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순간 뒤에 노자작의 노염에 불붙는 눈은 휙 돌아와서 아들의 얼굴에 정면으로 부어졌다.

“네게는 ― 네게는 ―.”

노염으로 말미암아 노자작의 숨은 허덕였다 ―.

“네게는 아비가 그렇듯 노쇠해 뵈더냐!”

일찌기 호랑이 같은 재상으로서 선정(善政)에 학정에 같이 그 이름을 울리던 노자작의 면목은 여기서 나타났다. 얼굴은 누렇게 여위었지만 거기서 울려나오는 음성은 방을 드렁드렁 울리었다.

다시 흥분해 가는 아버지의 앞에 두식이가 어쩔 줄을 모르고 창황하여 할 때에 아버지는 다시 고함쳐서 저편 방에 있는 충복 왕보를 불렀다.

“야. 왕보야 ― 왕보야 ―.”

충실한 왕보였다. 비록 잘 때라도 주인에게 대한 주의는 끊치지 않고 있던 왕보는 주인의 부름에 곧 이 방으로 달려왔다. 그 왕보에게 향하여 노자 작은 마치 어린애같이 자기의 처지를 호소하였다.

“왕보야. 나는 좀 자고 싶구나. 그런데 이 ― 이 ― 이 사람이 귀찮게 굴어서 잘 수가 없다. 날더러 노쇠했다는구나. 날 제발 좀 자게 해다구.”

왕보는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노자작의 침대에 가까이 가서 한 번 자작의 이불을 고쳐 드린 뒤에 천천히 눈을 두식이에게 돌렸다.

두식이는 아버지의 방에서 물러나왔다.

자기의 침실로 돌아온 두식이는 몸을 커다랗게 침대에 내어던졌다. 그리고 다리는 마루 위에 상반신은 침대 위에 눕힌 뒤에 권연을 붙여물었다.

밤의 곤한 잠에서 깨어나고 깨어난 뒤에 연하여 기괴한 일을 본 두식이에게는 지금이 마치 꿈과 같았다.

단총 소리에 깨었다. 별당으로 달려가 보니 아버지는 기절하고 전등은 부서졌다. 탄환이 여기저기 박혔다. 아버지를 양관으로 모셔왔다. 아버지에게서는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을 들을 뿐이었다. 그것을 의심하매 아버지는 성을 내었다.

― 대체 김덕삼이가 누구던가. 김덕삼의 아들이 누구던가.

아까 아버지의 입에서 김덕삼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에 아버지의 얼굴은 몹시 불안한 듯하였다. 분명히 아버지는 그 김덕삼이란 이름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아버지의 불안한 표정으로 아버지와 김덕삼의 새에 무슨 기괴한 인연이 있던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보였다. 칠십년에 가까운 생애를 아직 두려움을 모르던 아버지도 김덕삼의 이름을 말할 때는 분명히 두려운 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러면 대체 김덕삼이가 누구인가. 김덕삼이와 아버지의 새에는 어떤 인연이 있나.

“그래. 왕보에게 물어 보자.”

오십 년 동안을 노자작을 모시고 지내온 왕보는 노자작에게 관한 일은 모르는 것이 없었다. 만약 아버지로서 김덕삼이라는 이름을 안다 하면 왕보도 짐작컨대 알 것이다. 그리고 김덕삼의 근본만 알면 오늘 밤에 생긴 기괴한 일에 대하여 어떤 서광이 보일 듯싶었다.

두식이는 처음에는 초인종을 눌러서 하인을 불러서 왕보를 좀 이방으로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고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왕보는 비록 이 집안의 하인이라 하나 아버지에게 직속된 하인으로서 두식이가 하인을 시켜서 불러오기는 좀 어떨 듯하였다. 그래서 몸소 나가서 왕보를 만나 보려 한 것이었다.

거진 다 탄 권연을 재떨이에 내어던지고 두식이가 복도에 나서서 보매 저편 아버지의 방 앞에 늙은 왕보가 허리를 구부리고 지켜서 있었다. 두식이는 천천히 그리로 갔다. 그리고 자기를 보고 허리를 더 굽히는 왕보에게 향하여 왜 자지 않느냐고 물었다.

