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길
1
유월 스무 날, 새벽 하늘이 먼동 틀 때이다. 호올로 병원문을 나서는 황명수(黃明秀)는 온 몸이 후줄근 하여서 정신없이 비틀거리며, 자욱한 안개 속 희미한 거리로 헤매여가다.
2
그 전 날 밤이다. 죽음을 맡아 가지고 다니는, 커다란 흑의사자(黑衣使者)가, 무거웁고 거북한 발을, 잠깐 멈추어, 음침스럽게 섰는 듯이, 어두운 밤에 싸인 병원집은, 옛날에 지겨웁고 구슬픈 죽음이 많았다. 이로는, 함춘원(含春園) 솔숲에 흐트러진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끝 모르는 어둠 나라에서 꿈꾸는, 마음 약하고 몸 약한 불쌍한 무리를, 손짓해 부르는 듯하다. 한 어깨를 으쓱 틀어 출석거리며, 선술집의 굴접시처럼, 희멀뚱거리는 눈을, 두리번거리는 듯한 병원 지붕의 탑시계는, 어렴풋이 열한 점을 가리킨다. 어떻든, 밤도 흉물스러운 밤이요, 집도 음침스러운 집이다.
서삼호(西三號) 부인 병실에는, 무거운 근심이 깊이 쌓였다. 하얀 모기장 밖으로, 답답하게 매어달린 푸른 점등빛은, 애태우는 여러 사람의 한숨과 눈물을, 안타까웁고 청승스럽게 적시운다.
백목 홑이불을, 보얗게 마전하여서, 깨끗이 깔은 병상 위에, 병든 희정(熙晶)이가, 고이 누웠다. 고이 누워 있는 그만침, 그의 병세는 위독하였다. 구름 같은 머리카락은, 되는대로 엉클어져, 커다란 베개를, 검게 덮었다. 너무도, 모진 병에 시들고 시어져서, 백골이나 아닌가 의심할만치,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여위어졌다. 어여쁘고 고은 얼굴에, 가장 아름다운 속눈썹을, 가졌다 하던 샛별 같은 그의 눈도, 이제는 궂은 눈물에 어리인 채, 반쯤 뜨여 있다. 하얗게 빛바래인 입술은, 어느 시절에 꽃다운 웃음을 띠어보았던지, 흔적도 없고 자취도 없이, 어디로 사라져 볼 수도 없다. 가슴에 덮인, 홑이불 한 겹이 무거운 듯이, 가쁘게 할딱할딱하는 숨소리는, 이따금 가느다란 목 속에, 얼클어진 가래침에 걸리어, 괴로웁게 귀치 않게 가르랑가르랑할 뿐이다. 그럴 적마다 메마른 입언저리는, 힘없이 가늘게 바르르바르르 떨린다. 온몸은, 가느다란 철사에다, 엷은 백지를 휘감아 놓은 듯이, 허수아비같이, 힘없이 쓰러져 누워 있다. 팔과 다리가 아무 연락도 없이, 그저 그렇게 떨어져 되는대로 흩어진 듯이…….
끊어지려 하는 가는 목숨을, 마디마디 졸이는 듯한, 머리맡에 목각종 소리는, 혼자 제 세상이라고, 고요한 방 안을 아프게 울린다. 무거운 수은을, 부어 놓은 듯한, 방 안의 공기는, 가만한 속에서도, 한참 바쁘게, 장차 일어날 무슨 일을, 신비스러웁고 거룩히 큰 무슨 어려운 일을, 예비하기에 몹시 부산한 듯하다.
대각대각 하는 시계 소리가, 기름이 말라서 기운 없이 서면…… 바랄 수 없는 희정의 목숨이, 목 안에서 깔딸깔딱하다가 그만 뚝 그치면…… 희정의 병상을 에워싸고, 안타까웁게 들여다보는 여러 사람은, 하염없이 창자를 졸이며,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기다리는 무엇이란 무엇이, 참으로 무엇인지는 모른다. 아무도, 캄캄히 모를 수밖에 없이 되었다.
다섯 시간 전에, 희정의 배를 갈랐었다. 위와 십이지장을 수술하려 함이었다. 하다가 미처 손을 떼이기도 전에, 원체 몹시도 허약해진 환자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여, 맥박이 끊어지려 하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병수술은 둘째이고, 우선 끊어지려 하는 목숨이나, 조금 더 꿰매어 놓으니, 물론 믿을 수 없는 것은, 환자의 남았다 하는 그 목숨이다.
응급수술의 힘으로 이때껏 목숨이 부지하여 있으나, 의사가 “열 시간 이상은, 더 바랄 수 없습니다” 하고, 다시 입맛을 쩍쩍 다시며, “어서 수의나, 장만할 도리나 하시오” 하는, 정떨어지는 최후의 선언을, 하고 가버리었다. 정작, 목숨의 주인인 희정이는 몰라도, 애를 써서 간호하던 여러 사람들은, 청춘을 다 못 사는 희정의 짧은 일생을, 가엾게도 박명한 그의 일생을, 너무도 박절히, 열 시간이라는 기한을 받아 놓고, 임종을 기다려 지키고 있게 되었다.
희정은, 물에 녹은 수련화(睡蓮花) 줄기같이 파리한 팔을, 무거운 듯이 배 위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배 위로, 기운을 들여 옮기여 놓는다. 그리고 아무 탄력이 없는 듯한 눈꺼풀이, 흐린 날에 먼동 트듯이, 머 ― ㄴ 하게 열리어진다. 그러나, 그의 눈은 아무 빛도 없고 아무 힘도 없이, 그저 열리어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그의 눈동자가 이리로 저리로, 조금씩 돌기 시작한다. 아마 누구를 찾으려 함인지,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무슨 군호나 있는 듯이, 귀를 기울이며, 허리를 굽혀 들여다본다. 희정의 얼굴은, 몹시 무서웁게 핼쓱하고 희어지면서, 다시 눈을 감는다. 이 모양을 보는 명수는, 차마 견디어 볼 수가 없는 듯이, 옆의 사람들을 얼른 돌아보면서, 혼잣말같이
“어떻게 하나…… 암만 하여도…… 마지막으로 유언이나 들어보도록 하지!”
