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버릇이란 쉽사리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흔히 다른 사람의 한 가지 버릇을 새로이 발견했을 때는 아--- 저 사람은 저런 버릇이 있구나 하고 속으로 비웃어 보거나 그 버릇이 좋지 못한 종류의 것이면 대개는 업신여기는 수도 있는가 봐!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무리 고쳐 보려도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란 손톱을 깎고 줄로 으르고 수건을 닦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때오 곳을 가릴 것도 없이 욕조(浴槽)나 다방이나는 말할 것도 없고 기차나 배를 타고 멀리 여행이라도 함녀 심심풀이도 되고 봄날 도서관 같은 데서 서너 시간 앉아 배기면 제아무리 게으름뱅이는 아닐지라도 윗눈썹이 기전기(起電機)처럼 아랫 눈썹을 끌어당길 때도 있는 것이고, 그럴 때에 손톱을 자르고 줄로 살살 으르면 자릿자릿한 재미에 온몸의 게으름이 다 풀리는 것이다. 그야 내 나이 어릴 때는 아침 일찍이 손톱을 자르면 어른들이 보시고 질색을 하시며 말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말릴 때에 누구인지 지금 기억되지는 않아도 우리 집에 자주 오는 손이 말하기를 아침에 손톱 깎고 밤에 머리 빗는 것은 몸에 해롭다고 하는 것이었고, 내 생각에도 그런 방문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라도 씌어 있는 줄 알았기에 그 뒤로는 힘써 시간이 한나절 지난 뒤 손톱을 닦고 하였지만, 나도 나대로 세상맛을 보게 된 뒤로는 쓴맛 단맛 다 보고 시고 떫은 구석과 후추, 고추 같은 광경에 부대낄 때가 시작이 되고는 손톱 치레를 할 만한 여가도 없었고, 어느 사이에 손톱은 제대로 자라 긴 놈, 짧은놈, 삐뚫어진 놈, 꼬부라진 놈, 벌떡 자빠진 놈, 앙당 아스러진 놈, 이렇게 되어 내 손이란 그꼴이 마치 오징어를 뒤집어 삶아 놓은 것같이 되었다.

그럴 때에 나는 또다시 손톱을 자를 것은 자르고 으를 것은 으르곤 하였으며 이른 아침이라도 가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밤으로 머리를 깎아 보아도 몸에 해로운 것도 없으니깐 아침에 손톱을 깎는 것조차 위생과는 관계 없는 것을 안 까닭이다.

그런데 내가 이 손톱을 자르는 버릇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도 벌써 20년이 더 지났다. 내가 난 지 백 일이나 되었겠지, 저고리 밖에 빨간 내 손이 나와서 내 얼굴을 후벼 뜯고는 나는 자지러질 듯이 울었다. 어머니가 놀라서 가위로 내 손톱을 잘라 주신 것이 처음이고, 그것이 늘 거듭하여지는 동안에 봄철이 오면 어머니는 우리 형제를 차례로 불러 뒷마루 양지 쪽에 앉히고 손톱을 잘라 주시고 머리도 빗기고 귀도 후벼 주셨으며, 이것도 내 나이 여섯 살 때 소학을 배우고는 이런 일의 한 반(半)은 할아버님께 이관(移管)이 되었다. 옛날 내 고장 우리 집에는 그다지 크지는 못해도 허무히 작지 않은 화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화단은 이때쯤 되면 일이 바빴다. 깍지로 긁고 호미로 매고 씨가시를 뿌리고 총생이를 옮겨 심고 적당한 거름도 주었다.

요즘같이 시클라멘이나 카네이션이나 튤립 같은 것은 없어도 옥매화, 분홍 매화, 홍도, 벽도, 해당화, 장미화, 촉규화, 백일홍, 등등 빛도 보고 향내도 맡고 꽃도 보고 잎도 볼, 말하자면 일년을 다 즐길 수가 있는 것이었는데, 내 할아버지 생각은 이제 헤아려 보면 우리들에게 글읽고 글씨 쓰인 사이로 노력을 몸소 맛보이는 것도 되려니와 그것이 정서 교육도 될 겸 당신의 노래(老來)를 화려하게 꾸밀 수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은 이다지도 가겹고 고운 노동이 끝나면 할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손을 씻을 것과 손톱에 끼인 흙을 끌어내도록 손톱을 닦으라 하셨다. 이러던 내 손톱이기에 나는 손톱을 소중히 하고 자르고 으르고 닦고 하는 동안에 한 가지 방편을 얻었다. 그것은 나에게 거북한 일을 말하는 사람 앞에서 손톱을 닦는 것이다. 빤히 얼굴을 맞대이고 배알에 거슬리거나 듣기 싫은 말을 듣고 억지로 참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짢은 표정을 할 수도 없어 손톱을 닦노라면 시골 계신 어머니도 그려 보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우러러 뵈일 수도 있다. 내 고향의 푸른 하늘 아래에도 봄이 왔을 것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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