왕보는 대답치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허리를 굽힌 뒤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뿐이었다.

“다른 젊은 하인을 불러서 지키게 할 테니 좀 들어가서 자면 어떤가?”

왕보는 젊은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 뒤에 다시 고개를 저었다.

“늘그막에 수고하네. 좌우간 잠깐만 내 방에 와 주지 못하겠나? 오늘 밤 일에 대해서 좀 물어 보고 싶은 일이 있는데…….”

두식이는 다시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 말에 대하여도 왕보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서 노자작의 침실문을 한 번 본 뒤에 다시 머리를 설레설레 저을 뿐이었다.

이 고집불통이요 충직하기 짝이 없는 왕보에게 대하여 두식이는 다른 수단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식이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다른 젊은 하인 하나를 세워 가지고 올라왔다.

“이 사람한테 십오 분 동안만 맡기고 내 방에 좀 와 주게. 이봐 이봐. 왕보가 내 방에 가 있는 동안 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떠나면 안 되네. 잠시 눈만 딴 데 팔아도 안 돼. 자 왕보, 마음놓고 잠시만 내 방에 와 주게. 물어 볼 일이 있어서 말이네.”

두식이는 왕보를 자기의 침실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굳이 사양하는 왕보에게 의자를 억지로 권하고 마주 앉았다.

“왕보. 오늘 밤의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 말에 왕보는 늙은 눈을 들어서 작은주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소인은 알 수가 없읍니다. 꿈 같사외다.”

하면서 도로 눈을 떨어뜨렸다.

“내 아버님의 일을 내가 모르고 자네게 묻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세마는 오늘 밤 일에 대해서 짐작되는 일이 없나?”

“모르겠읍니다.”

“김덕삼이라고 혹은 알 수 없겠나?”

왕보는 눈을 들어서 한순간 다시 두식이를 보았다. 그런 뒤에 눈을 도로 아래로 향하고 한참 뒤에,

“어느 김덕삼이오니까?”

하고 물었다.

“나도 어느 김덕삼인지는 모르네마는 혹은 아버님께 원한이라도 먹을 만한 김덕삼이란 사람이 없겠나?”

“― 있읍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네. 그 김덕삼이는 죽었읍니다. 그리고 다른 김덕삼이는 모르겠읍니다.”

“그 김덕삼이는 언제 죽었나?”

“삼십 ― 이십구 ― 꼭 삼십 년 전에 죽었읍니다. 그 김덕삼이가 이번 일에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김덕삼이 아들이 금년 몇 살이나 되겠나?”

“김덕삼이는 후사가 없었읍니다.”

두식이는 왕보를 보았다. 왕보는 눈을 푹 아래로 내려뜬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덕삼이게 후사가 없었어?”

“네. 없었읍니다.”

“분명히 없었나?”

“소인이 잘 압니다. 없었읍니다.”

“그래도 ―.”

두식이는 눈을 바로 뜨고 한 마디씩 한 마디씩 똑똑히 말하였다.

“어젯밤에 왔던 놈이 덕삼이의 아들이라는데.”

“네? 누가 그럽디까?”

“대감께서.”

아직도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던 왕보의 눈이 번쩍 띄었다. 띄었던 눈은 두식이의 눈과 마주쳐서 낭패한 듯이 도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 순간 두식이는 왕보의 눈에서도 말할 수 없는 공포가 불붙는 것을 보았다. 그의 무릎 위에 놓인 양손까지 약간 떨렸다.

“없었읍니다. 덕삼이는 후사가 없었읍니다.”

“그래도 ―.”

“없었읍니다. 분명히 없었읍니다.”

두식이는 여기서 무슨 기괴하고도 두려운 사실이 감추여 있는 것을 짐작하였다. 아직 두려움이라는 것을 모르던 아버지의 공포며 또 여기 이 왕보의 공포를 연결하여 생각할 때에 이 사건의 뒤에는 무슨 기괴한 사실이 분명히 숨어 있는 것이었다.

“여보게. 내 말을 들어 보게. 아까 왔던 괴한이 제 입으로 아버님께 자기는 김덕삼이의 아들이노라고 분명히 말했다는데 자네는 어째서 덕삼이가 후사가 없었다고 그렇게 단언하나?”