의사가 와서, 주사를 한 지 한 오 분쯤 되어서, 희정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희정의 시선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거쳐서, 천천히 돌아간다. 아마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자기의 사랑하는, 가장 깊이 믿는, 또한 영원히 믿을 그이를, 찾는 모양인가 보다. 시선이, 명수의 얼굴까지 돌아갔을 때에, 한참이나 이윽히 보더니, 눈이 몹시도 부시인 듯이, 잠깐 눈을 감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크게 뜨면서,
“다 ― 꺼내어 버리었어요?” 말 끝에다 몹시 힘을 들인다. 자꾸 썩어들어간다 하던, 자기의 창자를 가리켜 말함인가. 기운 없는 손을 일부러 옮기여, 붕대로 싸맨 자기의 배를, 지근지근하고 있다. “응…….” 명수의 대답은, 힘없이 떨리었다. “얼마나 해요?” “의사가 보이지를 않아…….” 박정은 하지마는 명수의 대답이 거짓말을 아니할 수 없게 된 이때였다. “그래 이제는 잘 살겠대요?” “…….” 명수는 참으로 무어라 말을 해야 좋을른지 몰랐다. 다만 그러하다 하는 듯이, 고개를 얼른 끄덕하고, 옆으로 돌이키었다. 희정은, 만족하고 안심된다 하는 듯이, 눈을 시르르 감는다. 하얗게 빛바래인 입술에는, 기꺼운 웃음이 오르는 듯하다가, 힘없는 근육이 다시 누그러져 버린다.
명수는 마음까지 떨리었다. 참으로 아픈 괴로움에 떨리었다. 가슴이 답답할수록, 희정의 묻는 말을 거짓이라도 되는대로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금방 죽을 그 사람이, 자기가 살겠느냐 물을 때에, 참으로 딱하고 불쌍하고 가엾어도, 차마 그의 귀에다가 시방 죽으리라 하는 그 애처로웁고 야속한 기별을, 들리어 줄 수는 없었다. “이제는 병을 다 고치었으니 잘 살리라.” 하는 뜻으로 그에게 들리어 줄 때에, 한편으로 뼈가 녹도록 슬프면서도 “죽으면 병도 없이 잘 살 모양이라.” 하는, 익살스러운 느낌이 엉클어진다. 자기는 희정을 속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익살스러웁게 속이어 버렸다.
한참이나 여러 가지의 설움과 걱정이, 서로 엉클어질 때에 언뜻 번개같이 닿지도 않은 생각이 다― 느끼어진다. “만일 시방 누워 있는, 숨이 넘어가려 하는, 희정의 몸이, 벌떡 일어나서 촉루(??) 가 다 된 그 앙상한 팔로, 자기의 목을 꼭 휘감아 껴안고, 목숨을 내이라 몸부림하면…… 부르짖으면……. 죽지 않는다. 속이인 죄로 ‘빼앗긴 목숨을 찾아내라’ 하면서 꼬집어 뜯으면…… 울며 덤비면.” 하다가, 아무 기운도 없이, 아무 느낌도 없이, 고이 속아서 조으는 듯한, 안존한 희정의 얼굴을, 볼 때에 더러운 죄악이 검게 썩는 듯한 자기의 마음이, 몹시 미안도 하고 또 두려웠다. 그는, 한 번 가슴이 무너지는 듯이 속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새암 솟듯 하는 눈물을 막기 위하여 얼른 무딘 눈가죽을 굳세게 닫았다.
눈을 감아도, 흐르는 그 눈물에, 출렁거리어 언뜻언뜻 마를 듯 마를 듯 떠보이는 것은, 희정의 일생이다. 아지랑이처럼 몽롱한 옛날에, 한마당의 스러지는 봄꿈과 같이, 가벼웁게 흩어지는 희정의 평생이 보인다. 스무한 해라는 짧은 삶을 모두 묶어서, 다시 두 번 돌아서지 못하는 막막한 저승길로, 쓸쓸히 외로이 옴작거리는 희정의 신세가, 멀리멀리 아득하게 보인다. 느낌, 슬픔, 눈물, 한숨, 애처로움……. 희정은 계집이었었다. 그만 살고 가는 희정의 일생은, 길가는 계집아이 구슬피 부르는 노래곡조 한 마디었었다. 그 노래가락에 세로 가로 얼크러진 것은, 사랑이요 또한 눈물이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줄이, 명수와 희정의 젊은 두 몸을, 꼼짝할 수 없이 얽매어 놓기는, 명수가 스무살 먹던 해 봄이었었다. 한 몸은 난봉을 치는 기생방 주인으로, 방을 빌리어 주었고, 한 몸은 만세꾼의 신세라 신변의 위험을 돌보아서, 일부러 오입쟁이 행세를 하며, 그 방에 들어 있게 되었다. 희정은 주인이요, 명수는 손이었었다.
그 둘의 사귐은, 매우 의협적이었고, 또한 너무도 밀접하였었다. 자기네들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구원하려고 나온 것이요, 또한 이 세상의 모든 거룩한 일은, 모두 자기네의 두 몸이 있는 까닭인 듯하게 생각되었었다. 더구나 희정은 민첩하고 의협스러운 여성으로, 무엇이든지 명수의 일이라 하면 부지런하였고 또한 열성껏 하였었다.
그런데 시방 희정이가, 이 곳에서 명수의 앞에서, 힘없이 쓰러져 죽으려 한다. 사랑이 있는 곳이면, 정성이 가는 곳에는,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흰소릴 하면서, 그렇게 억세이던 그이가, 시방은 죽음이란 몹쓸 운명에 부대끼어, 지겨운 저승길을 정해 놓고 있다. 힘없이 쓰러져 있다. 그러니 시방, 명수의 가슴을 무어라 말해야 좋으랴. 희정은, 명수를 사랑하였다. 무슨 아니하면 아니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지나간 다섯 해 동안을 하루와 같이, 명수를 사랑하였다.
