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용사들
序[서]
편집지금으로부터 사천이백칠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의 사회라 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발달되지 못하였다. 나라 ─ 국가라는 것도 아주 분명치 못하였다. 사람이라는 것은 짐승과 달라서 머리가 총명하여 짐승같이 단지 천연적 물건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의 힘으로 좀 더 어떻게 잘살아 보자고, 농사짓는 법도 발명하고, 사냥이며 고기잡이도 하며, 집을 지어서 대자연의 덥고 추운 것을 방비하며 ─ 이렇게 나날이 더 잘살아 갈 방법을 연구하며 실행하며 살아 왔다. 그렇게 되니까 저절로 농사 잘 짓는 사람은 평지에서 살고 고기잡이 잘하는 사람은 강변이나 바닷가에서 살고 사냥 잘하는 사람은 산으로 가고 ─ 이리하여 부락(部落)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고 동리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사람이라는 것은 형제 부자끼리도 그닥지 않은 일에 다투고 싸우는 일이 흔히 있다. 실수하는 일도 흔히 있다. 이런 때는 어른이 있어서 다툼은 말리고, 실수는 안하도록 지도하여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남남끼리로 조직된 부락이나 동네에는 지도하고 중재할 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추장(酋長)이며 동리 어른이 필요하게 된다.
부락이며 동네가 많아지면, 부락부락끼리, 동네동네끼리의 지도자가 또 있어야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 여러 부락이며 여러 동네를 합친 꽤 넓은 지역(地域)을 지도하고 지배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임군이라는 높으신 이가 계시어야 되게 되는 것이다.
위에 말한 사천이백칠십여 년 전에 부여(扶餘) 계통의 여러 부락들이 의논하여 임군으로 추대한 거룩하신 분이 단군(檀君)이라 일컫는 분이다.
부여 계통의 민족이 몇 만 년 몇 십만 년 전부터 이 동반구에 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단군이 임군이 되실 때는 지금의 만주군 전부와 조선 반도의 전부가 거지반 부여족의 동리 동리뿐이었다. 다른 민족도 간간 끼기는 하였으나 이 넓은 지역은 대개가 부여족이 살고 있었다. 그런지라 처음 단군께서 임군이 되실 때는 단군이 계신 그 근처의 지역 ─ 지금의 압록강 상류의 사면 수백 리의 임군이셨지만, 나도 나도 하고 뒤따라 부락 동네들이 단군께 심종하여 지금 조선 반도의 절반 이상과 지금 만주국의 대부분이 단군의 치하(治下)에 들게가 되었다.
이 민족은 서로 싸우고 다투고 한다는 일 ─ 즉 전쟁이라는 것을 모르는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 나라에는 군사가 없고 무기(武器)는 단지 사냥을 하고 고기를 낚기 위한 것뿐이었다. 무슨 다툼이 있으면 말로 끝막아 중지시키고 검소 질박하고 반드시 제 이마에서 땀을 흘려서야 먹고 입을 것을 구할 줄 알고 욕심이 없고 ─ 땅이 기름지고 산수가 청명하고 산물이 풍부하니 전쟁이라는 것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위로는 거룩하신 임군이 계시고 아래는 순후한 백성이 있으니 그야말로 태평건곤으로서 꿈과 같은 아름다운 나라이었다.
이리하여 단군의 창업하신 거룩한 나라이, 태평건곤 가운데서 수십 대를 보내고 세월이 일천이백여 년이나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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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거룩하고 태평한 나라에 놀라운 괴변이 일어났다.
외국인의 침략을 받은 것이었다. 전쟁이라는 것을 모르고 따라서 군사라는 것이 없던 이 나라에 천여 명의 외국인이 강제적으로 들어왔다.
상(商)나라의 서족 자서여(子胥餘)라는 사람이 거느린 주(周)나라의 식민대(殖民隊) 오천여 명이었다.
이 자서여가 동방 식민대의 수령으로 되어 요동(遼東) 압록강 등 땅을 모두 지나서 지금의 평양까지 이르러서 거기다가 자리를 잡았다. 평양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부락을 모두 그의 세력 범위 아래 집어넣었다.
단군의 이룩하신 나라는 그 동쪽은 태산 준령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교통로(交通路)는 서쪽 평양을 통과하여 남부 지방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서여의 이룩한 한족(漢族)의 새 나라 때문에 가운데로 탁 끊겼다.
하릴없이 단군의 후예는 압록강 상류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대만 다스리고 남부 지대는 내버렸다.
때는 지금부터 삼천육십여 년 전이다.
후일 이 부여 계통의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것과 거기 따라서 무예(武藝)라는 것이 없지 못할 것인 줄 절실히 느끼고 대대로 무예를 숭상하여 고주몽(高朱蒙)의 시대에 이르러서 고구려(高句麗) 왕국을 건설하고 중부 지대를 도로 한족(漢族)의 손에서 빼앗기까지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중부 지대는 늘 한족의 지배 아래서 지내 왔다.
그러면 자서여가 동쪽으로 오기까지 저편 서쪽인 지나(支那) 일대는 어떤 상황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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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에도, 요(堯) 순(舜) 우(禹)와 같은 거룩한 임군이 한동안 계속되 었다.
그 나라는 판도 (版圖)가 매우 컸다. 교통 기관이 부족한 당시에 있어서는 동으로 가도 서로 가도 남, 북, 어디로 가도 끝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네 나라를 천하의 중심으로 믿고, 자기네를 천하의 주인이라 믿었다.
저 멀고 또 먼 끝장나는 곳에 자기네와 생김생김이 다르게 생기고 말[言語] 이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은 몰몰아 오랑캐라 하였다. 부여(扶餘)도 무론 지나인은 오랑캐라 하였다.
나라의 바닥이 너무 넓으니만치 한 임군이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형제나 아들들이나 혹은 공신(功臣)들에게 한 구역씩 떼어 맡겨 다스리게 하였다. 이것을 제후(諸侯)라 하였다. 임군은 천하의 주인이요 하늘의 아들이라 하여 천자(天子)라 하였다.
하(夏)나라의 시조(始祖) 우(禹)에서 시작하여 열일곱 번째의 천자인 걸(桀)이 너무도 포학하였다. 제후(諸侯) 중의 한 사람인 성탕(成湯 ─ 商(상)나라에 封(봉))이 군사를 거느리고 천자를 쳐서 멸하고 스스로 서서 천자가 되었다. 이것이 지나 땅에 있어서의 타성찬역(他姓簒逆)의 시초이다.
이 나라에는 일찍부터 무기가 있고 군대가 있었다. 제후의 수효가 늘어 감을 따라서 제후끼리의 경쟁이 심하여지고 영토의 경계선에 대한 다툼이 많은 일 등등으로 자연히 군대가 생기고 전쟁이 생기게 되었다. 천자의 세력과 실력이 강하면 제후의 분쟁을 천자가 맡아 다스릴 것이지만 워낙 바닥이 넓어 천자 혼자서 감당키 힘드므로 제후에게 내어맡겼던 것이라, 천자가 그런 일까지 간섭할 수가 없었다.
성탕(成湯)이 천자가 되면서는 나라 이름을 은(殷)혹은 상(商)이라 하였다.
은나라 제이십육대 천자 주(紂)의 대에 이르러 또한 포학이 자심하여 주(周)의 무왕(武王)이 제후를 거느리고 천자를 쳐서 천자를 손에 넣고 스스로 천자가 되었다. 무왕이 천자가 되면서 기(箕) 땅의 자작(子爵) 자서 여(子胥餘)로서 뽑아 조선 왕으로 봉하여 부여족의 평양으로 보낸 것이었다.
천하를 구분하여 외지(外地)와 내지(內地)로 나누는데, 천자가 직접 봉하는 곳을 내지라 하고 그렇지 않은 데를 외지라 하는바, 조선 땅도 내속(內屬)케 하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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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또 흘렀다.
자서여 때문에 임군을 잃은 남쪽 부락들은 어떻게 되었나.
지금 조선 반도의 서남쪽에는 마한(馬韓)이라는 새 나라를 이룩하고 있었다. 동남쪽으로 한동안은 임군 없이 지내다가 마한의 지도 아래 진한(辰韓) 이 생기고 그 남쪽 지금의 ( 경상남도의 남부요 삼국시대의 가락 방면)에는 변한(弁韓)이라는 나라이 생겼다.
지금의 강원도의 산악 지대와 동해안의 좁은 평지는 지나에서는 통틀어 이를 예맥(濊貊)이라 하는바, 창해국(滄海國)이라는 나라이 있었다.
자서여에게 교통로를 끊기어 모국(母國)과의 교섭의 길이 없어져서 한동안 쩔쩔매었으나, 이제는 도저히 모국과 교섭할 기회가 다시 없을 것을 각오한 뒤에는 모두 자기네끼리 나라 하나씩을 이룩하여 가지고 다시 안정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후세의 일컫는 바 기자조선 때문에 단군의 나라이 남북 두토막에 잘라진 지도 구백여 년이라는 날짜가 흘렀다.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은 비교적 평원 지대요 땅이 기름지기 때문에 농사로써 근본을 삼았다. 게다가 기후가 온화하고 하니까, 천년세월에 사람의 체격 체질도 작게 되고 얼마간 약하게 되었다.
창해국은 그 대부분이 산악 지대요 동해안에 좁은 평지가 있고는 곧 동이 바다라 생업이 약초 캐기와 고기잡이라, 체격 체질이 자연 웅장 강대하여 갔다. 장사(壯士)들이 많이 났다. 창해국에서 유(有)씨가 세습적으로 임군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국내에서 나는 약초며 짐승의 가죽을 외국에 내보내고 곡식을 바꾸어다가 살며 그 지역이 산악이니만치 외국의 침범도 적게 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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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 서쪽 지나 땅에는 유명한 주대(周代)의 치적이 베풀어졌다.
이보다 썩 후에 춘추시대 말년에 공자(孔子)라는 이가 생겨 나서 유학(儒學)을 일으켰는데 그 소위 유학이라는 것은 별 것이 아니라 공자의 시대가 너무 어지러웠으니만치 옛날 주대(周代)의 예악(禮樂)이며 제도(制度)를 사모하여 그것을 강론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대로 몇 백 년 내려가면서 어지러워졌다. 제후(諸侯)의 위력은 나날이 약하여 감에 따라서 소위 춘추시대라 하는 것을 이루었다. 이 춘추 시대 초에 벌써 제후의 나라가 일백이십 개로 줄어들었으니까, 그동안 벌써 구백여 개의 제후국이 다른 제후에게 먹힌 것이다. 춘추시대의 말기(末期)에는 줄고 또 줄어서 겨우 큰 제후 십여 국이 남은 뿐 다른 나라는 다 없어졌다. 천자주실(天子周室)도 오랑캐에게 쫓겨서 도읍을 낙양으로 옮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을 소위 동주(東周)라 한다.
춘추시대의 다음을 전국시대(戰國時代)라 한다.
전국시대를 이룩하여 마감까지 막은 자가 진(秦)나라이다. 본시 진나라는 제후도 못 되는 미약한 지방이었다. 그렇던 것이 주실(周室)이 도읍을 옮길 때에 군사로 도운 공로로 제후로 오르고 기산(岐山)이서(以西)의 땅을 받았다. 그때는 진나라 밖에는 제후는 겨우 여섯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그런데 진나라는 땅이 너무 서쪽에 치우치고 게다가 근본이 얕다고 다른 여섯 제후가 얕보고 회의 같은 데도 청하지 않은 것을 분하게 여기고, 성공한 뒤에는 동쪽으로 차차 영토를 넓히기 시작하였다. 이때는 벌써 다른 여섯 제후는 어느 제후든 진나라를 당할 자 없을이만치 진나라는 강하여졌다.