“덕삼이는 죽기까지 장가를 안 갔읍니다.”

“음. 그래도 장가 못 갔대도 자식을 못 났다는 법이야 없겠지. 그렇지 않나?”

“정들인 곳도 없었읍니다.”

“정들인 곳도?”

“네. 어느 기생 한 분에 정들였었는데 ―.”

“그래서?”

“그 기생께서―.”

“께서가 아니라 그 기생이 말이지.”

“네. 그 기생께서―.”

“기생이.”

“네.”

“그래서?”

왕보는 대답치 않았다. 한참을 묵묵히 앉았다가 그가 입을 열 때는 두식이에게는 의외의 말이 나왔다 ―.

“나리. 소인을 죽여 주십쇼.”

“여보게 왕보. 좀 정신을 차리게. 자네도 웬 일인지 몹시 흥분했네. 좀 정신을 가다듬게. ― 대체 그 기생이 어쨌단 말인가?”

“…….”

“응?”

“그분에게서는 후사를 못 보았읍니다.”

“응. 말하자면 덕삼이는 총각으로 죽었고 정들인 곳은 기생 하나 밖에는 없었는데 그 기생에게서도 자식을 못 보았단 말이지?”

“네.”

“그럼 아까 왔던 놈은 무에겠냐 말이야.”

“소인은 알 수 없읍니다.”

“대체 덕삼이는 어떻게 죽었나?”

“…….”

“응?”

“…….”

“응?”

두식이는 세 번을 연거푸 물었다. 그러나 왕보는 그 말에는 입을 굳게 닫고 대답치 않았다.

“왕보.”

“네.”

“왜 대답을 안하나?”

“…….”

“자네는 이 집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 댁 은공은 죽어도 못 잊겠읍니다.”

“이 집에 아까 심상치 않은 괴변이 생겨 난 것은 알지?”

“네…….”

“그것을 알아보고 그것이 만약 위험한 일이라면 그 위험에서 이 집을 구해 내기 위해서 지금 내가 자네게 묻는 겐데 자네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은 웬 일인가?”

“말씀드리겠읍니다.”

“덕삼이는 왜 죽었나?”

“매에 죽었읍니다.”

“언제 어디서?”

“대감께서 충청 감사로 계실 때 공주 영문에서…….”

두식이는 겨우 짐작하였다.

응 아버님께서 “ . 충청 감사로 계실 때 덕삼이를 치셨단 말이지?”

“네.”

“무슨 죄로?”

“…….”

“응?”

“영문에서 담배 먹은 죄로…….”

“영문에서 담배 먹은 죄로?”

“네. 매에 죽기는 그 죄에 죽었읍니다.”

“여보게. 말을 끼고 하지 말게. 죽기는 그 죄로 죽었다면 다른 것은 무에 어떻단 말인가?”

왕보는 눈을 고즈너기 감았다.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떴다 ―.

“죄 말씀드리겠읍니다.”

“그래.”

“덕삼이는 영리(營吏)였읍니다. 덕삼이가 어떤 기생 한 분과 가까이 지냈읍니다. 그래서 대감께서 늘 밉게 보시던 차에 영문에 가서 담배를 먹다가 들키기 때문에 죽었읍니다.”

“응. 알겠네. 말하자면 그 기생은 아버님께서 돌보는 기생이란 말이지?”

왕보는 머리를 숙여서 그렇단 뜻을 말하였다.

“그 기생은 어떻게 되었나?”

“죽었읍니다.”

“언제?”

“…….”

“응?”

“소인은 알 수 없읍니다.”

“알 수 없어? 알 수 없으면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가?”

“…….”

“말을 분명히 하게. 죽었나 살았나?”

“― 알 수 없읍니다.”

“죽었다더니.”

“알 수 없읍니다.”

완강히 모르노라는 왕보에게 대하여 더 물을 근력을 잃은 두식이는 자기도 머리를 수그렸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한 뒤에 왕보에게 말하였다 ―.

“덕삼이에게 관해서 더 아는 것이 없나?”

“없읍니다.”

“더 말할 것은 없나?”

“없읍니다.”