사랑한다는 그 동안에, 사랑한다는 그만큼, 희정은 괴로웠을 것이다. 고생도 많았고, 눈물도 많았었다. 가정의 풍파도 많았으며, 심지어 만세꾼인 명수를 숨기어 두었다 하는 그 죄로, 경찰서 유치장 구경도 몇 번이었었다. 또한 죽을 뻔한 곳에도 수없이 갔었다. 그러할 때에마다, 명수는 너무도 감사에 견디다 못하여 “너무 미안하다” 하면은, “당신의 일이면은 죽어도 좋아요.” 하며, 희정은 늘 기꺼운 웃음으로 모든 근심을 지워버리었다.
어느 때에는 다른 곳에서, 사건이 발각되어, 명수를 연루자로, 형사가 쫓아왔을 때에, 희정은 모든 사건을 자기가 안고 나서지 아니치 못할 줄을 깨달은 듯이 “모두 제가 한 일이올시다.” 하며, 유랑녀의 아름다운 멋을 모두 풀어서, 형사를 반가이 맞았다. 그래, 자기의 방으로 형사를 인도해 들인 지, 한 시간이 채 못되어서, 노련한 마술사의 수단과 같이, 말 몇 마디 손짓 몇 번에, 형사를 주물러 쫓아버리었다. 어떻든 희정은, 그만큼 말솜씨도 있고 수단도 좋았다. 또한 명수가 무슨 낙망이 있을 때에면, 희정은 정성껏 위로하고 가다듬어 주었다. 명수를 칭찬해 준 이도 희정이었고, 놀이터에서 동무들을 만나서라도, 애써 일부러 명수가 한 모든 일을 자랑삼아서 혼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던 이도 희정이었었다.
시방, 명수의 답답하고 어두운 가슴은, 이러한 말을 속살거리고 있다. ‘그는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여 주었음이랴. 그는 자기를 사랑하였다. 죽도록 사랑하였다.‘
여러 가지 사정과 형편으로, 너무도 가엾이 사랑한다 하는 그 말은 한 마디도 해보지 못하고, 그저 남매의 우애로운 정처럼 그냥 그렇게……. 자기는 그를 누나라 불렀고, 그는 자기를 오빠라 불렀다. 그러나, 만세 난리 뒤에 다섯 해를 어떻게 살아왔었느냐. 무엇을 믿고, 서로 살아왔었느냐. 자기의 뜨거운 키스를, 거리낌 없이 남 모르게 받아주던 이는, 시방 이 자리에서 죽으려 하는 누나라 하는 희정이가 아닌가.
붉던 그 입술이, 이제는 아마 썩어버릴 것이다. 흙 속에 파묻히어, 여지없이 썩어버릴 것이다. 아니지! 설마 그러할리야 있으랴. 살고 죽는다 하는 그것이 도무지 허무하지, 멀쩡하게 산 사람이 죽을 리가 있으랴. 도무지 못 믿을 말이다, 거짓말이다,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다. 그러나 희정은 죽는다 한다. 의사의 말이 ‘열 시간 이상을 더 바랄 수 없다.“ 한다. 그러면 어찌하나……. 또한 자기는, 희정을 속이었다. 희정이가 살겠느냐 물을 때에, 그렇다 대답하였다. 차마 죽으리라 하는 그 소리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죽는다는 말을 해줄 수도 없는 그만큼, 희정이 죽게 됨을 깊이 믿었음이 아니냐!”
희정은 다시 눈을 뜨더니, 명수를 찾는 듯하다. 명수는 왜 그러느냐 하는 듯이 마주 들여다본다. “이제들 가세요…….” “왜……?” 명수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리면서도, 놀라워하는 빛이 어리었다. “무얼 이제…… 그렇지 않아요 네? 병이 낫는다 하여도…… 속하더라도…… 일 주일은 갈 터인데……. 어떻게…… 그렇지 않아요 네?” ‘네 하고 떨리는 소리는, 응석 비슷하게 억세이면서도, 듣기에는 너무도 힘없고 처량스러웠다.
명수는 다만 “그리하마.”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할 때에, 하염없는 무더기 눈물이 염치없이 뚝뚝 떨어진다. 한 오 분쯤 지났다. 눈을 감은 채로 희정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이, 얼굴을 조금씩 찌긋찌긋하고 입언저리를 실룩실룩하더니,
“그래도 가요!” 잠꼬대인지, 오장이 쏟아지는 듯하게 기운을 들이어 지른다. 파리한 가슴은, 아직도 남아 있는 숨기운이 발딱발딱한다. 들여다 보던 이들은, 모두 몹시 놀래었다. 희정의 동무 한 사람은 차마 견디어 다 ― 볼 수가 없는 듯이 한 숨을 한 번 “휘―.” 쉬고 고개를 돌이키면서 “참 죽기도 어려운 것이야, 저렇게 애를 쓰고…….” “시(時)를 찾느라고…….” 또한 동문가 한숨에 얼싸여, 고개를 돌이킨다. 미칠 듯한 명수의 머리 속은 몹시도 어지러웠다. 어지러운 중에도 한 가지의 의문은, “그래도 가요!” 한 그 헛소리이다. 명수 자기더러 가라고 한 말인지, 희정이 제가 스스로 가겠다는 말인지,
“저승?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명수는 고개를 내두르며 큰 울음을 터쳤다.
3
유유창천은 호생지덕인데
북망산천아 말 물어 보자
역대제왕과 영웅열사가
모두 다 네게로 가더란 말가
― 나는 간다…… 아니 갈 수 없이 가게 되었다. 정든 사람들아!, 너무 울지 말아라. 나는 하는 수 없이 이로써, 마지막의 인사를 드리나니, 호올로 애끊어 돌아가는 이 몸을, “희정아!” 부르짖어 부르지 말아라. 눈물로 적시어 보내지 말아라. 내일이면 모레면, 닥쳐오는 앞길에도, 설움이 넘쳐서 갈 수 없을 터이니…….