여섯 제후는 진나라를 제어할 방책이 없어서 쩔쩔매는 동안 진나라는 나날이 강성하여지며 나날이 제후들의 영토를 침범하였다.
여기서 여섯 제후는 소진(蘇秦)의 합종설(合縱說)도 써 보고 장의(張儀)의 연형(連衡)설도 써 보았지만, 진나라는 모두 그 계획을 깨뜨리고 그의 영토는 넓어 갈 뿐이었다.
진나라는 대대로 영명한 임군이 연하여 나서 백여 년 간을 꼭 같은 정책 아래서 방책과 방법에도 고침이 없이 안으로는 일변 나라를 기르고 밖으로는 여섯 제후를 쳐내려오다가 장양왕(莊襄王)의 아들 정(政)의 때에 이르러서는 책사들을 몰래 보내서 여섯 제후의 군신간을 이간붙이고 차례로 한(韓) 조(趙) 위(魏) 초(楚) 연(燕) 제(齊)의 순서로 멸하여 버렸다. 천자인 주실(周室)은 이보다 먼저 없이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서서 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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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자는 스스로 자기의 칭호를 시황(始皇)이라 하였다.
종래부터 수천 년간 써 내려오던 봉건제도 ─ 즉 제후를 봉하는 제도를 단연 폐지하고 천하를 제실(帝室)에 직속케 하여 군, 현(郡, 縣) 제도를 취하고 군에는 수(守)와 위(尉)와 감(監)을 두어 ‘수’는 정치, ‘위’는 군사를 맡고 ‘감’은 이를 보살피고 ‘군’의 아래’현’을 속하게 하였다.
천자의 아래는 삼공을 두고, 삼공 이하로 백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천자가 직접 임면(任免)하여 천자의 절대 독재권을 확립하였다.
여기 대하여 반대하는 소리가 꽤 높았으나(더욱이 제후가 되기를 바라는 황족 공신들의 반대) 일체로 탄압하였다.
천하의 병기(兵器)를 모두 서울로 거두어다가 녹여서 인형 열두 개를 만들어 제실 이외에는 병기가 없게 하였다.
또 짐(朕) 조(詔) 칙(勅) 새(璽) 등의 천자 전용의 글을 제정하여 다른 사람에게는 못 쓰게 하였다.
화폐, 도량형(度量衡), 율(律), 역(曆), 차궤(車軌), 의관, 문자 등도 모두 획일적 제도를 세웠다.
천하의 책에 의서 (醫書)와 농사에 관한 책과 복술에 관한 책 밖에는 모두 선비들의 군소리뿐으로 아무 쓸데 없는 것이라 하여 궁정의 소관이 이하 천하의 책을 모두 거두어서 불살라 버렸다.
여기 대하여 맹연히 반대하는 선비 사백육십여 인을 땅에 묻어 죽였다. 옛날부터 제후들이 오랑캐를 막기 위하여 쌓았던 성을 수리하고 개축하고, 잇고, 늘이고 하여 만 리의 장성을 쌓았다.
천하의 부호(富豪) 십이만 명을 서울 한양에 불러들여서 서울을 호화로운 도희로 꾸몄다.
북쪽 오랑캐를 쳐물리고 그 대신 한족(漢族)을 거기 이민하고 남으로 안남(安南) 이북까지의 오랑캐를 몰아 내고 한족을 옮기어 강역을 넓히기 한량이 없었다.
일 년간에 다섯 번을 국내를 순유하여 천자의 높음과 애휼을 백성에게 알렸다. 그의 위령은 국내뿐 아니라 멀리 해외에까지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천하를 손에 넣고 천하의 주인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시황에게도 한 가지의 커다란 번민과 근심이 있었으니,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생에는 늙음과 죽음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피할 길이 없는가.
‘천하를 얻고도 그 생명을 잃으면 무엇하리오.’
옛날 이스라엘의 임군 솔로몬이 발한 탄식과 똑 같은 탄식을 시황도 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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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에서는 시황이 천하를 얻고도 그 생명의 위협을 느끼어서 번민할 때에 동방 산악 지대 창해(滄海)왕국에는 유피(有皮)라는 이가 임군이 되어 평화의 왕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黎民雍[여민옹]
편집“보습은 바로 메었느냐?”
창해(滄海)국 서울의 교외, 큰길에서 조금 벗어나서 있는 밭두렁에 앉아서 자기가 방금 다 치워 놓은 밭의 돌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여 민옹(黎民雍)은 뒤에서 들리는 이 소리에 번쩍 고개를 돌렸다. 거기는 그의 아버지 되는 상대부(上大夫 ─ 가장 높은 대신)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이리로 오는 것이었다.
“아이구 아버님. 벌써 나오세요?”
“오냐 후! 돌부리까지 모두 뽑아 치웠구나.”
“네, 방금 끝내고 지금 좀 쉬던 중이어요.”
여민옹은 그의 놀라운 장대한 몸집을 일으켰다.
“그럼 시작할까요?”
“어둡기 전에 갈아 치워야지.”
부자는 저편 밭두렁에 우두커니 서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에게로 갔다.
그리고 아버지는 소를 끌고 아들은 보습을 섬기면서 밭을 갈았다.
“아버지.”
밭을 한창 갈면서 아들이 찾았다.
“왜?
“저 진(秦)나라의 시황(始皇)인가 하는 사람은 어리석게도 장생불사해 보겠다고 산삼(山蔘)을 구한다지요.”
“음, 구한다더라마는 그게 어리석기야 뭐이 어리석겠느냐.”
“천하이 넓으니 모르기는 하겠읍니다마는 산삼이야 우리나라 밖에 어디 또 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으로야 제 생업 버리구 시황제의 상이나 타먹겠다구 산삼 가지구 갈 녀석이 어디 있겠어요. 그게 어리석지 않습니까?”
“글쎄, 그렇게 생각하면 어리석을는지도 모르겠다마는 우리나라와 접경해서 기부조선(箕否朝鮮)에는 한족(漢族)도 꽤많으니까 모르지. 한족의 욕심이란 본시 꽤 센 것이니까?…”
“그놈들, 우리나라에 한 놈이라도 들어오기만 했다가는 이 주먹이 소리를 낼걸요.”
민옹은, 보습 섬기던 오른편 주먹 ─ 그야말로 커다란 바위와 같은 주먹을 들어서 한 번 둘러보았다.
“야, 그렇지만 시황제는 제법이더라. 그 넓은 나라를 다스려 나가자면 그렇게 해야지, 다른 방책이 없을 게야, 그만치 만들어 놓고도 불초한 자식이 있고 자기는 차차 늙어 가고 하니깐 걱정스러워서 좀더 오래 살아보잘 것이 아니냐?”
“글쎄올시다.”
“남의 나라 일은 둘째고, 우리나라의 일이 한심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 느니라.”
“뭐야요?”
“야, 그 중대부(中大夫)가 연해 참소질을 하고 내게 대해서 참소를 하다 못해서 너의 삼촌을 참소를 해서 잘못하다가는 일이 생기리라.”
“중대부란 도전각(陶田角)이 말씀이지요? 그 도씨가 작은아버님을 나라님께 참소를 해요?”
“그렇단다.”
“아버지는 잠깐 돌아보세요.”
이 말에 아버지는 소를 멈추고 돌아보았다. 민옹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보습 위에 가로 놓았던(돌부리를 뽑느라고 가져왔던) 꽤 굵은 쇠몽치를 들었다. 그리고 그 한편 끝을 오른손으로 잡고 한 번 고함치며 왼손에 힘을 주매 그 굵은 쇠몽치가 오른손 위에서 굽었다. 뿐이 아니었다. 다시 힘주어 마치 노끈을 팔에 감듯 천천히 팔에다가 감았다. 그것을 다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펴 가지고 좌우편 끝을 잡고 한 번 올라뛰며 고함치매 지금껏 굽었던 자리가 남았던 쇠몽치가 쭉 곧추 펴졌다.
“아버지, 이 주먹이면 못 당할 것이 있겠읍니까?”
“호 ─ ”
아버지도 감탄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젊었을 때는 힘깨나 썼지만 너는 꽤 무던하구나.”
“이 힘이 장차 헛되이 쓰이리까?”
이 대화뿐으로 아버지는 다시 소를 끄을고 아들은 보습을 섬기며 밭을 갈았다. 밭을 갈면서 또 이야기다.
“아버지. 그 도씨가 무어라고 참소를 합니까?”
“그저 별별 소리로 말하자면 나라님께 내 세력을 꺾자는 게로구나.”
“그러구. 자기가 상대부가 되구 싶다는 겐가요?”
“그럼! 이야 이놈의 소.”
이리하여 부자가 이 밭을 거의 다 간 때였다. 저편 큰길에서 이 밭을 향하여 총총걸음으로 달려오는 여남은 살쯤 난 계집애가 있었다. 민옹이 먼저 보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저 애가 누이 아닙니까?”
“참 조카인가 보다.”
사실 그 계집애는 민옹의 삼촌 여해(黎蟹)의 딸이었다.
“큰아버님!”
달려와서 큰아버지를 찾는 어린 계집애의 얼굴은 눈물이 그득하였다.
“오, 네냐? 웬 일이냐? 왜 눈물이냐? 무슨 일이 생겼느냐?”
“큰아버님, 방금 나랏병정이 달려와서 아버님을 결박지어 갔어요.”
“뭐!”
부자가 동시에 낸 소리였다.
“아버지. 도씨의 장난이군요.”
아버지는 대답치 않았다. 머리를 푹 수그렸다.
“야 거기 잠깐 서 있거라, 밭 한 이랑만 더 갈구.”
한 이랑을 더 갈면서 생각하여 대답하려는 모양이었다. 부자는 소를 끄을고 저편 끝까지 갔다가 새 이랑을 잡아 가지고 돌아왔다. 계집애의 앞에 와서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야, 내 좋도록 조처할 터이니 어머님께 가서 아무 염려도 말고 기다리고 계시라구 그래라.”
“염려 없을까요?”
“내가 있지 않으냐?”
계집애는 잠시 더 서 있다가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부자는 다시 밭을 갈았다. 한 이랑, 두 이랑, 아버지는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두 이랑을 더 간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야.”
“네?”
“너 오늘 밤 옥을 깨뜨리구 삼촌을 구해 내라. 결코 죄없는 병졸은 다치지 말구. 뒷벽을 뚫고.”
“네. 합지요.”
“분명히 도씨의 작간이지만 네가 도씨를 건드리든가 하면 공연히 나라를 소란케 하는 거야. 그리고 나라님께 청을 해볼까구도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 나라님께서는 내가 백성들에게 신망이 있으니 하릴없이 나를 상대부로 두시지 도씨를 더 신임하시는 터에 청을 드려두 될 것 같지두 않아. 그러니께 그 주먹으로 옥 담벽을 뚫고서 그리고 구해 낼 도리 밖에는 없을까 부다.”
“아버지, 염려 마세요. 왜 병졸을 건드리어요? 감쪽같이 구해 내리다.”
“후 ─. 나라 일두 참 한심하군.”
“아버지, 아버지만 허락하시면 제 주먹으로 도씨 같은 것은 가루를 만들 터인데. 왜 허락 안하세요?”
“글쎄, 너도 아다시피, 우리나라에는 우리네 여씨 집안과 그 도씨 집안이 수백 년째 명문 거족으로 내려오지 않았으냐. 도전각이 한 사람을 없이한다 할지라도 수없는 도씨가 또 있지 않으냐 그러니까 나라이 크게 소란하게 될 것이야. 재상으로 앉아서 나라이 소란하게 될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제 생각 같아서는 한 주먹으로 가루를 만들겠읍니다마는. 아버지 인제 한 이랑 더 갈면 되겠읍니다.”