“그렇지만 이상하지 않나? 자네는 덕삼이게 분명히 아들이 없었다구 하지만 오늘 왔던 자는 자기가 덕삼이의 아들이노라고 스스로 말하니깐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겠나?”

왕보는 눈을 감은 채로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참 뒤에 눈을 겨우 들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할 듯이 입을 조금 움직였다. 그러나 다시 입을 봉하여 버렸다.

“어떤가?”

“역시 소인은 모르겠읍니다.”

“몰라?”

“네…….”

“알 사람이 없겠나?”

“…….”

“…….”

“없겠어?”

“소인은 모르겠읍니다.”

왕보는 사건에 대하여 좀더 아는 듯하였다.

그러나 웬 일인지 이상은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두식이는 하릴없이 왕보를 놓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고했네. 나가 보게.”

작은주인게 해방을 당한 왕보는 기다란 한숨을 쉬며 지척지척 문으로 향하여 나갔다.

그러나 문에까지 가서 그는 도로 돌아섰다.

“나리.”

“왜.”

“소인은 왜 그런지 무섭습니다.”

“무에?”

“덕삼이는 그때 분명히 후사가 없이 죽었읍니다. 그런데 아까 왔던 건 대체 웬 일일까요? 그걸 생각하면 소인은 무섭습니다.”

“철없는 ―”

왕보의 말을 한 마디로 비웃었지만 두식이의 등골로도 소름이 쪽 끼쳤다.

게다가 똑똑히 생각은 “ 나지 않지만 덕삼이가 죽은 날도 오늘같이 캄캄한 가을 밤이었읍니다. 혹은 삼십 년 전 이 달 오늘이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그걸 생각하면 소인은 무서워서 못 견디겠읍니다.”

“칠십에 아직도 두려움을 타나? 그러지 말고 돌아가서 대감 방은 옥길이 더러 지키라고 한잠 자게.”

이리하여 두식이는 왕보를 내보냈다.

그러나 왕보를 내보내는 순간부터 두식의 마음에도 공포라고밖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각각으로 일어나서 커졌다. 왕보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고 그리고 아버지의 말과 대조할 때에 사건의 기괴성이 두식이의 마음을 차차 무겁게 하였다.

왕보는 덕삼이가 분명히 후사가 없이 죽었다 한다. 그러면 아까 왔던 인물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유령?

새로운 교양을 받고 자란 두식이는 그 괴한을 유령으로 인정하기에는 너무도 과학적 사람이었다. 그러면 덕삼이의 아들?

그러나 왕보가 그만치 후사 없이 죽었다는 것은 강조할 적에야 그럴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보통 사람?

그렇게 해석하자니 아버지의 아까의 경과당한 것은 너무도 기괴하였다. ― 장지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그 틈으로는 분명히 아무도 들어오지는 않았다.

뿐더러 아버지가 십이 연발을 다 놓았지만 그 한 발도 맞지를 않았다. 이것은 보통 사람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도 기괴하였다. 더구나 그 괴한의 음성은 무슨 기계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기괴한 음성이었다 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비록 그것은 한낱 망상에 지나지 못하고 미신에 지나지 못한다 생각하더라도 두식이의 마음은 한편 구석에서 차차 자라나는 무시무시한 생각은 누를 수가 도저히 없었다.

두식이는 시계를 보았다. 네시 반이었었다.

‘아직 두 시간.’ 밝기까지는 아직도 두 시간이나 더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흥분 상태로써는 도저히 잠이 들 듯도 안하였다. 그리고 또한 지금의 무시무시한 마음상으로는 두 시간이 몹시 길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 두 시간 동안을 두식이는 무슨 재미있는 책이라도 읽으면서 아까의 그 사건을 온전히 잊고 지내고 싶었다.

두식이는 무슨 책이라도 한 권 가져올 양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재로 가려고 문에까지 이르렀다.

그가 문앞에서 바야흐로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으려 할 때였다. 두식이의 손이 채 손잡이에 가 닿기 전에 손잡이가 스스로 조금 움직였다.