내가 그 동안에 그렇게도 알뜰이 지긋지긋이도, 살아왔더니라. 물 깊은 못 속에 들어간 듯이, 온몸을 마음대로 놀릴 수가 없었다. 나의 몸을 나의 마음대로 놀리지 못하고, 스물 몇 해라는 그 동안을, 사람에게 눌리우고, 세상에게 눌리우고, 야속한 인심에게 눌리우고, 기구한 팔자에게 눌리우고, 한숨에 불리어 다니는 몸이, 눈물에 무저져…… 나중에는 짓궂은 병까지 못살게 덤비어, 좁다란 병실로 마지막 세상을 삼으라고, 파리하고 약한 이 몸을, 여지없이 찌그러 누를 때에, 몇 번인지 모르게 죽을 힘을 다하여 소리도 질러보았다. 힘껏 뿌리치고 일어나려고도 하였다. 아우성을 쳐서라도, 부모와 형제를 부르고, 정 깊은 여러 동무들을 모아, 가는 목숨을 찌그려 누르고 있는 그 몹쓸 병을, 그 지긋지긋한 병을, 떼쳐버릴까 하였다.
그러나 도무지 허사더라. 못된 년의 운명은, 풀 수가 없구나. 공연히, 애쓰던 여러 사람들만, 헛된 수고로움에 애처롭게 허덕거리었을 뿐이다. 눈물은 흐른다, 시간은 간다……. 커다란 자물쇠로, 열리지 않도록 굳게 굳게 튼튼히 채워두었다 하던 그 죽음의 문도, 벌써 쉽게 열리어졌다……. 산짐승의 모질은 어금니보다도, 더 다시 무서운 솜씨를 가지고, 가는 목숨을 자위질하는 키 큰 사자가, 무서운 여러 사자가, 성난 눈초리를 휘번덕거리며 어두운 방 구석구석에서마다, 올가미를 겯고 섰다 한다. 아무 말 없이 우드먼 ―ㄴ이 서서, 잡아갈 때만 기다린다고 한다. 아― 어찌하랴. 누가 누가 어찌하랴. 어찌할 수가 있으랴.
나는 들었다.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누구인지 귀에 익은 정다운 음성이, “일어나거라―”하는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눈을 떠보았다. 아직도 나의 빰에는, 흐르던 눈물이 마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씻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팔이 무거우니까, 온몸이 천근이나 되게 무거우니까, 아니! 마음까지 천만근의 무쇠덩이같이 무거우니까……. “일어나거라!” 이상도 하다. 분명한 목소리를, 나는 또 한 번 역력히 들었다. 온, 알 수 없는 일이지! 고요히 잠자는 이 밤중에 나를 부르는 이가 그 누구인고, 나는, 왼옆으로 늘어진 한 팔을, 슬며시 이끌어 보았다. 무거웁던 그 팔은, 어렵지 않게 너무도 가벼이, 얼른 나의 마음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여진다. 참 너무도 희한한 일이다. 이제는 한 번 바른 팔을 들어보자. 여전히 아무 무거움도 없이 쉬웁게 들어진다. 그래 온몸을, 모두 다 한 번씩 움직여보았다. 여전히 아무 거북함도 없다. 무엇이 그리 무거워서 애를 썼노, 무엇이 그리 어려워서 걱정을 하였노.
모든 일을 의심할 만치, 지나간 나의 생각과, 정신없이 붙들리어 왔던 이 세상의 습관을, 못믿을만치, 나의 몸은, 움직이려 하는 그 마음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이어진다. 이제는, 땅의 힘도 모아 없어져버림과 같이, 나의 누워 있는 이 자리가, 아무 힘도 없이, 너무도 허전허전한 듯하다. 이제 어디 좀, 일어나 보려고 하였다. 일어나려고 할 때에, 나의 몸은 벌써 일어나 앉았다. 기운으로 일어났다하는 것보담도, 바람결에 일어났다 할만치, 빠르게 가벼웁게 일어났다. 그러나, 나를 부르던 이는 누구인고. 어디로 갔노. 내가 꿈을 꾸었음인가? 그렇지 않으면…….
나릿내가 끼치는 듯한 음습한 바람이, 온 방 안에 휘―돈다. 구슬프고도 침침한 이 속에, 무슨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이야기하는 듯한 이상한 곳이다. 늙은 쥐는 게을리 졸고, 배 주린 귀신의 응틋는 소리, 늙은이의 한탄, 젊은 과부의 울음, 설움내, 눈물내, 나릿한 곰팡내, 비릿한 핏내, 아― 내가 이때껏, 이러한 곳에서 살아왔구나.
나는 으쓸한 무서움을 느끼어 진저리쳤다. 오뉴월 궂은 비에 무너지다만 듯한 서편 흙벽에는, 사람의 그림자 비슷한 검붉은 그림자가, 어른어른 비추인다. 하다가, 그 그림자가 별안간 힘있게 푸르르 떠는 듯하다. 정없고 무지한 사나이가 긴 숨을 꿀덕꿀덕 삼키며 섰는 듯이, 진저리치게 무서웁다. 퍽 보기 싫다. 아― 저것이 이때껏, 이 방 속의 모든 사정을 비밀스러웁게 가리고 있었구나, 저것은 피다, 나의 피다, 나의 피로 나의 그림자를 가린 것이다.
또 한 번 머리 살이 쭈뼛쭈뼛 하여져서 온몸을 아르르 떨었다. 나는 얼른 일어섰다. 아무 끈기 없는 땅바닥이, 나를 박차고 떠다 밀어 버리는 듯하다. 그뿐 아니라, 터전 없이 미처지는 나의 마음을, 도무지 의지해 붙일 곳도 없이, 정에 엉클어저 매인 모든 보이지 않는 줄을, 모조리 끊어버리는 듯하다. 끝없는 굴 속에 끝없는 설움이 모두 내몰리어, 나를 휘몰아 밀쳐 쫓는 듯하다. 나는 외로움을 느끼었다. 슬픔을 깨달았다. 그러나, 울려하여도 차마 울 수도 없을 만치 속 깊이 서러웁다. 그 대신, 참다 못하여 하는 수 없이, 두어 걸음 뜻없이 걸었다. 그래서, 나의 가슴의 어지러운 설움을 그럭저럭 휘저어버리려고 하였다.
