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점묘
보험 없는 화재(火災)
편집격장(隔墻)에서 불이 났다. 흐린 하늘에 눈발이 성기게 날리면서 화염(火焰)은 오적어(烏賊魚) 모양으로 덩어리 먹을 퍽퍽 토한다. 많은 약품을 취급하는 큰 공장이란다. 거대한 불더미 속에서는 간헐적(間歇的)으로 재채기하듯이 색다른 연기 뭉텅이가 내뿜긴다. 약품이 폭발하나보다.
역 송구스러운 말이나 불구경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뒤꼍으로 돌아가서 팔짱을 끼고 서서 턱살 밑으로 달겨드는 화광(火光)을 쳐다보고 섰자니까, 얼굴이 후끈후끈해 들어오는 것이, 꽤 할 만하다. 잠시 황홀한 엑스타시 속에 놀아본다.
불을 붙여놓고 보나까 뜻밖에 너무도 엉성한 그 공장 브로크는 삽시간에 불길에 휘감겨 버리고, 휘말린 혓바닥이 인접한 게딱지같은 빈민굴을 향하여 널름거리기 시작해서야 겨우 소방(消防隊)가 달려왔다. 인제 정말 재미있다. 삼방(三方)으로 호스를 들이대고는 빈민굴 지붕 위에 올라서서 야단들이다. 하릴없이 까치다.
이만큼 떨어져서 얼굴이 뜨거워 못 견디겠으니, 거진 화염 속에 들어서다시피 바싹 다가선 소방대들은 어지간하렷다. 하면서 여전히 점점 더 사나워오는 훈훈한 불길을 쬐고 있자니까 인제는 게서 더 못견디겠는지 호스 꼭지를 쥔 채 지붕에서 뛰어내려 온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그 실오라기만도 못한 물줄기를 업신여기자니까 이번에는 호스를 화염 쪽에서 돌려서 잇닿은 빈민굴을 막 축이기 시작이다. 이미 화염에 굴뚝과 빨래 널어놓은 장대를 끄슬리기 시작한 집에서들은 세간 기명(器皿)을 끓어내느라고 허겁지겁들 법석이다. 하더니, 헐어내기 시작이다.
타는 것에서는 손을 떼고 성한 집을 헐어내는 이유는 좀 심한 서북풍에 화염의 진로(進路)를 차단하자는 속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불은 붙지도 않았는데, 덮어놓고 헐리고 물을 끼어얹고 해서 세간기명을 그냥 엉망을 만들어버린 빈민굴 주민들로 치면 또 예서 더 억울할 데가 없을 것이다.
하도들 들이몰리고 내몰리고들 좁은 골목 안에서 복잘질들을 치길래 좀 내다보니까, 삼층장 의걸이ㆍ양푼ㆍ납세(納稅) 독촉장ㆍ바이올린ㆍ여우목도리ㆍ다 헤어진 돗자리ㆍ단장ㆍ스파이크 구두ㆍ구공탄 풍로, 뭐 이따ㅣ위 나부랭이가 장이 서다시피 내쌓였다. 그 중에도 이부자리는 물벼락을 맞아서 결딴이 난 것이 보기 사납다.
그제서야 예까지 타들어오려나 보다 하고 선뜩 겁이 난다. 집으로 얼른 들어가 보니까 어머니가 덜덜 떨면서 때 묻은 이불 보퉁이를 뭉쳤다 끌렀다 하면서 갈팡질팡하신다. 코웃음이 문득―나오는 것을 참으면서―그건 그렇게 싸서 어따가 내 놓을 작정이십니까― 하고 묻는다. 생각하여 보면, 남의 셋방신세어니, 탄들 다 탄대야 집 한 채 탄 것의 몇 분의 1도 못 되리라.
불길은 인제는 서향(西向) 유리창에 환하다. 타려나 보가. 타면 탔지―하는 일종의 비유키 어려운 허무한 생각에서 다시 뒤꼍으로 돌아가서 불구경을 계속한다. 그 동안에도 만일 불이 정말 이 일대를 소진(消盡)하고야 말 작정이라면, 제일 먼저 꺼내와야 할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여 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선뜻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럼 다 타도 좋다는 심리(心理)인가? 아마 그런 게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다 떨어진 포대기와 빈대투성이 반닫이가 무한히 아까운 모양이었다. 또 저 걸레나부랭이를 길에 내놓았다가 그것들을 줄레줄레 들고 찾아갈 곳이 있나 그것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 역시 없다. 일가 혹은 친구 ― 내 한 몸뚱이 같으면 몰라도 이 때 묻은 가족들을 일시에 말없이 수용해 줄 곳은 암만해도 없는 것이다.
불행히 불은 예까지는 오기 전에 꺼졌다. 그 좋은 불구경이 너무 하잘것없이 끝난 것도 섭섭했지만, 그와는 달리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적막을 느꼈다. 듣자니 공장은 화재보험 덕에 한 파운드짜리 알콜 병 하나 꺼내놓지 않고 수만 원의 보상을 받으리라 한다. 화재보험 ― 참 이것은 어떤 종류의 고마운 하느님보다도 훨씬 더 고마운 하느님에 틀림없다.