그 남은 한 이랑을 마저 갈고 아버지는 소를 끄을고 아들은 연장을 메고 집으로 돌아온 것은 황혼이 가까워서였다.
그날 저녁 민옹은 저녁을 먹자마자 곧 잠자리에 들었다. 밤중에 깨기 위해서 일부러 일찍 잔 것이었다.
밤중, 닭이 두 홰째 울 때쯤 해서 민옹은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소리없이 집을 빠져나왔다.
캄캄한 그믐 어두운 밤이었다. 길을 더듬어서 감옥까지 이르렀다.
감옥에서도 정문을 돌아서 뒤로 돌아갔다. 돌아가서 그 낮지 않은 담 위에 손을 얹었다. 다음 순간은 그의 커다란 몸집이 소리도 없이 담 안에 들어서 있었다.
밤눈이 비교적 밝은 그는 옥문 앞에 병졸들이 앉아서 지키는 것을 어렴풋이 보았다. 그리고 담에 꼭 붙어서 뒤로 뒤로 돌아갔다.
뒤로 돌아가서는 발소리를 힘껏 감추어 가지고 삼촌이 갇혀 있는 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이리하여 겨우 옥에까지 이르러서는 옥 담벽을 한 번 쓰다듬어 보고 그 뒤에는 잡담 제하고 주먹을 들어서 쿡쿡 담벽을 향하여 쏘았다. 주먹은 옥의 담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아무도 이 주먹 들어가는 소리는 못 들은 모양이었다.
주먹을 쫙 펴서 옥 담벽을 안에서 받치고 흠칫흠칫 하여보았다. 담벽은 그의 놀라운 힘에 움쩍거리었다.
소리가 안 나게 담벽을 뜯노라고 민옹은 한참 동안 노력을 하였다. 그리하여 한꺼번에 한모퉁이를 꽤 넓게 뜯어 놓았다.
민옹은 그 구멍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쓰다듬었다. 한 사람이 기다랗게 누워서 고요히 잠들어 있는 것이 만져졌다. 민옹은 가까이 가서 얼굴의 수염이며 손을 만져 보아 삼촌이 틀림이 없는 것을 알고 목 아래와 엉덩이 아래로 가만히 손을 넣어서 고요히 쳐들었다. 그리고 그냥 잠에서 깨지 않게 하여가지고 구멍으로 도로 나와서 또한 소리를 감추어 담장까지 나왔다.
거기서 민옹은 삼촌을 높이 들어서 담장 위에 올려놓고 자기는 담장을 넘어서 다시 삼촌을 담장밖에서 내리었다.
이 동작에 삼촌이 잠이 깨었다.
“음?”
“작은아버님.”
“누구요?”
“작은아버님. 저올시다. 조용하세요.”
“오, 민옹이냐, 여기가 어디냐?”
“감옥 담장 밖이올시다.”
“네가 나를 여기까지 꺼내었느냐?”
“네.”
“안 된다. 나라님은 명으로 가둔 나를 꺼내면 되느냐?”
“아니올시다. 아버님의 뜻을 받자와 이런 일을 했읍니다. 아버님 말씀이 이 일은 분명히 처사 그릇된 일이지만 나라님께서는 들으시지 않겠고, 그냥 두면 나라님께 좋지 않은 말씀이 돌아가겠다고 이렇게 구해 내라십디다.”
“형님이 그러시어?”
“네, 아버님께서.”
“음.”
잠시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뒤에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하였다.
“음 인제부터는 영 망명객의 신세로구나.”
“네? 왜요?”
“그렇지 않으냐. 나라의 죄인이니 어디 도망이나 해야지 않겠느냐.”
“어디 다른 속에 가셔서 이름을 달리하시고 사시지요.”
“그러니까 망명객이지. 좌우간 형님의 처분이니 좇을 수밖에 없지.”
“어서 여기서 다른 데로 떠나십시다.”
“형님께 먼저 가서 뵙자.”
숙질은 거기서 어두운 길을 더듬어서 여민옹의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매 민옹의 아버지 방은 민옹이 삼촌과 함께 올 것을 미리 알았던지 불을 가늘게 켜고 일어나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숙질이 들어서는 소리에 먼저 문을 열었다.
“오는가?”
“형님.”
“아버지.”
“음, 어서 들어오게.”
숙질은 방 안에 들어갔다. 여방은 먼저 아들에게 물었다.
“병졸은 다치치 않았지?”
“감쪽같이 모셔왔읍니다.”
이번은 아우에게 향하였다.
“욕보았네그려.”
아우는 푹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글쎄 알겠읍니까. 아까 병정들이 와서 어명으로 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고는 지금껏 영문을 모르지요.”
형은 잠시 머리를 숙이고 생각을 한 뒤에 입을 열었다.
여보게 자네에게 “ , 부탁을 할 중대한 일이 있어.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금 진나라 시황제가 천하에 널리 산삼을 구하지 않는가? 자네 진나라에 잠입을 해서 시황제가 사람을 산삼 캐러 우리나라로 밀송이나 하지 않는지 염탐해 가지고 돌아오게.”
“그야 형님의 명령이라시면 하기는 하겠읍니다마는.”
“마는 어떻단 말인가?”
“나라의 죄인이 어떻게 다시 돌아오기야 하겠읍니까?”
“여보게. 낸들 생각없이 일을 처리하겠나? 자네 그것을 염탐해 가지고 돌아와서 몰래 내게로 오면 내가 나라님께 여쭈어서 그 공로로써 자네 소위 죄라는 것을 특사하도록 하면 될 것이 아닌가?”
“형님!”
“염려 말고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게. 자네 없는 동안 자네 집안 걱정도 하지 말고. 내 뒤보아 줄 테니.”
“그럼 처분대로 하겠읍니다.”
“그럼 자네 집에 잠깐 들러서 집안들에게 안심이나 하게 하고 밝기 전에 길을 떠나게. 밝으면 재미없으니.”
“그럼 형님, 인제 가겠읍니다.”
“어서 가게.”
아우는 일어섰다. 형과 조카는 대문까지 바래 주었다.
대문 밖을 조금 간 때쯤 해서 여방은 아들 민옹을 불렀다.
“야, 너 삼촌이 무사히 이 서울을 벗어나도록 먼발로 뒤밟아라.”
“네.”
쾌활히 대답을 한 뒤에 민옹은 대문 밖을 나서서 저편 어두운 길을 더듬어 가는 삼촌을 뒤밟았다.
삼촌은 자기의 집으로 들어갔다. 민옹은 그냥 이편에 서서 기다렸다. 들어갔던 삼촌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나왔다. 그러고는 이번은 차차 교외로 향하여 나아갔다. 그 뒤를 민옹은 먼발로 밟아 갔다.
교외를 나서면 밭 틈으로 난 길. 그 길을 지나면 산, 그 산을 넘으면 다른 동리, 그 동리만 지나면 한참은 무인지경이요, 거기만 나서면 인제는 안심이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삼촌의 뒤를 민옹은 그냥 밟았다. 그리하여 산을 넘고 동리를 지나서 무인지경에 들게 되자 날이 훤하게 동이 트기 비롯하였다.
민옹은 여기서 저편 앞에 쓸쓸히 지금 타국을 향하여 가는 삼촌의 등을 향하여 절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고 발을 돌이켰다.
山蔘[산삼]
편집“오늘도 또 나가시지요?”
“암. 나가지.”
여기는 창해국 개골산(皆骨山)의 외딴 산골에 단 한 채의 집이었다. 이 집었다. 이 집 주인 내외는 창해 사람의 복색을 하기는 하였지만 사실은 한족(漢族)이었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다른 여섯 나라를 집어삼키고 책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학살을 할 때에 그 난을 피하여 허덕지덕 도망하여 오고 또 오노란 것이, 창해국의 개골산까지 이르러서 거기서도 외딴 산골에 오막살이를 틀고 안해는 베짜고 남편은 약초 캐어 동리에 내려가서 쌀을 바꾸어다가 연명을 하여가는 망명객의 집이었다. 주인의 이름은 서복(徐福)이었다.
“그럼 점심을 싸야겠지요.”
“암.”
아내는 점심을 싸다가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은 그것을 받아 차고 나섰다.
“자, 오늘은 이 골짜기로 가 볼까?”
매일 약초를 캐러 나다니는 서복으로서도 매일 다른 골짜기로만 찾아들 수가 있을 만치 수없는 골짜기와 수없는 봉우리를 가진 이 산이었다. 그 위에 그 어느 골짜기라 굽어보면 모래알 하나까지라도 다 보이는 맑은 개천이 안 흐르는 곳이 없고 쳐다보면 기암괴석이 첩첩이 둘린 가운데 바위 틈마다 푸른 솔이며 아름다운 꽃이 없는 데가 없는 ─ 인간 세계의 선경(仙境)이었다. 매일 보나 매일 아름답고 매일 밟으나 매일 정다와지는 곳이었다.
“아아, 선경이로다. 이것이 내 나라라면 얼마나 좋으랴?”
계곡을 건너며 바위를 넘으며 약초 캐기에 여념이 없는 서복이지만 이 아름다운 경치에는 자연히 눈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아름다운 산간을 약초를 캐며 올라가던 서복은 점심때 어떤 샘물가의 바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 눈을 들었다. 눈을 들면 여전히 꿈 같은 선경의 기암괴석은 눈앞에 전개되어 그를 황홀케 한다. 잠시를 황홀히 이 경치를 우러러보다가 그의 생각은 망명할 때로 올라갔다.
오백 명에 가까운 그의 동지가 시황제에게 잡혀서 땅에 묻혀 죽을 때 그는 단지 삶을 찾아서 쫓기고 쫓기어 달아났다. 단지 한족(漢族) 없는 곳을 찾아서 뛰되 요동(遼東)에는 한족이 있었고 압록강 건너도 있었고 평양도 있었고 이 모든 곳을 ─ 피하여 산골로 산골로 피하여 온 곳이 이 선경 창해 국이었다.
처음에는 고국이 그립기도 하고 친구며 친척들이 그립기도 하고 사람의 무리가 그립기도 하며 자기의 생활이 퍽 외롭기도 하였지만, 지나고 보매 이 선경이 정들었다. 인제는 자자손손이 이 신선의 나라에 뼈를 묻으며 번식하리라고 마음먹고 있는 중이다.
잠시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에라. 또 캐러 떠나자.”
혼자 중얼중얼하면서 일어서려 하였다. 그러면서 눈앞을 보매 문득 서너 걸음 앞에 이상한 풀이 한 포기 눈에 띄었다.
“저게 뭐일까?”
가서 뽑아 보려 손을 대었다. 잡아당겼다.
이상하였다. 좀체 뽑아지지 않았다. 이번은 호미로 사면을 파고 뽑아보았다. 한 뼘이 좀 남짓한 무(蕪)같기도 하고 도라지 같기도 한 이상한 ─ 지금껏 본 바이 없는 것이었다.
입으로 조금 씹어 보았다. 쓰디쓴 한편으로는 온 입안으로 향기가 확 퍼진다.
“이게 무엇일까?”