꿈나라같이 어렴풋한 달빛이 창 밖에 끝없이 어리었다. 그 달빛은 넌지시 나를 부른다. 나를 부르는 듯하다. 나는 그 달을 따라가겠다. 달을 따라서 걸어가겠다. 달빛은 나를 안았다. 나는 달빛에게 안기었다. 그리고, 나의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지렁풀 우거진 외따른 산길로, 나는 소르르 가만히 간다. 살며시 부는 고운 바람이, 나의 치맛자락을 지긋지긋할 때에, 가녈픈 풀 끝에 맺힌 이슬은, 나의 쪼그마한 발을 선듯선듯이 적시운다. 한 발자욱 또 한 발자국, 사뿟사뿟이 옮기어 놓는다. 이슬이 듯고, 눈물이 떨어지고…… 밤은 이 밤은, 참 거룩한 밤이다. 깨끗한 밤이다. 아름다웁고 착한 밤이다. 병든 아들을 위로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이, 보채는 아기를 달래시는 어머니의 자장노래와 같이, 어린아기 젖투정에 못 이기어서, 조상 적의 거룩한 옛일을 이야기 삼아 하시며, 이따금 떨어뜨리시는 알 수 없는 어머니의 그 눈물과 같이, 모든 거룩한 사랑과, 온갖 기꺼운 정을, 가득 찬 듯하게 가진 이 밤이다. 큰 팔을 벌리고 부드러운 그 가슴에, 나를 안아 주려는 듯이, 든든하고 탐탁한 이 밤이다.
이 밤에 나는 길을 간다. 하늘은 얕다. 아주 탐탁스러웁고 아늑하게 얕아 보인다. 향수로 티없이 씻고, 우유로 부드러웁게 물들인 듯한, 포근포근하고도 따뜻해 보이는 보얀 하늘에, 정신나는 듯하고 귀여운 뭇별들은, 여기저기 오묵오묵 박히어 깜박거리며, 은방울을 울리는 듯한 소리로, 고운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고요히 흐르는 은하수에, 가벼운 거울이 떠내려가는 듯한, 오리알빛 둥글엣달은, 나의 팔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잡아당겨 따가질 듯하게, 정다웁게 가까우면서도 고웁다.
그러나 그 달빛은, 나의 눈에다 눈물을 어리어준다. 무슨 구슬픈 설움이 느끼어져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하여도, 눈물은 분명히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안개 속처럼 몽롱하게 흐리어 놓는다.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고운 모기장을 쳐놓은 듯한 흐릿한 그 속에다 수수께끼를 푸는 장난감을, 되는대로 알 수 없이 내던져 둔 것 같다.
여기에서 나는 길을 간다. 이 밤은 이 밤은, 무어라 말해야 좋을 밤이냐, 뜻없이 우뚝 높은 뫼는 게울리 조을고, 철철 흘러가는 물은 가슴 아프게 운다. 신방에 들어가는 신부의 마음같이, 수줍으면서도 소리없이 날뛰는 보얀 골안개는 보금자리 잃은 어린 새의 꿈을, 까닭없이 흐느적거린다. 나는 어미 잃은 그 새끼 새와 같이, 외로이 울며 이 길을 간다.
이 몸은 작다. 말할 수 없이 작다. 그리고 여지없이 더러워졌다. 광채를 자랑하는 뭇별은, 숨김없이 반짝이며 내려다보는데, 나의 가슴은 왜 이리도 몹시 어두워졌노. 들가에 속살거리는 아지랑이보다도 사람은 더 다시 알 수 없구나. 허무하고 몽롱하게, 빛도 없고 정도 없고 사랑도 없고 또한 이름도 없이, 다만 쓸쓸한 황무지에서, 헤매이고 구박만 받다 가는 것이, 내가 살아본 사람이라는 그 것이로구나. 이때껏 그러한 곳에서만 살아왔으니, 또한 장차도 그러한 곳으로만 허우적거리고 갈 터이겠지. 외따로 떠가는 달은, 어디까지나 가려느냐. 반짝거리는 저 샛별은, 어느 때까지나 속살거리려느냐. 어린 새야 너는, 언제까지나 우짖으려느냐.
세상은 나를, 이름도 없이 천한 목숨이라고만 부른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은 사람 행세도 못하여 보았다. 봄을 파는 물건이라 하여, 돈만 있으면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었었다. 그래서 나의 몸은, 더러워 버리었고 허물어져 버리었다. 그 흔한 사랑도 나에게는 허튼 주정!
그렇다. 나는 사랑에서 살아보는 사람이 되려 하였다. 돈으로 아니고 사랑으로 살려 하였다. 사람 노릇을 하려 하였다. 옳고 착한 일만을 해보려 하였다. 아니― 얼마쯤은 착한 일도 하고 옳은 일도 해 보았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모르더라. 모른 체하고 비웃어 버리더라. 업수이 여기더라, 사람으로는 대접하지를 아니하더라. 천한 목숨이라고만 부르더라. 다만 짐승처럼 여기고, 짐승을 부리듯이 구박하고 학대만 하더라. 그래 꽃다운 꽃순은 다― 꺾이어버렸다. 여지없이 무질느며, 모진 발꿈치에 짓밟혀 버렸다. 그러고도 마음에 넉넉지 못하여, 또 다시 끝끝내 천한 목숨이라고만 업수이 여겨 부른다.