어머니는 어찌 되든지 간에 그때 마음 같아서는 “빌어먹을! 몽땅 다 타나 버리지.” 하고 실없이 심술이 났다. 재산도 그 대신 걸레조각도 없는 알몸뚱이가 한 번 되어 보고 싶었던 게다. 물론 화재보험 하느님이 내게 아무런 보상도 끼칠 바는 아니련만…….
단지(斷指)한 처녀(處女)
편집들판이나 나무에 핀 꽃을 똑 꺾어 본 일이 없다. 그건 무슨 제법 야생 것을 더 귀해 한답시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대체(大體)가 성격이 비겁하게 생겨먹은 탓이다. 못 꺾는 축보다는 서슴지 않고 꺾을 수 있는 사람이 역시 ― 매사에 잔인하다는 소리를 듣는 수가 있겠지만 ― 영단(英斷)이란 우수한 성격적 무기(武器)를 가진 게 아닌가 한다.
끝의 누이 동무되는 새악씨가 그 어머니 임종(臨終)에 완손 무명지를 끊었다. 과연 동양 도덕의 최고수준을 건드렸대서 무슨 상(賞)인지 돈 3원을 탔단다. 세월이 세월 같으면 번듯한 홍문(紅門)이 서야 할 계제에ㅡ 돈 3원이란 어떤 도량형법(度量衡法)으로 산출한 액수인지는 알 바가 없거니와, 그보다도 잠깐 이 단지(斷指)한 새악씨 자신이 되어 생각을 해 보니, 소름이 끼친다. 사뭇 삭도(食刀)로다, 한 번 찍어 안 찍히는 것을 두 번 찍고, 세 번 찍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격으로 기어 찍어 떨어뜨렸다니, 그 하늘이 동(動)할 효성도 효성이지만, 우선 이 끔찍끔찍한 잔인성은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치고 오히려 남음이 있는가 싶다. 이렇게 해서 더러 죽은 어머니를 살리는 수가 있다니, 그것을 의학(醫學)이 어떻게 교묘하게 설명해 줄지는 모르나, 도무지 신화(神話) 이상의 신화다.
원체가 동양도덕으로는 신체발부(身體髮膚)에 창이(瘡痍)를 내는 것을 엄중히 취체한다고 과문(寡聞)이 들어왔거늘, 그럼 이 무시무시한 훼상(毁傷)을 왈, 중(中)에도 으뜸이라는 효도(孝道)의 극치로 대접하는 역설적(逆說的) 이론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 무슨 물질적인 문화에 그저 맹종하자는 게 아니라, 시대와 생활ㅇ 시스템의 변천을 좇아서 거기 따른 s, 역시 새로운, 즉 이 시대와 이 생활에 준거(準據)되는 적확한 윤리적 척도가 생겨야 할 것이고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입증해 내어야 할 것이다.
단지(斷指) ― 이 너무나 독(毒)한 도덕행위는 오늘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어떤 종류의 생활 시스템이나 사상적(思想的) 프로그램으로 제어 보아도 송구스러우나, 일종의 무지(無知)한 만적(蠻的) 사실인 것을 부정(否定)키 어려운 외에 아무 취할 것이 없다.
알아보니까, 학교도 변변히 못 가 본 규중처녀라니, 물론 학교에서 얻어 배운 것은 아니겠고, 그렇다면, 어른들의 호랑이 담배 먹는 옛 이야기나 그렇지 않으면, 울긋불긋한 각설이때체(體) 효자충신전(孝子忠臣傳)이 뙤겨준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 밖에 손가락을 잘라서 죽는 부모를 살릴 수 있다는 가엾은 효법(孝法)을 이 새악씨들에게 여실히 가르쳐 줄 수 잇을 만한 길이 없다. 아 ― 전설(傳說)의 힘의 이렇듯 큼이여.
그러자 수삼 일 전에 이 새악씨를 보았다. 어머니를 잃은 크낙한 술픔이 만면에 형언할 수 없는 수색(愁色)을 빚어내이는 새악씨의 인상(印象)은 독(毒)하기는커녕 어디 한 군데 흠잡을 데조차 없는 가련한, 온순한 하아디의 <테스> 같은 소녀였다. 누이는 그냥 제 일같이 붙들고 울고 하는 곁에서 단지(斷指)에 대한 그런 아포리즘과는 딴 감격과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적으로 상처는 도지지도 않고 그냥 아물었으니, 하늘이 무심치 않구나 했다. 여하간 이 양(羊)이나 다름없이 부드럽게 생긴 소녀가 제 손가락을 넓적한 식도(食刀)로다 데꺽 찍어내었거니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가련한 무지(無知)와 가증(可憎)한 전통이 이 새악씨로 하여금 어머니를 잃고 또 저는 종생(終生)의 불구자가 되게 한 이중의 비극을 낳게 한 것이다.