두식의 온몸에는 소름이 쪽 끼쳤다. 눈까지 아득하여졌다. 움직이려던 몸은 못박힌 듯이 그곳에 딱 붙었다. 그럴 동안에 손잡이는 차차 차차 돌고 문이 소리없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두식이의 팔다리가 우들우들 떨렸다. 피는 모두 얼굴로 모여들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두식이가 자기의 지금 서 있는 곳과(단총이 있는) 침대 머리와 거리를 머리로 측량을 할 동안 조금씩 열리던 문이 홱 열렸다. 동시에 두식이의 맞은편에는 웬 청년 하나이 딱 마주 버티고 섰다.

“실례합니다. 이런 사람이외다.”

왼손으로는 문을 도로 닫으며 오른손으로는 명함을 쥐고 과도한 경악 때문에 거의 정신을 잃을 듯이 된 두식이에게 그는 약간 머리를 숙였다.

그 앞에 두식이는 망연히 서 있을 뿐이었다.

키는 중키나 되었다. 몸이 크지는 못하지만 단단하게 생겼다. 침착한 눈이었지만 한 번 크게 뜰 때는 꽤 날카로운 빛이 보일 듯하였다.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대담한 사나이였다.

이 침입한이 앞에 두식이가 망연히 서서 벌벌 떨고 있을 때에 침입한이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혔다.

“실례올시다. 밤중에…….”

이 아무 적의가 없는 태도에 두식이는 처음으로 약간 제정신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침입한이 손에 들고 있는 명함에 눈을 두었다. 그리고 그 명함으로써 두식이는 이 침입한이 T서의 형사 김찬수인 것을 알았다.

“형사…….”

명함을 본 뒤에 두식이는 작은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명함으로써 침입한의 정체를 알고 그 침입한의 결코 불법한 일을 행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동시에 두식이의 마음에는 그 사나이에게 대한 분노가 차차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형사…….”

다시 한번 작은 소리로 뇌어 본 두식이는 눈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힐책하는 듯 눈을 형사의 얼굴 위에 부었다 ―.

“형사가 가택 침입 ―.”

“네. 불온한 일인 줄 모르는 바가 아니외다. 그렇지만 ―.”

“가택 침입 ― 그래 양민의 주택에 함부로 들어와도 옳단 말이오?”

“네, 모르는 바가 아니올시다만 ―.”

연하여 변명하려는 말을 두식이는 연하여 막았다.

서장에게 당신의 “ 행사는 전화해 둘 테니깐 이 집에서 곧 나가오.”

“네 한 마디만 ―.”

“냉큼 나가오….”

“잠깐만.”

“나가오 ― 안 나갔다는 ―.”

두식이는 두어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려 팔을 들었다.

그러나 두식이의 손이 초인종에 채 닿기 전에 형사의 팔이 먼저 두식이의 손을 잡았다.

“잠깐 기다리시오.”

사정이라기보다 오히려 엄연한 명령이었다. 형사의 빛나는 눈은 정면으로 두식이의 눈에 부어졌다.

“이보세요. 내가 월권 행위를 한 것은 나도 인정하는 배외다. 내일 아침이라도 서장에게 전화를 해서 처벌하도록 하시면 될 게 아닙니까. 나로 말하더라도 월권 행위까지 해서 들어온 이상에는 그저 도로 나가지 않을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아까 이 댁 별당 근처에서 괴상한 권총 소리가 여러번 나는 걸 들었읍니다. 그 뒤에 불이 이리 왔다 저리 왔다 하는 걸 봤읍니다.

분명히 무슨 사변이 생기기는 했어요. 그러나 ― 그 ― 그 ― 웬만한 일은 이런 댁에서도 그냥 댁내에서 삭여 버리지 귀찮게 경찰에까지 기어나와 알리지 않는 일이 많아요. 이번 사건도 모르기는 모르겠읍니다마는 혹은 댁내에서 그냥 삭여 버리고 경찰에는 보고도 안하고 말는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우리 경관의 자리에서 보면 무슨 사건이 생기면 그것을 전부 조사해 두어야 이 뒤 다른 사건이 생길지라도 서로 연락 관계며 계통이며를 알아 내기가 쉬우므로 어떤 작은 사건이 생길지라도 하나도 넘기지 않고 죄 조사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혹은 댁내에서 삭이고 말는지도 모를 사건이지만 조사해 보기 위해서 들어온 것입니다. 또 밤중에 보통 수단으로 면회를 청한대사 도저히 성공치 못할 일이기에 이렇게 월장해서 몰래 들어온 게입니다. 그리고 ―.”