너무도 향그러운 바람에 그냥 다 먹어 버렸다. 다 먹고 몸을 일으키려 하니 몸이 노곤하니 피곤하였다. 그래서 다시 주저 앉으니까 마치 독한 술을 마신 듯이 차차 몸이 취하여 온다. 서복은 그 뒤를 알지 못한다. 이튿날로 낮이 지나서야 깨어났다. 깨어나니 몸이 한 번 개조된 듯 마음과 몸에 원기가 놀랍게 났다. 서복은 시험삼아 몸을 일으켜서 뛰어 보았다. 다리의 원기, 온몸의 원기 ─ 이전에 간신히 기어오르던 벼랑을 올라갈 수가 있었다.
“그것이 이름에 듣던 바 산삼이었구나. 산삼이란 것은 신선 사는 곳에나 있다더니 이 창해국이 선계(仙界)였던가. 아마 경치로도 과연 선계로다.”
산삼을 맛본 서복은 다시 산삼을 얻어 보려고 눈이 뒤벌개서 다른 약초의 웬만한 것은 내버려 두고 돌아다녔다.
이 날도 늦어서야 서복은 집에 돌아갔다. 어제 나가서 지금이야 들어오는 남편을 너무도 기뻐서 맞는 안해에게 서복은 그 새 지난 일을 다 말하였다.
이튿날부터는 서복이가 산에 다니는 것은 순전히 산삼을 캐기 위해서였다.
다른 약초는 눈에 띄면 할 수 없이 캐었지 그의 원 목적은 산삼에 있었다.
그러나 산삼이란 것이 그렇게 쉽사리 눈에 뛸 까닭이 없었다. 목적한 산삼은 그 뒤는 한 번도 다시 못 만나고 목적치 않은 다른 약초만 연하여 늘어 갔다.
산삼! 산삼!
마치 산삼 미치광이였다.
이렇듯 구하려는 산삼은 다시 구하지 못하고 다른 약초만 늘어 갈 동안 어느덧 서복의 집안 양식이 거의 끊어지게가 되었다. 이제는 그 새 캔 약초를 동리로 가져가서 양식을 바꾸어 올 밖에 없었다.
서복은 아내가 정리하여 말리어 둔 약초를 보에 싸서 지고 꽤 먼 동리로 내려갔다. 거기서 단골 약초 주인을 찾아서 양식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큰 약초집으로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사람들이 저희들끼리 잡담들을 하는 가운데 문득 시황제라는 말이 귓결에 들리므로 서복은 그리로 귀를 기울였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시황제가 산삼을 천하에 구한다니 진나라 천하에야 산삼이 어디 있담.”
“하하하하. 그래도 구해 오면 좋은 벼슬을 주고 후한 상을 준다는걸.”
“도대체 어리석은 사람이지, 주(周)나라 제후로서 종주국(宗主國)을 없이 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단 그런 무도한 사람이 하는 노릇이라 귀여겨 들을 것도 아니야.”
“그럼. 우리야 어쩌다가 다행히 산삼이 눈에 띄면 캐다가 우리 나라님깨드리지 시황제를 찾아갈 녀석은 없을걸.”
“암 그렇구말구.”
“도대체 산삼은 영물(靈物)이라 캐려구 마음먹구 덤벼들면 눈앞에 있으면서두 보이질 않는단 말이지.”
“저절로 어떻게 눈이 뜨이지.”
“진정으로 정성을 드리면 캐지기도 한다더군.”
“글쎄.”
“시황제에게 도라지나 한 짐 갖다주고 속으로 웃어 볼까.”
“하하하하.”
그러고는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데로 넘어갔다.
서복은 그 말을 마음여겨 들었다. 그리고는 자기의 양식을 지고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동리에서 돌아온 뒤로부터는 서복은 산삼과 약초를 캐러 산으로 돌아다니 다가도 뜻하지 않고 멍하니 공상에 잠겨서 한참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고 하였다.
그의 마음에 생겨서 자라나는 한 가지의 공상 ─ 오히려 몽상(夢想)이 있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내니 임군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은 근거없이 공중 솟아나온 바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낼 만한 근거가 넉넉히 있었다.
서복의 공상의 줄기는 대략 이러하였다.
자기가 이제 산삼을 한 뿌리 캔다. 그러면 그것을 진나라로 가지고 가서 자기는 한 방사(方士)로 변색을 하고 시황제에게 뵙고 그 산삼을 바친다.
그러면 시황제는 산삼 한 뿌리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더 많이 구해오기를 명할 것이다 그러면 그때야말로 자기의 공상 실현이 될 것이다.
듣건대 지금 창해국의 임군은 그다지 영특지 못하고 그 위에 사사 욕심이 많은 도씨가 신임을 받고 있다 한다. 이런 사람들은 매수 하려면 매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는 시황제에게,
“산삼을 많이 구하려면 산삼은 영물이라 더러운 사람의 눈에는 뜨지 않는 법이오니, 동남동녀(童男童女) 오백씩만 줍시사.”
하고 그 동남동녀 오백 명씩의 의식용품을 넉넉히 받아 가지고, 후한 예물까지 받아 가지고 이 창해국으로 건너오리라.
이 나라의 도씨(陶氏) 따위는 약간한 예물이면 매수될 것이요, 그를 매수해 가지고 이 신선의 땅에 자리를 잡고 동남동녀 오백 쌍을 짝무어 놓으면 이삼 년 뒤에는 적지 않은 식구가 생길 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이 신선의 땅의 임군이 아니냐.
일 년? 이 년? 삼 년만 가졌으면 자리야 넉넉히 잡겠지. 시황제에게 삼 년간을 먹고 입을 것을 타 가지고 오면 그 뒤는 여기 닦은 터에서 넉넉히 자활(自活)할 수가 있을 것이다.
─ 이런 엉뚱한 생각을 먹고 서복은 더욱 눈이 뒤벌개서 산삼을 구하려 돌아다녔다.
얼마를 이렇게 다니면서도 산삼은 그림자도 못 본 서복은 전날에 약초방에서 들은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대체 산삼이라는 것은 구하려면 보이지를 않고 그렇지 않으면 정성을 잘 드리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서복은 정성을 드리기로 하였다.
이 땅 어느 곳이라 정갈하지 않은 곳이 없고 깨끗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서복은 그 가운데서도 고르고 골라서 가장 정갈하고 아름다운 곳에 제단을 뭇고 매일 목욕재계하면서 거기서 기도를 드리었다.
이러기를 백 일간 ─ 백 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날도 깨끗이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리고 나니까 인제는 기도도 끝났다고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맥이 푹 빠지며 그 자리에 그냥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한잠을 푹 자고 났다.
한잠을 푹 자고 그가 눈을 뜰 때였다. 그의 눈이 향한 곳 바로, 거기는 산삼의 잎이 분명히 있었다.
서복은 허망지망 달려갔다. 분명한 산삼이었다. 그것은 우연한 일인지 혹은 기도 덕인지는 모르지만 거기는 분명히 산삼이 하나 마치 서복을 기다리듯이 비죽이 나 있었다.
서복은 그 가장자리를 곱게 돌라 파 가면서 이 산삼을 뽑았다.
“아!”
서복은 부르짖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팔뚝만이나 한 커다란 산삼으로서 적어도 몇 백 년 묵은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옥황상제님, 감사합니다.”
다시 제단 앞에 이르러서 무한히 사례를 하였다.
서복은 그 캐낸 산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어떻게 됐지요?”
안해의 묻는 말에 서복은 대답 대신으로 캔 산삼을 내보였다.
“아이구, 이게 무(蕪)구료.”
“여보. 이 바보소리 작작 하오.”
“그럼 뭐예요?”
“이게 소위 불사약 불로초 산삼이라는 영물이오.”
“이게?”
안해는 눈을 휘둥글게 하였다.
“그러면 우리도.”
“암.”
“그럼 당신은 이것을 가지고 진나라로 가세요?”
“가구말구.”
“가신다니 일이 바로 뜻대로 되면 오죽 좋으리까만 다 한 가지 근심은 당신은 시황께 근본만 들켰다가는 큰 일을 겪을 것이 근심이에요”
“그런 걱정 집어치오. 나를 알아볼 사람이 지금 천하에 어디 있겠소? 그런 염려는 아예 하지나 마오.”
그 이튿날부터는 서복은 약초를 캐러 다니지 않았다.
남편과 안해는 길 떠날 준비에 분주하였다.
외딴 산골에 여인 혼자를 두고 길 떠나는 바이라 집 울타리도 좀 튼튼히 하여야 할 것이다. 근처의 나무를 베어다가 이것도 하였다.
적지 않은 길이라 옷 준비도 넉넉히 하여야 할 것이다.
남편은 남편의 할 일, 안해는 안해의 할 일로 분주히 수일간을 보냈다. 그리고 인제는 준비는 다 되었다. 인제는 떠나는 일뿐이었다.
일이 뜻대로 되기만 하면 남편은 임군이 되고 안해는 왕비가 된다. 이런 솔깃한 노릇이 어디 다시 있으랴.
🙝 🙟
서복이 길을 떠나는 날이었다.
산삼을 좋은 종이에 싸고 또 싸서 그것을 봇짐 깊이 넣고 새벽 일찍이 안 해가 지어 준 밥을 먹고 길을 떠남에 임하여 서로 작별하였다.
“내 다녀올 동안 잘 있수.”
“안녕히 다녀오세요.”
“외딴 곳이라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자오. 늘 문 잘 닫고.”
“네. 저는 걱정 마시고 당신이나 본적이 드러나지 않도록 삼가세요. 그것만이 걱정이여요.”
“그것은 아예 걱정도 마시오. 자 갑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바래는 안해, 돌아보며 가는 남편.
작별은 쓸쓸하였다. 그러나 장래의 엉뚱한 야망(野望)을 마음에 품었으니 만치 보내는 안해도 그다시 섭섭하지도 않았고 떠나는 남편도 마찬가지로 마음은 희망으로 찼을 뿐이었다.
육로로 낮에는 길을 가고 밤에는 인가에 묵으며 ─ 이리하여 기부 조선(箕否朝鮮)도 지나고 압록강 건너서서 부여 땅도 지나고 진나라 영토 안에 들어섰다.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역시 고국에 대한 정애였다. 눈익은 옷을 입은 무리들만이 귀익은 말로 지껄이며 돌아다니는 이 고국, 이 고토 ─ 일단 단념하였다. 다시 보지 않으려 하였다지만 들어서 보니 역시 반갑고 정다왔다. 사람이란 역시 이런 정은 잊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서복은 통절히 느꼈다.
진나라 땅에 들어서서, 서복은 길가의 사람들의 이야기로써 지금 시황제는 전국을 순유(巡遊)하는 중으로서 지금쯤은 제(齊)땅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 함양을 향하려던 길을 다시 돌이켜서 제 땅으로 향하였다.
그의 등에는 그의 장래를 작정할 귀중한 산삼이 든 봇짐이 지여 있는 것이었다 지금껏 오는 동안도 . 서복은 잠잘 때도 그 산삼만은 몸에서 떼지 않고 간수하여 온 것이다.
秦始皇[진시황] 날을 거듭하여 서복은 제(齊)땅으로 길을 채었다. 이리하여 수일 뒤에는 목적한 바에 제 땅에 이르렀다.
황제의 위신을 천하에 보이고자 나라를 순유하는 시황제라 의장병이라 호위하는 사람들로 우글우글 끓었다. 이 굉장한 무리를 끄을고 나라를 순유하던 시황제는 여기서 갑자기 병들어 눕게 되었다.
천하의 명의라는 명의는 모두 다 불러서 진맥케 하였다. 그리고 명약이라는 명약은 다 먹어 보았다. 그러나 시황제의 병세는 조금도 낫지 않고 나날이 침중하여 갔다.
“선계(仙界)에 있다는 산삼이 아니오면 폐하의 환후를 돌이키기 좀 힘들까 하옵니다.”