극구 칭찬하는 어머니와 누이에게 억제하지 못할 슬픔은 슬쩍 감추고 일부러 코웃음을 치고 ― 여자란 대개가 도무지 잔인하게 생겨먹었습네다, 밤낮으로 고기도 썰고, 두부도 썰고, 생선대가리도 좨치고, 나물도 뜯고, 버들가지를 꺾어서는 피리도 만들고, 피륙도 찢고, 버선감도 싹똑싹똑 썰어내고, 허구한 날 하는 일이 일일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것뿐이니, 아따 제 손가락 하나쯤 비웃 한 마리 토막 치는 세음만 치면 찍히지 ― 하고 흘려버린 것은 물론 기변(奇辯)이요, 속으로는 그 갸륵한 지성과 범(犯)키 어려운 일편단심에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여 머리 수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행히 시대에서 비켜선 지고(至高)한 효녀(孝女) 그 새악씨! 그래 돈 3원에다 어느 신문 시회면 저 아래에 칼표딱지만한 우메구사를 장만해 준 밖에, 무엇이 소저(小姐)의 적막해진 무명지(無名指) 억울한 사정을 가로맡아 줍디까. 당신을 공경하면서 오히려 ‘단지(斷指)’를 미워하는 심사(心思) 저 뒤에는 아주 근본적으로 미워해야 할 무엇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소저! 그대는 꿈에도 모르리다.
차생윤회(此生輪廻)
편집길을 걷자면, ‘저런 인간을랑 좀 죽어 없어졌으면.’ 하고 골이 벌컥 날 만큼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아도 좋을, 산댔자 되려 가지가지 해독이나 끼치는 밖에 재주가 없는 인생들을 더러 본다. 일전 영화 <죄와 벌>에서 얻어들은 ‘초인법률초월론(超人法律超越論)’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진보된 인류우생학적(人類優生學的) 위치에서 보자면, 가령 유전성(遺傳性)이 확실히 있는 불치(不治)의 난병자(難病者)ㆍ광인(狂人)ㆍ주정(酒精) 중독자, 유전(遺傳)의 위험이 없더라도 접촉 혹은 공기전염이 꼭 되는 악저(惡疽)의 소유자, 또 도무지 어떻게도 손을 댈 수 없는 절대걸인(絶對乞人) 등 다 자진해서 죽어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모종의 권력으로 일조일석에 깨끗이 소탕을 하든지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극흉극악(極凶極惡)의 범죄인도 물론 그 종자를 절멸시켜야 옳을 것인데, 이것만은 현행의 법률이 잘 행사해 준다.
그러나 ― 법률에 대한 어려운 이론을 알 바 없거니와 ― 물론 충분한 증거와 함께 범죄 사실이 노현(露顯)한 경우에 한하여서이다. 영화 <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지상 최대의 흉악한 용모의 소유자가 여기도 있다면, 그 흉리(胸裏)에는 어떤 국악(極惡)의 범죄 계획을 내함(內含)하고 있다 하더라도, 다만 그의 용모 골상(骨相)이 흉악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법률이 그에게 판재(判裁)나 처리를 할 수는 없으리라. 법률은 그런 경우에 미행(尾行)을 붙여서, 차라리 이 자의 범죄 현장을 탐탐(耽耽)히 기다릴 것이다., 의아(疑訝)한 자는 벌치 않는다니 그럴 법하다.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걸인(乞人)도 없고, 병자(病者)도 없고, 범죄인도 없고, 하여간 오늘 우리 눈에 거슬리는 온갖 것이 다 깨끗이 없어져버린 타작(打作) 마당 같은 말쑥한 세상은, 만일 그런 것이 지상에 실현될 수 있다면, 자상은 그야말로 심심하기 짝이 없는 권태 그것과 같은 세상일 것이다.
그러니까 자선가의 허영심도 채울 길이 없을 것이고, 의사(醫師)도, 변호사도, 아니 제판소도, 온갖 것이 다 소용이 없어질 것이고, 따라서 그날이 그날 같고 이럴 것이니, 이래서야 참 정말 속수무책으로 바야흐로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춘풍태탕(春風駘蕩)한 세월 속에서 어쩌다가 우연히 부스럼이라도 좀 나는 사람이 하나 있다면, 참괴(慚愧), 이것을 이기지 못하여 천하 만민 앞에서 아주 깨끗하게 일신을 자결할 것이고, 또 그런 세상의 도덕이 그러기를 무언 중에 요구해 놓아둘 것이다.
그게 겁이 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천하의 어떤 우생학자(優生學者)도 초인법률초월론자도 행정자(行政者)에게 대하여 정말 이 ‘살아있지 않아도 좋을 인간들’의 일제한 학살을 제안하거나, 요구치는 않나 보다. 혹 요구된 일이 전대(前代)에 더러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찍이 한 번도 이런 대영단적(大英斷的) 우생학을 실천한 행정자는 없는가 싶다. 없을 뿐만 아니라, 나환자(癩患者) 사구금(赦救金)이니, 빈민 구제기관이니, 시료병실(施療病室)이니 해서, 어쨌든 이네들의 생명에 대하여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편 그윽이 보호하는 기색이 또한 무르녹는다.
가령 종로(鐘路)에서 전차를 기다리자면, ‘나리, 한 푼 줍쇼’ 하고 달겨든다. 더러 준다. 중에는 ‘내 10전 줄게. 다시는 거지 노릇을 하지 말라.’한 부인(婦人)이 있다니, 포복할 일이다. 또 점두(店頭)에 그 호화장려한 풍모로 나타나서 ‘한 푼 줍쇼.’ 소리를 될 수 있는 대로 듣기 싫게 연발하는 인간에게도 불성문(不成文)으로 한 푼 주어 보내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암암리에 사람들은 이 지상의 암(癌)을 잘 기를 뿐만 아니라 은연히 엄호한다. 역(亦) 눈에 띠지 않는 모순이다.
