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필/전쟁의 곡

(전쟁의 곡에서 넘어옴)

미국에서 유명하던 피아니스트가 자기 생전에 가장 많은 환영을 받은 때는 자작한 〈전쟁의 곡〉을 연주하던 때입니다. 그는 그 후 어느 지방에 연주 여행을 하든지, 반드시 이 악곡을 연주해 달라는 간망이 끊기지 않았을이만큼 이 곡조는 유명했던 것입니다. 그 자신은 무슨 이유인지 이것을 연주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청중 측에서는 다른 곡조는 다 집어치워도 좋으니, 이 〈전쟁의 곡〉만은 꼭 연주해 달라고 열망하였던 것입니다. 이 한 곡조만 연주 곡목 중에 넣는다면, 그는 도처에서 무조건하고 초만원의 호성적을 얻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도회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광산(鑛山)동, 이 곳은 노동촌인 위에 교통이 몹시 불편하여, 음악가의 내방이라고는 있을 까닭이 없었고, 또 설혹 가끔 연주회가 있댔자 그것은 5류, 6류 이하의 연주가들인 까닭에 그 동네 사람들은 실로 음악에 몹시 굶주렸던 것입니다. 이 때에 의외의 보도는 온 동네 안을 물끓듯이 만들어 놓았읍니다.

‘명피아니스트 고쌸크의 내연(來演)!’

입장권은 날개 돋친듯 팔려 버렸읍니다. 그러나 회장, 그것은 이 동네에는 알맞다고 할 만한 짐수레의 창고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만단의 준비는 다 되어서 누구나 이것을 보고 창고라고 할 사람은 없을이만큼 훌륭하게 꾸며 놓았던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절대한 기대 중에 고쌸크는 틀림 없이 찾아왔읍니다. 그러나 연주의 생명인 피아노가 무슨 착오로 인함인지 아직 도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벌써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야만 될 것이 이때껏 오지 않았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회장에까지 찾아온 고쌸크의 놀라움보다도 주최자측의 낙담과 낭패는 실로 형언할 수 없을이만큼 컸던 것입니다. 이 저녁의 연주 시간까지에는 더 도착 될 열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고쌸크가 온 때는 오후 4시 반 그리고 연주 시간은 7시─. 아아, 그렇건만도 이 가련한 광산동에는 한 대의 피아노도 없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연주회는 하룻동안 연기할 밖에 별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한 가지 큰 걱정은, 바로 수일 전에 동민(洞民)들은 음악회 사기에 걸렸던 경험이 있는 까닭에, 그 때의 격분이 아직 새로운 이 때에, 입장권만 팔아 놓고 연주는 연기한다면, 동민들은 또다시 사기에 걸린 줄 알고, 전일의 분풀이까지 한꺼번에 하러 들 판이니, 하루 연기는 고사하고, 한 시간 연기라도 동민의 폭동은 피할 만한 방책이 전연 없었던 것입니다.

주최자측의 여러 사람들은 동분서주한 끝에 일대 쾌보를 얻어 왔읍니다.

그것은, 이 동네 끝에 사는 어떤 지주의 집에 “확실히 피아노가 있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었읍니다. 대단히 희미하고도 희망에 찬 쾌보임에 틀림이 없었지마는, 그러나 그네들은 최후의 희망을 여기다 두고, 그 대지주의 집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피아노! 피아노가 없다면 피아노 같은 것이라도 좋다!”

이것이 그네들의 안타까운 소망이었읍니다.

이윽고 지주는 극히 음울한 안색으로 대답했읍니다.

“그것은 쓰라린 눈물의 기억입니다! 내 딸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읍니다.”

피아노를 찾는 사람에게 딸 죽은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읍니까마는, 기실인즉 10년 전에 딸이 죽어 버리자, 그가 사용하던 물건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처치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피아노두요?”

이같이 묻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미 반 이상 절망의 빛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피아노는 쇠를 채운 채로 창고 속에 집어 넣어 두었읍니다,”

사람들은 이 노인의 앞에서, 비록 들리지는 않았으나, 심중으로는 환호의 부르짖음을 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고쌸크는 노인의 인도를 따라서 창고 속으로 좇아 들어갔읍니다. 과연! 피아노는 그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쇠를 열기가 무섭게 그는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려 보았읍니다.

그러나 오오! 하느님! 거기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저음부로부터 고음부로, 고음부에서 다시 저음부로! 그러나 소리가 나지 않는 데는 완전히 일치했읍니다.

“아아!”

여러 사람의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이 같은 마지막 탄식이 새어 나왔읍니다. 바로 일순간 전의 그 환희야말로 악마의 장난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읍니까? 죽은 딸이 아무 말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피아노 역시 무언의 피아노, 사(死)의 피아노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무엇에 쓰나…. 절망된 사람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름을 막을 수가 없었읍니다. 바로 그 때, 고쌸크는 '비이 플랫'(B flat)의 음이 울려 나옴을 발견했읍니다.

“난다! 소리가 난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두드려 보아도 소리가 나는 건(鍵)은 오직 이 ‘비이 플랫’ 1음뿐, 아무리 피아노의 명수라기로서니 단 한 소리를 가지고야 어떻게 연주를 할 것이겠읍니까?