명의들의 일치한 의견이 이것이었다. 이러한 때에 서복이 산삼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황제의 행궁(行宮)에 소복은 방사(方士)의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시황께 이르러서,
“방사가 산삼 한 뿌리를 선계에서 구해 가지고 폐하께 진상하고자 지금 왔읍니다.”
고 여쭈었다. 아무리 귀한 산삼을 가져왔기로서니 한낱 방사로서 처음에 황제께 뵙기는 어려웠다. 서복은 행궁한 방에 머물게 하고 산삼은 황제 어전으로 가져갔다.
서복은 기위 자기가 산삼의 효력을 본 사람이니만치 산삼의 효력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행궁의 한 방에 머물러서 반드시 황제가 자기를 부를 날이 있을 것을 믿고 기다렸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이튿날 낮 뒤에 꽤 높은 관원이 직접 사복을 불러 내었다. 그리고 지금 황제가 부르신다는 뜻을 알리었다.
그 관원의 말에 의지하건대 어제 황제는 산삼을 먹고 그냥 혼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낮에야 잠에서 깨었는데 깬 때는 벌써 그렇게 침중하던 병환이 씻은 듯이 나았다 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와내(臥內)에서 서복을 불렀다.
이것은 각별한 대우였다.
와내의 문이 열리자 서복은 그만 황제의 위엄에 눌려 넓적 엎드려 버렸다.
“야, 참 영약이더라.”
와내에서 나오는 이 말, 이것은 분명히 시황제의 말이었다. 보통으로 하는 말이언만 방이 더르릉 울리도록 웅장하였다. 서복은 엎드린 채 머리를 더욱 숙였다.
“자. 이 와내로 들어오너라.”
“네이.”
서복이 움직이지 못하고 대답만 하였다. 시황제가 다시 불렀다.
“감사한 말도 하고 싶고 의논할 일도 있고 하니 이 와내로 들어오너라.”
“네이.”
서복은 엎드린 채로 와내로 들어갔다.
“야, 얼굴을 들어라.”
“네이.”
그러나 감히 들지 못하였다.
“야, 얼굴을 들어.”
“네이.”
서복은 얼굴을 약간 들었다. 그러면서 순간의 틈으로 눈을 치떠 시황제를 보았다. 그러나 옥좌(玉座)의 편이 다만 눈이 부시고 황공할 뿐 서복은 시황제를 보지 못하였다.
“그 영물을 어디서 구했느냐?”
“네이.”
“대답해 보아라.”
“네이. 동해(東海) 밖 오천 리에 신선이 사는 섬이 있사옵니다. 소인이 낚시질을 나갔삽다가 바람에 불려 우연히 거기까지 가서 한 뿌리 구해서 폐하께 진상합고저 가지고 돌아온 바이올시다.”
“오오! 감사하다. 참 영약이더라.”
“황공하옵니다.
“그것을 더 구할 수는 없겠느냐?”
황제의 묻는 것은 모두 서복이 미리 짐작했던 바였다. 거기 대하여 할만한 대답을 전부 미리 준비했던 서복은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어렵기는 어렵습지만 못 구할 바는 아니옵니다.”
“그러면 어떤 방책이 있느냐.”
“네이, 다름이 아니오라 산삼이라는 것은 영물이오라 이것을 찾고자 하는 자의 눈에는 띄지 않는 법이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얻을까?”
그 대신 “ 아직 더러움을 모르는 동남(童男)이나 동녀(童女)가 구하러 다닐 때는 눈에 띄는 수도 있사옵니다.”
“음.”
“폐하께옵서 소신께 동남동녀를 각각 오백 명씩만 내어맡기시면 소신이 인솔하옵고 그 신선의 섬에 이르와 힘 자라는껏 폐하를 위하와 산삼을 구하여 볼까 하옵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오늘로라도 추려 주마.”
“황공하옵니다. 또 한가지 아룁는 바는 산삼을 하루이틀에 구하려 하여도 못 될 일이오니 적어도 삼 년의 긴 날짜는 가졌어야 되겠사옵니다. 동남 동녀 합계 일천 명의 삼 년간 양식과 입을 것이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그것 역시 어렵잖은 일이다. 시재로라도 내어주마.”
“또 한가지, 적지 않은 길을 가는 일이오라 좋은 배 열 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곧 준비하여 주마. 그 밖에 다른 것은 소용이 없느냐?”
“그것이면 넉넉하올까 하옵니다.”
“그것은 다 준비해 줄 터이고 삼 년의 날짜를 허락해 줄 터이니 삼 년만 많이 구해 가지고 돌아오너라.”
“어명이 아니온들 지성껏 봉행하오리다.”
“음. 어제의 산삼도 감사하거니와 쉽지 않은 일을 짐(朕)을 위해서 감행하려는 지성을 통촉한다.”
“황공무지하옵니다.”
“물러가서 기다려라. 후에 다시 부를 날이 있으리라.”
“네이. 성수무강하시옵소서.”
서복은 엎드린 채 와내를 물러 나왔다. 그리고 와내의 문이 닫힌 뒤는 비로소 머리를 들고 있어섰다. 그를 그의 방으로 인도하려는 내감이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내감의 인도를 받아서 이른 방은 아까까지 거처하던 방이 아니다. 그 방보다 훨씬 넓고 화려하며 서복에게 시중들기 위하여 내시까지 네 명이 벌써 등대되어 있었다.
서복은 내심 흡족하였다.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어 나간다.
계획하였던 바의 십의 구는 벌써 된 셈이다. 인제는 황제가 내어주는 동남 동녀 일천 명과 양식과 기타 기구를 배에 싣고서 창해국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행궁의 화려한 자기 방에 몸을 커다랗게 내어던질 때에 서복의 입가에는 저절로 흐르는 득의의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황제에게서 산삼에 대한 사례가 내렸다. 그것은 황금 다섯 근과 백금 쉰 근과 비단 삼백 필이었다.
🙝 🙟
순유의 도중 병환이 나서 제(齊) 땅에 머물러 있던 황제는 산삼의 덕택으로 몸이 깨끗이 되고 곧 다시 순유의 길을 떠났다.
서복도 황제의 어명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뿐더러 수행원 중에도 긴한 수행원의 축에 끼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서복은 득의양양하였다.
천하가 모두 자기의 발 아래 내려다보이는 듯하였다. 그러한 득의양양한 생활을 하면서 서복이 더욱 느낀 것이 ‘권세’에 대한 동경이었다.
지금 자기는 한낱 임군의 수행원이 되어서도 이렇듯 마음이 흡족하거늘 장차 자기가 임군이 되면서 그 날은 얼마나 기쁘고 흡족하랴.
일은 다 꾸미어 놓았다. 거의 다 되었다. 자기가 임군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어서 그 날이 오과저. 서복은 초조히 그 날을 기다렸다.
황제의 순유 그 뒤 두 달쯤 더 계속되었다. 그러고는 서울 함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서울 대궐 안에는 벌써 육천 명의 동남동녀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서 서복이 맘대로 뽑아 골라 데리고 가라는 것이었다.
황제의 순유는 그 뒤 두 달쯤 더 계속되었다. 그러고는 서울 함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서울 대궐 안에는 벌써 육천 명의 동남동녀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서 서복이 맘대로 뽑아 골라 데리고 가라는 것이었다.
서복은 육천 명의 동남동녀 중에서 일천 명을 뽑는데 무엇보다도 인물을 택하였다. 장차 자기의 꿈대로 자기의 나라가 서게 될진대 백성들 가운데 추하게 생긴 자가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벌써 제일차로 뽑아들이었던 가운데서 서복이 재차 뽑은 자이라 사내나 계집이나 모두 미소년 미소녀들뿐이었다. 그것을 늘여 세우고 바라볼 때 서복은 웃음을 웃었다.
일천 명의 삼 년간 양식이며 의복 기구 등속은 언제든 황제의 창고만 열면 있을 것이로되 배가 아직 되지 못하여 서복은 수일간을 함양에 머물렀다.
배도 튼튼히 되었다. 인제는 아무 때라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서복은 다시 한번 황제의 어전에 불리었다. 그것은 이전 제(齊)땅의 행궁에서와 달라서 정식으로 대궐 용상(龍床) 앞에 나아간 것이었다.
서복은 황제의 어전에 부복하였다.
“먼길을 떠나게 되었구나.”
황제는 위로하는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네이. 명일 인솔하옵고 서울을 떠나겠습니다.”
“짐(朕)을 위해서 수고하노나.”
“신자(臣子) 된 자 폐하를 위하와 이맛 일을 하는 것을 무엇을 수고라 하오리까. 단지 배 열 척에 가득가득히 싣도록 많이 캐지 못할까 이것이 근심이로소이다.
“열 뿌리만이라도 있으면 백 살까지는 살 것 같더라.”
“만수무강하옵서야지 백 세가 무엇이오니까?”
“고맙다. 무슨 다른 소청이 없느냐.”
“한 가지 있사옵니다.”
그 새 생각한 결과 새로 생긴 안(案)이었다.
“무엇이냐?”
“진나라 태의경(太醫卿)의 직함을 소신께 주옵시면 매우 편켔사옵니다.”
이것은 당치 않은 소청이었다. 신선의 나라에 가노라는 서복이 진나라 태의 경의 직함이 무엇에 쓸데 있을까. 여기는 황제도 의아히 여기고 굽어보았다.
그러나 거기 대답할 대답을 준비해 가지고 있던 서복은 곧 뒤를 틈이어서 말하였다.
“만일 이후 명약을 캐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못된 바람이라도 만나서 배가 밀려서 오랑캐의 나라에라도 불려 가오면 그때 이런 직함이라도 가지지 못했다가는 산삼을 빼앗길 근심이 있사옵니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오냐, 내려주마. 그 밖에는?”
“그 밖에는 성수무강하옵심과 장차 영약 많이 캐어지기를 바라올 따름이로소이다.”
“오오, 고맙다. 험한 물길을 실수없이 잘 다녀오너라.”
이리하여 서복은 어전을 물러나왔다.
서복이 자기의 처소에 도달한 지 얼마를 지나지 않아서 대궐에서 서복에게
‘태의경’의 직첩이 배달되었다.
이 직첩은 서복에게는 두 가지로 필요한 물건이다.
첫째로는 이 직첩으로서 장차 창해국의 임군께 보이고 진나라 태의경의 자격으로서 창해국에서 한동안 약초를 캐자고 청하려는 복안이었다.
둘째로는 이 직첩에 눌린 옥새(玉璽)의 모양이었다. 이 옥새를 본따서 옥새 하나를 위조하자는 것이었다.
그 옥새는 또한 두 가지로 필요하다.
첫째는 이 일천 명이라는 적지 않은 수효의 사람을 장차 기부 조선(箕否朝에 하륙을 시키어서 기부조선을 鮮) 지나가서 창해국까지 가야겠는데 그러자면 진나라의 국서가 없이는 힘든다. 그것도 한두 명 내지 십여 명이면 여니와 일천 명이라는 큰 무리를 이끌고 남의 나라를 말없이 통과할 수 없다.
그 기부조선에서 쓸 국서를 하나 위조하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창해국 임군께 보내는 진나라 시황제의 국서를 위조하자는 것이었다. 예를 지극히 갖추고 창해국 임군을 잔뜩 추어 주면서 지금 진나라 태의 경을 약초 구하려 귀국에 보내니 좋도록 뒤보아 달라는 뜻의 국서이다.