즉 그런 그다지 많지 않은, 그러나 결코 적지 않은 한 층을 길러서 이쪽이 제 생활의 어떤 원동력을 게서 얻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목숨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 먹여 살려서는 그런 것이 역연히 자상에 있다는 것을 사실로 지적해서는, 제 인생 생활의 가치와 레종데트르를 교만하게 긍정하자는 기획(企劃)일 것이다. 그러면서 불순(不純)히 이 악저(惡疽)로 하여 고통과 협위(脅威)를 느끼는 중에, '네 놈이 어디 나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나 해 보아라.‘ 하는 형용할 수 없는 무슨 투쟁심을 흉중에 축적시켜서는 ’저게 겨우내 안 죽고 또 살앗‘’ 하는 의외(意外)에도 생활의 원동력을 흡취(吸取)하자는 것일 게다.
하루 종로를 오르내리는 동안에 세 번 적선(積善)을 베푼 일이 있다. 파기록적(破記錄的) 사실임에 틀림없다. 한 푼 받아들고 연해 고개를 끄덕이고 꽁무니를 빼는 꼴을 보면서,
“네 놈 덕에 내가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다. 알기나 아니?”
하고 심히 궁한 허영심에서 고소(苦笑)하였다. 자신 역(亦) 지상에 살 자격이 그리 없다는 것을 가끔 느끼는 까닭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를 먹여 살리는 내 바로 상부구조(上部構造)가 또 이렇게 만족해 하겠지.’ 하고 소름이 연(聯) 쫙 끼쳤다. 그때의 나는 틀림없이 어떤 점잖은 분들의 허영심과 생활 원동력을 제공하기 위하여 꾸물꾸물하는 ‘거지적 존재’구나, 눈의 불이 번쩍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지(空地)에서
편집얼음이 아직 풀리기 전 어느 날, 덕수궁 마당에 혼자 서 있었다. 마른 잔디 위에 날이 따뜻하면 여기저기 쌍쌍이 벌려놓일 사람더미가 이날은 그림자도 안 보인다. 이렇게 넓은 마당을 텅 이렇게 비워두는 뜻이 알 길 없다. 땅이 심심할 것 같다. 땅도 인제는 초목이 우거지고, 기암괴석이 배치되는 데만 만족해하지는 않을 게다.
차라리 초목이 없고 괴석이 없더라도, 집이 서고 집 속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또 집과 집 사이에 참 아끼고 아껴서 남겨놓은 가늘고 길고, 요리 휘고 조리 휘인 얼마간의 지면(地面) ― 즉 길에는 늘 구두 신은 남녀가 뚜걱뚜걱 오고 가고 여러 가지 차량들이 굴러가고 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렇게 땅의 성격도 기호(嗜好)로 변하였을 것이다.
그래 이건 아마 겨울 동안에는 인마(人馬)의 통행을 엄금해 놓은 격별한 땅이나 아닌가하고 대단히 겸연쩍어서 부리나케 대한문(大漢門)으로 내달으려니까 하늘에 소리 있으니 사람의 소리로다― 그러나 역시 잔디밭 위에는 아무도 없고, 지난 가을에 헤뜨리고 간 캐러멜 싸개가 바람에 이리 날고 저리 날고 할 뿐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반드시 덕수궁에 적(籍)을 둔 금잉어(金鯉) 떼나 놀아야 h할 연못 속에 겨울차림을 한 남녀가 무수히 헤어져 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하나도 육지에 올라선 이가 없이 말짱 그 손바닥만한 연못에 들어서서는 스마트한 스케이팅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요컨대 새로 발견된 공지(空地)로군 ― 하고 경이(驚異)의 눈을 옮길 길이 없어 가까이 다가서서는 그 새로 점령된 미끈미끈한 공지를 조심스러이 좀 들여다보았다. 그러니 금잉어들은 다 어디로 쫓겨갔을까? 어족(魚族)은 냉혈동물이라니 물이 얼어도 밑바닥까지만 얼지 않으면 그 얼음장 밑 냉수 속에서 족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그 예리한 스케이트 날로 너무 걸커미어 놓아서 얼음은 영 불투명하다. 투명만 하면, 불그레한 금잉어 공지가 더러 들여다보이기도 하련만 ― 여하간 이 손바닥만한 연못이 깊으면 얼마나 깊을까 ― 바탕까지 다 꽝꽝 얼었다면 어족은 일거에 몰사하였을 것이고, 얼음장 밑에 물이 흐르고 있다면, 이 까닭 모를 소요(騷擾)에 얼마나 어족들이 골치를 앓을까? 이 신기한 공지를 즐기기 위하여는 물론 그들은 어족의 두통 같은 것은 가산(加算)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황혼, 천하에 공지 없음을 한탄하며 뉘 집 2층에서 저물어가는 도회(都會)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실로 덕수궁 연못 같은, 날만 따뜻해지면 제출물에 해소(解消)될 엉성한 공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참 훌륭한 공지를 하나 발견하였다.
