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필/술 먹지 않는 악기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귀족이나 부호들이 자기의 부력을 미끼 삼아가지고 예술가를 이용하려는 폐단이 많지만, 특별히 서양에 있어서의 귀족이나 부호들은 연회석에 음악가를 초대하였다가 식후의 여흥으로 석상연주(席上演奏)를 강청하여 내객의 흥을 돋게 하는 동시에, 자가(自家)의 세력을 자랑하려는 악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연회석이거나 사랑놀음이거나, 연주에 대한 보수라도 상당히 준다면 혹시 돈에 팔려가는 음악가도 없지는 않겠지만 공동 식탁의 한 구석 자리를 할여(割與)했다는 조건으로 석상 연주를 강청하거나, 또는 연주에 대한 사례를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교활하고도 비루한 수단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영국의 오보에(Oboe)의 명수 피셔는 기지에 뛰어나기로 유명하여, 그는 언제든지 귀족의 연회석에는 참석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더블린이란 곳에서 연주회를 열었던 때의 일입니다. 그 지방의 어떤 귀족이 상투의 수단으로 피셔를 자기 집 연회에 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셔의 결벽을 미리 짐작한 그 귀족은 정면 교섭을 하거나 초대장을 보내는 것쯤으로는 도저히 성공하지 못할 줄을 알았던 까닭에 그는 피셔가 연습을 하고 돌아오는 것을 길가에서 지키고 기다리다가 끌고 가려 했던 것입니다.

“어어, 피셔 군, 참 잘 만났소 그려. 오늘 저녁에는 우리 단 두 사람이 한 잔 먹으면 어때?”

“거 참 좋구먼요.”

술을 좋아하는 피셔는 이같이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의 쾌락을 귀족은 심중에 득의만면하여 기뻐했습니다.

“그럼 지금 곧 나하고 같이 갑시다.”

그러나 눈치 빠른 피셔는 그의 간계에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연습장에서 오는 길이니까 잠깐 집에 다녀가지요. 술을 먹으려면 이 악기가 방해물이 되어서요.”

“아니, 그냥 가지고 갑시다 그려. 오보에를 가지고 간댔자 그다지 큰 악기도 아니요, 또 만일 술이 너무 취하거들랑 집의 하인으로 해서 돌려보내도록 하면 그만 아니요?”

대단히 그럴 듯한 수작이었습니다. 그러나 피셔는 일종의 비웃는 미소를 얼굴에 띠우면서 이같이 대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집에 두고 오는 것이 제일 편하겠지요. 내 악기는 결코 술을 먹지는 않으니까요.”


  • 피셔(Johann Christian Fischer)는 1733년에 프리벅 섬에서 출생하여, 1800년 4월 19일에 런던에서 사망한 영국의 명 오보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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