천하의 황제에게서 창해국의 임군에게 이런 국서만 보내 놓으면 창해국 임군이야 펄펄 뛰며 기뻐할 것으로 서복은 믿었다. 시재 당장은 이 두 가지의 국서만 필요하되 대체 옥새를 손에 지니고 있으면 언제 어떠한 경우에 어떻게 필요한 일이 생길는지 모르는 바이다.
그래서 서복은 진나라 옥새를 위조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여기서는 위조하기 힘든 것이다. 발각나는 날에는 목이 달아날 일이니 응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서복은 장차 가는 길에 산동 방면의 이 진나라에 심복하지 않는 고장에 가서 하기로 하였다.
그날 저녁이었다. 서복은 무슨 볼 일이 있어서 거리에 나가려고 막 대문 밖을 나설 무렵이었다. 그때 서복의 눈에 뜨인 것은 웬 한 장대한 사람이 자기의 처소 담장 아래 서 있다가 서복이 나오는 것을 보고 몸을 피한다.
그때 서복은 그 사람의 얼굴 생김이 너무도 창해국 사람 같으므로 약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서복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길을 갔다. 가다가 모퉁이를 돌아설 때에 뜻없이 돌아보매 아까 그 인물이 자기의 뒤를 밟고 있다.
그때부터 서복은 가끔 주의하여 보았다. 수상한 인물은 그냥 자기의 뒤를 밟고 있는 것이었다.
서복은 볼 일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도 그 수상한 인물은 그냥 멀리 뒤밟는다.
서복은 꺼림칙하였다. 지금 자기는 산삼을 캐러 창해국으로 떠나려는 판인데 창해국 사람인 듯한 사람이 자기의 뒤를 밟는 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서복은 하인을 불러서 밖을 탐지하여 보았다. 그랬더니 수상한 인물은 그냥 밖을 배회하고 있다 하는 것이었다. 서복은 무시무시하여 몰래 하인을 순군청에 보내서 이 인물을 잡아가게 하였다.
장사(壯士)였다. 순군이 여러 명 주먹에 얻어맞아 죽고야 겨우 그 인물을 잡았다. 잡혀갔으나 이름이 여해(黎蟹)라고만 하고는 그 밖에는 일체로 대답하기를 피한다. ‘여해?’ 서복은 그 이름을 듣고 머리를 기울였다. 어디서 들은 법한 이름이었다 . 드디어 창해국 상대부의 아우의 이름이 분명히 여해라 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 날 잡힌 인물은 과 연 형 여방의 명으로 진 나에 잠입하였던 여해였었다.
徐福[서복]의 入國[입국]
편집무덥기 한량없는 어떤 여름날이었다.
그날 아침 여민옹(黎民雍)은 근래에 없이 유쾌하게 지냈다.
그의 친구가 찾아온 것이었다. 척주(陟州)에 사는 허비(許羆)라는 사람이었다.
나이도 같은 열아홉 살씩이요, 뜻도 서로 맞으며 지식과 무력(武力)이며 완력(腕力)으로도 비슷비슷하였다. 안집도 같은 명문끼리였다. 허비는 사냥을 생애로 하였다.
허비는 서울에 오는 길에 오늘 새벽 산골길에서 멧도야지를 한 마리 산 채로 잡아서 친구와 술안주를 같이할 양으로 메고 왔다.
여민옹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이 친구와 함께 뒤뜰 시냇가로 나가서 멧도야지를 찢어 안주삼아 유쾌히 먹고 놀았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뒤에 오정쯤 집으로 돌아왔다.
도야지 피와 술을 좀 과히 먹었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 까닭에 약간 도를 넘치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사랑에서 목침을 베고 누웠다. 어느 틈엔지 잠까지 들어 버렸다.
밖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나므로 민옹은 잠에서 깨었다. 눈을 번쩍 뜨고 보니 벌써 아버지 상대부 여방(上大夫 黎螃)이 퇴조(退朝)하여 돌아오고 조정에서 수행한 하인이 하직하는 말소리가 자는 귀에 중얼중얼 들렸다.
민옹은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아버지를 맞았다.
“아버지 벌써 오세요?”
그러면서 걸핏 아버지의 기색을 살피니 아버지는 무슨 일엔지 몹시 노하고 기색이 매우 불쾌였다.
“자식놈두, 어린애두 아니구 낮잠은 웬 낮잠이야.”
민옹은 다만 민망하여 문안에 읍하고 서 있었다. 민망함을 느끼면서도 내심 이상하였다. 장발한 이래 아버지께 꾸중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꾸중받은 일도 그리 없었거니와, 어떻게 실수를 할지라도 천천히 타일렀지 이렇게 와락 꾸중하는 일이 없는 아버지였다. 더구나 인륜상 무슨 중대한 죄라도 범한 바가 아니고 잠깐 낮잠을 잔 데 지나지 못하는 일에 이렇듯 꾸중한 아버지가 아니다.
“꽤 더우시지요.”
들어와 앉는 아버지를 민옹은 곁에 가서 부채질을 하여드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노염은 삭지 않았다.
“술 냄새 역하다. 아침부터 술만 처달이고 낮잠이나 자구. 물러가거라.”
민옹은 더욱 민망하였다. 술 냄새가 안 갈이만치 썩 물러앉아서 팔을 뻗치고 부채질을 하였다.
무거운 침묵이 잠시 계속된 뒤에 민옹이 나지막한 말로 물었다.
“아버지. 무슨 역한 일을 보셨어요?”
“자식이라고 있는 게 아침부터 술이나 처달이고 낮잠이나 자니 그게 역한 일이 아니고 뭐냐. 사람 되지 못한 자식 같으니 나가거라. 술내 역하다.”
하릴없었다. 민옹은 물러나왔다.
민옹이 물러나온 뒤에 아버지는 하인을 불러 술을 가져오라 하였다.
술을 연하여 불렀다. 예사 때의 곱은 먹었다. 그러고는 아까 아들이 술 취해 잔 자리에 누워서 그냥 자 버렸다.
아버지의 책망으로 그 방에서는 물러 나왔지만 사랑이 보이는 곳에 앉아서 아버지의 동정만 살피던 민옹은 가슴이 가속도(加速度)로 무거워 왔다.
무슨 일에 저다지도 화를 내시나? 무슨 커다란 오뇌가 분명히 아버지의 마음에 있어 괴로와하신다.
볕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점심을 굶었거늘 주린 줄도 모르고 민옹은 뜰 한 모퉁이에 앉아서 사랑의 동정만 살폈다.
저녁때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냥 깨지 않았다. 아버지는 밤도 깊어서야 깨었다. 민옹은 곧 들어가서 불을 켜 놓았다. 그리고 시원한 듯이 냉수 한 그릇을 다 마시는 아버지에게,
“진지상 내오리까?”
고 물어 보았다.
“술이나 내오너라.””
또 술을 부른다. 민옹은 잠시 머뭇거렸다. 머뭇거린 뒤에 입을 열었다.
“약주는 반주(飯酒)로나 하시지요.”
“밥은 싫다. 술을 내와.”
민옹은 또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 무슨 울화가 생겼읍니까?”
나랏일이 아니면 이렇듯 근심할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가 이렇듯도 심히 노염을 내는 것을 보니 일도 중대한 일이다.
“아니다. 밤중에 밥 먹겠느냐. 어서 술이나 내오너라.”
하릴없었다. 민옹은 안으로 들어가서 하인을 깨워서 안주를 많이 하고 술을 적게 하여가지고, 손수 상을 들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들어갔다.
민옹은 자기가 주전자를 맡아 가지고 아버지로 하여금 할 수 있는껏 안주를 많이 들고 술을 적게 마시도록 하였다. 술을 매번 반 잔씩 붓고, 아버지가 안주를 후히 드는 것을 본 뒤에야 또 새로 반 잔만큼 부었다. 취기가 약간 돌 때 아버지의 입에서는 문득 한 마디 한숨이 나왔다.
이 기회를 붙들어서 민옹은 또 입을 열어 보았다.
“아버지, 여러 번 같은 말씀을 묻습니다만 무슨 일이 생겼읍니까?”
“아침부터 술이나 먹고 낮잠이나 자는 아이들에게는 모를 일이다. 어서 술이나 불어라.”
“아버지, 아침에 척주(陟州)에서 허비(許羆)가 찾아왔어요. 안주하자고 멧도야지를 한 마리 잡아 가지고… 그래서 오래간만에 만난 터이라 좀 지나쳤었읍니다.”
아버지는 ‘허비’라는 말에 지금 막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중도에 멈추고 아들의 말을 들었다.
“허비란 허웅(許雄)의 자제 말이지.”
“네.”
“서울 있느냐, 혹은 돌아갔느냐?”
“내일 아침 아버지 정청(政廳)에 들어가시기 전에 인사오겠다고요.”
“음.”
아버지의 마음이 ‘허비’의 말 때문에 꽤 누그러졌다. 이 기회를 타서 민옹은 또 물어보았다.
“아버지. 대체 무슨 일이 생겼읍니까? 허비랑 피통(皮通 ─ 사람의 이름)이랑 저희네 동갑계(同甲契) 다섯 사람이 마음은 어리석지만 뜻은 굳어요.
게다가 겉힘으로는 다섯의 힘을 합치면 오백 명은 당해 내요. 그러니깐 무슨 분부하실 일이 있으면 분부하시고 분부하실 일이 아닐지라도 내막(內幕)쯤은 알아주시면 좋겠는데요.”
아버지는 종내 아까 들었던 잔을 마시지 않고 그냥 놓았다. 눈가에는 주름 잡힌 주름으로 눈물까지 약간 흘러내렸다.
“나라이 인제는 범벅판이 되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비담 삼백 필에 나라이 흥정되었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는 대답이 없이 한숨만 쉬었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몇 번을 캐어물으매 아버지는 비로소 이번에 생긴 괴변을 아들에게 이야기하여 주었다. 그것은 이와 같은 것이었다.
🙝 🙟
일전에 웬 진(秦)나라 백성 하나이 서울에 들어왔다. 이름은 서복(徐福)이라 하였다.
서복은 입경하여 중대부 도전각(中大夫 陶田角)에게 진나라 비단 오십 필을 뇌물하였다. 그리고는 자주 도전각의 집에 출입하였다.
그러더니 서복이 어제부터는 자기는 진나라의 태의경(太醫卿)이요 시황제의 사신으로 이 나라에 왔으며 국서(國書)까지 가지고 왔고 자기의 사명은 막중막대한 것이고, 종자(從者)도 천여 명을 데리고 왔노라고 공언(公言)을 한다. 그리고 임군께 뵙겠다고 정식으로 정청(政廳)을 찾아왔다. 무론 도전각이 가 함께 데리고 온 것이었다.
여방은 어제 정청에서 서복이란 위인을 만나 보았다. 도전각은 서복이 천자(天子)의 사신이니만치 상좌(上座)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는 것을 여방은 일갈하여 버렸다.
“진나라가 나라이면 우리나라도 나라이오. 시황제가 임군이면 우리 나라님도 임군이시오. 진나라 태의경은 우리나라 대전의(大典醫)에 해당하는 제 십 칠석(席)에 가 앉으오.”
먼저 얘기를 꺾어 놓았다. 시황제의 사신이라는 허울좋은 명색으로 한번 얼러 대려던 서복은 도리어 상대부의 위의에 눌려 버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나라 사신이 큰 나라 대신에게 취하는 공손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리고 ─
─ 천자는 지금 매우 이 해동 신선의 나라를 동경하여 이 나라 산수의 정기를 견학시키기 위해 동남동녀 각각 오백 명을 뽑아 이 나라로 보냈다는 말, 그러나 허락없이 월경(越境)을 할 수가 없어 기부씨(箕否氏)의 조선에 멈추어 두고, 이 나라 임군의 윤허를 얻으러 자기 혼자서 앞서 왔다는 말, 이 나라에 견학하는 동안 먹고 입을 것은 모두 가지고 왔으니까 조금도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말, 이 신선의 나라를 잘 견학하게 해서 이런 나라이 있다는 것을 천하에 알리는 것도 해롭지는 않은 일이라는 말 등등을 하며 그 뜻으로 임군께 추천하여 배알할 수 있도록 주선하여 달라는 부탁이었다.