대체 나는 누구의 까닭이냐. 누구로 말미암아 천한 몸이 되었으며, 또한 무슨 죄며, 누구의 죄이냐. 나는 다― 뺴앗기어 버리었다. 청춘이나, 행복이나, 모든 부러웁고 하고 싶은 것이나, 꽃다운 꿈이나, 순실한 정성이나 다시 얻을 수 없는 귀여운 정조나, 나중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고기덩이까지 목숨까지, 다―빼앗기어 버리었다. 나는 등신만 남은 허수아비다. 등신만 남아서 구을러 다니는 빈털터리다.
아― 나의 것을, 모두 모조리 빼앗아 간 이는 누구이냐. 그 강도질을 한 죄인은 누구이냐. 못살게 군 이는 누구이냐, 하느님이냐, 사람이냐, 이 몸 스스로냐, 항용 말하는 팔자라는 그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광막한 벌판이냐, 우뚝 솟은 뫼 뿌리냐, 철철 흐르는 한강수냐. 유연히 뜻없이 돌아가는 뜬 구름이냐, 반짝거리는 별빛이냐, 안개 속에서 노곤히 조으는 참새 새끼냐, 침침한 곳만 찾아서 기어드는 배 주린 귀신이냐, 정말 어떤 것이 범죄자며, 참말로 나의 똑바른 원수이냐.
내가, 세상에나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나를 보고 지껄이는 사람들을 보면은, 미운 생각뿐이다. 우기고 뻗서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버릇이 되어 버리었다. 다만 혼자만 고생이고 울음이고 가슴 아픈 일뿐이었다. 아무 효험없이 아모 뜻없이 아무 기운없이, 긴 한숨은 죽음을 짓고, 쓴 눈물을 무덤을 파고, 쓸데없고 변변치 않은 모든 불쌍한 역사는 지겨운 죽음의 옷을, 한 벌씩 두 벌씩 한 갈피 두 갈피 차곡차곡 차례로 장만해 왔을 뿐이다. 열이 나서 날뛰다가도 멈추어 서고, 의심을 하여 돌아서다가도 꿈을 꾸며 다시 가고, 무서워서 머뭇 거리다가도, 설마설마 하는 그 속에서 다시 속아, 그만 끝끝내 이렇게 병이 들어 버렸구나. 낼 모레 낼 모레 하면서 미루어 오던, 밀우체 근심은, 나를 지레로 늘키어서, 이처럼 다시 고칠 수 없는 무서운 병을, 깊이 들여 놓았구나.
병든 신세, 깊은 병에 얽매인 이 몸, 근심에 무저져, 생각에 게을러, 고달픈 푸른 꿈길, 꿈없이 머나먼 길로, 여위인 달 그림자를, 뵈는대로 따라서, 이렇게 소리 없이 울고 가노라. 울고 가노라.
이 산은 높기도 높다. 오르고 또 올라고, 그지없이 높은 산이다. 숨이 턱에 닿아서 헐떡거리며, 어기어 올라간다. 산 아래는 물이요, 물 위에는 산이다. 굽은 길, 빠른 길, 지름길, 비탈길, 기어오르자, 낭떨어지, 건너뛰자 언덕빼기, 힘없는 발꿈치는 돌부리에 걷어 채이고, 고달픈 몸은 몇 번인지 고꾸러지며 나는 이 산고개를 올라간다. 고개 고개 높은 고개, 아니 가지 못할 고개, 배고프다 보리고개, 기막히다 설움 고개, 죽고 살고 목숨 고개, 닥쳐오는 한숨 고개, 나는 이 고개를 넘어가야 하겠다.
옳다. 나는 이제 고개에 올라섰다. 산 잔등에 높이 올라섰다. 눈물을 거두자, 바람을 마시자, 땀을 들이자, 온 세상 마음 놓고 내려다 보자. 저쪽에는 출렁출렁 하는 강물이 흐른다. 하얀 모래톱, 금잔디 휘―ㄴ한 벌판, 내가 저 곳에서, 얼마나 많이 울면서 헤매어 왔노, 이제는 나는, 어디든지 가고 싶다. 어린 새와 같이 이리저리 마음대로 가고 싶다. 깁수건같이 부드러웁고 향기로운 안개 속에서, 곱고 매끄러운 무지개를 타고서, 무한을 찾아, 영원을 찾아, 구름을 지나 달을 지나, 별나라로 또 끝없이, 멀리 부르는 그 소리를 따라서, 귀에 익은 정다운 음성을 따라서, 가고 가고 한없이 가고 싶다.
저 아래에 강가로 휘둘려 있는 마을에서는, 체붕같이 죽은 듯한 저 마을에서는, 반짝반짝하는 푸른 등불이 근심스러이 조으는 듯하다. 머―ㄴ 하니 문 열어 내버려 둔, 저 외따른 움막살이 집은, 내가 살던 집이다. 이 몸이 크도록 자라고 애졸려 살던 그 집이다. 아마 어느 때까지든지, 내가 돌아갈 줄만 여겨, 기다리겠지. 그러나 나는, 다시는 아니가겠다. 아니 간다. 다시 두 번 돌아서지 못할 마지막 이 길이다.
섭섭하다……. 몹시도 그리웁고 서운하다. 또 슬프다. 그러나 돌이키어 가지 못할 이 길이로구나. 그러면 어찌하노. 나는 한 번 또다시 고개를 돌이키었다. 옛마을을 휘둘러보자. 그리운 우리 마을을 내가 보고 가자. 내가 살던 우리 마을을, 더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살피어 보고 가자.
마을은 모두 불빛이다. 불이 붙는다. 이상한 불이 붙는다. 불난리가 났다. 조그마한 불이 무더기 불이 되고, 무더기 불이 큰 불이 되어, 허공을 내저으며, 무서웁게 붙는다. 큰 팔을 벌리어, 온 대지를 껴안으려는 듯하다. 구름처럼 몰리어 닿는 아득한 연기 속에서, 정신없이 매음돌며, 쓰러질 듯한 것은, 우리의 집이다. 아― 저 마을! 저 마을! 저 속에는 이때껏 불이 있었다. 불만이 가만히 살아왔다. 성하게 타 왔었다. 모든 것을 태우려고…….