×× 보험회사 신축용지(新築用地)라고 대서특필(大書特筆)한 높다란 판장으로 둘러막은 목산(目算) 범천평(凡千坪) 이상의 명실상부의 공지가 아닌가. 잡초가 우거졌다가 우거진 채 말라서 일면이 세피아빛으로 덮인 실로 황량한 공지인 것이다. 입추의 여지가 가히 없는 이 대도시 한복판에 이런 인외경(人外境)의 감을 풍기는 적지ㅏ 않은 공지가 있다는 것은 기적(奇蹟)이 아닐 수 없다.
인마(人馬)의 발자취가 끊인 지 ― 아니 그건 또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 오랜 이 공지에는 강아지가 서너 마리 모여 석양(夕陽)에 그림자를 끌고 희롱한다. 정말 공지 ― 참말이지 이 세상에는 인제는 공지라고는 없다. 아스팔트를 깐 뻔질한 길도 공지가 아니다. 질펀한 논밭ㆍ임야ㆍ석산(石山), 다 아무개의 소유 답(沓)이요, 아무개 소유의 산(山)이요, 아무개 소유의 광산(鑛山)인 것이다. 생각하면, 들에 나는 풀 한 포기가 공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이치대로 하자면,m 우리는 소유자의 허락이 없이 일보의 반보(半步)를 어찌 옮겨 놓으리오. 오늘 우리가 제법 교외(郊外)로 산보도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세상인심이 좋아서 모두들 묵허(黙許)해 주나까 향유할 수 있는 사치(奢侈)다. 하나도 공지가 없ㄴ은 이 세상에, 어디로 갈까 하던 차에 이런 공지다운 공지를 발견하고, 저기 가서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서 담배나 한 대 피었으면 하고 나서 또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역 ×× 보험회사가 이윤(利潤)을 기다리고 있는 건조물(建造物)인 것을 깨달았다. 다만 이 건조물은 콘크리트로 여러 층을 쌓아올린 것과 달라 잡초가 우거진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봄이 왔다. 가난한 방 안에 왜꼬아리 분(盆) 하나가 철을 찾아서 요리조리 싹이 튼다. 그 닷곱 한 되도 안 되는 흙 위에다가 늘 잉크병을 올려놓고 하다가 싹트는 것을 보고 잉크병을 치우고, 겨우내 그대로 두었던 낙엽을 거두고 맑은 물을 한 주발 주었다. 그리고 천하에 공지라곤 요 분(盆) 안에 놓인 땅 한군데밖에는 없다고 좋아하였다. 그러나 구 다리를 뻗고 누워서 담배를 피우기에는 이 동글납작한 공지는 너무 좁다.
도회(都會)의 인심
편집도회의 인심이란 어느 만큼이나 박해 가려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상해(上海)에서는 기아(棄兒)를, 그것도 보통 죽은 것을 흔히 쓰레기통에다 한다. 새벽이면 쓰레기 쳐가는 인부가 와서는 휘파람을 불어가며 쓰레기를 치는데, 그는 이 흉악한 기아(棄兒)를 보고도 별반 놀라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애총을 이리 비켜놓고 저리 비켜 놓고 해서 쓰레기만 쳐가지고 잠자코 돌아간다는 것이다. 요컨대 기아(棄兒)야 뭐 그리 이상하랴. 다만 이것은 쓰레기는 아니니까 내가 쳐가지 않을 따름, 어떻게 되는 걸 누가 알겠소, 이 뜻이다. 설마 했지만, 또 생각해 보면 있을 법도 한 일이다. 참 도회의 인심은 어느 만큼이나 박하고 말려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 ‘나가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돌이 가까워오나 보다. 같은 들보 한 지붕 밑에 죽 ― 칸칸이 산다. 박서방ㆍ김씨ㆍ이(李)상ㆍ최주사. 이렇게 크고 작은 문패가 칸칸이 붙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사귀지 않는다. 그 중에도 직업은 서로 절대 비밀이다. 남편 혹은 나 같은 아내 없는 장성한 아들들은 앞문으로 드나든다. 그러나 아내 혹은 말만한 누이동생들은 뒷문으로 드나든다. 남편은 아침 혹은 낮에 나가면 대개 저녁 혹은 밤에나 들어온다.
그러나 아낙네들은 집에 있다. 저녁때가 되면 자연 쌀을 씻어야겠으니까 수도(水道)로 모여든다. 모여들면 남자들처럼 서로 꺼리고 기피하지 않고 곧잘 언어노출증(言語露出症)을 나타낸다. 그래서는 잠자코 있었으면 모를 이야기, 안 해도 좋을 이야기, 흉아잡이 무릎맞춤이 시작되어서, 가끔 여류무용전(女流武勇傳)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힘써 감추는 남편씨의 직업도 탄로가 날고 해서 바깥양반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분쇄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기압(氣壓)은 대체로 보아 무풍상태(無風狀態)다.
우리 집 변소 유리창에서 똑바로 보이는 제2열 나가야 ×호(號) 칸에 든 젊은 세대는 작라(昨夏) 이래 내외 싸움이 끊일 사이가 없더니, 가을로 들어서자 추풍낙엽과 같이 남편이 남편직(男便職)에서 떨어졌다. 부인은 ×× 카페 화형여급(花形女給)이라는 것이다. ‘메리 위도우’가 된 화형은 남편을 경질하기에는 환경의 이롭지 못함을 깨달았던지 떠나버리고, 그 칸은 빈 채다. 물론 이사를 하는 경우에도 이웃에 인사를 하는 수고스러운 미덕(美德)은 이 ‘나가야’ 규정에 없다.
