영리하였다.

한 가지, 그 범행에 쓴 칼에 다른 사람의 지문이라도 있으면 피고의 유리한 증거가 될 것이지만, 그것조차 피에 뭉그러져서 똑똑하지를 않았다.

이리하여 피고에게 불리한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는 대신에, 유리한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아닌 밤중에, 무얼 하러 교외에 나갔더나?”

하는 질문에도 피고는 우물쭈물 잘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번을 질문을 받은 후에 겨우, 그 피해자에게 돈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강도를 할 목적으로 피해자의 집으로 가려던 것을 자백하여 자기의 입장을 더욱 불리하게 하였다.

I씨는 이번의 이 사건이 2년 전에 자기가 목도한 그 사건임을 알고, 몇 번을 그때에 자기가 본 바를 모두 피력해버릴까 하였다. 그러나 생애의 거의를 사법계에서 보낸 그는, 자기의 말뿐이 얼마나 피고에게 이익을 줄지, 그 정도를 알았다.

‘물적 증거.’

이것이 아니면, 사법계에서는 통용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기의 그 증언을 인정시킬 만한 물적 증거는?

뿐만 아니라 그날의 자기의 본 바를 다 말하려면, 그는 자기의 눈앞에서 무서운 범죄가 실행되는 데에도 그것을 막거나 방지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방관자의 태도를 취한 그때의 자기에 대하여 변명할 만한 재료가 없는 것이었다. 차디찬 사법관으로서의 I씨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조차 일어났다.

설혹 백 보를 양보하여, 사건이 무사히 해결이 되어 S씨가 무죄로 석방이 된다 할지라도, 그 뒤에는, 법률의 위신상, 그 진범인을 어떻게든지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그리고 설혹 다행히 그 진범인을 붙든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형에 처할 만한 증거가 나설는지, 이것은 미리 판단함을 허락하지 않는 문제였다. 그럴진대, (자기 혼자만은 사실을 부인하지만) 온갖 방면으로 자격이 있고 증거가 충분한 S를 그냥 진범인이라 하여 내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온당하지 않을까.

재판의 평의가 열렸다.

법률이 작정한 바에 의지하여, 그 중 지위가 낮은 판사 ○씨부터 먼저 의견을 말하였다. ○씨는 비록 나이는 적다 하나 그 수완에 있어서 명민한 판사라는 일컬음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어서서 이 사건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말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법의 해석도 없었다. 법 이론도 없었다. 이만치 증거가 갖추어진 사건에, 무슨 다른 이론이 필요가 있을까. ○씨는 간단히, 온갖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갖추어진 점을 설명하고, 결론으로 공소를 기각함이 좋겠다 하였다.

다른 판사들의 의견도 대동소이하였다. 그리고 결론은 모두 다 ○씨와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에, I씨가 일어섰다. 점잖게 수염을 한번 쓰다듬은 뒤에, 한참 먹먹히 섰다가,

“여러분은 피고의 공술을 어떻게 해석하시오?”

하고 천천히 물었다.

이 의외의 재판장의 말에, 다른 판사들은 모두 멍멍해졌다. 그리고 I씨의 입만 바라보았다.

“내 생각 같아서는, 피고의 공술도 좀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I씨는 한마디 더 보탰다. 그러나 다른 판사들은 역시 멍멍히 재판장의 입만 바라보았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씨가 일어섰다.

“네. 혹은 피고의 공술이 사실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실로 보이는 점도 없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 말을 세울 만한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설혹 그 말을 신용한다 하나, ‘법률’은 증거가 없는 공술은 신용을 안 하니까요.”

○씨는 이렇게 재판장의 의견에 반대하였다.

I씨는 또다시 손을 들어서 수염을 쓸었다. 그러나 구태여 ○씨의 말을 반대하려고도 안 하였다.

“아니, 그렇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의견뿐이외다.”

I씨도 제 말을 흐려버렸다.

그리고 평의한 결과로는, 한 사람의 반대도 없이 ‘피고의 공소는 기각함’에 일치되었다.

1주일 후에 판결이 내렸다.

판결은 물론 ‘피고의 공소는 이를 기각함’이었다.

그날 오후, I씨는 어떤 신문기자를 재판소의 복도에서 만나서, 그 기자에게서,

“S사건이 낙착이 됐습니다그려.”

하는 축하를 받았다.

“하늘의 섭리지. 제가 죄를 지은 뒤에야 벗어날 수가 있나.”

I씨는 법률의 대리인이라는 엄격한 얼굴로, 손을 들어 허연 수염을 쓸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 뒤에는 어딘지 모를, ‘부끄러움’에 근사한 표정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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