형사는 아직껏 잡고 있던 두식이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말을 좀 낮추었다―.

“또 ― 말씀이외다 이번 사건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짐작도 안 가지만 만약 이번 사건이 댁내에서 삭여 버릴 사건이라면 혹은 그 ― 이 댁에서 나를 이용할 수도 있지 않읍니까. 즉 내가 만약 서에 돌아가서 어젯밤 어느 댁에서 여사여사한 일이 있었다 보고하게 되면 무가내 이번 사건은 공공연히 드러나고야 말지만 여기서 선생과 나와 타협만 되면 서에는 보고하지 않고 비밀히 사건을 조사해 봐서 위험한 일일 것 같으면 또한 비밀히 막을 길도 있겠고 또는 좋지 못한 일이면 제재를 가할 수도 있지 않겠읍니까? 자 어떠세요.”

말하자면 형사 김찬수는 두식이에게 가택침입을 묵인하고 말없이 조사시켜 주면 조사한 뒤에 그 조사의 결과에 따라서 제이 타협이라도 또 하자는 것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한 비밀탐정의 역할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형사의 말의 배면에는 금전의 보수를 요구하는 뜻이 섞인 것으로 해석한 두식이는 잠시 형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역시 못마땅하다는 듯이,

“그래도 밤중에 ―.”

더 나무라려 할 때에 형사가 다시 허리를 굽혔다.

“밤중에 들어온 일에 대해서는 천만 번이라도 사죄를 하겠읍니다.”

두식이와 찬수의 새에는 드디어 타협이 성립되었다. 찬수가 몇 번을 더 허리를 굽히며 타협을 요구할 때에 두식이도 드디어 승낙을 한 것이었다. 아니 두식이로 말하더라도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치하여야 할지 쩔쩔 매던 차에 찬수라 하는 인물이 뛰쳐든 것을 오히려 다행히 여기고 타협에 응한 것이었다. 이번 사건은 분명히 중대한 사건이었다. 두식이 혼자서는 도저히 처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또한 경찰에 알리자 하니 거기 꺼리는 점이 없는 바가 아니었다. 김덕삼의 아들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것을 모두 들추어 내자면 혹은 자기 아버지의 전반생(前半生)의 포학사(暴虐史)가 드러날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 것을 들추어 내는 것을 피하자면 또한 김덕삼의 아들이라는 인물을 모르는 체 덮어두어야 할 것이다.

덮어두자면 이 뒤에 또한 어떤 사변이 일어날지 모를 것이다.

여기서 오른편으로도 왼편으로도 갈 수가 없게 된 두식이에게 김찬수라는 인물이 달겨든 것이었다. 김찬수는 비밀히 이번 사건을 조사하여 보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찬수와 타협이 된 두식이는 어젯밤에 생긴 괴변의 전말을 전부 찬 수에게 알으켜 주었다. 뿐더러 왕보에게 들은 김덕삼과 노자작의 새의 인과관계까지 알으켜 주었다.

두식이의 설명을 다 들은 뒤에 요령을 수첩에 적고 잠시 머리를 수그리고 있던 찬수는 머리를 들었다 ―.

“한 가지 더 말씀해 주십시오.”

“무에요?”

“그 ―.”

찬수는 코로 길게 숨을 내어불었다.

“그 ― 이 댁에서 토지를 많이 팔아서 외국 공채를 사셨지요?”

“?―”

두식이는 깜짝 놀았다. 너무도 기괴한 질문이었다. 토지를 팔아서 외국 공채를 산 것은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두세 사람만이 아는 일로서 찬수가 알 까닭이 없었다.

찬수가 두식이의 놀라는 까닭을 안 모양이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치 그런 건 죄 압니다. 지금까지 얼마치나 샀읍니까?”

“…….”

“십만 원 가량 됩니까?”

“그게 이번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읍니까?”

“글쎄올시다.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관련이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읍니다. 좌우간 나를 믿고 일을 맡기시는 이상에는 죄 이 댁 사정을 알아야지 않습니까?”