그 바로 이웃 칸에 든 젊은이의 감상담(感想談)에 의하면, 앓던 이 빠진 것 같다고 ― 왜냐 하면 그 풍기를 문란케 하는 종류의 레코드 소리를 안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또 이웃 아주 지방분(脂肪分)이 잘― 침착한 젊은이는 젖먹이를 잃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 죽은 아이 체중보다도 훨씬 더 많을 지방분도 깨끗이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어린애를 위해서나, 애 어머니 지방ㄹ분을 위해서나 부의(賻儀) 한 푼 있을 리 없다. 나도 훨씬 뒤에야 알았으니까 ―.
날이 훨씬 추워지자 우리 바로 격장(隔墻)에 4남매로 조직된 가족이 떠나왔다. B전문학교 다니는 오빠가 한 쌍, W 여고보(女高普)에 다니는 매씨(妹氏)가 한 쌍― 매양 석각(夕刻)이면 혼성 4중창의 유행가가 우리 아버지 완고한 사상을 고(苦)롭힌다. 그렇건만 나는 한 번도 그 오빠들을 본 일이 없고 누이는 한 번도 그 매씨들과 말을 바꾸어 본 일이 없는 것이다.
정월에 반대편 이웃집에서 흰떡을 했다. 몇 가락 주겠지 했더니, 과연 한 가락도 안 준다. 우리는 지짐이만 부쳤다. 좀 줄까 하다가 흰떡 한 가락 안 주는 걸 뭘, 하고 혼자 먹었다. 4남매 집은 원래 계산에 넣지 않은 이유가 그믐날 밤까지도 아무것도 부치지도 지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혀 흰떡과 지짐이를 그 이웃집에 기대하고 있는 수작이 아닌가 해서 미워서 그런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내 오해인지도 모르지만 ― 해토(解土)하면서 막다른 칸에 든 젊은이가 본처(本妻)에서 일약 첩으로 실격(失格)한 사건이 생겼다. 그러나 아무도 그 젊은이를 동정하지는 않고, 그 남편이 배불뚝이라고 험담들만 실컷 하다 나자빠졌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나날이 찾아오는 빚쟁이 수효가 늘어가기 시작이다. 그러다가 건물회사(建物會社)에서 집달리(執達吏)를 데리고 나와 세간 기명 등속에다가 딱지를 붙이고 갔다. 집세가 너무 많이 밀렸다는 이유다. 이런 뒤법석이 일어난 것을 4남매는 모두 학교에 갔으니 알 길이 없고, 이쪽 이웃 역 어느 장님이 눈을 떴누 하는 식이다. 차라리 나는 다행하다 생각하였다. 동네방네가 죄다 알고 야단들을 치면 더 창피다.
“이료노라―”
“누굴 찾으시오.”
“×씨 집이오?”
“아뇨.”
“그럼 어디요?”
“그걸 내가 아오?”
하는 문답이 우리 집 문간에서 있나 보더니 아버지 말씀이 ―
“알아도 안 가르쳐주는 게 옳다.”
“왜요?”
“아, 빚쟁이일시 분명하니 거 남 못할 노릇 아니냐―”
하신다. 도회의 인심은 대체 얼마나 박하고 말려고 이러나?
골동벽(骨董癖)
편집가령 신라(新羅)나 고려(高麗)적 사람들이 밥상에다 콩나물도 좀 담고 또 장조림도 담고, 또 약주(藥酒)도 좀 따르고 해서 조석으로 올려놓고 쓰던 식기(食器)나부랭이가 분묘(墳墓) 등지에서 발굴되었다고 해서 떠들썩하나, 대체 어쨌다는 일인지 알 수 없다. 그게 무엇이 그리 큰일이며, 그 사금파리 조작이 무엇이 그리 가치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냐는 말이다. 항차 그렇지도 못한 이조(李朝)항아리 나부랭이를 가지고 어쩌니, 어쩌니 하는 것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심사(心事)이다.
우리는 선조(先祖)의 장한 일들을 잊어버려서는 못쓴다. 그러나 오늘 눈으로 보아서 그리 값도 나가지 않는 것을 놓고 얼싸안고 혀로 핧고 하는 꼴은 진보(進步)한 커트글라스 그릇 하나를 만들어내는 부지런함에 비하여 그 태타(怠惰)의 극(極)을 타기(唾棄)하고 싶다.
가끔 아는 이에게서 자랑을 받는다. 내 이조항아리 좋은 것 우연히 싸게 샀으니, 와 보시오― 다. 싸다는 그 값이 결코 싸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보면 대개는 아무 예술적 가치도 없는 태작(駄作)인 경우가 많다. 그야 오늘 우리가 삼월백화점(三越百貨店) 식기부(食器部)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이니, 볼 점(點)이야 있겠지― 하지만 그 볼 점이라는 게 실로 하찮은 것이다.