물 있는 달빛은, 침울한 병이 들어 헐떡거린다. 검붉은 하늘과 땅은, 어떠한 불안이 있는지, 잔뜩 찌푸렸다. 커다란 옛대궐 물을, 일없이 짊어지고, 노상 엎드려만 있던, 저 말 없는 돌짐승이, 무슨 큰 소리를 한 번 크게 지를 듯 지를 듯하다. 괴상한 불빛, 무더기 먼지, 온갖 것이 모두 부글거리며, 무슨 크낙한 일이나 장차 터져 나올 듯하다. 한 때의 회오리 바람이, 빛 거칠은 마을 한 귀퉁이에서 일어난다. 빛없이 섰는 열세 층 탑을, 휘둘러 소곤거리던, 한 때의 희미한 무리가 물러서자마자, 한 마디의 무서운 폭향이 일어난다. 하늘을 찌를 듯한, 한 자락의 성난 불길이, 확 하고 또다시 일어난다.
우르르 하는 천둥지둥 어디에선지 모르게 터지는 울음, 날뛰는 부르짖음, 미친 듯한 한 때의 무서운 폭풍이 내몰리어 거리 거리를 휩쓸어 덮어버린다. 날리는 기왓장, 뛰노는 불덩이, 골목골목이 이상한 불길에 얼리어진다. 불이 뛰어다닌다. 귀신의 웃음이, 들린다. 사람의 울음 소리가 난다. 서로 찾고 서로 부르짖는다. 거기에서 나의 이름도 부르는 이가 있다.
누구들인가. 나의 어머니신가. 나의 아버지신가. 그렇지 않으면 나의 동문들이냐. 정든 사람들이냐. 힘껏 안타까웁게 부르는, 나의 사랑의 목소리도 들린다. 여러 목소리는 나를 부른다. 나를 찾는다. 그러나 나는 벌써 여기에 와 있다. 그렇지마는 나도 그 불은 가지고 왔다. 나도 불이 있다. 숯처럼 검은 이 년의 가슴속에, 이때껏 타던 것도, 가만히 붙어오르던 것도, 끌 수 없는 그 불이다. 몇 번인지 그 붙는 불은 끄려 하여 애꿎은 눈물만을 날마다 많이 흘리었다. 그래서 공연히 애처로이, 나의 전신을 빈틈없이 아로 삭이어 논 것은 눈물의 흔적이다. 눈물의 수단으로 나의 몸은 이렇게 형용도 알 수 없이 낡고 또 스러져버릴 지경이다.
고개를 내려서서, 일없이 걸어갈 때에, 발 앞에 연기같이 어리인 물건이, 걸어간다. 다만 호올로 강가에서 헤매이는 검은 물건이 보인다. 옳다 저것은 팔자라 하사는 그것이다. 노상 나의 앞을 서서 간다 하던 그 팔자이다. 그 팔자도 나와 같이, 여편내의 모양을 차리었다. 나는 저 팔자와 함께 헤매인다. 팔자는 울고 있다. 나도 운다. 궂은 비처럼 내리며, 모래밭을 적시우는 눈물……. 옳다. 설움의 무거운 나의 몸은, 궂은 눈물로써 기구한 팔자와 서로 알게 되었다. 사괴어 젖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느릿한 긴 세월과 함께, 한갓 강가의 물거품을 깨치는 끝없는 눈물밖에는, 아무것도 있지 아니한 줄을 나는 알았다.
나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앞에 섰는 팔자는, 한 손을 번쩍 들어 끄덱끄덱하며, 나를 부른다. 사방은 고요하다. 내가 자세히 여겨볼 때에, 앞선 그 팔자는, 나의 아버지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너무도 반가워서, “아버지” 하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도무지, 목소리가 나오지 아니한다. 아버지는 “이 곳은 그렇게 입으로 떠드는 곳이 아니다.” 하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설설 내두른다.
어둠나라 이쪽, 퍼―ㄴ하니 넓은 벌판에, 쓸쓸히 흐르는 달빛은, 거칠게 우거진 잡풀은, 너무도 처량스러웁다. 먼들 저쪽가에서, 노랫소리가 울리어온다. 물에 빠져 죽은 시악시 귀신의 처량한 울음 소리같이, 구슬픈 노랫소리가, 명랑히 멀리서 떨리어온다. 나는 고개를 다소곳하고, 한참이나 서서 들었다. 그 노랫소리는, 가슴에 숨어드는 듯이, 뼛꼴에 녹아드는 듯이, 물에 숨어드는 듯이, 스르르 사라져 버린다.
으스름 달빛이 조을고, 새벽안개가 서리인, 거친 풀들 이곳저곳에서, 슬그머니 수없는 사람들이 일어난다. 모두 무슨 소리인지 잠꼬대 비스하게 꾸물꾸물하며, 우수수 하고들 일어난다. 나는 머리 살이 쭈뼛하였다. 그러나 그리 몹시 놀라지는 아니하였다. 모두 일어나, 한 발씩 한 발씩 다가와서, 삥 둘리어 에워선다.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하나씩 자세히 여겨보니 모두 나의 아는 사람들이다. 모두 정든 사람들이다. 그들의 몸 매무새는 너무도 어지러웁다. 허리를 드러내이고, 젖가슴을 풀어헤친, 헐벗은 몸꼴도 몹시 볼 수도 없을만치 불쌍하다. 대개는 피묻은 옷을 입고, 대개는 남루하다. 입 언저리에 고운 피를 흘리며 오는 이도 있고, 혹은 울며, 혹은 고달피어 졸며, 혹은 빛바래인 입술을 비죽비죽하고들 있다. 대개는 코떨어진 병신이 아니면, 팔병신, 다리병신, 문둥이, 반신불수, 온갖 병신들뿐이다.