“…….”

“얼마한 한도까지 토지를 공채로 바꾸실 예산입니까?”

“차차는 토지는 죄다 팔 예산이외다.”

“그래서 전부 공채 혹은 주식으로?”

“네.”

“왜요? 어떤 주장으로?”

“―그건 대답을 좀 피해야겠읍니다.”

두식이는 고소하였다. 찬수도 약간 미소하였다.

“지금 얼마나 바꾸었읍니까?”

“그저께까지 십오만 원, 한 사오 일 뒤면 그 곱쯤은 될 모양이외다.”

“그 공채 혹은 주권을 별당에 두셨읍니까 혹은 여기 두셨읍니까?”

“여기 이 양관에 두기는 두었지만 둔 곳은 당신한테도 똑똑히 말 못하겠소이다.”

“사오 일 후…… 사오 일 후…….”

찬수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한참을 머리를 수그리고 있었다.

“혹은 아까 왔던 괴한은 그걸 훔치러 왔던 걸로는 생각이 안 되십니까?”

“글쎄요. 그걸 훔치려면 나한테 올 게지 아버님 계신 별당으로 갈 까닭이 없겠지요. 게다가 김덕삼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제 이름까지 알릴 필요도 없겠지요.”

여기서 찬수는 수첩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으며 선선히 일어섰다.

밤중에 실례 했읍니다 “ ― . 한데 하인을 하나 좀 빌려 주실 수 없겠읍니까. 별당에 좀 가서 조사해 보아야겠는데.”

두식이는 하인을 하나 불러서 찬수를 별당에 안내하게 하여 내보냈다.

두식이는 찬수를 내보낸 뒤에 문을 잠그고 침대로 돌아와서 몸을 내어 던졌다. 지독한 피곤이 그의 몸을 엄습하였다.

담배를 한 대 붙여물었던 두식이는 그 담배를 다 태우지도 못하고 그냥 내려뜨리고 옷도 끌르지 않고 잠들었다.

몹시 곤한 잠에 빠졌던 두식이는 잠결에 무슨 뚝뚝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 조금 정신을 차리고 들으매 그것은 자기 침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누구야 밤중에.”

곤한 듯이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어 보니 인젠 밤이 아니었다. 시계는 여덟 시 이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식이는 침대에서 내렸다. 그리고 눈을 부비며 문으로 가서 쇠를 틀고 문을 열었다. 밖에는 하인이 목반에 명함을 하나 받들고 서 있었다.

“이런 분이 좀 뵙자고 왔읍니다.”

T서 근무 형사 김찬수 ― 명함은 어젯밤에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직 기침 안했다구 두 시간쯤 지나서 오라구 그래.”

몸이 극도로 피곤한 두식이는 이 말만 하고 문을 도로 닫고 침대로 돌아와서 누웠다. 누웠는 순간 다시 잠에 빠지려 하였다.

그러나 그가 잠에 빠지려는 순간에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문이 열렸다. 아까의 하인이 다시 들어왔다.

“긴급한 일이 있다고 삼 분 동안만 뵈옵구 가겠다고 가지를 않습니다.”

“구찮어 ―.”

그러나 이 순간 두식이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세 시간 전에 돌아간 찬수가 벌써 다시 와서 긴급한 일이 있다고 만나잘 적에야 무슨 참으로 긴급한 일이 있을 것이다. 벌써 무슨 단서라도 얻었는지도 알 수 없다.

“응. 내려가서 그럼 응접실에서 기다리라구 내 곧 내려갈께.”

이리하여 하인을 도로 내려보낸 뒤에 두식이는 그냥 입고 자기 때문에 구겨진 옷을 새옷으로 바꾸어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두식이는 응접실로 갔다 . 그리고 곤하기 때문에 떨리는 손으로 응접실 문을 열었다.

“?”

응접실 안에는 웬 알지 못할 젊은이가 하나 의자에 걸어앉아 있다가 일어나면서 인사를 하였다. 찬수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하인에게서 받은 명함을 지금 들고 내려왔던 두식이는 휙 몸을 돌이켜서 하인을 향하여 그 명함을 보이며,

“이분은 어디 계시냐?”