항아리 나부랭이는, 말할 것 없이 그 시대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미술품(美術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간혹 꽤 미술적인 요소가 풍부히 섞인 것이 있기는 있으되, 역시 여기(餘技) 정도요, 하다 못 해 꽃을 꽂으려는 실용(實用)이라도 실용을 목적으로 된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오랜 세월을 지하(地下)에 묻혔다가 시대도 풍속도 영 딴판인 세상인(世上人) 눈에 띄니 위선(爲先) 역설적(逆說的)으로 신기해서 얼른 보기에 교묘한 미술품 같아 보인다. 이것을 순수한 미술품으로 알고 왁자지껄들 하는 것은 가경(可驚)할 무지(無知)다.
어느 박물관에서 허다한 점수의 출토품(出土品)을 연대순으로 진열해 놓고 또 경향이며, 여러 가지 분류 방법을 적확히 구분해서 일목요연토록 해 놓은 것을 구경하고 처음으로 그런 출토품의 아름다움과 가치 있음을 느꼈다.
결국 골동품의 가치는 그런 고고학적(考古學的)인 요구에서 생기는 것일 것이다. 겸하여 느끼는 아름다운 삼정은 즉 선조(先祖)에 대한 그윽한 행수(鄕愁)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역사(歷史)라는 학문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어느 시대의 생활양식ㆍ민속(民俗)ㆍ민속예술 등을 알고자 할 때에 비로소 골동품의 지위가 중대해지는 것이지, 그러니까 골동품은 골동품만을 모아놓는 박물관과 병존(竝存)하지 않고는 그 존재 이유가 소멸(消滅)활 뿐 아니라, 하등의 ‘구실’을 못한다.
같은 시대 갓, 같은 경향(傾向)의 것을 한데 모아놓고 봄으로 해서 과연 구체적인, 역사적인 지식(知識)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 그러니까 물론 많을수록 좋다. ― 그렇지 않고 외따로 떨어진 한 파편(破片)은 원인(原人) 피테칸트로푸스의 단 한 개의 골편(骨片)처럼 너무 짐작을 세울 길에 빈곤(貧困)하다. 그것을 항아리 한 개, 접시 두 조각 해서 자기 침두(枕頭)에 늘어놓고 그 중에 좋은 것은 누가 알까봐 쉬쉬 숨기기까지 하는 당세(當世) 골동인(骨董人) 기질은 우선 아까 말한 고고학적 의ㅡ이에서 가증(可憎)한 일이요, 둘째 그 타기(唾棄)할 수전노적(守錢奴的) 사유관념(私有觀念)이 밉다.
그러나 이 좋은 것을 쉬쉬 하는 패쯤은 양민(良民)이다. 전혀 5전에 사서 백 원에 파는 것으로 큰 미덕(美德)을 삼는 골동가(骨董家)가 있으니, 실로 경탄(驚歎)할 화폐제도(貨幣制度)의 혼란(混亂)이다.
모씨는 하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요컨대 샀던 것 깜빡 속았어. 그러나 5원만 밑지고 겨우 다른 사람한테 넘겼지, 큰일 날 뻔 했는 걸 ―이다. 위조(僞造) 골동품을 모르고 고가(高價)애 샀다가 그것이 위조라는 것을 알자, 산 값에서 5원만 밑지고 딴 사람에게 파라먹었다는 성공미당(成功美談)이다.
재떨이로 쓸 수도 없다는 점에 있어서 우선 제로에 가까운 가치밖에 없는 한 개 접시를 위조하는 심사를 상상키 어렵거니와, 그런 귀매망량(鬼魅魍魎)이 이렇게 교묘하게 골동세계를 유영(遊泳)하고 있거니,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일이다. 누구는 수만 원의 명도(名刀)를 샀다가 위조라는 것을 알고 눈물을 머금고 장사를 지내버렸다 한다. 그러나 이 가짜 항아리―접시 나부랭이는 속은 사람ㄴ이 또 속이고 또 속은 사람이 또 속이고 해서 잘 하면 몇 백 년도 견디리라. 하면 그 동안에 선대(先代)에는 이런 위조골동품이 있었답네 ― 하고 그것마저가 유서 깊은 골동품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타기(唾棄)할 괴취미(怪趣味)밖에 가지지 않은 분들엑서 위(僞)졸―랑은 눈에 띄는 대로 때려부수시오―하고 권하기는커녕 골동품―물론 이 경우에 순수한 미술품 말고 항아리 나부랭이를 말함―은 고고학적ㆍ민속학적 요구에서 박물관에 기부하시오, 하고 권하면, 권하는 이더러 천(賤)한 놈이라고 꾸지람을 하실 것이 뻐언하다.
동심행렬(童心行列)
편집아침길이 똑 ― 보통학교 학동(學童)들 등교 시간하고 마주치는 고로, 자연 허다한 어린이들을 보게 된다. 그네들의 일거수일투족, 눈 한 번 꿈벅하는 것, 말 한 마디가 모두 경이(驚異)다. 경이인 것이 우선 자신이 그런 어린이들과 너무 멀고, 또 제 몸이 책보를 끼는 생활을 그만둔 지 너무 오래고, 또 학교 다니는 어린 동생들도 다 ― 장성(長成)해서 집안이 그런 학동을 기르는 집안 분위기에서 퍽 멀어진 지가 오래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먼― 꿈의 세계를 너무나 똑똑히 눈앞에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뿌듯할 적이 많다.