나는 다― 잘 알았다. 그들의 저렇게 불쌍히 된 내력까지 다― 잘 안다. “밥을 주어요, 사랑을 주어요.” 하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푸념하듯 한다. 저쪽에서도 수많은 군중이 몰리어온다. 그들은 모두 사나이이다. 그러나 얼굴은 모두 볼 수도 없이 모두 커다란 삿갓을 우그려 썼다. 옳다, 저이들의 쓴 삿갓을, 모두 내가 옛날에 씌워준 삿갓이다.
저들은 나의 은인들이다. 재물을 갖다주던 은인들이다. 저 삿갓 속에는 부자도 있고 귀골도 있다. 그러나 시방은 “돈을 달라 돈을 달라.” 하고 모두 아귀다툼질뿐이다. 나더러 옛날의 준 돈을, 내이라고 모두 조른다. 아―어찌하면 좋으냐. 옳다, 저 곳에 삿갓을 쓰지 않고 서서, 빙그레 웃고 보는 사나이가 있다. 저는 나의 사랑이다. 나의 사랑이다. 나는 저에게 구원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 저를 따라서 가는 수밖에 없다.
높은 산고개와 넓은 강물을, 수도 모를만치 넘고 건넜다. 그 고개는 이름을 지어 근심이라 하며, 그 물은 이름지어 세월이라 한다. 아―그 고개는 얼마나 높았으며, 그 물은 얼마나 넓었었나. 이제는 나도 늙었다, 근심으로 늙었다. 이제는 가을이다. 가을이 들었다. 한심스러운 사람의 살림에, 추절이 들었다. 너무도 고달피었다. 괴로웁다. 평안히 쉬일 곳을 찾고 싶다. 오래 살 안식의 터를 구하고 싶다. 웅장하게 높이 둘린 가시성에 단풍이 들어서, 선지피가 듯는 듯하게 붉은 성이 가로막아 섰다. 우리들은 가시성을 끼고 돈다. 성벽에 엉클어진 가시덩쿨 밑으로, 그림자만 남은 고목이 쓰러져 썩는 그 사이로…….
가시성을 한 구비 돌아설 때에, 비린내가 끼친는 충충한 큰 못물이, 앞에 닥친다. 누런 구정물이 충충하게 썩는 웅덩이 속에, 여러 개의 손목 발목, 살 염통, 머리칼, 해골박이, 서로 부딪히고 서로 얼키며, 물에 둥둥 떠 북을 그린다. 그 중에 따로이 떠서 돌아다니는, 두 개의 커다란 해골이 있다. 그것은, 나와 나의 사랑의 해골이라 한다. 그 해골은 서로 정다히 이야기하며 떠 있다. ―예전 그 때에, 아직 이 세상의 청승스러운 일이 벌리어 열리기 전 옛날에, 물가에서 어른거려 헤매이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그들은 가장 거룩한 한 사랑이었다. 회색 구름이 떴다 사라졌다 하는 도깨비 장난 같은 희미한 빛 속에서, 노들이 듯하는 소낙비를, 다―맞아가면서, 서로 탄식도 하며 울기도 하며 부르짖기도 하였다.―
나의 사랑은, 가장 정다운 온순한 말씨로, 모든 그윽한 말은 나에게만 말하였다. 아―불쌍한 너와 나의 해골. 으스름 달빛은 조을고, 여우의 울음은 자지러진다. 좁고 넓은 평탄한 곳에, 집터인 듯한 거칠은 쑥대밭이 있다. 예전에는 이곳이 우리의 집터라 한다. 그러나 시방은, 집도 없고 주추도 없고, 다만 우리의 해골을 묻을 무덤자리라 한다. 갈 곳은 모르고, 갈 길은 많으니,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나의 사랑은 나를 부르고, 나는 나의 사랑을 따라간다. 갈 곳이 어디며, 가는 곳은 어디메냐. 이 길이 도무지 몇 만리나 되느냐. 너무도 그지없고 너무도 바이 없구나.
옳다, 저기 저 곳에 붉은 칠을 한 커다란 성문이 보인다. 나의 사랑은 여전히 “저 곳은 갈 곳이 아니다.”울며 나를 만류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의 말을 들을 수가 없가. 나는 분명히 성문을 본다. 또한 고달피었다. 사랑의 말을 너무 듣기에 고달피었다. 사랑이 나를 속일 리는 만무하지마는…… 그래도 나는, 그의 말을 믿어 들어오다가, 너무도 휘돌아온 듯싶다. 나는 나의 가고 싶은 대로만 가는 수밖에 없다. 사랑이 가리켜 주는 길은, 너무도 희미하다. 갈래도 많다. 천 갈래 만 갈래 세일 수가 없어 가지 못하겠다.
나는 가고 싶은 대로 간다. 사랑의 말을 돌보지 않고 호올로 간다. 모든 일을 무릅쓰고 호올로 간다. 그런데, 사랑은 울고 섰다. 안타까운 사랑, 내 사랑은, 울고 서 있다. 어찌 하노! 어찌 하노! 나는 어지러웁다. 어찔어찔해 쓰러질 지경이다. 설움의 실마리는 풀리어져서, 넓은 벌판에 서리서리 한다. 성문이 열린다. 나는 정신없이 엎드려졌다. 땅은 돈다. 이 몸을 실은 이 땅은, 구을러 움직인다. 어디로 어디로 흘러 움직인다. 성문은 덜컥 닫힌다.
나는 다시 기운을 다하여 일어섰다. 굳게 닫힌 무쇠 성문을 두들겨 보았다. 그러나 문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한다.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러나 문 밖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아니한다. 다만 이 몸을 성 안에 싣고, 성째 아울러 흘러가는, 땅의 흐르는 소리만 들리울 뿐이다. 실 같은 문 틈으로, 바깥은 내어다보니, 천지는 암암, 날빛은 검은데, 멀리서 멀리서 점점 멀리서, “가지 말아.” 하는 듯이 서서 우는, 사랑의 얼굴이 잠깐 보인다. 죽은 듯한 이 성 안에 든 나의 설움을 누가 알랴. 맥풀린 나의 눈, 곰팡 슬은 내 목소리, 힘들여 힘들여 크게 질러서
“그래도 가요…….”