고 물었다.

하인이 머리를 굽혔다 ―.

“저기 저분이올시다.”

“저분?”

순간 온몸의 피가 모두 머리로 확하니 올라왔다. 절반만치 열었던 응접실 문을 두식이는 도로 닫았다. 그리고 입을 하인의 귀에 갖다대고,

“이봐 내 전화를 다 걸기까지 여기서 지키고 만약 저 안의 저 사람이 뛰든가 하면 용서없이 두들겨 잡아라.”

한 뒤에 얼른 저편 전화로 갔다.

전화를 건 곳은 T경찰서였다. 그러나 아직 서장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당직 경부를 전화에 불렀다.

“유두식이외다. 물어 볼 말씀이 있어서.”

두식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통하여 경찰서로 갔다. 경부가 대답하였다 ―.

“네. 무슨 말씀이오니까.”

“그 서에 김찬수라는 형사가 있읍니까?”

“있읍니다.”

“그 모습을 좀 말씀해 주실 수가 없읍니까. 다른 게 아니라 어제 김찬수란 형사가 온 일이 있는데 그 사람하고 오늘 아침 온 김찬수하고 딴 사람이기에 말씀이외다.”

“김찬수는 키는 후리후리 크고요.”

“커요.”

“네. 얼굴빛은 감고요 안경을 꼈고요 코 아래 채플린수염이 있고요 또―.”

그냥 설명하는 경부의 말을 두식이는 채 듣지 않고 전화기를 걸어놓았다.

지금 응접실에 앉아 있던 사람은 분명히 경부의 말하는 김찬수에 틀림이 없었다 잠깐 보아서 똑똑히는 . 모르되 안경과 채플린수염과 검은 얼굴빛의 소유자였다.

그러면 어젯밤에 왔던 인물은 무엇? 수염도 없고 안경도 안 쓰고 키는 중키 밖에 못 되며 얼굴도 비교적 희던 어젯밤의 괴한은 과연 무엇? 적어도 T서 형사 김찬수는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김찬수의 명함을 가지고 와서 시시골골히 사건의 내력을 캐어묻던 그 괴한은 과연 무엇?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두식이는 책상을 크게 두드렸다. 하인 한 사람이 달려왔다.

“올라가서 내 나잇 캐비넷 위에 명함 ―.”

두식이는 손에 든 명함을 내어들었다 ―.

“이와 꼭같은 명함 한 장이 있는데 곧 가져와.”

그리고 그 하인이 돌아오기 전에 바빠서 층계까지 따라가서 그 하인을 맞았다. 그리고 두 장의 명함을 들고 응접실로 달려갔다.

“당신이 김찬수 씨요?”

숨까지 허덕이며 이렇게 물었다.

“김찬수올시다.”

“이게 당신이 가지고 온 명함이지요?”

두식이는 한 장의 명함을 상 위에 놓았다.

“네.”

“이건?”

두식이는 다른 명함을 상 위에 놓았다. 형사의 눈이 둥그렇게 되었다. 형사는 명함과 두식이의 얼굴을 두어 번 번갈아 보았다.

“이보 오늘 새벽 네시 반에 이 명함을 가진 사람이 나를 찾아왔소.”

뒤따라 두식이가 이렇게 설명할 때는 찬수도 꽤 놀란 모양이었다.

“네? 그게 ―.”

하면서 몸을 절반만치 일으켰다.

“네, 새벽 네 시 반에 승낙없이 가택침입을.”

찬수는 두 장의 명함을 다 집었다. 그리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명함을 도로 놓으며 눈을 뜰 때에는 그의 얼굴은 도로 평온하게 되었다.

“알았읍니다. 명함을 가지고 온 사람을 ―.”

“알았소? 당신 친구 형사요?”

“아니올시다.”

“그럼? 보통 강도?”

“아니올시다.”

“그럼 뭐요?”

“사상적 배경을 가진 중대한 인물 ― 그저께 밤차에 입경한 서원덕(徐元德)이라는 사람이올시다. 키는 중키나 되고 눈이 광채나고 ― 그렇지 않습니까?”

거기 두식이가 머리를 끄덕일 때에 찬수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고요히 눈을 감았다.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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