🙝 🙟

벌써 회장으로부터는 독촉의 사자(使者)가 달려왔던 것입니다. 7시까지에는 아직도 여유가 있기는 했지마는, 그러나 회장의 안팎에는 벌써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반가우면서도 무시무시한 소식을 전했읍니다. 이제는 정말 도망할 아무 길도 없게 되었읍니다. 고쌸크는 단연히 결의했읍니다.

“피아노를 내 실으시오!”

무겁디 무거운 피아노는 먼지를 털어 낼 사이도 없이 수레에 실리워서 회장으로 운반되었읍니다. 무음의 피아노, 아니 1음의 피아노, 그는 이것으로 무엇을 하려는 생각이었겠읍니까?

🙝 🙟

조급한 무대 위에는 피아노가 올려 놓이는 동시에 그날 밤의 프로그램은 전부 변경한다는 것이 발표되었읍니다. 예정했던 곡목은 전부 중지하고, 그 대신으로 고쌸크 자작의 가장 난곡(難曲)인 〈전쟁의 곡〉을 연주한다는 것이었읍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환호와 갈채에 싸여서, 이윽고 고쌸크는 무대에 나타났읍니다.

들어라! 단 한 소리의 ‘비이 플랫’으로부터 유원(幽遠)한 나팔의 소리가 들려 오지 않느냐? 나팔의 음은 다시 소총의 음으로 변했읍니다. 다음에는 나팔과 소총의 음이 한데 어울려 나왔읍니다. 혹시는 가깝게도 들리면서─. 전쟁의 기분은 청중의 머리를 눌러서 사람들은 몹시도 긴장되어 있을 때에 고쌸크의 전력을 다한 일격은, 돌연히 대포의 폭음을 청중으로 하여금 직감케 했읍니다. 격렬한 전후의 소총음은 다시 점점 멀리 사라지고, 아름다운 나팔의 음이 승리와 평화를 고려하면서, 연주는 무사히 끝났던 것입니다.

와아 하고 일어나는 군중의 함성! 피아니스트는 무아몽중이 되어 뒷방으로 도망을 갔읍니다. 그는 청중의 격노는 미리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망할 수 있는 데까지는 도망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필사의 힘을 다하여 뒷문을 열고, 상반신을 막 내어놓자마자, 그의 등 뒤에서는 그를 꽉 붙잡는 자가 있었읍니다.

“아아, 만사휴의로다!”

고쌸크는 눈을 감은 채로 우뚝 서 있었읍니다.

“왜 이러십니까, 선생? 선생의 귀는 청중의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오오, 청중! 그럼 나는 도망조차 못합니다그려,”

“도망이요 천만에 선생님의 말씀은 알아듣지 못하겠읍니다. 자, 어찌 되었든지 우선 인사만이라도 하시고 들어오십시오. 저렇게 몹시 앙콜을 하는데 어디를 가신단 말씀입니까?”

🙝 🙟

웬 셈인지도 모르고 무아몽중에 들어 있던 고쌸크는 그에게 끌려서 다시 무대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박수, 박수, 환호, 갈채, 그는 비로소 깨달았읍니다. 청중의 열광적 환영을.

“전쟁의 곡! 전쟁의 곡!”

이것이 군중의 부르짖음이었읍니다. 그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읍니다. 임기응변의, 아니 무아몽중의 작곡이, 이다지도 청중을 감격시킨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전쟁의 곡〉은 다시 시작되었읍니다. 그러나 또다시 일어나는 박수는 그칠 줄을 모르게 되어 그는 이 ‘비이 플랫’ 1음으로 된 〈전쟁의 곡〉을, 여섯 번이나 되풀이해 연주하고야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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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 그는 어젯밤의 악몽에서 채 깨기도 전에, 광산의 위원이 그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제발 하룻밤만 더 해달라는 간청이었읍니다. 그러나 많은 정신을 가지고는 도저히 ‘비이 플랫’ 1음만의 명곡을 다시 연주할 자신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극력으로 사양해 보았으나, 위원은 좀처럼 물러가지 않았읍니다.

“꼭 하룻밤만 더, 어제의 〈전쟁의 곡〉을 들려 주십시오, 선생께서 아무리 사양을 하신다 하더라도, 정거장에서 운집한 군중들은 물리치고 기차를 타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제 밤의 2배 이상의 군중이 창고 앞에 쇄도하여 하회를 기다리고 있는 줄을 선생은 모르십니까?”

그는 필경, 승낙하고야 만 것입니다. 전야의 연주회에 출석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날 밤 〈전쟁의 곡〉의 재연에 얼마나 만족하고 감격했을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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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문이 널리 미국 전토에 퍼지게 되자, 고쌸크의 이름은 〈전쟁의 곡〉과 함께 당시 북미의 사교계를 풍미했던 것입니다.


  • 고쌸크(Louis Moreau Gottshalk)는 1829년 5월 8일에 New Orleans에서 출생하여, 1869년 12월 18일에 남미 Rio de Janeiro에서 사망한 양금(피아노)의 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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