단지 견학에 그친다면 그다지 해로울 것도 없다. 더욱이 이 나라의 대신으로 이 나라를 남의 나라에 자랑하고 싶은 것도 인정이었다. 약간 사리에 어 그러지는 일이 없는 바도 아니다. 단지 견학을 목적하였으면 당연한 순로로 상대부 자기를 찾지 않고 중대부 도전각을 먼저 찾았다는 점이며 도전각에서 뇌물을 하였다는 점 등은 의심하자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슨 군사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니요 아이들만 데리고 왔다니, 별다른 근심은 없고 이 선경(仙境)을 한 번 구경이나 하고 가겠노라는 것까지 거절하면 너무 용렬된 일 같기도 해서 그럼 내일 나라님께 배알하도록 주선하여 주마 하였다.
그 날로 ‘진나라 시황제가 창해국을 사모하는 뜻으로 창해국 임군께 약소한 예물을 바치나이다’하며 좋은 비단 삼백 필을 임군께 바쳤다. 이튿날 서복은 창해국 임군께 배알하였다. 먼저 국서를 바쳤다. 무론 이 국서는 서 복이가 위조한 것이다. 국서의 뜻은 대략 이러하였다.
─ 속인(俗人)의 임군이 신선국의 임군께 삼가 글월을 올리나이다. 속왕(俗王)이 귀국을 사모하고 동경한 지 오래나 속된 일에 분주하여 가 뵙지 못하는 죄를 용서하소서. (중략) 속왕이 본시 몸이 다병하와 이곳에서 나는 약초는 다 시험하여 보았으나 효력이 없삽고 천관(天官)의 말이 동해 밖 신선국의 약초라야만 효험이 있으리라 하옵기 지금 동남동녀 일천 명을 태의 경 서복으로 하여금 인솔케 하와 귀국에 보내오니 거룩하신 임군께서는 이 속왕을 가련히 생각하시와 어느 산간 한모퉁이를 잠시 빌려주시기를 천만 복망하나이다. 기한도 그리 오래할 것도 아니라 삼 년이면 넉넉하옵고 그 속인의 무리들이 그동안 입고 먹고 살 물건은 예비하여 가지고 가오니 이 점은 염려 마시옵소서. 운운.
상대부 여방은 이 국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감쪽같이 속은 것이었다. 잠깐 다녀가겠노라더니 삼 년간이란 웬 딴 말이냐.
그러나 어전이라 눈을 부릅뜨고 고함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임군께 안 됩니다라는 뜻으로 머리를 가로 저어 보았다.
무론 헛일이었다. 임군은 첫째로는 창해국에서 보지 못하던 비단 삼백 필에 마음을 팔리었고, 둘째로는 지금 천하의 주인으로 알고 두려워하던 시황제가 스스로 자기를 속왕(俗王)이라 낮추고, 당신께는 신선국의 거룩하신 임군이라 높여 주는 데 마음이 기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윤허(允許)는 즉시로 내렸다. 어디든 마음에 드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시황제를 위하여 좋은 약초를 많이 캐어 가지고 돌아가서 시황제를 기쁘게 하여라 하는 분부였다.
이 윤허를 얻고 득의양양하여 서복이는 도전각과 함께 대궐을 물러나왔다.
그러나 여방은 물러가지 않고 묵묵히 그냥 꿇어 있었다.
이 여방을 보고 임군이 말하였다.
상대부 세상에서는 “ , 시황제 시황제 해두 내 생각에는 늘 내 눈 아랫사람 같더니 내 생각이 바루 맞지 않았소?”
“나라님”
“왜 그러우?”
“방토(邦土)를 너무도 쉽사리 남에게 베어 주셨습니다.”
“베어 주다니 무슨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천 명의 남녀가 삼 년간 있노라면 자식이 생겨 일천 이백 명은 넘는 식구가 됩니다.
“삼 년 지나면 갈 것 아니오?”
“안 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안 가면 군사로 내몰면 될 것이고.”
“산간 요지(山間要地)에 자리잡고 진나라 정예한 무기로 저항하오면?”
“상대부도 원. 너무도 지나친 걱정만 하는구료. 진나라에는 빈 땅이 없어서 예까지 살러 오겠소?”
“그러면 왜 하필 동남동녀 오백 쌍을 보내겠읍니까? 동남이면 동남만, 동녀면 동녀만 보내도 좋은 것을 꼭 쌍무어 보냈겠읍니까?
“상대부도 무론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 의견이지만, 좀 편협된 듯해서 장자의 기상이 적소.”
하고 웃어 버리고는 임군은 내전으로 입어하였다.
이리하여 진나라 백성 일천여 명은 공공하게 창해국 어는 곳에든지 마음에 드는 곳에 가서 자리잡고 마을을 이를 권리를 얻게가 되었다.
말을 마치고는 아버지는 묵연히 머리를 숙여 버렸다.
민옹도 잠시는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이윽고 민옹이 먼저 쾌활히 머리를 들며 말하였다.
“그까짓 피비린내 나는 동자 2백쯤이야 저희 동갑계 다섯 사람이 철여의(鐵如意) 하나씩만 가졌으면 당해 내리다.”
“그보다 먼저 행동을 염탐해야지.”
“제가 염탐하리다.”
“염탐 말이 났으니 말이지, 너의 삼촌이 염탐하러 진나라에 들어간 지 일 년이 넘었는데 돌아오지도 않고 소식도 없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대체 이 서복인간 하는 놈은 뭐일까요? 시황제가 약초 구하러 보낸 놈이면 삼 년 안에 돌아갈 것이 아닙니까?”
“시황제를 속여서 그런 국서와 아이들을 얻어 가지고 자기는 딴 꿈을 꾸는 놈이리라 . 사람 된 품이 좀스럽게 생겨 큰 일도 못할 것 같더라.”
“그 따위 놈이면 더욱 우리 동갑계 절반으로라도 당해 내리다.”
여방은 아들을 건너다보았다.
어두컴컴한 등잔 아래 시꺼먼 얼굴에 번득이는 고래눈과 얇은 옷 아래서 불룩거리는 장대한 근육 등은 과시 장사다왔다.
근심 아래서도 이것을 보고는 만족한 미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우산국(于山國)
편집서복은 동남동녀 일천 명을 인솔하고 공공하게 창해국에 들어왔다. 미리부터 장차 할 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서복이라, 금란동(錦蘭洞)이라하는 꽤 넓직한 벌판으로 찾아들었다. 금란동은 동서북은 험준한 산으로 둘려 막히고 남쪽만이 병목[甁口[병구]] 모양으로 겨우 벌려진 천험의 요새지였다.
금란동에 들어가서 그는 부하들을 시켜서 우선 임시로 비나 막을 만한 막 들을(나무와 풀을 베어다가) 치게 하였다. 그런 뒤에는 와공(瓦工)의 경험이 있는 자에게는 기와를 굽게 하고 목공(木工)의 경험이 있는 자에게는 문이며 지방을 짜게 하며 지공(紙工)의 경험이 있는 자에게는 종이를 뜨게 하며, 일변으로는 나무를 찍어오고 돌을 깎아다가 이 골짜기에 오백 채의 집을 짓게 하였다.
서복 자기의 거처할 집은 꽤 큼직하니 짓게 하였다. 몇 사람 매수해 가지고 온 모사 책사 무사(謀, 策, 武士) 등의 거처할 곳도 지었다. 그 밖에 공청(公聽) 비슷한 집도 몇 채 지었다.
서복이 금란동에 들어온 것이 한창 복거리라, 노천(露天) 아래서도 살만한 때였다. 가을철이 되어서는 여름내 짓던 집들이 다 낙성이 되었다. 집들이 낙성이 된 뒤에는 오백 쌍 남녀에게 마음대로 짝을 택하게 하였다. 그러나 서복의 새삼스러운 명이 없을지라도 그들은 벌써 거의 짝이 내정(內定)되어 있었다. 태반은 벌써 임신중이었다.
시황제에게서 삼 년간의 생활 자료를 타 가지고 왔는지라 의식에 걱정이 없었다. 이 산 가운데의 낙원에서 그들은 아무 근심걱정 없이 신혼(新婚)의 즐거운 겨울을 보낼 수가 있었다.
이듬해 봄이 이르렀다.
금란동 안의 서로 이룩한 마을은 서북쪽 모퉁이의 일부분뿐이었다. 남은 널따란 벌판은 비어 있었다. 이 벌판을 서복은 둘로 나누어서 절반은 논, 절반은 밭으로 하여 개간하게 하였다. 길가, 논두렁, 밭두렁에는, 모두 뽕을 심게 하였다. 사내들은 세 대(隊)로 나누었다. 논농사 한 대, 밭농사 한 대, 약초 캐고 사냥하는 무리 한 대 ─ 이렇게 임무를 맡겼다.
일관한 계획 아래서 미리 다 준비해 가지고 오니만치 말, 소, 도야지, 개, 닭 등의 집짐승을 비롯하여 농구(農具), 방직기구(紡織機具), 무기(武器) 등도 부족이 없었다.
서복의 꿈은 조금도 어김없이 실현이 되는 모양이었다. 여기 서복으로서 단 한 가지 흥미를 느끼면서 망설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여기 세우는 새 나라를 진(秦)나라 같은 제도로 할까 혹은 창해국과 같은 제도로 할까 하는 점이었다. 다시 말하면 신민들에게 지위의 고하(高下)를 혹은 무차별 평등으로 할까 하는 점이었다.
이번에도 통절히 느낀 바이지만 층층이 지위가 다른 수없는 신료(臣僚)의 위에 엄연히 임군으로 올라앉아서 호령하는 그 취미는 무엇에 비길 수 없이 고혹적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위험성이 많이 낀다. 신민에게 지위의 차이를 즐기는 재미를 주었다가는 마지막에는 왕위(王位)까지도 엿보는 심리가 생기기 쉽다. 하(夏)가 망하고 상(商)이 망하고 주(周)가 망하고 수천의 제후국(諸侯國)이 망한 그 원인이 모두 신료(臣僚)가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한 데 있지 않은가.
그러면 이 창해국의 제도는 어떤가? 창해국에서는 대신에서 비롯하여 한낱 이름없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지위의 명색에는 차이가 있을 망정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라는 것은 없다. 신분이 비록 상대부일지라도 정무(政務)의 여가에는 제 일을 또 보아야 한다.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거나 고기를 잡거나 그릇을 굽거나 ─ 무엇이든 일을 하여야 한다. 부양(扶養)할 가족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부지런히 일하여도 뒤및지 못하는 사람에 한하여 나라에서 생활의 부족분만은 보조하여 준다.
국민 된 자는 자기의 이익의 십일 례를 세납으로 나라에 바친다. 나라에서는 이것으로 나라 비용에 충당한다.
이 나라에서 벌이를 안하고라도 살 권리가 있는 사람은 군인과 파수꾼과 옥졸과 및 그들의 가족과(부양해 줄 사람이 없는 노인, 부인, 아이들, 병신) 등뿐이다.