학동들은 7, 8세로부터 여남은 살까지 남녀가 뒤섞인 현란(絢爛)한 행렬이다. 이것도 엄격한 중고교육(中古敎育)을 받은 우리로는 경이(驚異)다. 자전거가 멋모르고 좁은 골목에 들어섰다가 혼이 난다. 암만 벨을 울려도 이 아침 거리의 폭군들은 길을 비켜주지는 않는다. 자전거는 하는 수 없이 하마(下馬)하고 또 뭐라고 중얼거려도 보나, 그런 것에 귀를 기울이는 사심(邪心)이 없다. 저희끼리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있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누구하고 동무도 없고 행렬에도 끼지 못하고 화제(話題)도 없는 인물은 골목 한편 안가(人家) 담벼락에 비켜서서 이 화려한 행렬에 공손히 길을 치워주어야 한다.
우리는 구경도 못한 란도셀이란 것을 하나씩 짊어졌다. 그것도 부럽다. 그 속에는 우리는 한 번도 가지고 놀아보지 못한 찬란한 그림책이 들었다. 12색 크레용도 들었다. 프랑스 근대화파(近代畵派)들보다도 훨신 무서운 자유분방(自由奔放)한 그들의 자유화(自由畵)를 기억한다. 우리는 일생을 통하여 기어이 완전한 거짓말 속에서 시종(始終)하라는 건가 보다. 우리는 이제 시작해서 저런 자유화 한 장을 그릴 수 있을까. 란도셀이란 것 속에는 하고 많은 보배가 들어있다. 그러나 장난꾼들이 란도셀이 어쩌면 그렇게 모조리 헤어져서 헌털뱅인구.
단발이 부쩍 늘었다. 여남은 살 먹은 여학동(女學童) 단발한 것은 깨끗하고, 신선하고, 7, 8세 여학동(女學童) 단발한 것은 인형(人形)처럼 귀엽다. 남학동(男學童)들은 일제히 양복이다. 양복에다가 보통학교 아동 이외에는 이행(履行)을 불허(不許)하는 경편우누동화(輕便運動靴)들을 신었다. 그래서는 좁은 골목 넓은 길을 살과 같이 닫고 또 한군데 한없이 머물러서는 장난한다. 이렇게 등교시간 자체가 그네들에게는 황홀한 것이고, 규정 이상의 과정인 것이다.
중에는 셋 혹은 넷 무더기가 져서 걸어가면서 무슨 책인지 한 책에 집중되어 열중한다. 안경 쓴 학동이 드문드문 끼었다. 유리에 줄이 좍좍 간 것이 제법 근시(近視)들이다, 무에 저리 재밌을까― 고 궁금해서 흘낏 좀 훔쳐본다. 양홍(洋紅) 군청(群靑) 등 현란한 극채색판(極彩色版)의 소년잡지(少年雜誌)다. 그림은 무슨 군함(軍艦) 등속인가 싶다. 그러나 글자는 그저 줄이 죽죽 가 보일 뿐이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보통학교 학동이 안경을 썼다는 것은 실사(實事) 해괴망측한 일이다. 일인 것이 첫째 깜찍스럽다. 하도 앙증스럽고 해서 처음에는 웃고 그만두었으나 생각해 보면, 웃고 말 일이 아니다. 근시(近視)는 무슨 절름발이나 벙어리 같은 유희, 그야말로 불구자라곤 할 수 없으되, 불구자는 불구자다. 세상에는 치레로 금태안경을 쓰는 못생긴 백성도 있기는 있으나, 오페라글라스. 비행사(飛行士)의 그 툭 불그러진 안경 이외에 안경은 없는 게 좋다. 그것을 저런 아직 나이 들지 않은 연골(軟骨) 어린이들에게까지 씌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세상은 그리 고맙지 않은 세상임에 틀림없다.
예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현대의 고도화(高度化)한 인쇄술에도 트집을 아니 잡을 수 없다. 과연 보통학교 교과서만은 활자의 제한이 붙어서 굵직굵직한 것이 괜찮다. 그만하면 선천적 근시안이 아닌 다음에야 활자 탓으로 눈을 우지르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학동들이 교과서만 주무르다 그만두느냐 하면 천만에, 우선 참고서라는 것이 대개가 9포인트 활자로 되어 먹었다. 급기, 소년잡지 등속에 이르른즉 심지어 6호 7포인트 반(半)을 사용화여 오히려 태연한 출판업자 ― 게다가 추악한 극채색을 덮어서 예의(銳意)( 학동들의 동공(瞳孔)을 노리고 총공격의 자세를 일각도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안경 쓴 학동보다 안 쓴 학동의 수효가 더 많은 것으로 보아, 한편 괴이(怪異)도 하나, 한편 아직 그들의 독서열(讀書熱)이 40도에 이르지 않은 것을 차라리 다행히 생각하고 싶다. 누구에게라도 안경상(眼鏡商)을 추장(推獎)하고 싶다. 오늘 같은 부덕(不德)한 활자 허무시대(虛無時代)에 가(加)하여 불완전한 조명장치밖에 없는 이 땅에 늘어갈 것은 근시안(近視眼)일 뿐일 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