공직자(公職者)의 특권이라는 것은 세납의 면제를 받는 것뿐이었다. 그 밖에는 그들은 단지 그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으로 녹봉 없이 일을 보는 것이었다. 이 밭에서 대신이 거금을 할 때 곁밭에서 평민이 밭갈고 있는 양 등은 이 나라에서는 결코 기이한 풍경이 아니다. 재단관(裁斷官)이 한창 도야지 물을 먹이다가 중대 사건이라도 돌발하면 손씻고 옷 갈아 입고 공청으로 달려가서 부탁하는 등사는 흔히 생기는 다반사였다.
그런지라 이 나라에서는 유난히 성질이 꾀어박힌 사람 밖에는 높은 지위를 탐낸다든가 하는 일이 없다 . 그러니만치 또한 언제까지든 평화가 계속이 되는 것이었다.
이 나라의 야(野)하고도 아(雅)한 정취도 서복으로서는 버리기 아까왔다.
둘이 각각 제 정취를 가지고 있는 것이로되 지금의 서복에 있어서는 코 앞에 늘어진 것과 같아서 마음대로 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자를 취하든 후자를 취하든 그의 자유에 달린 바로서 이렇다 저렇다 용훼할 사람이 없다.
매일 막료들을 거느리고 서복은 이 자기가 설계하여 꾸며 놓은 새 나라를 돌보고 지휘하고 지도하고 하였다.
착착 진행되는 음모 ─ 그러나 서복의 희망이란 것은 요 금란동만이 아니었다. 땅도 더 넓게 잡아야 할 것이다. 백성의 수효도 더 늘려야 할 것이다.
금란동에 살기 좋은 새 마을이 생겼다는 소문이 퍼지자, 창해국 사람들도 이리로 이사하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서복은 이 사람도 달게 받았다.
금란동은 나날이 번성하여 갔다.
또 그 이듬해에는 작년에 미처 개간하지 못하였던 땅이 죄 개간되었다. 지난해의 성적으로 미루어 금년은 천 석은 넉넉히 여유가 생길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는 서복은 동내의 직속(直屬) 3백 명과 뒤로 들어온 백여 명에게 시각과 절기를 작정하여(데리고 온) 무사로 하여금 무예(武藝)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시황제에게 넉넉하도록 받아 온 의식의 준비가 있는 위에, 또 이곳서 생산한 것도 적지 않은지라, 그 남는 것을 전부 기부조선(箕否朝鮮)이며 창해 국, 마한 등지에서 쇠(鐵)로 바꾸어다가 일변 무기를 만들며 일변 무예를 닦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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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어 나가매 서복의 마음에 일어난 욕심은 진시황의 것과 꼭 같은 것이었다. 건강(健康)과 장수(長壽) ─ 비록 천하를 얻되 목숨을 잃으면 무엇하랴. 여기는 선약(仙藥) 산삼의 생산지 ─ 일백칠십 명의 약초대(藥草隊)에게 서복은,
“다른 약초도 약초지만 산삼에 더 주력을 하라.”
고 나날이 타일러 보냈다.
그러나 산삼이 그렇게 쉽게 있을 까닭도 없거니와 산삼의 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하는 이 약초대는 행여 이것이 산삼인가 이것이 산삼인가 하여 함부로 뽑아서 산만 거칠어 갈 뿐이었다.
드디어 서복은 산삼에 대하여서는 몸소 이에 당하기로 하였다. 이전에 백일 기도를 지성껏 드리고 산삼 한 뿌리를 얻어 본 일이 있는 서복은 이번도 또한 그와 같은 수단을 써 보려 하였다.
이 근처의 산이란 산, 골짜기란 골짜기는 죄다 약초대에게 밟힌 바 되었는지라 그는 제단 자리를 꽤 멀리서 구할 수밖에는 없었다.
금란동에서 상당히 먼 곳에 제단 자리를 정한 서복은 매일 왕래할 수 없느니만치 백 일간 쓸 물건을 준비해 가지고 금란동을 떠났다.
이전에는 진시황의 산삼을 위하 기도였다. 이번은 직접 자기의 건강과 장수를 위한 산삼이었다. 정성도 그만치 더 드리었다. 이러한 치성의 아흔여드레도 어느덧 지나가고 아흔아홉 날째의 기도였다. 그가 금란동을 떠날 때는 첫여름이었는데 그동안 여름도 어언간 첫가을 ─ 새벽에 샘물에 몸을 씻자면 꽤 선뜻하였다. 아흔아홉 번째 몸을 깨끗이 씻고 정성껏 기도를 드린 뒤에 그가 막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몸이 너울너울 공중으로 떠올랐다. 다음 순간은 숨이 딱 막혔다. 정신이 아득하여지면서 웬 일인가고(어느 틈엔지) 감겼던 눈을 뜨는 그 순간, 웬 놀랍도록 커다란 발이 하나 쑥 나와서 그가 정성껏 차려 놓은 제물을 밟았다. 제물이 모두 헤어져나간 것을 물론이요, 제단까지 버썩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이것까지 의식하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정신 잃은 것도 한순간뿐이었다. 그가 공중에서 철썩 하니 바위에 떨어지면서 다시 번쩍 정신들었다. 들면서 보매 그의 앞에서 감감하게 높이 쳐다보이는 장승 하나이 서 있는 것이었다.
이 괴물의 출현에 또 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순간, 장승의 호령이 온 산야가 다 떠나갈이만치 우렁차게 울렸다.
“요놈! 요 벼룩 같은 놈.”
서복은 자기로도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의식치 못하면서 벌떡 일어나서 장승 앞에 끓어 엎드리었다.
“네이. 아직 캐지 못했읍니다.”
“못 캤어? 하하하하. 자겁해서 미리 토사하는구나. 캐기는커녕 손이라도 대었다가는 벌써 너는 가루가 됐어.”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했기에 아직 목숨이 붙었지. 이번만은 용서해 줄 터이니 어서 금란 동으로 돌아가서 돼지 무리들을 몰고 돼지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 거룩한 땅에 쥐 같은 놈들이!”
벼룩에서 돼지로 , 돼지에서 쥐로 ─ 세 번 오르내릴 동안 서복은 서른 번은 넘어 절하였다. 그리고 그 소위 돼지 무리들을 몰고는커녕 자기 혼자서만이라도 어서 이런 장승이 없는 나라로 도망하고 싶었다.
“가다뿐이오리까. 오늘로 가오리다.”
“그 새 새끼 돼지는 얼마나 늘었느냐?”
“한 삼백 수 늘었읍니다.”
할 수 없다.
“합해서 일천삼백 수 ─ 너희 버러지놈들이 감히 이 성역(聖域)을 더럽힌단 말이냐. 썩 네 나라로 가거라. 한 놈이라도 남아서 꿈틀거리다가는 가루도 추리지 못하리라.”
이번은 버러지다.
“네이. 존대인의 처분을 어찌 추호만치인들 어기리까?”
벼룩에서 비롯해서 버러지까지 네 번이나 변화하는 동안 서복은 몸 안에 간직했던 땀이란 땀을 홀싹 뽑았다. 장승이 성큼성큼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어 버린 뒤에야 겨우 제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막으로 돌아와 보니 막에는 하인이 몸을 막에 기댄 채 정신을 잃고 있다. 필시 하인은 먼발로 장승을 보고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서복은 하인의 얼굴에 물을 뿌려 정신들게 하여가지고 총총히 다시 짐을 수습하여 말께 싣고 금란동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매 금란동에서도 또한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
아까 ─ 말하자면 서복이가 제단 앞에서 한창 곤란을 겪는 꼭 그 시각쯤이었다. 금란동에서도 웬 장승 ─ 아니 장승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까왔다 ─ 이 나타났다. 온몸이 털투성이였다.
털투성이는 금란동에 들어와서 성큼성큼 무고(武庫) 쪽으로 갔다. 무고지기가 웬 사람이냐고 물어도 대답도 없이 무고에 이르러서 마치 조그만 나뭇개비라도 집어치우듯 무고 기둥을 두 개 쑥 뽑아 버렸다. 무고는 한편으로 쓰러졌다. 동시에 그 새 여러 달 동안 금란동에서 만들어 두었던 칼이며 창이며 도끼, 방패 동물이 무너진 담벽 틈으로 내비치었다.
털투성이는 담벽을 통째 잡아 젖혀 버린 뒤에 거기 나타난 칼이며 창이며를 한 아름씩 꺼내어서는 무릎에 대고 분질러 던지고 분질러 던지고 하였다.
마침 저편 활터에서는 무사의 지도 아래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괴물의 작폐에 노하여 괴물을 향하여 일제 사격을 하였다. 그러매 괴물은 귀찮은 듯이 칼을 하나 들고 돌아도 안 보면서(마치 부채질하듯 칼을 등 뒤에서 들렀다. 그러매 지금 백여 명이 연하여 쏘는 살은 한 대도 그의 몸은 건드리지 못하고 모두 그 칼에 맞아 떨어진다. 칼은 사뭇 바람개비 돌 듯 지금 바야흐로 떠오르는 아침 해에 찬란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간다.
그러면서 남의 한 손과 발로 연해 무고 안의 무기를 다 분질러 버린 뒤에야 일어서면서 돌아섰다.
“요놈들! 요 구데기 같은 놈들!”
뇌성과 같았다. 그 호령 소리는 한참 동안을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도로 이 산으로 울리어 다녔다.
“쇠라는 것은 솥이나 농구(農具)나 식도(食刀) 돌쩌귀 같은 게나 만드는 게지 아까운 쇠를 모아다가 이런 데다 쓴담. 이[虱[슬]]같은 놈들! 다른데도 있거들랑 다들 모아오너라.”
어는 틈에 멎었는지 사격도 멎었다. 집모퉁이마다 숨어서 쏘던 무리들도 도망친 모양으로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단지 얼흔이 빠져서 움쩍을 못하고 있는 무고지기만이 이 근처에 보이는 유일의 사람이었다.
괴물은 무고지기에게 가서 그를 움켜서 쳐들었다. 이 바람에 무고지기는 펄떡 정신이 들었다.
괴물은 무고지기를 앞장세워서(깊이 숨어 있는) 무사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무사를 앞장세우고 이 금란동 안에 있는 무기(武器)라는 무기는 다 찾아냈다.
소 열 마리를 징발하였다. 그리고 그 소에게 아까 분지른 무기며 지금 찾아낸 무기를 죄 실리었다. 그 뒤에는 소군을 열 명을 징발하여(쇠 한짐씩 실은) 소를 죄 몰아 가지고 금란동을 나와서 좀 내려가다가 있는 강에까지 이르렀다. 강에서도 가장 깊은 곳을 골라서 소 열 바리의 쇠를 전부 강물에 집어넣었다. 그런 뒤에는 콧노래 흥그러이 부르면서 어디로인가 사라져 없어져 버렸다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서복은 더 간담이 서느러울 뿐이었다. 아까 제단 앞에 나타났던 장승 하며 또 이 금란동에 나타났던 괴물 하며 ─ 그것이 모두 사람일까 더욱이 창해국 사람일까.
보통으로 창해국 사람들은 몸집도 크고 힘도 세기는 하다. 창해국에는 역사(力士)가 드문드문 있다는 소문도 듣기는 하였다. 그러나 아까 그 물건들이 모두 사람이며 더욱이 창해국인일까.
만약 그렇다 할진대 허수로이 볼 나라이 아니요 우습게 여길 땅이 아니다.
다른 데로 가자. 여기서는 행세 잘못하다가는 어느 귀신 모를 송장이 될 것이다.
서복의 마음에는 한량없는 겁이 들어앉았다.
🙝 🙟
아까 제단 앞에 나타났던 것은 여민옹이요, 금란동에서 무기를 씨도 없이 없애버린 것은 허비였다. (미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